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다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 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 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은행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여성지를 뒤적이다 이 시를 보았다. 청량하고 푸른 바다의 사진을 배경으로 시가 곱게 떠 있었다. 기사였는지 광고였는지 알 수 없으나, 바로 앞 페이지의 알록달록한 옷 소개와 어찌나 어울리지 않던지, 이성복이 여성지에 등장할 만한 시인인가, 잠시 뜨악해했다. 하기사 여성지 편집부가 이성복의 시를 쓰지 말란 법도 없다. 그런데 어쩐지, 한동안 시끄러웠던 베이비복스와 투팍의 기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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