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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독립 분쟁

개요

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이 처음 세워진 발원 성지였으나 , 터키제국이 세르비아왕국을 점령한 이후 코소보에 알바니아인을 집단 이주 정착시키면서 민족ㆍ종교적으로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간의 갈등이 발생하였다.

1945 티토 주도하에 구유고슬라비아 성립 후에는 코소보에 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하였으나, 1989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대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기치아래 코소보의 지치권을 박탈하였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전체 200 주민의 90%)은 이에 대항하여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였고 양 민족간 갈등은 증폭되었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은 1992 마침내 코소보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알바니아계와 세르비아계 간의 빈번한 무력충돌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발칸반도의 정세는 보스니아 사태의 중요성이 워낙 엄중하였으므로 상대적으로 코소보 문제는 쟁점화 되지 못했다. 그러나 1995 12 데이튼 평화협정에 의해 보스니아 사태가 진정의 기미를 보이자 코소보 알바니아계는 코소보해방군(KLA) 결성하여 본격적인 무장 투쟁 양상을 보였고, 이에 대해 세르비아도 코소보 해방군에 대한 전면적인 소탕작전을 감행하였다.

1998 2월말 신유고 남부 알바니아계 밀집거주지역인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 코소보 분리주의자들과 세르비아공화국 경찰과의 무장충돌로 알바니아인 16명과 세르비아 경찰 4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3 들어서는 세르비아의 무력사용에 항의하는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고 세르비아가 강경 진압으로 대응하는 분쟁이 확산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신유고연방에 유사시 군사개입 경제제재 가능성을 강력히 경고하면서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당사자간 대화를 촉구하였다. 특히 미국은 신유고연방과의 관계개선 방침을 철회하고 EU 의장국인 영국도 밀로셰비치통령을 만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신유고연방은 코소보문제를 순수한 국내문제로 간주하여 국제사회의 개입 코소보의 분리독립을 거부하였으며, 이에 대해 코소보 알바니아인은 국제사회의 적극적 개입을 유도하였다.

NATO 세르비아에 대해 즉각적으로 코소보에 대한 만행을 중지하라고 촉구하였으며, 만약 사태가 평화적으로 종결되지 않는다면 군사개입을 감행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NATO 이러한 입장에 대해 러시아와 중국은 코소보 사태에 대한 해결을 UN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나토의 군사개입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긴장을 고조시킬 뿐이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국제사회는 코소보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코소보내 나토 평화유지군의 주둔을 골자로 하는 랑부예 평화협정을 세르비아가 수용하기를 요구하였으나, 밀로세비치는 외국군대를 자국내에 주둔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평화협정 체결을 거부하였고, 결국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공습이 1999년 3월 24일부터 UN의 의결을 배제한 채 감행되었다.

나토의 공습이 감행되자 밀로세비치는 세르비아인들의 민족주의를 부추키며 결사항전의 의지를 확고하하였으며, 러시아는 나토의 유고공습이 제국주의적 만행이라고 비난하며 유고와의 연대를 표명하였다. 한편 러시아는 흑해함대 소속 함대의 군함 7척을 아드리아해에 파견하는 등 군사적 시위를 벌였다. 러시아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힌 나토는 해결 과정에서 러시아의 역할과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러시아는 코소보분쟁 해결과정의 주요 주체로 부상하였다. 중국 역시 러시아와 보조를 같이 하면서 나토의 유고 공습에 반대하였으나 이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한 소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5.7. 나토의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이 발생하자 중국은 극렬히 미국을 비난하는 가운데 중국의 반미감정은 최고조에 달하였다.

공습 초기 단기간의 공습으로 군사적 목표 달성을 자신했던 미국은 러시아의 강경한 태도와 제2의 베트남전을 우려하는 국내 여론에 밀려 지상군 파견을 하지 못한채 공습만을 계속하였다. 공습이 계속되는 가운데 나토와 러시아는 코소보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협상을 계속하였으며 5.20. G7과 러시아는 코소보 평화안의 초안에 합의하였다. 5.29. 유고는 코소보 평화안의 수용을 처음으로 밝히면서 코소보분쟁은 해결의 실마리를 풀게 되었다. 6. 3. 유고정부는 마침내 코소보평화안을 수용할 것을 발표하면서 코소보 분쟁은 사실상 종결되었으며 6.9. 나토와 유고는 유고군의 코소보 철군에 관한 군사실무협정에 합의함으로써 78일간 지속되던 코소보전쟁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코소보에서는 평화유지군의 진주로 안정을 회복하는 듯이 보였으나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에 대한 역테러가 자행됨으로써 코소보지역은 새로운 불안감에 싸여 있다.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인권보고서에서 알바니아계 어린이들까지 가담한 대세르비아 폭력사태가 빈발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코소보에서 알바니아계의 역테러는 코소보 북부 미트로비차에서 '00년 2월부터 특히 극심하게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OSCE는 코소보 현지에서 75명의 요원을 고용하여 코소보 인권상황을 감시하고 있으나 폭력사태를 예방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보고서에서 밝히고 있다.

