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노부후사 > <퍼온글> 오시이 마모루 인터뷰
오시이 마모루 (押井守)
1951년 출생. 도쿄도출신. 도쿄학예대학 교육부 미술교육학과 졸업.
1977년, 타쯔노코 프로덕션에 입사, "일발 칸타군" (一発貫太くん),"젠다맨"(ゼンダマン)등의 연출을 담당.
1980년, 스타지오 삐에로로 옮겨 "닐스의 신기한 여행"(ニルスのふしぎな旅)의 연출과 "우루세이 야쯔라"(うる星やつら)의 치프디렉터를 담당한 후, 프리로 주요한 작품은, 극장용아니메 "우르세이 야쯔라-온리유"(1983), "우르세이 야쯔라-뷰티풀 드리머"(1984),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1989), "기동경찰 패트레이버2 -더 무비"(1993).
1995년 개봉된 "공각기동대"는, 미국과 영국에서도 개봉되어, 다음해인 96년에는 미 빌보드지에서 셀비디오차트 1위를 획득하는 세계적 화제작이 되었다.
최신작 "이노센스"가 2004년 3월 6일 개봉.
이노센스 ( イノセンス)
사람과 기계의 경계가 한없이 애매해진 시대.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었다.
1995년 공개된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攻殻機動隊)로부터 9년. 대망의 신작 "이노센스"(イノセンス)가 공개되었다.
이야기는 전작으로부터 3년후인 2032년. 주인공 바토는 대(対)테러부대 공안9과부속의 형사. 전작에서 인공지능의 인형사(人形使い)와 융합하여 네트로 사라진 구사나기 모토코(草薙素子)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사를 맡고 있다. 어느날, 소녀형(型) 안드로이드가 폭주하여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 발생. 바토는 파트너 도구사와 함께 사건의 수수께끼를 좇는다.
<인터뷰>
디지털기술과 치밀한 작화를 구사하여 제작된 이 영화의 모티브는 인형. 주인공 바토는 뇌를 제외하면 거의 인공신체화된 '살아있는 인형'이다. 오시이감독은, 이 영화를 '궁극의 신체론영화다'라고 말하고 있다.
영화를 만들때 포인트는 어디에 두셨습니까.
책의 첫머리에는 "미래의 이브"(릴라당 저/1886)가 인용되어, 여러가지 인형들이 등장하고 캐릭터는 여러가지 말을 인용해서 말합니다.
원작으로부터의 인용도 의외일 정도로 많았고, 여러 단편을 구성하고나서 중심축은 어디에 두셨는지...
-영화란, 여러가지 것들의 집합체입니다. 인용을 편집한다-라고 할까요.
여러가지 소재를 사용했습니다. 원작도 포함해서. 시로우 마사무네(士郎正宗)상의
원작에서, 끌렸던 씨츄에이션이나 대사는 사용했습니다.
그러니까 원작을 어렌지했다고 하기보다는, 하려고 했던 것에 원작도 인용했다고 하는 것이 가까울지도 몰라요. 릴라당도.
폭주하는 안드로이드의 이름 "하다리"는 "미래의 이브"에서 온 것이죠.
이름만이 아니고 많은 내용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미래의 이브"를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미래의 이브"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각본을 쓰기 전, 기획단계에서부터입니다. 그외 고유명사나 여러가지것들을 끌어들였어요.
"로커스 솔루스"(Locus Solus)-레이먼드 루셀의 소설-이라든가, 하라웨이(Donna J. Haraway)-"원숭이와 여자와 사이보그"등의 평론으로 알려짐-라든지. 디테일도 그렇지만,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부분도, 영화, 평론, 소설, 고전등으로부터 거의 다 인용했어요.
그외 성서는 물론 논어, 나카무라 소노코(中村苑子)의 하이쿠, 사이토 료쿠우(斎藤緑雨)의 경구(警句)등이 적소에 등장합니다. 인용을 어떤 식으로 엮어가고 있는지....
