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ude, 1925

Ttorso of Nei, 1925

Pepper No.30, 1930

Shells, 1927

Artichoke Halved, 1930
사진작가의 주장을 검토해 보면, 사진을 통해서 뭔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만물을 따로따로 떼어내 바라보는 행위, 즉 각기 다른 식으로 초점을 맞추고 시점을 정하는 카메라와 육안의 객관적 불일치로 강화된 주관적 습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런 불일치는 사진의 초창기에 사진을 찍었던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나곤 했다. 일단 사진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대로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사진이 뭔가 왜곡한다는 사실을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게 되는 법이다(그러나 윌리엄 어빈스 주니어의 지적처럼,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런 왜곡을 샅샅이 찾아내려 한다). 살아 있는 것을 사물로, 사물을 살아 있는 것으로 뒤바꿔버리는 사진의 전략이 오랫동안 성과를 거뒀던 것도 이 때문이다. 1929년과 1930년 웨스턴이 찍은 피망 사진은 그가 찍은 여성의 누드 사진보다 훨씬 더 관능적이다. 그는 누드와 피망을 찍을 때 그 형태를 갖고 장난을 쳤다. 누드의 경우에는 손발 부분을 모두 잘라낸 채 몸통을 앞으로 기울인 데다가 평범한 조명과 초점을 써서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게 찍었기에 관능적 느낌이 줄어들고 몸통의 추상적 형태가 돋보였다. 그러나 피망의 경우에는 전체 모습이 다 보이도록 근접 촬영했고 표면에 기름을 바르거나 광택을 냈기에 겉으로는 중성적인 형태였지만 에로틱한 느낌을 자아냈고, 뻔해 보이는 겉모습이 오히려 돋보이게 됐다.
─ 수전 손택, 사진에 관하여 중에서
사진 출처 http://masters-of-photograph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