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릴케 현상 > 파시즘에 있어서 '대중의 국민화'-강유원

파시즘에 있어서 '대중의 국민화'

임지현/김용우(엮음), <<대중독재>>, 책세상, 2004.
김용우(지음), <<호모 파시스투스>>, 책세상, 2005.

'대중독재'라는 술어로써 포괄되기에는 통일성이 부족 -- 이 부족함은 성급하게 만들어진 듯한 술어 자체의 모호함에서 기인하기도 하는데 -- 해보이는, 불균질한 논문 18편을 묶은 <<대중독재>>는 자료집으로 규정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니, 파시즘이 서유럽, 중유럽, 동유럽, 한국, 일본에서 어떻게 대중을 동원하고 그것에 대중이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가담했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자료와 연구사적인 성과, 참고문헌이 필요한 이들에게만 소용될 책이다.

엮은이 중의 한 명인 임지현은 프롤로그에서 '대중독재'라는 술어를 채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라는 새로운 용어로 좌파 독재와 우파 독재를 아우르려는 이 프로젝트의 시도도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즉 강제와 폭력이라는 피상적 이미지의 물밑에서 작동하는 대중의 자발적 동원 매커니즘을 드러냄으로써, 아래로부터의 시각에서 20세기 독재체제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 술어를 도입하면 파시즘의 핵심 규정 중의 하나인 '대중의 밑으로부터의 동원과 이들의 국민화nationalization를 위한 운동'을 부각시키는 장점이 있기는 하겠으나, 원칙상 대중독재 --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중기반 독재'일 것이다 -- 는 파시즘의 하위 요소인데도 그것이 파시즘과는 구별되는 또다른 체제를 가리킨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달리 말해서 파시즘의 개념을 명료하게 규정한다면 --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이것이 어렵지 않다 -- 굳이 따로 고안한 술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더나아가 파시즘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의 역동적 상호관계를 함께 고찰해야만 총체적 이해가 가능할 터인데도, 그 측면만을 떼어낸다면 오히려 그러한 이해를 저해할 우려마저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대중독재'의 지형도 그리기"라는 제목을 가진 프롤로그에서 임지현은 대중독재의 지형도는 차치하고라도 책에 들어있는 논문들의 개괄마저도 제시하지 못하며, 독자가 프롤로그 자체를 요약하는 일도 어렵게 만듦으로써 술어의 불필요함, 불명료함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일정한 틀을 가지고 주어진 자료를 재구축한뒤 핵심으로부터 주변으로 서술을 전개하지 못하는, 저널리스틱한 글쓰기가 가진 무능력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역사학자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체계적 학자여야 한다는 것을 각성시켜주는 사례라 하겠다.

김용우의 <<호모 파시스투스>>는 "프랑스 파시즘과 반혁명의 문화혁명"이라는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 파시즘에 관한 책 -- 이 역시 자료집 수준이다 -- 이다. 체계를 갖추고 쓰여진 진정한 의미의 단행본이 아니라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여기저기에 기고한 11편의 글들을 2005년에 묶어낸 것이다. 책을 만들기 위해 오래 전에 쓴 글들까지 집어넣다보니 한참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황마저 보인다. 이를테면 제1부 제1장 '파시스트 이데올로기'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이즘' 가운데 파시즘만큼 의미가 불명확하고 논란이 많은 용어도 드물 것이다. 파시즘의 이러한 모호성은 먼저 파시즘이라는 용어 자체와 이 말의 남용에서 연유하며 또한 그것이 포괄하는 대상이나 시기의 다양함 때문이다." 이 글이 쓰여진 1994년에는 이 언명이 유효하였을지 모르나 10년이 지난 지금 파시즘에 관한 책 첫머리에 쓰여지면 엉뚱한 것이요, 지난 10년 동안 이 입지로부터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음을 자백하는 것이다.

출판사의 관대함에 힘입어 세상에 나온 두 권의 책에 관한 간략한 언급을 그치고 <<대중독재>>의 몇몇 글들과 그것들에서 참조하고 있는 다른 책들에서 이끌어낸 파시즘의 대중동원 기제에 대하여 몇가지를 서술해보기로 하자.

