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러시아, 그 반역의 역사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를 <제3의 로마>라고 부른다. 이런 경향이 나타난 것은 표토르 대제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는 중세적인 모습을 탈피하고 근대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게되는 표토르 대제 이후의 시대를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가 됨으로서 러시아는 본질적으로 신성한 땅이 되었으며 모스크바는 로마, 비잔티움을 잇는 성스런 땅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로마라는 지명과 그 제국의 지도자라는 명칭의 함수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로마제국의 최고 일인자는 아우구스투스 캐사르였다. 그리고 제2의 로마가 된 비잔티움의 최고 권력자는 콘스탄티누스 아우구스투스 캐사르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콘스탄티누스라는 인명이 아니라 그 뒤에 붙은 아우구스투수 캐사르라는 칭호였다. 이 칭호로 인해 비잔티움은 제2의 로마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비잔티움의 특징은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종교의 우두머리는 예루살렘을 대표하는 것이고 정치는 로마를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는 비잔티움이 예루살렘과 로마를 대표하는 도시, 권력이란 의미였다. 일찍부터 비잔티움과 교류를 하고 있던 러시아의 황제들은 비잔티움이 멸망하자 곧바로 자신의 제국을 제3의 로마로 확정하였다. 이는 모스크바가 비잔티움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로마를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모스크바는 새로운 예루살렘이면서 새로운 로마인 것이다. 이것은 모스크바가 예루살렘을 현재의 역사 속에서 실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예루살렘이 이교도인 이슬람 세력에 의해 장악됨으로서 더욱더 힘을 얻게 되었다.

러시아가 이런 의식을 갖게된 것은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이 이슬람에 의해 함락된 시기(1453)가 러시아에서 타타르의 지배가 종식된 시기(1480)과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인들에게 이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신의 계시로 이해하였다. 즉 제2의 로마가 사그러지는 순간 러시아가 이교도의 사슬에서 풀려났다는 그 사실은 러시아의 역사적 임무가 무엇인지를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됨으로서 세르비아 이북의 세계에서 러시아는 그루지아를 제외하고 정교회 세계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군주국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루지아는 역사적 기원이 오래 되었지만 러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지리적, 정치적인 독립국가라기 보다는 전설의 왕국에 불과한 것이었다. 중세의 입장에서 볼 때 진정한 신앙의 추종자들만이 존재권리를 갖는 것으로 인정되었으므로 러시아는 당연히 콘스탄티노플의 계승자가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 결과 러시아는 일반적인 제국 혹은 왕국과는 구별되는 제국이 되었다. 이 제국은 신의 섭리에 의해 세워진 신정국가였던 것이다. 이제 짜르는 단순한 황제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가 됨으로서 종교와 정치의 최고자로서 통합적인 황제가 되었다. 하지만 유럽의 세계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는 시점에 이르자 러시아 역시 정치와 종교의 칭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르게 되었다. 즉 모스크바는 예루살렘과 로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표토르 대제는 과감하게 예루살렘을 버리고 로마를 선택하였다. 개혁을 원하던 표토르 대제는 새로운 수도를 신성의 중심지로 할 것인가, 권력의 중심지로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권력을 택하였다. 표토르 대제가 예루살렘을 배제함으로서 자연히 러시아는 로마 가톨릭과의 경쟁적인 관계에 있음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즉 표토르는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기 보다는 러시아의 황제 아니 세계의 황제가 되기를 열망하였던 것이다. 그는 인민들을 위해 내세의 낙원의 문을 열기 위해 베드로의 열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구원과 신앙을 선택하였다. 그래서 표토르 대제는 새로운 수도인 페테르부르그의 문장을 바티칸의 교황의 문장과 대치되는 것을 택하였는지도 모른다. 바티칸의 교황 문장은 베드로의 열쇠를 교차시킨 것이지만 표토르 대제의 페테르부르그의 문장은 닻을 교차시킨 문장이었다. 교황청의 열쇠꼬리가 위로 향해 있듯이 표토르의 닻가지 역시 위로 향해 있다. 천국의 문이 열쇠로 열린다면 러시아의 미래의 문은 닻으로 상징되는 개혁과 개방이라는 표토르의 열망이 담기 문장은 하나의 동일한 이념에 대한 시각적, 언어적인 표현인 것이다.

이제 모스크바가 제3의 로마라는 등식은 페테르부르그가 새로운 수도가 됨으로서 페테르부르그가 제3의 로마가 되었다. 이제 러시아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변모된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수호성인 역시 신중하게 선택하였다. 로마가 베드로를 선택하였다면 그들은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아-안드레이-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즉 안드레이는 사도 베드로의 러시아적 변형체로서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러시아는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로마의 계승자가 됨으로서 서구와의 경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형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유리 미하일로비치 로트만, 보리스 안드레에비치 우스펜스키, 드미트리 세르게에비치 리하쵸프 공저 <러시아 기호학의 이해>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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