코소보에서 크고 작은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유고연방의 정국은 혼미를 거듭하고 있었다. 임기가 '01년 여름까지 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흔들리는 권력을 다시금 공고히 하기 위해 밀로세비치는 조기 대선을 계획하였고, 대선은 '00년 9월 24일 실시되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선거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대선을 준비한 밀로세비치였으나, 이미 민심은 밀로세비치를 떠나 있었고 야당 연합 후보로 나선 코슈투니차에게 유고 국민들의 관심은 모아지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고 개표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고연방 정부는 개표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국민들의 의혹은 더욱 증폭되었다.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져 가는 가운데 유고연방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선거 무효를 발표하자 국민들의 분노는 일순간에 확대되면서 밀로세비치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실시되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밀로세비치의 마지막 지지국이었던 러시아마져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종용하자 밀로세비치는 마침내 10월 6일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면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그간 발칸의 히틀러로 불리우며 서방의 고민 거리였던 밀로세비치가 물러나자 서방은 유고 재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하면서, 각종제재조치의 해제와 함께 EU는 2006년까지 총 23억 유로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미국도 5억 달러의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유고연방의 정국이 혼란을 겪는 가운데 코소보에서는 10월 28일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920명의 지역의원을 뽑는 지방 선거에서 온건파인 아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민주동맹(LDK)이 압승하였다. 코소보 선거 감시단체인 KACI는 LDK가 프리슈티나를 포함한 대도시에서 크게 승리했다고 밝혔으며, LDK도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으리슈티나에서 약 68%를, 다른 주요 도시에서 50%이상을 득표했다고 밝혔다.

 

의미 영향

코소보사태가 발칸지역의 다른 분쟁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나토가 창설 이후 처음으로 직접적인 무력 개입을 시도함으로써 지역분쟁에서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의 맹렬한 반대와 UN 안보리의 의결을 배제한 채 미국 주도하의 나토가 단독으로 공습을 감행하였다는 점에서 코소보사태가 향후 유럽의 안보질서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국제안보구도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코소보사태의 해결과정에서 코소보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국가들의 위상 변화가 이루어 지고 있으며, 이는 향후 새로운 국제 문제 해결과정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향후 전망

코소보사태는 일단 UN의 평화유지군(KFOR)이 코소보에 진주함으로써 전쟁이 재발하거나 발칸 전역으로 분쟁이 확대될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코소보사태 역시 발칸지역의 다른 분쟁과 마찬가지로 민족, 국경, 종교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분쟁의 특성상 근본적인 해결은 난망하다고 할 수 있다. 세르비아는 결코 코소보를 포기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며, 코소보 알바니아계도 독립 의지를 강하게 나타내고 있어, 현재의 코소보 평화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해결과정에서  표출되었듯이 러시아와 나토간의 이견은 상존하고 있으며, 특히 수년내에 반드시 거론되어야할 코소보의 자치권 획득과 분리 독립에 대해 양측의 의견 대립이 있을 경우 코소보사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 있다. 유고연방에서 밀로세비치가 물러나고 코슈투니차정권이 출범하였고 코소보 지방선거에서 온건파인 루고바가 승리하였으나 양측의 입장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된다. 즉 코슈투니차는 코소보의 독립을 허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 루고바는 자신의 목표는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하는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따라서 향후 코소보 문제의 해결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칸반도의 인적 구성과 같이 쉽사리 해결될 기미는 없다고 보인다. 단지 현재로서 국제사회의 최선책은 코소보지역에서 더 이상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자료

