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일즈가 찬장에 진열된 와인들 중 1961년산 슈발 블랑을 가장 아낀다고 하자 마야가 놀란듯이 말한다. "그걸 진열만 해 두었단 말이에요? 당장 가져와요." "특별한 순간에 마시려구요." "그걸 마실 때가 특별한 순간이죠."
특별한 순간, 언젠가의 행복을 꿈꾸며 현재를 담보로 잡히는 것은 어리석다. 스테파니는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마야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이고 강단이 있다. 현재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반면, 남자들은, 마일즈도 잭도 그걸 모른다. 이혼한 전 부인이 재혼했다는 소식에 부루퉁해져서 집에 돌아간다고 떼 쓰고, 술에 취해 전 부인에게 전화해 추태를 부리는 마일즈는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다시 합칠 수도 있다는, 오지 않을 미래에 사로잡혀 있다. 잭은, 결혼이 코 앞인데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다. 결혼이라는 현실이 부담스럽고, 그저 편히 놀고 싶다. "넌 문학도 음악도 와인도 이해하는데, 왜 내 성욕은 이해를 못하는거야!"라니.
마야가 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햇빛과 비와 바람을 맞으며 자라는 포도, 발효와 숙성, 너무 오래돼 힘이 떨어지기 직전, 가장 농익었을 때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며 맞이하는 마지막. 삶이란 그렇게, 주어진 것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최선일게다.
유쾌한 영화다. 우스꽝스러운 철부지 두 남자는 제법 귀엽고, 두 여자는 매력적이고, 조용하고 경쾌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고, 와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재미있다.
비평가협회의 상을 받았다고. 그럴 만 하다. 꽤 괜찮은 영화인데, 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와인에 취한 듯 몽롱하다. 와인이 아니라 잠에 취했지, 나는. 아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