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 제국주의의 폐해로  소외당한 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 때로 슬프고 안타깝고, 때로 유쾌하고 따뜻하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 외에 다른 작품들은 썩 마음에 닿지 않았는데, 이건 역시 소설이 아니라서 그런지 힘이 있다.

 

 

과거로 왕의 정치적 파트너(소위 코드가 맞는 사람)를 뽑았다고. 그래서 정치 현안을 묻고 대답하는 책문이 중요하다지만, 대책을 보면 일반론 외의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지 않나 싶다. 대개 선비들이 공부하는 텍스트라는게 정해져있었고, 그 안에서 예를 들어 논증하는 형식이므로, 게다가 일반론이므로, 대책의 내용이 비슷해질 수 밖에 없다. 하나의 책제에 대해 유일하게 여러명의 대책이 실린 신숙주/성삼문/이덕형의 글을 보면, 논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들고 있는 예들이 모두 같다. 그렇다면 역시 누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문장력이 좋은) 글을 쓰느냐가 관건이 되었을 터. 그러니 후기로 갈수록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합격하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해질 수 밖에. (수능과 내신 문제 풀이 요령을 가르친다는 학원이 득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쨌거나 책은 재미있다. 꼼꼼하게 달린 주석도 좋고, 각 책제의 시대 상황에 대한 편역자의 해설도 좋다. 다만, 편역자의 개인적 체험을 늘어놓거나 현대를 과거와 비교해 (분석도 아니고) 울분을 토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공감을 못하는 바야 아니지만 그 정도 생각은 다른 사람도 한다. 굳이 이런 책에 쓸 필요없다고 본다. 말하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던게지. 그러면 좋은 책이 안된다.

 

똘레랑스의 역사, 의미, 한계에 대해 알기 좋은 입문서. 다만, 이 사람도 욕심이 많다. 홍세화가 소개한 똘레랑스를 비판하면서 다른 사상과 접붙이기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우리 사회의 이런 저런 상황들을 줄줄이 늘어놓다보니 논점이 흐려진다.

책세상 문고를 읽다보면, 대개 고전 혹은 유명한 저작의 인용이 꽤 많다. 독특한 아이디어보다는 '정리'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왜 어떤 책은 재미있고 어떤 책은 재미없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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