코소보평화안 주요 내용

ㅇ 유고군의 코소보내 폭력, 탄압의 즉각적이고 검증 가능한 중단

ㅇ 유고군을 포함한 경찰과  모든 준군사조직의 코소보에서 신속하고 검증 가능한 철수

ㅇ 코소보에 UN이 감시하는 효율적인 국제 민간치안군 배치

ㅇ UN안보리 의결에 따라 코소보에 임시 정부수립

ㅇ 코소내에 있는 세르비아의 유적 보호를 위해 추후 일부 유고병력 귀환 허용

ㅇ 난민의 안전한 귀향과 인권보호단체의 제한없는 코소보 방문

ㅇ 코소보자치를 보장할 임시적인 정치합의서 완성을 위한 정치협상 개최

ㅇ 유고 및 주변지역의 경제발전과 안정을 위한 포괄적인 접근

 

유고군의 코소보철군을 위한 군사실무협정 주요 내용

ㅇ 1999. 6. 10. 일출과 동시에 유고군,경찰,준군사조직의 검증 가능한 단계적 철수 개시

ㅇ 철수 24시간내 유고 군용기의 코소보 상공 비행 및 방공망, 레이다 작동 중지

ㅇ 철수 48시간내 유고의 지뢰, 폭발물, 부비트랩 등 매설위치 나토에 통보

ㅇ 철수 72시간내 유고의 모든 방공포, 지대공 미사일, 항공기 코소보에서 철수 완료

ㅇ 철수 시작 6일내 유고군 병력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접경지역에서 철수

ㅇ 철수 시작 11일내 유고군 코소보에서 완전 철수

 

△ 주요 일지

1989

10. 유고연방, 코소보자치주 자치권 박탈

1991

9. 구유고연방 해체를 계기로 알바니아인들은 독립헌법 채택

1992

5. 코소보 자체 총선 실시 독립운동 전개

1993

2. 알바니아, 신유고연방 비난, 코소보에 대한 연방정부의 무력개입시 군사대응 불사 선언. 신유고-알간 긴장고조

1996 코소보해방군(KLA)결성

1998

3.8. 세르비아, 코소보 반군 소탕작전

3.13 유럽 26개국, 코소보에 대한 탄압 지속시 UN 세르비아 제재조치지지

6.11 NATO 세르비아에 군사압력 가하기로 결정

8.25. UN 안보리, 코소보사태 당사국에 정치적 해결 촉구

9.23 UN 안보리, 코소보 결의안 채택(세르비아에 내전 종식 촉구)

9.25  NATO, 코소보 군사개입 준비령 발동

10.12. 홀브룩 미특사, 밀로세비치 유고연방 대통령과 평화 협상

10.14. 나토, 유고연방간 평화협정 체결

1999년

1.   세르비아와 코소보해방군간 전투재개

2.6. 2주간의 코소보 '평화회담' 파리 근교의 랑부예에서 개막.(유고 연방, 코소보 알바니아계 대표, 6개

      중재국 참석)

2.19. 나토군, 유고공습 대비 전진 배치

2.23. '코소보 평화회담' 결렬. 미국 협상 결렬에 따라 4척의 군함과 B-52 폭격기, F-117 전폭기 등 260여대의

       항공기 아드리아해에 배치.

       코소보 북부 부치코른에서 유고연방군과 KLA간의 교전. 세르비아경찰 5명 사망.

3.19. 랑부예 평화협정, 유고연방의 거부로 결렬. 알바니아 코소보계 평화안에 서명

3. 21. 홀브룩 미국 특사 유고연방에 파견 . 밀로세비치와 협상

3.23. 홀브룩-밀로세비치간 회담 결렬

3.24. 나토 유고연방에 공습 개시. 옐친 러시아대통령 나토에 경고 메시지 발표

3.27. 나토군 유고의 미그기 2대 격추. F-117A 스텔스 폭격기 유고군에 의해 격추

3.29.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 나토의 유고 공습 비난. 양측에 평화적 해결 촉구

3.31. 미군 3명 유고군에게 체포

4.3. 러시아, 나토에 대응하여 흑해 함대 소속 정보수집함을 포함한 함정 7척 아드리아해로 파병 발표.

4.4. 나토, 유고연방 산업시설에 대한 폭격 개시

4.6. 유고연방, 일방적 전투중단 선언. 나토, 거부

4.9. 미국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 클린턴 대통령에 지상군 파견 촉구

      나토군, 유고의 미그-29기 절반 파괴 발표

      나토군, 유고의 민간인 거주지역 공습으로 민간인 124명 사상

4.10. 미국, 전투기 82대, 아파치 헬기 24대 추거 파견 발표. 영국 항공모함 인빈서블호와 호위함 2척, 전투기

7대, 헬기 10대 추가 파견

4.11. 유고군, 나토 전투기 2대 격추 주장

4.13. 유고군, 알바니아 국경마을 2곳 점령.

