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dohyosae > 나는 인디안을 죽이러 왔다 - 쉐빙턴 대령

1973년 2월 27일 전통적으로 소수의 입장에서 백인들 사회에 순종적으로 생활하던 인디안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일어섰다.

이들은 83년전 자신들의 선조들이 백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된 사우스 다코다주의 파인리지 운디드니 언덕에 세워진 교회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백인사회에 외쳤다. American Indian Movement로 알려진 단체 회원 300여명이 민간인 11명을 인질로 삼고 이 장소를 점거한 뒤 연방정부와 무려 70일간 대치하였다. 이들의 저항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이 울림은 디 브라운의 <내 영혼을 운디드니에 뭍어주오>란 논픽션으로 인해 더 큰 호소력으로 울리게 되었다.

미국의 인디안들이 수동적인 입장에서 능동적인 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60년대 이후 흑인들이 자주권 향상의 일환으로 시작한 <Black Power>운동을 보고 이를 모방한 <Red Power>운동을 통해서였다. 이 운동은 인디안들 스스로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운동으로 그동안 백인들에 의해 무시된 인권과 지켜지지 않았던 선조들과 백인정부간의 수많은 조약의 이행과 이 과정에서 백인들에 의해 무시되었던 인디안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것이었다.  <영토권, 어업권, 水利權, 지하자원권>등과 같이 인디언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켜줄 사문화된 권리의 부활을 위하여 인디안들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1968년 AIM으로 알려진 인디언들의 단체인 American Indian Movement를 조직하였고,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는 역사적인 현장인 알카트라즈섬-인디안을 대량으로 수용한 감옥-을 점거하기도 하고, 연방정부가 파기한 조약의 이행을 위한 대장정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인디안들의 이런 노력을 난동으로 규정하고 강경진압함으로서 세계인들의 비난과 함께 인디안은 미국의 국민이 아님을 다시 한번 확인 하였다. 이런 연방정부의 폭거에  대항한 인디안 최대의 저항운동이 바로 운디드니 교회 점거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인디안이 미국 영토에 거주하는 자신들과 더불어 살아가야만하는 인간임을 알려준 사건이며 인디안의 인권상황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한 계기가 되었다.

이들 미국의 인디안들은 최종적으로 자신들의 보호구역에 자치국가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것은 아주 험난한 여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역사상 자국의 영토 뿐만 아니라 자국 주변에서 자신들의 안전과 안위를 위협하는 세력이 발호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테오도어 루즈벨트 이래로 몬로주의에 입각하여 중남미국가를 자국의 뒷마당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어떤 세력이 이식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인디안들이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자신들의 자치국가를 수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디안들이 1973년 2월 27일 이후 역사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이다. 많은 인디안 젊은 세대들이 떠나왔던 자신들의 보호구역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인디안 세대를 키워내었고 그 결실은 이제 30년이 지난 현재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인디안 보호구역은 나태와 게으름, 가난과 알콜중독이란 오명에서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긍지를 가진 젊은 인디안을 키워내고 이들을 통해 희망의 삶을 이뤄나가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오글라라 수우족의 대추장이었던 <붉은 구름>은 백인들이 자신들과 맺은 조약을 위반하며 평원으로 계속 밀려들자 이렇게 말하였다. <...지상에 평화는 없으며 신은 우리를 버린 것 같다. 만약 지상에 신이 있다면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보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의 모습도 기적도 보지 못했다...> 그의 자조적인 한탄은 이제 그의 후손들에 의해 말끔하게 씻겨져야만 할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인인 인디안들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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