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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공간의 환상 ㅣ 다빈치 art 5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종석 옮김 / 다빈치 / 2001년 11월
평점 :
이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다. 1부는 청년 시절의 자필 원고 중에 발췌한 문장들이고, 2부는 만년에 지인들에게 남긴 말을 옮겨 놓았다. 그래서 작가가 가우디 자신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3부는 대표적인 가우디 연구가라는 후안 바세고나 노넬의 연구를 중심으로 역자가 가우디의 작품을 정리해 놓았다.
실은, 이렇게 한 사람의 말이나 글을 토막 내어 조금씩 옮겨 놓은 책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만은 예외였음을 고백해야겠다. 1,2부는 대체로 한 페이지에는 가우디의 건축물 사진이, 반대편 페이지에는 가우디의 글이 실려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드러나는 작품은 감탄스럽다. 반대편에 놓인 글은 그의 작품들을 보다 잘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가 자신이 하는 일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카사 밀라의 다락방 포물선 아치
가우디는 ‘빛’에 대해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건축에서 빛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런 주장은 실제 그의 작품에서 정당성을 획득한다. 카사 밀라의 다락방이나 테레사 학원 2층 복도를 보자. “건축은 빛의 질서”라는 말이 눈으로 확인된다. “빛을 받는 돌출된 요소 전체와 또 하나의 함몰된 요소, 그림자 안에 있는 요소와 이에 대립되는 빛을 쬐는 요소” 등 세부적인 사항에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자연 채광된 실내는 빛이 미처 닿지 않는 부분까지를 포함해 전체적으로 상당히 부드러우면서 아늑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카사 바트료의 복도와 마요르카 대성당은 자연 채광 외에 “공간을 윤택하게 하며 다양성을 부여”하는 조명의 효과를 보여준다.
카사 바트료의 복도
건축은 입체적인 예술이다. 하여 가우디는 ‘공간’을 파악하는 것을 건축가의 기본 자질로 본다. “건축가는 모든 요소들을 3차원적인 관계 속에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결합시켜야 한다.” 심지어 “인간의 지성은 평면적(2차원적)으로 작용하는데 반해 천사의 지성은 3차원적이며 직접적으로 공간 속에서 작용”한다고 말하면서 공간적인 상상력을 강조하고 있다. 구엘 궁전, 구엘 성지 교회, 사그라다 파밀리아 교회 등은 3차원적인 상상력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그의 건축물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구체화한다는 점에서 SF와 유사하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으나 단 한 사람만은 상상하고 보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예술/과학을 발전시키는 추진력이 된다.
구엘 궁전 구엘 성지 교회 카사 바트료
그러면서도 가우디는 집의 기본 목적이 무엇인지를 잊지 않는다. “하나는 위생적인 환경을 갖추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술적 환경을 통해 사람들이 좋은 품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가우디 스타일을 싫어해서, 가우디가 죽자마자 실내 장식을 모조리 뜯어 고친 사람도 있었다지만, 사람이 사는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건축가가 지은 집에서라면 건강하게, 좋은 품성을 갖고 사는 것도 보다 쉬워질 듯 하다.
3부의 작품 소개는, 사진 없이 글로만 설명한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으나 가우디의 작품을 개괄적으로 파악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가우디가 궁금한 나 같은 문외한에게 만족스러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