       승객 3백 93명이 탄 국제 열차가 나토군의 미사일에 피격돼 10여명의 사망자와 수십명의 부상자 발생.

       올브라이트 미국무장관과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 회담, 러시아를 포함하는 평화 유지군 파견에

       양국 이견

4.14. 코소보 남서부 국경지대에서 알바니아계 난민대열에 나토군 소속 전투기들이 폭격을 가해 최소 75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했다고 유고 발표  

4.19. 나토, 아파치 헬기 24대와 미 제82 공수사단 병력 알바니아에 배치 발표

4.20. 독일 녹색당, 나토의 유고 공습 중지 촉구 서명

4.23. 나토 창설 50주년 기념 정상회의 워싱톤에서 개회

4.25. 나토, 신전략개념' 채택 발표

4.27. 미국 국방부, 7함대 소속 '키티 호크'호의 아드리아해 파견으로 인한 한반도에서 전력 손실을 보완

       위해 육상기지에서 발진하는 공군력을 한반도로 이동시켰다고 발표

4.28. 미국 하원, 유고에 미 지상군 파견시 의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법안 통과 (249:180)

       밀로세비치, 부크 드라슈코비치 부총리 해임

4.29. 옐친, 전술핵 개발계획안 서명

5.5. 미국, 러시아 코소보 평화절차에 대해 합의

5.7. 나토군, 중국대사관 오폭. 중국 대사관원 3명 사망, 1명 실종, 20여명 부상

5.8. 중국 대사관 오폭관련, UN안보리 소집

5.10. 중국, 미국과 인권대화 중지, 군사접촉 연기 등을 포함한 외교적 보복조치 발표

5.11. 코언 미국방장관, 유고 공습중 한반도 분쟁 발생시 미 본토 군사력 동원 발표

5.14. 나토군, 코소보 남부 코리사 마을 폭격으로 민간인 87명 사망

5.18. 나토군, 유고군 포로 2명 석방

5. 20. G8, 코소사태 해결을 위한 평화안 초안 마련

5.22. 유고군, A-10A 지상공격기 1대 격추 발표

        나토군, 인도, 파키스탄 대사관 오폭. 인명 피해 없음. 인도 총리 나토 유고공습 중단과 UN이 즉각 사

        태 해결에 나설것을 촉구하는 성명 발표

5.26. 나토군, 유고공습 이후 최대 출격 기록. 284회의 폭격용 축격을 포함 총 650회 출격

5.27. UN 유고전범재판소, 밀로세비치를 전범으로 기소

5.29. 유고, G8 평화안 원칙 수용의사 표명

6.2. 체르노무르딘(러시아측 특사). 아티사리(EU측 특사) 베오그라드에서 밀로세비치와 회동

6.3. 유고정부, G-8이 제시한 신 코소보평화안 수락 발표. 유고 의회 평화안 수용 승인(찬 136:반 74)

6.5. 미 국방부, 코소보 평화협상의 타결에 따라 약 5만명의 평화유지군이 5개지역으로 나눠 평화유지

      업무를 수행할 것이이며, 러시아는 평화유지군 파견을 밝히지 않았으나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 러시아의

      평화유지군 파견을 논의할 것이라고 발표

      러시아 국방장관 약 1만명의 러시아군을 코소보에 파견할 준비를 마쳤다고 발표 

6.7. UN안보리에 산정할 코소보 평화결의안 마련을 위한 G8외무장관 결렬. 20개항복 중 17항목에

     합의하였으나 나토의 공습전명 중단 시점, 유고 지도자들의 전범 기소 문제등에서 러시아의 반대로

     최종 결정 연기

6.9. 나토와 유고는 그동안 난항을 거듭하던 유고군의 코소보 철군에 관한 군사실무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유고군 코소보에서 철군 시작 확인. 개전 78일만에 코소보전쟁 종결. 나토 공습 중단 발표

6.10. 나토,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에 코소보 진주 명령 하달 발표. 12일 선발대 1만9천명 코소보 진주

