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가 해석했음을 밝힌다. (절대 번역 아니다.) 따라서, 상당한 의역과 오역이 있으리란 것 쯤 당연히 예상하기 바란다. 어려운 문장은 대충 뭉개고, 잘 모르는 문장은 과감히 건너뛰었다. (나는 이제부터 삼미의 팬이 되기로 했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누군가와 오키프에 관해 대화를 나눴는데, 상대방으로부터 으잉, 그게 아닌데, 하는 말을 듣더라도 내 책임은 아니다. 그건 이 글을 읽은 당신의 책임이다. 원문을 보고 싶은 사람은 아래 링크를 열어 확인하면 된다. 다만, 원문과 대조한 후 내용이 틀린 걸 발견하더라도 혼자만 조용히 알고 있으시라. 괜히, 저, 여기 잘못됐는데요, 라고 말해봤자 나한테 미움만 받을 뿐이다.

그림은 내 마음대로 골랐다. 그림이 많이 걸려있는 사이트도 링크할 테니 알아서 좋은 그림 감상하시라.

 

1951년 오키프는 멕시코로 첫번째 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 미구엘 코바루비아스를 만났다. 그 후 10년간을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보냈다. 아시아는 그녀가 좋아하는 대륙이었고, 특히 중국 회화에 빠져들었다.

구상적이고 섬세한 오키프의 스타일은, 잭슨 폴록이나 드 쿠닝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인기 있었던 50년대의 유행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키프는 그림을 그리고 실험하기를 계속했다. 50년대와 60년대에는 테라스 문과 우편함, 안뜰의 포석, 자신이 소유한 비행기 날개 등 그가 대면하고 있는 세상이 영감의 원천이었다. 가장 큰 작품인 “Sky Above Clouds Ⅳ (244×732㎝)”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풍경인 “cloudscapes (雲景)” 연작 중 하나이다. 1962년 오키프는 미국의 창조적인 예술가 그룹 중 가장 유명한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의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From the Plains Ⅱ (1954)

 


 

 

 

 

 

 

 

 

 

My Last Door (1954)

 


 

 

 

 

 

 

 

 

Sky Above the Clouds (1962-1963)

 

84세 때, 오키프는 눈이 멀기 시작했고, 결국 바로 앞만 볼 수 있게 되었다. 1972년에 그린 유화가 자신의 육안으로 직접 제작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다음해 잘생긴 젊은 도예가 Juan Hamilton이 그의 집에 찾아와 조수가 되었고, 모든 일을 도왔다. Hamilton은 논쟁하기 좋아하는 조수이자 동료였고, 오키프의 여생을 위한 대리자가 되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고령과 시력 상실에도 불구하고, 오키프는 작은 크기의 바위나 다른 자연 형상들의 정물화는 물론, 거대한 하늘과 강 그림들을 계속 그렸다. 1976년 Juan의 독려로, 그는 자신의 글과 작품을 담은 <조지아 오키프>를 출판했고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는 또한 Juan의 도움으로 조각과 도예를 시작했다.

1977년 포드 대통령이 오키프에게 Medal of Freedom을 수여하자 공영 TV 방송의 Perry Miller Adato가 그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여 방송함으로써 보다 폭넓은 관객에게 소개되었다. 이 여성 화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부활한 가운데 워싱턴 DC의 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90번째 생일 파티가 열렸다.

1984년 건강이 악화되자 오키프는 Juan Hamilton의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산타페로 이주했다. 1985년에는 레이건 대통령이 National Medal of Arts를 수여했다. 다음해 그는 모든 재산을 Juan Hamilton에게 남긴 채 죽었고, 오키프의 가족들은 법적 소송을 벌이려고 했다. Hamilton은 결국 오키프의 유지대로 상속분의 3분의 2 이상을 미술관과 학교에 기증하는데 동의했다.

1997년 3월 17일, Juan Hamilton가 기획한 첫번째 전시회와 더불어 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이 산타페에서 문을 열었다. 그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여성 화가에게 바쳐진 첫번째 미술관이다.

 



 

 

 

 

 

 

Georgia O'keefe Museum in New Mexico

 

조지아 오키프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인해 논쟁에 휩싸인 화가로 남아있다.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의 가치에 대해 상반된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그가 천재로 추앙 받든 혹은 단순히 재능 있는 화가로 여겨지든 간에, 그는 인생으로 자신의 특별한 매력을 알리는 일에 다른 화가들보다 더 뛰어난 솜씨를 보였다. 말년에 그는 말했다. “아름다운 방법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 그것이 그림이 내게 의미하는 바다.”

 


 

 

 

 

 

 

 

 

 

 

 

 

 

 

Black Rock with Blue Ⅲ (1970)

 

                                                                                                                             The end

                                                                                             Written by Ardeth Baxter 

 

http://mt.essortment.com/artistgeorgiao_rfga.htm     원문

http://www.happyshadows.com/okeeffe/     온라인 갤러리

http://www.okeeffemuseum.org/index.php     오키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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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9-19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방법으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 미술이 의미하는 바다.
멋진 말이네요.
박수 짝짝짝~~~~~추천!

urblue 2004-09-19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오셨네요. 잘 주무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