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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법을 비롯한 이른바 개혁법안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더니만 이제는 슬그머니 4월 국회로 넘어가고 있다. 역사의 명분과 정략의 계산이 그렇게 한참을 얽히고 섥히더니만. 그만하면 됐다는 듯. 할만큼 했다는 듯. 이제 그만하고 화합과 상생이 필요하다는 듯. 무엇하나 마무리짓지 않은 채 알리바이/면죄부만 남기고 지나가고 있다(기우이거나 성급한 오해일까. 그렇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만 잊을 때도 됐지 않았"냐는 말에,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강요하는 무례함에 단호하게 '아니야' 라고 말하는 영화가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반딧불영화제가 상영하는 이달의 인권영화, 파트리시오 구즈만 감독의 2001년작 '피노체트 재판(The Case Pinoche)'이 그것.
피노체트는 1973년에 쿠데타로,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수립된 사회주의 정권인, 아옌데 정권을 전복하고 권좌에 오른 독재자. 17년의 재임기간 동안 1,102명이 실종(!)되었으며, 3,197명이 정치적인 이유로 살해당했고, 100만명이 국외로 추방되었다. 1989년 선거 패배로 정권에서 물러났으나 군참모총장직과 종신상원의원등의 신분을 유지하며 군부 및 옹호자들의 보호를 받았다.
영화는 시종 두 개의 흐름이 교차되고 있다. 첫번째는 피노체트의 재판 과정. 스페인 검사가 피노체트가 재임기간에 스페인 시민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그를 기소하고, 이 사건을 맡은 판사가 신병치료차 영국을 방문한 피노체트의 신병을 인도해 줄 것을 영국에 요구한다. 이에 영국 법원은 논란 끝에 피노체트를 스페인에 인도하기로 판결을 내리고도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그를 칠레로 보낸다. 하지만 결국 칠레 정부도 피노체트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게 되어 그를 기소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흐름은 희생자 가족들과 고문 피해자들의 인터뷰. 영화는 희생자의 주검을 발굴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계속해서 희생자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보여준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노래로 심정을 내보이는 아버지. 죽은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어머니. 오랫동안 죽은 남편의 옷가지를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던 아내. 어머니가 성고문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에 괴로워하는 딸. 머리가 가루가 되어버린 유골. 증언으로, 오열로, 노래로, 침묵으로. 그들은 증언한다. 피노체트가 17년간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피노체트를 기소한 스페인 검사는 기소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스페인 내전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국외로 탈출하려 했을 때, 주스페인 칠레 영사가 배를 한 척 내주면서 "이 배에 태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구하겠다"고 했다. 그가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다. 또한 이 구조는 당시 칠레의 보건장관이 그들을 모두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가능했는데, 그가 바로 살바도르 아옌데였다는 것. 그들은 모두 연대의 표시로 그렇게 한 것이며, 자신이 피노체트를 기소하려고 하는 건 바로 연대를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파트리시오 구즈만은 <피노체트 재판>을 통해 <칠레전투 : 비무장 민중의 투쟁> 3부작에서 시작된 자신의 싸움이, 그리고 피노체트 독재에 대한 칠레 민중의 투쟁, 따라서 칠레전투가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독재와 기득권의 권력에 비하면 미약해보이기만 하는 의지들의 연대가 어떤 힘을 보여주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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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족 하나. 현 정권이 4대법안을 제기한 취지에 모두 동의하지도 않지만. 그 진행 과정은 더 속터진다. 잘못 처리된 일은 제기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 날림으로 번역된 고전은 두 번 다시 번역되지 않기 십상이고, 날림으로 맺은 협정은 지금까지도 일본 망언의 근거가 되고 있다.
다른 사족 둘. 국제주의와 보편주의의 딜레마랄까.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일본이나 미국의 법정에 세워야 했다면 아무래도 개운치는 않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독재자를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 영화를 함께 본 친구의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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