       예정

6.12. 러시아군 200여명, 나토에 사전 통보없이 코소보 주도 프리슈티나에 전격 진주

        영국, 프랑스 연합군 러시아군에 이어 프리슈티나에 진주

6.13. 나토군과 유고군간 코소보 곳곳에서 유혈 충돌로 10명 이하의 유고군 사망. KLA, 세르비아계 공격

       최소 5명 사망

        KLA대변인, 무장해제 하지 않고 정규군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발표하여 코소보에 새로운 긴장

6.18. 코언 미국방장관과 세르게예프 러시아 국방장관은 헬싱키에서 3일간의 협상을 마친 뒤 코소보

       평화유지군에 참여하는 러시아군의 역할(러시아군에게 책임구역 할당하되 나토사령부의 지휘권에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

6.19. UN 고등판무관실(UNHCR) 대변인, 코소보에서 세르비아계 7만명 떠났다고 발표

6.20. 나토사령부, 19일 자정을 기해 코소보에서 유고군 철수 완료 발표 

7. 4 미국의 요청을 받은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가 러시아 병력 수송기가 통과할 영공을 잠정 봉쇄하여

      러시아군의 코소보 파견대의 출발을 연기.러시아는 약 200명의 공수부대원을 실은 일류신 -76 2기를

      코소보로 파견, 주둔 병력을 강화할 예정이었다.

7. 5 나토군사대표단과 러시아는 '러시아 코소보 평화유지군의 코소보 주둔위치와 역할에 관한 협상을

      타결하였다고 발표. 러시아군 3,600명을 미국, 프랑스, 독일의 관할 구역에 분산 배치한다는

      합의에 성공

7.30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프리슈티나 방문

7.31 코소보해방군(KLA) 사령관 아김 체쿠장군 러시아 평화유지군 병력에 한 때 구금

7.31 프리슈티나 시내에 신축중이던 세르비아계 정교회 건물에 대형 폭발 사건 발생

8.7 몬테네그로 정부, 유고연방 탈퇴안 승인.

     * 몬테네그로는 유고연방과 느슨한 형태의 연합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군대와 외교권 통화를 보유하는 안을 통과. 미국은 몬테네그로의의 안에 환영을 하였으나 완전 독립은 발칸반도에서 또 다른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고 보고 반대 입장 표명

8.29 리처드 홀브룩(미국, 전 발칸 특사) 코소보 방문

9. 14  리플랸시에서 17세의 알바니아계 청소년이 세르비아계 노인을 흉기로 찔러 살해

9.20 코소보 해방군(KLA)와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은 KLA의 비무장화와 순수 민간단체로의 전환을 골자로 하는 무장해제        협정에 서명했다고 KFOR 발표

9.22 코소보 보호단(KPC, KLA의 전신) 활동 개시

       * KPC는 5,000명으로 구성되며 단장은 아김 체쿠 장군이 임명. 주민들의 보호를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무기사용이 허용

10.11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 코소보 방문

         UN 코소보 파견단 민간부문 소속 직원 부임 첫날 프리슈티나에서 피살

12.5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코소보 인권 보고서 발표.

2000년

1. 15.  보스니아내전과 코소보분쟁 당시 인종청소로 악명을 떨치던 세르비아계 전범 아르칸(47. 본명 젤리코 라즈나토비치)이           베오그라등의한 호텔에서 무장괴한들의 총격을 받고 피살

1. 16.  코소보 동부지역에서 국제평화군의 일원으로 복무중인 미군병사 1명이 11세의 알바니아계 소녀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되었다고 코소보 주둔 미군 발표

2. 2.  미트로비차에서 알바니아계, 유엔 버스와 세르비아인이경영하는 카페에 수류탄을 투척하여 세르비아계 주민 2명 사망

2.3  헤닝 필립 KFOR 대변인, 코소보자치주 북부 코소보스카 미트로비차에서 유혈 폭력사태 발생 발표. 알바니아계 주민 3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의 세르비아계 주민들 부상 발표

2. 7.  밀로세비치의 측근인 파블레 불라토비치 유고 국방장관이 베오그라드의 한 식당에서 괴한에게 피살

2. 13.  코소보스카 미트로비차 마을에서 코소보평화유지군과 알바니아계 주민들간의 총격전 및 주민에 대한 수류탄 공격 발생, 1명이           숨지고 14명 부상

