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파도>에서는 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었다가 로또 때문에 주먹 세계로 돌아가는 전직 조폭 두목이었는데, <주먹이 운다>에서는 쌩양아치다. 그런데 귀엽다. <달콤한 인생>을 오달수 때문에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 중.

글 : 전은정기자 | 사진 : 최성열기자 2005.04.05
 


아시다시피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이 같은 날 붙어요. <달콤한 인생> 쪽에 가면 첩자 왔다고 하고 <주먹이 운다> 쪽에 가면 마케팅 팀에게 구박받고. 뭐 요즘 그렇습니다. <주먹이 운다>와 <달콤한 인생>은 아주 다른 영화입니다. <달콤한 인생>의 경우 김지운 감독이 작심하고 ‘누아르’로 찍은 것 같고, <주먹이 운다>는 삶의 주변부에 내몰린 사람들의 처절한 이야기죠.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이 차이가 아마 많이 날 겁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두 작품 다 잘 될 것 같아요.

김감독과 류감독의 작업 스타일을 비교해달라는 질문도 가끔 받습니다.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사실 우스운 것이에요. 그들만의 색깔이 있는 것이니까. 어쨌든 김지운 감독은 평소에 굉장히 과묵한 사람입니다. 말도 없고 진중해 보이는데 한 번씩 농담하면 깜짝 놀랄 때가 많죠. 굉장히 꼼꼼하고 깊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반면 류승완 감독은 명쾌한 사람이죠. 성격도 급한 것 같고.

물론 관객들 입장에선 “또 저런 역할이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배우만의 장점이 있다면 굳이 일부러 개성을 죽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도 대중들을 생각한다면 연이어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무리가 있죠. 조금 지난 다음에 그런 모습들을 보여드리는 것은 관계없지만... 당분간 한 템포 쉬어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이후 당분간 영화는 스톱시킨 상태인데 그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캐릭터를 맡았습니다. 굉장히 여성적인 스타일의 남자인데 금자씨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죠.

얼굴에 대해 고민해 본 적 별로 없습니다. 거울도 수염 깎을 때 점이 걸리지 않게 조심하기 위해 보는 정도? “니 꼬라지 대로 연기해라” 생긴 대로 연기해야죠. 얼굴에 칼을 대지 않는 이상 이 얼굴은 불가능(?)합니다. 대신에 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 그런 게 있어야죠. 그런 건 생김새랑은 관계없다고 봐요. 자기만의 향기, 그런 걸 개성이라고 하나본데 그걸 잃지 말아야죠. 배역이 주어지고 그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 자기의 모습이 미묘하게나마 결합되겠지요. 그럴 때 얼굴에 대해 고민하게 될까... 기본 ‘와꾸’가지고는 고민하지 않습니다.

<달콤한 인생>에서 제가 러시아 말을 쓰거든요. 근데 아무도 그걸 진짜 러시아말로 안 듣나 봐요. 아프리카 말 같다고, 그게 진짜 러시아어 맞냐고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나고 자란 환경 때문에 말투는 참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구요. 배우가 되기 위해 갈고 닦아야 되는 부분도 있지만 환경 속에서 익힌 습성은 쉽게 깨부술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이젠 사투리 의식하고 연기 안합니다. 그것까지 하면 고민이 너무 많아져서... 물론 노력이야 하죠. 가능하면.

“젠 저렇게 사투리밖에 못해”라는 말도 하시는데 사실 표준어라고 불리는 서울말도 엄밀히 말하면 서울 사투리입니다. 서울 사투리도 굉장히 웃겨요. 제가 아는 분이 타임캡슐에 서울 사투리를 채록해서 묻어놨는데 흉내도 못내요. 진짜 재미있습니다. 말투는 그 사람의 개성이 될 수 있는 거고, 연기를 하는 데 있어 말은 한 부분일 뿐입니다. 감정 표현하는 데 있어 말이 다가 아니죠.

대학교 들어가기 전에 인쇄소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잡일이죠. 근데 하필 그게 부산 가마골소극장에 팸플릿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배달하러 갈 때마다 연극하는 사람들의 삶을 보게 됐죠. 참, 희한하다. 30~40명 되는 사람들이 한솥밥 끓여먹으면서 참 소박하게 사는구나. 오다가다 청소도 해주고 누가 시키지도 안았는데 포스터도 붙여주고 하다가 자연스럽게 그 판에 섞이게 됐습니다. 연극판은 워낙 열려 있는 곳이니까. 그들과 함께 생활하다보니 욕심 없는 사람들 보게 되고, 여기는 참으로 삶이 난무하는 곳이구나, 삶이라는 게 그렇게 욕심을 낼 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20대 초반에 삶이 난무라니... (웃음) 그런 개똥철학으로 살았죠.

