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Armenia

아르메니아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민족일 것이다. 이들은  301년 이들의 왕 티리다테스 3세가 예지자 성 그레고리우스St. Gregory  the Illuminator에게 세례를 받음으로서 신앙의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303년 예레반 근처의 Etchmiadzin에 모교회인 성 그레고리우스 성당을 세움으로서 기반을 다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390년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에 의해 양분되었다. 그리고 430년 이들은 러시아, 아랍, 터어키, 페르시아에 의해 영토가 예속되면서 이들의 공식적인 나라는 사라졌다. 이 결과 아르메니아인들은 인종, 문학, 종교, 언어로서만 결속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들은 9세기에서 11세기 중엽까지 아르메니아에는 바그라티드왕국이 존재하였고 12세기 말엽부터 1375년까지 소아르메니아왕국이 존재하였다. 이 기간동안 아르메니아는 로마교회와 결합하게 되었다. 이 결과 소아르메니아왕국은 십자군전쟁을 경험하였고 서방교회의 많은 부분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이들 민족이 세계사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이란과 터어키 그리고 후에는 러시아까지 가담하여 이들의 영토를 탐하였다. 이들은 페르시아, 터어키, 소련에 의해 박해를 받았는데 가장 큰 박해는 1915년에 일어난 대학살이었다. 터어키는 1915년 일차세계대전의 와중에 아르메니아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당시 세계인들은 유럽에서 일어난 세계대전에 신경을 쓰고 있는 틈을 타고 터어키는 이 지역에서 독립을 획책하는 아르메니아인의 기도를 분쇄하였다. 당시 터어키의 탄압이 얼마나 극심했는가는 당시 인구의 절반인 1백50만의 인구가 학살당한데서도 잘 알 수 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아르메니아는 1917년 제정러시아가 붕괴되자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과 함께 반 볼세비키동맹은 트란스 카프카즈동맹을 결성하였으나 이 지역에 독립세력이 형성되는 것을 우려한 터어키의 방해로 와해되었다. 1918년 5월 아르메니아는 독립을 선포하였으나 그 댓가로 터어키에 영토의 일부를 양도하였다. 이들이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1920년 세브르 조약에 의해 독립하였으나 11월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의 독립은 위협받게 되었다. 이 결과 1921년 아르메니아는 강제로 그루지아와 아제르바이잔과함께 트랜스카프카즈 소비에트연방 사회주의공화국이 되었고, 1936년 12월 소련을 구성하는 아르메니아 연방공화국으로 되었다. 그리고 1990년 8월 주권선언을 하고 이듬해인 1991년 9월 23일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였다.

 아르메니아에 대해 흥미를 가졌던 것은 그들의 이름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아르메니아인의 성은 -얀YAN으로 끝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인 윌리암 사로얀은 미국인이지만 아르메니아 이민의 후손이다. 그리고 그리고 구 소련시절 부수상을 지낸 아나스타스 이바노비치 미코얀Anastas Ivanovich Mikoyan도 아르메니아인이었다. 이렇게 아르메니아인들은 인도의 시크교도처럼 자신들의 이름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이들 민족이 세계최초로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민족이란 자부심과 함게 수천년간 이민족에 의한 지배에도 민족이 사라지지 않고 보존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2001년 기독교를 받아들인지 1700년을 기념하는 축제를 벌였다. 그 축제는 단순히 한 민족이 자축하는 축제가 아니라 역사의 질곡 속에서 생존한 민족의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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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2-14 2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로얀은 2009-10-14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적이 없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