2. 21.  미트로비차에서 알바니아 주민과 코소보 평화유지군 충돌 수십명 부상

2. 23.  프랑스와 미국은 미트로비차에 폭력사태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는 6백에서 7백명의 병력을 추가 파병하고 미국도 1개            해병부대를 미트로비차에 투입 발표

2.29, 코소보와 세르비아계 국경지역에 유엔관리가 피격 * 코소보 북부지역 세르비아계와의 경계지역에서는 양측간의 소규모의         산발적인 충돌 지속

3. 20. 유럽연합(EU)은 유고연방에 대한 9개월 동안의 항공봉쇄 조치를 해제했다고 발표. 그러나 다른 경제 제재조치는 강화할          것이라고 밝힘 

4. 4. 프리슈티나에서 미군과 폴란드의 평화유지군과 세르비아계 주민들간의 충돌로 수십명의 부상자 발생

4. 14.  알바니아 온건파 지도자 루고바는 코소보의 독립이 허용되지 않을 경우 또 다시 전쟁에 휘말릴 것이라고 경고

4. 14.  유고연방 야당과 반정부 인사 등 10만여명은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퇴진과 조기 총선을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

4. 25.  밀로세비치 대통령의 측근인 유고연방 국영 항공사(JTA) 사장 지카 페트로비치가 베오그라드에서 괴한의 총격으로 피살

7. 10.  밀로 주카노비치 몬테네그로공화국 대통령은 유고연방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몬테네그로는 더 이상 연방 선거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유고연방은 또 다시 분열에 직면

8. 1.  코소보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하다 현지의 11세 소녀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미군 하사 프랭크 롱이에게 종신형을 선고

9. 2.  미트로비차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세르비아계 죄수들 15명의 탈옥사건 발생

9. 22.  유고 정부는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 특파원 등 외신기자 10명을 추방. 그러나 UN은 선거 참관인 200명을 코소보 지역 등에            파견하겠다고 발표

9. 24.  유고연방의 대선과 총선 투표 실시

9. 25.  세르비아 민주야당(DOS)의 코슈투니차 후보는 자체 집계 결과  결선 투표없이 1차 투표에서 이긴 것이 확실하다고 일방적으로           승리 선포. 그러나 유고연방 선거 관리위원회는 개표 결과 발표를 지연.

9. 25.  슈뢰더 독일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회담한 뒤 "우리는 유고 국민들이 민주적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함께 인정했다"고 밝힘으로써 러시아도 더 이상 밀로세비치를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

9. 26.  미 국무부, 밀로세비치가 패배한 것이 확실하다는 성명 발표

9. 26. 세르비아 민주야당(DOS) 대변인 은 97.5%의 개표 결과 코슈투니차 후보가 55%를 득표해 35% 득표에 그친 밀로세비치 대통령을          물리친 것으로 확인 됐다고 발표. 이에 대해 여당은 개표가 끝나지 않았으며 현재 밀로세비치가 46% 대 41%로 코슈투니차를          앞서고 있다고 주장

9. 27. 베오그라드에서 밀로세비치 퇴진을 요구하는 약 20만명의 군중 운집. 노비사드, 니슈시에서도 약 3민명의 반 밀로세비치 시위대          운집

9. 27.  유고연방군 사령관 네보이사 파브코비치 장군은 폭동사태와 같은 내부적인 일엔 개입하지 않겠다며 정치적 중립을 선언

9. 30.  유고 국영 TV 방송국 RST는 밀로세비치는 결선 투표를 강행하기로 하였다고 발표

10. 2.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는 유고연방의 총 파업이 유고 전역에서 시작

10. 3.  스위스 정부는 밀로세비치 측근들의 은행 계좌 1백여개를 동결했다고 발표

10. 4.  유고정부는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며 7천5백여명의 광원들이 엿새째 파업 중인 콜루바라 탄광에 중무장한 경찰 1백여명을            파견

10. 4. 유고 관영 탄유그통신은 유고연방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선거의 일부를 무효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

10. 5.  베오그라드에서 20만명 이상이 참여한 밀로세비치의 퇴진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 발생. 시위대는 연방 의회 의사당과 국영 TV           방송사 건물을 점령.