내 인생 첫 번째 역할은 이윤택 선생의 <오구>에서 문상객 1번이었습니다. 진짜 아무 생각 없었죠. 쪽팔려 죽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맡은 배역은 앉아서 술 마시고 화투만 치면 되는, 대사 하나 없는 역할인데 어찌나 떨었는지... 내가 무대에 설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극단에 나갔는데 이윤택 선생이 어느 날 “너 무대에 나가봐라, 연습해라” 이러는 겁니다. 한 달 동안 앉아있는 연습만 했죠.

80년대 군부독재시절 연극이라는 장르는 어떻게 보면 함부로 터치 못하는 유일무이한 영역이었습니다. 그나마 열린 영역이었다고 할까요. 그때 세상에 대해서 발언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연극이었습니다. 그런 점에 매력을 느꼈죠. <시민 K>라는 작품을 보면 까는데 그렇게 심하게 깔 수가 없어요. 저러다 잡혀가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세상에 대한 반항. 그게 사실 와 닿았습니다. 그런 모습들이 매력적이었고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시대를 거치면서 90년대가 되었는데 그때는 그나마 민주화되었을 때죠. 그래도 연극을 하면서 통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94년도 황지우의 시 제목이기도 한 연극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를 무대에 올릴 때였는데 정말 통쾌했습니다. 이런 메시지를 관객들도 아마 분명 읽어낼 거다, 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죠.

현재 극단의 대표이자 연극배우기 때문에 연극과 다른 영화의 매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모두 하십니다. 그럼 저는 안 빼놓고 이런 말 하죠. “연기자는 연기자다”. 사실 영화의 경우 스탭들이 보는 가운데 연기해야 하지 않습니까? 좀 쑥스럽죠. 연극은 관객들이 지켜보지만 영화는 관계자가 지켜보는 거거든요. 다 선수들 아닙니까. 쪽팔리기도 하고 이 새끼가 제대로 연기하는 거야... 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괜한 자의식 때문에 연기에 방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연기자는 연기자다”라고 생각합니다. 관객들 앞이나 선수들 앞이나 연기자는 본질적으로 같은 거죠. 장르나 영역에 대한 구애받지 않습니다.

TV요? TV는 한번도 들어오지 않던데(웃음). TV는 진짜 무서운 매체인 게 현미경 같은 거거든요. 영화와 연극은 그래도 많이 닮아 있지만 TV는 다릅니다. 함부로 덤빌 매체가 아니에요. 자기 콤플렉스를 그대로 드러내게 하죠. 도망갈 구석이 없게 만든다고 할까요. 그래서 TV는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 연극 보는 사람들 많이 없죠. 근본적으로는 연극인들 책임입니다. 좋은 작품 만들면 왜 안보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연극인들이 싸워야할 대상이 하나 더 생겼어요. 인터넷. 사람들이 방구석에 처박혀 나오질 않아요. 90년대 초반 한참 연극 잘 될 때는 대학생들이 연극인들 먹여 살린다고 그랬어요. 많이들 보러왔는데 지금 대학생들 연극 별로 안봅니다. 다 인터넷 앞에 매달려 있죠.

근데 또 신기한 게 연기하는 인구는 많이 늘었어요. 어렵게 연극영화과 가고, 대학마다 관련 학과 계속 늘리고, 실력 없는 연기자들도 교수가 되고, 진짜 개판입니다. 그 많은 인간들이 나와 가지고 뭐 하겠어요? 그 사람들 흡수할 수 있는 극단 숫자? 택도 없습니다. 진짜 희한한 상황이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서 백수 된다는 게 비참하기도 하고.

신기루 만화경이라는 극단은 지금 창단한지 5년 정도 됐어요. 이름은 극작가 겸 연출가인 이해제가 발표하지 않은 작품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인형을 들고 다니면서 파는 노인의 이야기인데 그 친구랑 저랑 70~80쯤 됐을 때 둘 다 살아 있으면 꼭 같이 하자고 약속했던 작품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아직 얼마 안된 극단이라 비전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까지 미천한 수준이지만 하다 보면 뭔가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원칙이 있다면 국내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 가능하면 창작극 위주로 하자는 겁니다. 4월 초까지 혜화동1번지 소극장 무대에서 <몽타주 엘리베이터>라는 작품을 공연하는데 저는 연극 끝날 때까지 두드려 맞는 취객 역할을 맡았습니다.

<주먹이 운다>랑 <달콤한 인생>이랑 둘 다 너무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두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기도 하고 두 작품 다 대단히 성공했으면 좋겠다 싶네요. 우리 극단의 경우 가을에 계획하고 있는 작품 잘 됐으면 좋겠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굶어죽지 않게 도와주셨으면 좋겠고, 뭐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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