황보영조는 "프랑코 체제와 대중"이라는 논문에서 대중의 개념을 파시즘과의 연관 속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대중masses이라는 용어는 19세기 중엽(영국의 경우 1830년경, 스페인의 경우 1870년경) 나타난 것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나 도시의 하층계급, 곧 토지를 떠나 자본주의적 공업화나 도시화 과정에 편입된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대중이 시기적으로는 근대의 산물이며, 공간적으로는 도시에 국한되는 존재임을 뜻한다(그런 까닭에 황병주가 "박정희 체제의 지배담론과 대중의 국민화"라는 논문에서 농촌 새마을 운동을 사례로 들어 사태를 분석할 때에는 이러한 대중 개념을 적용할 수 없을 것이나 그는 그러한 것에 민감하지 않다). 근대 도시에서 형성된 대중은 지역공동체나 혈연과 같은 과거의 전통과 철저하게 단절된 상태이고, 새로운 유대는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며, 근대라고 하는 낯선 시대가 가져다 준 "물질적 고통과 무력감, 자본주의적 생산이 옛 생활 유형을 파괴한 데서 오는 상실감과 소외감"만이 증폭되고 있었다. 근대의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 대중은 "나름대로 노조와 정당을 결성하기는 했지만 노동 단체가 제공하는 사회.문화적 네트워크에 편입된 대중은 의외로 소수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존재의 의미와 소속감을 느낄 대안적 구조에 접근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지역적 공동체에 기반한 노동자 결집에 위협을 느낀 부르주아-반동 연합은 파리 코뮌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한 폭력으로써 그들을 제거해나갔다. 파편처럼 흩어진 대중 -- 이것이 바로 "파시즘의 대중적 기초를 형성해 나갈 공간을 제공해 주었다. 이탈리아 파시즘과 독일 나치즘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프랑크 체제도 이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나름의 정책을 펴나"갔거니와 그것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바로 전간기戰間期의 현실 파시즘이 그 증거로 제시될 수 있겠다.

그람시는 <<옥중수고>>에서 파시즘의 이러한 성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러한 파시즘의 도식이 특히 도시와 농촌의 광범한 소부르주아지와 같은 이탈리아의 특정 사회 집단들에게는 기대와 희망의 시대를 창출할 수 있다는 -- 그리고 실제로 창출하였다 --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 도식은 전통적 지배계급들의 수중에 있는 헤게모니 체계와 군사적.시민적 억압의 힘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수동적 혁명'이 정치 영역에서 작동했던 것처럼 국제 경제의 영역에서 '진지전'의 요소로서 작용한다. 1789년부터 1890년까지 유럽에서는 프랑스 혁명에서의 (정치적) 기동전과 1815년부터 1870년까지 계속된 장기적 진지전이 있었다. 최근에는 1917년 3월에서 1921년 3월까지 기동전이 정치적 측면에서 일어났으며 그 이후에는 진지전이 -- 실천적(이탈리아)이면서 이념적(유럽)으로 -- 이어졌는데, 그것을 대표하는 것이 파시즘이다."

그람시의 이러한 언급을 통해서 우리는 파시즘이 대중을 지도하는 힘을 획득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전간기 이전인 1815년부터 1870년까지의 장기적 진지전을 참조함으로써 전간기 파시즘만을 진정한 파시즘으로 보는 해석을 논박할 수도 있겠는데, 이때 핵심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대중운동이라는 계기일 것이다. 대중운동과 대중민주주의는 전간기 파시즘이 그것을 활용하기도 전부터 오랜 발전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개입시키면 지도자와 대중의 대립, 대중에 대한 폭력 등을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이론의 한계를 지적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시즘은 어떤 매카니즘을 통해서 열광적인 대중동원을 이룩하였는가? 주지하듯이 이 점에 관해서는 그람시가 자신의 지식인론, '대중의 상식으로서의 철학' 등의 테제 등에서 표명한 바 있으니 우리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참조하면서도 그것에 덧붙여 우선은 벤야민의 '정치의 심미화' 개념을 거론할 수 있겠거니와, 이 개념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은 그의 서평 "독일 파시즘의 이론"과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의 추기追記이다. 그는 파시즘의 정치경제학적 특징에 주목하여 "파시즘은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건드리지 않은채 새로이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대중을 조직하려 한다"고 하며 이를 위해 대중에게 "의사를 표현하게 하는 데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다"고 지적한다. 대중에게 의사표현의 기회와 기구를 제공하는 것 -- "주간 뉴스 영화"와 같은 현대의 테크놀러지는 이것에 봉사한다 -- 이 정치의 심미화의 첫 단계라면 "인류 스스로의 파괴를 최고의 미적 쾌락으로 체험케 하는" 영원한 전쟁은 그것의 완성이라 할 수도 있겠다.