-하세가와 신(長谷川伸)도 사용하고 있어요. 저는 말의 콜렉션이 취미라서, 여러가지 책을 읽고, 맘에 든 대사나 글을 전부 써모아 둡니다 .아마 이미 평생분정도의 콜렉션이 있는데, 날마다 늘어만 갑니다. (웃음)
영화를 생각할 때에 좌르르 전부 프린트해서. 어떤 것을 고를까나~. 동서양 어느쪽이든 어느 시대든 상관없어요. 제 마음을 끄는 말, 그자체라고 할까. 경우에 따라서는 고유명사에 영감받는 일도 있습니다.
캐릭터 자신의 대사로 하지 않는 것은?
-다이얼로그라고 하는 것을 드라마에 종속시키는 게 아니고, 영화의 디테일의 일부로 하고 싶었다고 하는 것이 동기입니다.
극영화의 대사란게 지루하잖아요. 거의가 설명이 되버리는 게 싫었다고 할까. 좀더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 그자체를 드라마의 디테일로 하고 싶었어요. 디테일인 이상, 그것나름대로 공들인 게 아니면 안되니까.
하나하나씩 발길을 멈춰도 좋을 듯한 음영이 있는 말. 별로 안중요한 인물이 뱉는 대사도 뭔가 그럴싸했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형사의 "柿も青いうちは鴉も突つき不申候"같은. 드라마와 일단 떼어놓을 때, 말은 영화속에서 디테일이 되요. 가능하다면 100프로 인용으로 성립시키고 싶었어요.
고전에 관해서는 거의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제아미(世阿弥)라든지. 각각의 레벨로 말을 기능시키고 싶었어요. 배우들로서는 말하기 힘든 대사가 많았죠. 수고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연출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해주세요"라고 말만 했죠.(웃음) 하라웨이의 역을 한 사카기바라 요시코(榊原良子)상, 늘 친하게 지내는데, 매우 훌륭한 여배우입니다만, 그녀가 늘상 말해요. "논문을 감정이입해서 읽는 일을 요구받고 있어"라고.
그렇지만 어딘가에서 드라마와의 접점을 만들지 않으면 안돼요. 그래서 '도구사'라고 하는 남자가 반복해서 "슬슬 일얘기하죠"라고 말하는 거죠. (웃음)
그런 인물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까. 그것은 그것대로 재밌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도 진지하게 사건얘기를 안하고, 사건과는 무관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도구사가 혼자서 열심히 "일얘기하죠"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듣고 있지 않아.(웃음)
이번은 신체론영화라고 "제작노트"에서도 몇번이나 말씀하고 계십니다만, 한편으로는 전작의 속편이기도 합니다. 그쪽의 구성 상황은?
-어느쪽으로도 보이게끔 해두자 라는게 이번 최대의 고안장치라고 말할 수 있겠고, 기획으로서의 큰 판단입니다. "공각기동대2"를 하는 편이 간단하죠. 기복을 주는 것 뿐이니까. 복선을 장치해두고, 그것이 있는 곳에서 종결된다고 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좋은 해법이니까요. 그것을 다소, 감정으로 부풀리게 한다. 말로는 나쁘지만, 어쨌든 일단 끝냈다. 그걸로 된건가.
물론, 그걸로 됩니다만, 디테일의 집적으로서 하나의 세계를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저의 영화만들기의 기본생각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드라마는 없어도 영화는 성립한다. 극영화라고 하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내실로서는 음, 음악, 노래, 전부가 영화를 구성하는 디테일의 일부니까, 대등하지 않으면 안돼. 본래, 영화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때 획득하는 것이 가장 클테니까.
대개 100명이 본다면 95명까지는 동일하게 보여지는 영화라고 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해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까워요. 3년 고생했으니까, 100명 있으면 100가지로 볼 수 있는 영화로 하는 것이 실상 영화를 풍부하게 할 것이고, 필요한 디테일은 방대해질 거다. 그래서 대사자체도 디테일의 일부라는 식으로 언젠가부터 정했습니다.
해석해서 읽어야 할 것으로는...?
