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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 - 저항과 자유의 길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35
오현철 지음 / 책세상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히 프롬, 헨리 데이비드 소로, 존 롤스, 칼 코헨, 조지 카치아피카스, 위르겐 하버마스 등을 읽을 여유가 전혀 없는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제 1장 민주주의와 시민불복종”, “제 2장 시민불복종의 성격”, “제 3장 세계사 속의 시민불복종”, “제 4장 시민불복종의 정당화와 재정의”, “제 5장 시민불복종의 정당성 비판에 대한 반론”, “제 6장 미래의 시민불복종”. 제 1장부터 제 5장 1부 “이론적 비판과 반론”까지의 내용은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쓴 책을 요약했다고 볼 수 있다. 시민불복종의 정의, 유형, 세계사 속에서 나타난 형태, 시민불복종을 정당화하는 논리 등을 이책 저책에서 뽑아내 이리저리 짜깁기해 놓았다. 무수히 달려있는 각주를 찾아 뒷장을 펼치면 저 이름들 뿐이다. (아, 저자는 무정부주의자가 아니라는 내용주가 하나 기억나긴 한다.) 글쎄, 저 유명한 사람들이 자기 책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있어도,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절반쯤 읽다가 그만 덮어버릴까 싶었지만 책이 얇은 관계로 참고 보자 했는데, 역시 그러길 잘했다. 저자가 왜 이 책을 썼는지를 제 5장 2부에 가서야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133쪽부터 139쪽까지의 5장 2부는 “경험적 비판과 반론”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시민불복종이 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일부의 비판에 대해 현실에서의 경험을 통해 반론을 제기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2000년 총선에서 등장한 “낙천낙선운동”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당시 선거법 위반이라 하여 이래저래 말이 많았던 시민단체들의 “낙천낙선운동”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민불복종”의 형태이므로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그렇군, 이 말을 하고 싶은 거였군, 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프롬과 소로와 롤스와 등등의 권위가 필요했던 것인가.
마지막 장에 이르면 저자는 시민사회단체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시민불복종의 자기제한을 조절하고 통제할 주체로서도 시민사회단체가 적합하며 현실적으로 이를 대신할 주체는 없다. […] 파편화된 개인을 대신하여 국가의 거대한 정치체계와 경제체계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적 역량을 시민사회단체에 꾸준히 모아야 할 것이다.”
2000년 총선 당시에 나는 시민단체의 낙천낙선운동을 찬성했었다. 시민사회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지만, 그걸 ‘학문적으로 정당화’하겠다고 온갖 학자들의 이름을 들먹여가며 이렇게 방대한(!) 책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