과연 벤야민의 정치적 심미화 개념은 파시스트 체제가 생산해내는 넓은 의미의 문화적 산물들을 정치적으로 파악하고 비판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주나 그 과정에서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측면까지 포괄하고 있지는 못하다. 대중은 파시스트 체제가 현대의 테크놀러지를 활용하여 만들어낸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벤야민은 자신의 논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중의 적극적인 계기, 이를테면 "러시아에서 영화에 접하게 되는 배우의 일부는 우리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배우가 아니라 스스로를 연출하는 민중"이라는 관점을 진전시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물론 그는 그에 이어 곧바로 "서유럽에서는 영화의 자본주의적 착취가, 오늘날의 사람들이 재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당한 요구, 고려를 금지하고 있다"는 제한을 덧붙이고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정치의 심미화를 보완할 수 있는 매카니즘을 찾아야 할 것인데, 그것은 '정치 종교' 또는 '정치의 신성화'이거니와 이는 조지 모스George Mosse의 <<대중의 국민화The Nationalization of the Masses>>에서 분석되고 있다.

모스는 어떤 문화적 기제가 작동했기에 나치 체제에 대한 대중의 자발적 지지, 더 나아가 대중의 열광, 합의가 도출되었는지를 묻고, 파시스트 정치학의 본질을 이루었던 신화와 의례의 중요성을 지적하며, 대중을 체제 안으로 포섭하여 새로운 주체로 만든 나치 정치를 '신정치New Politics', 또는 정치종교라고 규정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이는 정치의 심미화와 잘 구별되지 않는다. 나치가 "축제, 대중행진, 조형물 등과 같은 여러 차원의 대중 미학을 통해 문화 예술 영역, 일상생활과 공적인 정치 영역을 서로 뒤섞이게 만들어 지속적으로 대중을 매혹했고, 심지어 나치의 폭력마저 미적인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치종교는 정치의 심미화 이상이며 나치즘은 분명 정치종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정치종교는 먼저 집단 정체성을 창출하기 위해 전통을 재구성한다. 그러고 나서 한 개인이나 어떤 집단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한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감정적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제스처와 상징의 그물망 속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묶어줄 수 있는 공격적 의례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본다면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민족공동체와 같은 나치의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종교적 언어상징, 의례 및 경배의식 등을 통해서 신성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의 심미화가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히틀러 신화는 나치의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맥락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또한 나치의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근저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그들의 종말론적이고 묵시록적인비전이 자리잡고 있었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히틀러는 단순한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는 예언자로, 심지어 구세주로 묘사되었다."

이러한 기제들을 통해서 국민화된 대중들은 파시즘 체제의 암묵적 동의자로서, 적극적 가담자로서, 체제의 핵심 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들의 그러한 행태는 <<나치시대의 일상사>>, <<나치의 자식들>>을 통해서 확연히 알아볼 수 있다.

이로써 우리는 '대중을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파시즘의 핵심 요소 중의 하나이며, 그러한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작동하는 매커니즘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대중의 국민화'는 근대 이후의 국가에서는 어디서나 수행되어 왔던 일이기도 하니 그것에만 지나치게 주의를 기울인다면 어떤 국가이든지 파시스트 체제의 징후를 가진 것으로 판단하게 될 것이며, 이는 '여기저기에 파시즘'이라는 지표를 남발하는 경고과잉을 초래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파시즘에 관심을 가진 이는 여타의 요소들과의 역동적 관계파악이라는 원론적인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요구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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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4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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