-흠, 그래요. 자, 뭘 고르지. 누구에게 공감할까 라고 하는, 선택의 여지를 남기다 라고 하는 면도 있습니다. 하라웨이가 말하고 있는 것에 공감할까, 빨간 훈도시의 남자가 말하고 있는 것에 공감할까, 아라마키 라고 하는 노친네한테 공감할까. 각각 다른 레벨의 이야기지만, 실은 같은 데이타를 둘러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신체라든지, 인간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누가 말한 것에 가장 공감할수 있었나--.
디테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것을 확대해도, 전체를 부감해도, 전체적인 것이 보이지 않으면 안돼. 프랙탈(fractal) -언제나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소수(小數)차원을 특징으로 갖는 형상-처럼. 디테일을 통해서 전체를 보는 것도 가능하고, 전체로부터 떨어져나와 디테일을 보는 것도가능하고. 그런 구조를 본래 영화가 가져야 하는게 아닐까.
그렇지 않아도 되겠지만, 저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애니메이션이란 기본적으로 디테일을 반복해서 성립시키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그런 작업을 지향하고 있는 거죠.
그렇군요. 그런데 역으로 말해서 반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나와. 중심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똑같은 것을 해보인다던지, 변주곡처럼 해본다던지, 각도를 바꿔 본다던지. 그래도 어떤 종류의 구심력으로,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세계로서 이야기로서 성립한다. 그러한 구조를 갖는다면 좋겠지.
말이 디테일의 일부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예요. 보틍은 끝으로 갈수록 사실에 근접한다 라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처음에 중요한 말을 해도 영화는 성립한다. 명해(明解)이고, 좀처럼 무너지지도 않고.
윤회하는 이야기?
-어디부터 말해도 어디까지 말해도 실은 하나. 그것으로 드라마적인 술수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이브"의 인용을 첫머리에 실었던 것도, 최초에 결론을 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 구조를 좋아합니다. 먼저 에언이 있고 그것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 영화는 대부분 언제나 처음에 결론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거의 예외없이.
그 편이 구조적으로 강하고 쉽게 무너지지 않으므로, 여러 디테일을 덧붙여도 성립하는 강도가 유지된다. 영화가 기본적으로 디테일만으로 성립한다고 하는 것의 뒷받침으로서, 구조적인 강도가 절대로 필요해 라고 생각합니다.
되어가는 형편에 따라 드라마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각본을 쓸 때 제일먼저 생각해야 할 것으로, 구조가 없는 영화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릴라당의 인용은 헌사가 아니고 결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첫머리에 실을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이번엔 첫머리에 결론을 나타내고, 라스트신에서 예감을 나타내고 있다. 동료들은 좋은 순서대로, 좋을 대로 이해해서 전혀 불편함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도 영화니까 순서대로 봐가겠죠. 시사회에서 말을 좇아가면, 영화를 따라갈 수 없게 되버린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말을 좇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흘려서 들어 주세요. 영상도 전부 보는 것은 아니잖아요. 보고 싶은 부분만 보겠지요. 보여줘야 할 것 이외의 광대한 정보가 실려있으니까 그로인해 깊이있는 세계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말도 똑같아요. 자신이 듣고 싶은 말에만 멈춰서주면, 그걸로 되잖아요. 그런 구조장치로 되어있어요.
그것이 거기까지 만들어간 이유입니까?
-그렇죠. 한번 본 것만으로 알아주길 바랬다면 거기까지 할 필요도 없죠.
저는, 가장 이익이 큰 형식을 선택한 셈이죠. 앙꼬가 넘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넘친 앙꼬를 정중히 핥는 것도, 흘리는 것도, 자유겠죠. 쓸데없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 영화를 모두함께 만들자-고. 편하게 보게 하는 것도 연출의 사명이지만, 계속 변화하며 흘러넘치는 것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도 또한 연출의 사명이야-라고.
"창작노트" 중에서, 오늘날의 인간은 신체가 없어,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도시라고 하는 외부기억장치에 신체를 맡기고 있다. 결국, 대나 하라웨이가 말한 부분의 사이보그로군요. 말하자면, 전작에서 그것을 궁극적인 형태로 해봤다고 하는 것이 (구사나기) 모토코로군요.
