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22> 

- 프레시안, 2004. 10. 11 

  노동운동 하면 아르헨티나를 연상할 만큼 아르헨티나 노총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아르헨티나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노조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고 손사레를 칠 정도다.
  
  한국에도 이제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귀족노조의 원조 격인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의 역사를 알아 본다.
  
  농.축산업 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찾기 위해 조직화 되기 시작한 건 1930년 세계적인 경제 공황 때였다. 그러나 당시 노조의 조직은 유럽에서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노동자들이 주축을 이루어 점 조직 형태로 시작이 되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유난히 좌익 성향이 강한 건 이런 영향 때문이다.
  
  그 당시 정부는 이들을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공산세력으로 단정, 경찰과 군인들까지 동원하여 조직 자체를 무력화 시켰다.
  
  아르헨 노조의 창시자 페론
  
  오늘날 노조를 제치고 과격한 시위로 아르헨티나를 무정부 상태로 몰고 간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피켙테로(실업자 시위대)의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노동자 총연맹(CGT)의 노조지도자들은 거의가 대중적인 인기를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을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는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정당은 없다.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운동당’이라는 정당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친목단체 수준의 미니정당일 뿐이다. 노조 출신의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정의당 다시 말해서 페론당 소속으로 정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사진은 최근 철강회사 노동자들을 방문한 키르츠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 ⓒ프레시안

  지난 한국의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다수가 진출하자 아르헨티나 정계와 노동계, 그리고 학계의 화제가 됐는데 이것은 노동자천국이라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었다.
  
  가우초와 흑인노예들의 역사
  
  역사적으로는 광활한 농토와 목초지를 기진 아르헨티나는 국민전체 인구보다 몇 배나 더 많은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농촌은 가우초라는 남미인디오들이, 도시에서는 아프리카의 흑인노예들이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을 대표했으나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후 아르헨티나의 곡물과 육류가 유럽시장을 휩쓸자 유럽의 이민자들이 아르헨티나 드림을 찾아 모여들기 시작, 아르헨티나는 유럽노동자들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기술을 익히고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유럽의 노동자들은 쉽게 자립을 하거나 고소득을 올리는 반면 흑인노예들과 가우초들은 그야말로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1880~86.1898~1904년 2대에 거쳐 집권을 한 훌리오 로까 대통령은 교육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아르헨티나에 살 필요가 없다며 인디오들과 흑인노예 말살정책을 펼쳤다. 아르헨티나는 미주대륙에서 유일하게 흑인이 없는 나라다. 흑인노예 처리에 골머리를 앓던 정부는 당시 세계를 휩쓸던 황열병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창궐하자 모든 흑인노예들을 지금의 보카 지역에 집결시켜 놓고 그 외곽을 군인들을 투입, 굳게 지키고 흑인들을 고립시켰다. 그때까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던 흑인노동자들은 의약품이나 물 한 방울 공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어갔고 극소수가 라 플라타 강을 건너 우루과이나 브라질로 도망을 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아르헨티나에서 흑인노예들의 씨를 말린 것이다.
  
  기름진 라 팜파스의 평원에서 조상 대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잉카의 후예들인 인디오들 역시 로까 대통령의 인디오 토벌정책에 밀려 북부 정글지대로 피신을 하거나 짐승들처럼 도륙 당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가축을 키우는 남미의 카우보이들인 가우초들은 정벌 당시 인디오 여인들과 정벌군 사이에서 생겨난 혼혈들이다.
  
  아르헨 노동시장은 주변국 빈민들이 장악
  
  아르헨티나 노동시장이 도시에서는 흑인에서 유럽이민자들로, 농촌에서는 가우초들로 바뀌자 공장과 부두 등에서는 단순노동자 기근현상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아르헨티나 산업은 호황기를 맞으면서 부족한 일손을 주변국가 빈민들을 불러와 채우게 된다. 다시 말해서 아르헨티나의 3D업종은 파라과이, 볼리비아, 칠레 빈민들의 몫이 된 것이다. 철강노조, 공무원노조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아르헨티나의 노조지도자들 가운데 유럽출신 이민자 후예를 찾아 볼 수가 없는 건 바로 이런 이유 에서다. 따라서 이들에게 국가관이나 애국심, 애사심 등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 이다.
  
 
철강노조를 발판으로 아르헨 역사상 가장 강력한 노총을 이끈 사울 우발디니 전 노총위원장. 지난 90년도 초 국회에 진출한 그는 현재 뻬론당 소속으로 국회 노동위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프레시안  

  이런 구조를 가진 아르헨티나 노조는 최근 장기불황으로 인한 실업자 증가와 노조지도자들간의 파워게임으로 노동자들이 지도부에 등을 돌려 실질적인 파워는 예전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노총지도부가 총파업을 선언해도 참여 노동자수는 15%~20% 수준을 맴돈다.
  
  아르헨티나 노동자들이 노총지도부를 바라보는 눈은 한마디로 차갑다. 노조지도자 출신들은 모두가 현직을 떠나면 사설경호원을 10여명씩을 거느리고 정치적인 자리에만 찾아 다니는 ‘뚱보’(귀족 노조)가 되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아킬레스건 피켙테로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정부에 압력수단이 되고 있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피켙테로라는 실업자 연맹이다. 이들의 조직은 아직은 불법단체이지만 점점 그 세를 불려 정부와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들 역시 주변국가에서 아르헨 드림을 찾아 국경을 넘어온 정식 혹은 불법 이민자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정부가 이들 주변국가 이민자들의 처리에 골머리를 않고 있는 것은 경제가 호황일 때는 이들이 필요했지만 불경기인 지금 먹을 것과 주택, 의료혜택 등을 요구하며 과격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월 150페소의 생활비와 무료 의료혜택을 베풀어 주지만 이들의 요구는 점점 더 늘어나 생활보조금 인상과 주택마련을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부에노스주 실업자시위대들은 그 악명이 높은데 정부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 전국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이들의 숫자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노동자문제는 역사적으로 이런 복잡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 정부의 개혁의지에 발목을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아르헨티나 역대 통치권자는 노조를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 국정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현 대통령인 키르츠네르 대통령도 이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노조 지도자들이 몇몇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전체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아 불법적인 시위를 일삼아 국정을 마비시키고 치안불안 요소가 되고 있는데도 이들이 아르헨티나 최고의 정치세력인 집권 페론당원들 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을 더 해주고 있다.
   
 
  김영길/언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