10. 6. 대통령 관저를 떠나 잠적했던 밀로세비는 베오그라드에서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에게 퇴진의사를 밝혔으며, 국영           TV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정권 이양을 선언

10. 7. 코슈투니차는 베오그라드유고연방 의사당에서 대통령 취임식을 갖고 정권 인수 작업에 착수

10. 9. 유럽연합은 99년 발효된 유고연방에 대한 석유금수조치를 해제

10. 12. 코슈투니차 유고연방 신임대통령은 몬테네그로가 원한다면 유고연방에서 탈퇴를 용인하겠다고 발표  

10. 17. 듀카노비치 몬테네그로 대통령은 연방정부를 함께 구성하자는 코슈티나차 유고연방 대통령의 제의를 거절

10. 28. 코소보 지방선거에서 온건파인 아브라힘 루고바가 이끄는 코소보 민주동맹이 압승했다고 코소보 선거 감시단체(KACI)가 발표

10.29 세르비아공화국과 코소보 접경지대에서 무력충돌을 벌여온 유고연방과 알바니아계 반군이 무기한 휴전에 합의. 이 충돌은 지난 10.21 UCPMB 반군이 프레세보계곡에서 세르비아 경찰 4명을 사살하고 세르비아내 검문소를 점거하면서 시작한 것이다. 이때 유고정부가 탱크와 군대를 이 지역으로이동하면서 위기가 고조된 바 있다.

11. 30. 밀로세비치 전유고연방 대통령이 권좌에서 축출된지 7주만에 세르비아 사회당 당수로 복귀 

2001.

2.17 코소보 북부지역에서 16일 세르비아인들을 태우고 가던 버스가 알바니아 민족주의자들로 추정되는 세력의 폭탄 공격을 받아 적어도 10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고 코소보 주둔 영국군측이 밝힘. 세르비아 북부 도시 니스를 떠나 코소보의 세르비아계 마을인 포두예보로 향하던 버스는 이날 오전 11시30분(현지시간) 코소보 국경을 넘자마자 폭탄 공격을 받았다고 영국군은 전했다. 현재 코소보의 2백만 주민들 중 약 90%를 점하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은 10년간 유고슬라비아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대통령의 독재에 시달린 뒤 강력하게 독립을 요구해 왔다.

4.22 몬테네그로 공화국 총선에서 독립 지지파가 승리함으로서 코소보를 포함한 발칸 반도내 알바니아계의 분리독립운동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 2001년 2월 발생한 마케도니아 사태시 몬테네그로의 알바니아계 반군은 거의 연대투쟁 직전까지 갔으나 NATO군의 국경봉쇄로 인해 직접적인 개입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밀로 주카노비치(39)대통령이 이끄는 독립지지파인 `몬테네그로 승리연합` 은 23일 99% 개표 결과 42%의 지지율을 얻어 40.6%를 기록한 연방유지파인 `유고와 함께 동맹` 을 제쳤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몬테네그로 승리연합이 압승, 전체 77석 가운데 과반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 투표에서는 독립 신중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카노비치는 개표 후 기자회견을 열고 "곧 독립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오는 7월 13일 이전에 몬테네그로는 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날 것" 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헌법이 공화국의 지위변경 같은 중대 사안은 의회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어 독립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발칸에서의 분리주의 확산, 특히 코소보 사태의 재연을 우려하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반대도 큰 걸림돌이다.
또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연방 대통령 등 유고연방 지도부가 몬테네그로의 독립을 극렬 반대하고 있어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전망이다.
밀로 주카노비치(39)대통령이 이끄는 독립지지파인 `몬테네그로 승리연합` 은 23일 99% 개표 결과 42%의 지지율을 얻어 40.6%를 기록한 연방유지파인 `유고와 함께 동맹` 을 제쳤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몬테네그로 승리연합이 압승, 전체 77석 가운데 과반수를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으나 실제 투표에서는 독립 신중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주카노비치는 개표 후 기자회견을 열고 "곧 독립을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실시해 오는 7월 13일 이전에 몬테네그로는 독립국으로 다시 태어날 것" 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몬테네그로 헌법이 공화국의 지위변경 같은 중대 사안은 의회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고 있어 독립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발칸에서의 분리주의 확산, 특히 코소보 사태의 재연을 우려하는 유럽연합(EU)과 미국의 반대도 큰 걸림돌이다. 또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 유고연방 대통령 등 유고연방 지도부가 몬테네그로의 분리독립을 극력반대하고 있고 2001년 마케도니아사태시 나토가 유고정부군으로 하여금 코소보와 마케도니아의 완충지대를 점령하도록 허락한 바 있기 때문에 이러한 추세라면 소수민족의 분리독립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획득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 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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