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偶然의 藝術

이 그림의 화면을 보면 천장과 벽이 보이는 큰 방이 있고 옆에 있는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고 거기서 약간 들어간 곳이 있고, 그곳에 또 하나의 방이 있으며 그 안에도 벽이 있다. 그리고 하나의 실내공간이 여기에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다. 이 방 안의 중심이 되어 있는 것은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금발의 귀여운 소녀이다. 이 소녀는 당시 스페인 국왕인 필리페 4세의 딸이고 이 공주의 주위에 그림의 제목이 된 궁녀 혹은 시녀들이 두 사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 앞에 개가 있고 또 다른 두 사람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한 사람은 작은 사내아이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키가 작은 보통 어른-난장이-이다. 이 사람은 궁정 소속 광대의 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린 사내는 공주의 놀이동무이다. 공주는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시녀들이 뒷바라지를 해주고 있다. 그럼으로 이 그림에는 공주의 소꿉장난의 상대가 전부 그려져 있는 셈이다.
그림의 뒷쪽에는 그아르다다마스라는 궁정 무관과 전속 시녀가 있다. 그리고 그 안쪽으로 또 하나 기사풍의 인물이 있어서 마침 저쪽으로 걸어가려다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사람도 궁정소속의 인물이다. 그리고 이 그림에는 또 한 사람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바로 손에 팔레트와 붓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앞에는 뒤쪽에서 본 커다란 캔버스가 놓여져 있다. 이 사람은 바로 화가 자신인 벨라스케스다. 화가의 모습을 보면 그가 한창 그림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자신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다시 한번 그림 속에 그려 넣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이 그림에는 또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안쪽에 문이 있고 그 문옆에 각진 부분에 두사람의 인물이 있다. 이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바로 필리페 4세와 그의 왕후 즉 이 공주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그리고 이 네모진 부분은 사실은 거울이며 이 두사람의 모습은 거울 속에 비치고 있는 모습이라는 사실이다. 즉 화면의 앞쪽에 국왕 부처가 자리잡고 있고 그 모습이 거울에 비치고 있는 광경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그림속에 포착된 장면은 어떤 장면인가? 이에 관해서는 현재도 벨라스케스에 관한 기본적인 문헌으로 취급되고 있는 독일 칼 유스티Karl Justi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유스티에 의하면 이 그림의 구도로 볼 때 집단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단 그 집단 초상화의 배치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성립되고 있는데 유스티는 그것이 전적으로 偶然의 산물이라고 보고 있다. 예술가는 일상 안에서 어떤 우연한 상황을 발견하는 행운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스티는 국왕부처가 화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 때마침 공주가 찾아와 지루해 하는 국왕을 위로해 드리는 그 순간 즉 이 그림에서 실제의 그림 대상은 국왕 부처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포즈를 취하는 지루한 일에 공주와 그의 시녀와 광대가 나타나 앞의 그림과 같은 우연을 창조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술 애호가였던 국왕은 이 우연한 구도를 보고 화가에게 명하여 이 광경을 그리도록 명령하였다고 유스티는 추측하고 있다. 유스티는 이 광경을 스냅 쇼트Snap Shot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일까 원래의 주인공이어야 할 국왕 부처는 거울 속에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실 이 그림의 제목인 <궁정의 시녀>라는 제목은 18세기 이후 어떻게 해서 생긴 이름이고 이 그림의 정식 제목은 <국왕의 가족>이라고 한다. 약간 제목에 어울리지 않게 그림이 파격적이지만 공주의 부모인 국왕부처와 공주가 있기 때문에 국왕 일가족의 초상화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주 주위의 두 명의 시녀가 대단히 눈에 띠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제목이 바뀐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유스티의 설명은 이 그림이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라는 가정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가설이다.
이런 유스티의 가설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이차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이들의 주된 반박은 당시 관습에 따르면 국왕 부처가 하나의 화면에 그려진 예가 없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그러므로 유스티가 주장한대로 국왕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유스티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이 그림은 공주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즉 이들의 설명은 공주를 그리는 도중 공주가 지루해하지 않기 위해 시녀와 소꿉동무와 난장이를 동원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반박 역시 유스티가 주장한 스냅쇼트식의 순간 상황을 포착했다는 주장을 더욱더 굳게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유스티의 주장을 반대로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은 공주의 그림을 그리는데 국왕부처가 잠시 들른 상태를 그림에 그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쪽의 주장의 핵심은 동일하다. 즉 우연의 상황을 스냅 쇼트식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주장은 모두 하자가 있는 주장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제3의 해석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 제3의 이론가들은 이 그림이 스냅 쇼트적이면서도 아주 면밀히 계산된 그림이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 이 그림은 대단히 큰 그림이기 때문에 이런 대작을 작가 마음대로 그린다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궁정의 명령에 의해 그렸을 것이고 이 경우 그림속의 인물들은 모습은 주문한 사람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그림의 구도를 다시 한번 더 살펴보아야만 한다. 거울에 비치고 있는 국왕부처가 뒤에 있지만 그 안쪽의 벽에 두 개의 그림이 있다. 오른쪽은 루벤스Pirre Paul Rubens의 <아폴론과 말시아스>란 그림이고 왼쪽의 그림은 조르단스Jacob Jordans의 <미네르바와 아라크네>라는 그림이다. 둘 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의 모사이다. 이 두 화가는 당시 유명한 인물이었고 실제로 스페인에 왔서 이 그림을 남겼다는 기록이 있다. 커다란 그림 두 개 있고 안쪽으로 문이 있고 거울이 걸려있다. 이것이 우리들이 주목해야할 것이다. 이 실내공간은 하나의 상자와 같이 천장과 오른쪽 벽으로 인해 분명하게 공간이 설정되어 있다. 벨라스케스는 평평한 화면에 안으로 쑥 들어간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거울과 안쪽의 공간으로 인해 벨라스케스는 공간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쪽의 공간은 그림에 의해 저지되고 있다. 그림의 주제는 우리가 알다싶이 교만에 관한 주제이다. 말시아스는 아폴론과 피리솜씨를 겨루다 패배하여 껍질이 벗기는 형벌을 당한 인물이고, 아라크네는 아테네와 직조기술을 시합을 하다 져서 거미가 된 여인이다.
벨라스케스와 동시대의 인물로 플랑드르 지역에 베르메르Johannes Vermeer란 화가가 있었다. 그의 작풍의 일부 역시 벨라스케스와 같이 벽 안쪽에 그림 속의 그림을 집어 넣어 그림 속의 또 다른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이 베르메를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배경에는 지도가 있고, 그림을 그리는 인물은 벨라스케스의 그림에서와는 반대로 등을 돌리고 있다. 그가 누구냐는 알수 없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이 화가가 누구냐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등만 보이는 화가가 베르메르 자신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원제목이 <회화 예술>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에서 회화라는 것을 우의화해서 그리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즉 베르메르는 이 그림을 통해 미술이라는 것이 손끝의 작업이 아니라 더 지적인 작업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벨라스케스에 있어서도 캔버스에 무엇을 그리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베르메르의 경우처럼 이 경우도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벽의 그림은 음악과 회화라는 주제의 그림이 우의적으로 그려져 있다. 즉 벨라스케스는 베르메르처럼 회화예술이라는 것을 그리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간과 신의 싸움에서 인간의 패배는 교만의 산물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가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이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이란 신의 행위와 비슷한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벨라스케스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