원작의 제2부와는 또다른 형식으로, 그후의 모토코를 직접 묘사하는 것으로 완전히 신체를 잃은 존재란 어떤 것일까, 라고 하는 신체론영화도 가능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하지 않고 바토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왜입니까?
-지극히 단순한 것입니다만, 애니메이션, 또는 영화로 신체를 묘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하면 신체의 표현이 가능하게 될까.
전작때는 모토코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파괴하잖아요. 그러한, 기본적으로 붕괴되어 가는 파라다임을 표현한 셈이라고 할까, 그것밖에 할 수 없었어. 그리고 '차가운 신체'라고 표현한다. 요컨대 사이보그지요. 물에 가라앉는 신체, 눈을 깜빡거릴 필요가 없는 신체. 가능한 한, 생명감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진 표현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높은 곳으로부터 날아내려와서 착~하고 잠긴다던지. 또는 보이지 않는, 광학미채라든지, 윤곽을 지운다던지. 여러가지 것들로 시험해봤습니다만, 그럭저럭 그나름대로의 반응이 있었다.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생각했던 것은, 영화나 아니메는 결국, 성악과 무도(舞踏)같은 직접적인 신체표현이 아니라는 것. 그래도 영상은 영상나름대로 할수 있는 일이 반드시 있잖아. 그게 뭔가 하면 "부재"(不在)라고 하는 것이죠.
부재(不在)?
-부재. 신체를 마이너스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땅에 발을 딛고 있지 않은 신체. 온도를 느끼지 않는 신체같은 것. 모토코에 관해서 말하면, 모토코가 부재라고 하는 것이 동기가 되고 있다. 대상으로서 (화면에) 내면, 어떤 종류의 리액션을 일으킬 수 있지만, 역으로 그 범위에서만 일으키게 된다. 등장시키지 않음으로, 존재를 인상지운다 라고 하는 것이, 매우 고적적인 방법이지만 지금도 유효합니다.
직접적으로 대상을 화면에 내는 레벨로 신체에 접근하는 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마 가장 어려울 거예요. 아니메 라고 하는 것은 결국 기호니까. 영상은 가짜니까 존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아.
시로우상이 그것을 지향했는지 어떤지는 별개로, 원작 제2부가 육체를 갖지 않는 것의 표현으로서는 성립하고 있지 않는 것은, 모토코가 줄곧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아무리 의체를 바꿔탈려고 해도, 만화의 기호표현으로서는 전부 모토코니까. 그런 형태로 영상화하면, 똑같은 것이 되어버리죠.
인형으로 모토코라고 하는 존재를 예감할지 어떨지. 혼이 들어 있지 않은, 내용물이 없는 신체.
내용물이 없는 신체란, 신체가 없는 내용물. 그것을 인상(印象)으로 관련짓는 것이 가능할지 어떨지. 요컨대 전부가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요. 무엇을 표현한다 라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제게 말하라면 일종의 낙관주의. 어떤 종류의 것은, 없는 것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연상시키는 것만이 느끼게 할 수 있어요. 말이란 모두 그런 거죠.
그러니까 '인간'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인형'을?
-네, 인형이라고 하는 것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캐릭터를 아무리 주물러대도 신체를 어떤 곳까지밖에 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내용물은 없는 것, 그와 동시에 내용물은 있지만 사람의 형태자체는 없는 것. 내용물의 존재. 오리지날. 사체. 이런 배리에이션(variation)의 신체를 꺼내든 거죠.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 또는 책은 어떤 테미입니까?
-에? 앞으로라구요? 그것은 전혀 모르지.(웃음)
말에 대해서는 의식적이고 싶어. 굉장히 신경썼던 것은 "아바론"이지만. 대사는 눈으로 읽게 하는 것이 가장 좋아요. 원래 영화는 소리로 속임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외국영화의 자막판, 그 이상의 형식은 없어. 책을 좋아하니까, 책을 읽는 것처럼 영화를 보여주면 좋겠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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