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TV에서 사람의 피부를 확대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해도, 그 피부를 확대해 보면 보이는 거라고는 털과 모공에 쩍쩍 갈라진 듯 보이는 표피뿐이고, 심지어 섬모충인지 뭔지 하는 벌레까지 기생하고 있다.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것을, 굳이 커다랗게 확대해놓고는, 봐라 이게 진실이다, 라고 말하는 악취미. 딱 홍상수식 영화다. 그의 영화는 보는 사람을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친구는 그가 잘난 척 해서 기분 나쁘다고 말한다. 나는 그가, 잘난 척 한다기 보다 지독히도 잔인하다고 느낀다. '니들은 사랑이라고 말하지, 근데 봐, 니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게 저런 거야. 저 모습이 아름답니?' 홍상수에게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생활의 발견>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영화를, 나는 내내 인상을 쓰고 봐야만 했다. 그가 들이대는 현실이 너무나 선명해서, 외면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었던 거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전작들과 비교해 보여주는 내용 자체는 다르지 않다. 욕망을 좇으면서 그럴싸하게 포장하려 하고, 뻔히 보이는 잔머리에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암투까지. 그런데 어쩐지 난 킬킬거리며 영화를 봤다. 경쾌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현미경을 바짝 들이대며 사실을 확인할 것을 종용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거리를 두고서, 웃기지 웃기잖아, 하는 것 같다. 잔인함이 덜해 졌다고나 할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바뀐건지, 내가 나이를 먹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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