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사기' 혹은 '도둑질'에 관한 장르 영화가 몇 편 나왔던 걸로 기억하지만, 극장에서 본 건 하나도 없다. (비디오나 케이블 TV에서 본 것도 거의 없다.) 이러한 영화의 기본은 '관객의 뒤통수 치기'인데, 그걸 성공적으로 해낸 영화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 영화의 평은 '뻔하다', '범인이 보인다', '엉성하다' 등이었다. <유주얼 서스펙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오션스 일레븐> 정도는 되어야 볼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 리얼 사기극을 표방하는 <범죄의 재구성>을 볼까 말까 잠깐 고민했다. 일단 시사회의 반응은 좋았다는데, 과연 2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친구가, 배우들의 면면을 봐서라도 보자고 잡아끌지 않았으면, 아마 비디오로도 보지 않았을 거다.

결과? 재밌다. 시나리오 쓰는데 공을 들였다더니, 과연 탄탄하다. 잘 짜여진 구성은,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느슨하지 않게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독특한 설정이나 치밀한 전략 같은 것으로 관객들과 두뇌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너무 티나지 않게, 요모조모 보여주고 설명하면서 쉽게 따라갈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사기꾼들에게서 직접 배웠다는 전문용어조차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사용되고, 그래서 유머러스하다. 어쨌거나 한국 영화에서 익숙치않은 장르 영화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평할 수 있다. (특성 상 영화 내용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멋진 배우들인 것 같다. <지구를 지켜라>로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한 백윤식의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나이들고 망가진 사기꾼을 그보다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장화, 홍련> 이후 연기에 물이 올랐다는 염정아 역시 꽤나 멋지다. 영화에서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고 약간 옆으로 비껴있긴 하지만, 요염하면서 어리숙한 삼류 사기꾼을 보는 것도 즐겁다. 박신양의 1인 2역은, 썩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박신양을 보면서 생각하는 건데, 배우에게는 중요한 덕목이 두 가지인 것 같다. 첫째는 물론 연기력이요, 둘째는 시나리오를 읽는 눈이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혹은 충무로에 나오는 여러 시나리오 중 자신에게 맞는 걸 골라내고, 그 배역을 통해 커리어를 넓혀가는 능력이 배우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거다. 한석규 같은 배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한석규라는 배우는 과대 포장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썩 훌륭한 배우라기 보다는, 적절한 시나리오를 골라 적절하게 스텝을 밟은 배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매니저이자 시나리오를 고르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작은 형에게 모든 공을 돌릴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박신양의 행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좀 더 연기력이 요구되는 좋은 작품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편지>에 이어 계속 시시한 멜로 영화에만 출연하다보니 그의 이미지는 그냥 평범하고 부드러운 남자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선택한 게 <달마야 놀자>라니.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번 <범죄의 재구성>은 그에게 다른 영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그가 좀 더 나은 배우가 되기를 바란다. (사실은 예전에 이 배우를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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