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미개의 행성>, 프랑스, 르네 랄루 감독

페이퍼 애니메이션이라는 이 작품은, 일반 셀이나 CG 애니메이션과는 색감이 다르다. 3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한 장 한 장 손으로 그려냈다는데, 과연 그 회화성이 돋보인다. 이윰 행성의 주인인 푸른 거인족 트라그와 각종 생물들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은 회화적 감각으로 형상화되어 신비롭게까지 느껴진다. 그리고 초반부터 내내 흘러나오는 몽환적 음악은 이 작품 전체에 대단히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기존에 보지 못한, 창조적인 작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트라그 족은 폐허가 된 테라(지구)에서 옴 족(인간)을 발견하고 이윰으로 데려와 애완용으로 기른다. 아마도 지구는 전쟁으로 인해 모든 문명이 파괴된 듯 하다. 트라그에게 옴은 개나 고양이 정도의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아이들은 누구나 옴을 키우지만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장난감에 불과하고, 애완용이 아닌 야생의 옴은 바퀴벌레나 황소 개구리처럼 그들의 환경을 더럽히는 존재일 뿐이다. 어떤 학자는 옴이 테라에서 상당한 문명을 이루었을 거라는 가능성을 제시하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러한 의견은 무시당한다. 그리고 무서운 속도로 번식하는 야생 옴을 막기 위해 때때로 옴 소탕 작전이 벌어진다. 살충제, 끈끈이, 진공청소기 등 온갖 도구가 등장하고, 공포에 질린 채 이리저리 쫓기던 옴들은 무자비하게 몰살당한다.

애완용 옴 중 하나가 트라그의 아이들이 학습을 하는 헤드폰을 훔쳐 달아난다. 야생 옴들은 헤드폰을 통해 트라그의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트라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주선을 만들어 이윰 행성의 위성으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트라그가 번식을 하는 ‘육체’였다. 옴의 우주선은 무방비 상태인 트라그의 육체를 공격하고, 그로써 트라그와 옴 간의 평화 협정이 맺어진다. 새로운 위성을 만들어 띄우고, 모든 옴은 그곳으로 이주해 서로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는 것이 영화의 결말이다.


 

 

 

 

 

 

 

 

 

이 작품은 러시아의 체코 침공에 대한 비유라는 해석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딱히 체코 침공 뿐만 아니라, 역사상 인류가 저질러온 수많은 잔학 행위에 대한 비유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흑인이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아시아에서도 식민 정책으로 일관했다. 유태인을 몰살시키려 한 히틀러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민족 혹은 국가가, 인접한 타 민족이나 국가를 억압하는 것으로 우월성을 과시하거나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다.

이 작품에서 제시하는 해결 방법은 ‘힘’이다. 그것도, 상대방을 실질적으로 파괴하고 위협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이다. 서로가 상대방을 위험한 존재로 인정할 때라야 동등한 관계가 성립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사실 그렇게 틀린 주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일제의 식민 치하에서, 우리 민족은 독립을 위해 선진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여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노력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요인 암살 등의 테러도 서슴지 않았고, 우리는 그것을 애국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은 어디서나 성립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북한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미국과 동등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응당 보복해야 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위협을 느낄 정도의, 더 큰 공격을 해야 한다. 결국 힘과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평화란 없을 테니까 말이다.

… 그런데, 이런 생각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 위긴 시리즈>에 ‘바렐스’와 ‘라멘’이라는 구분이 나온다. ‘라멘’은 인간과 다른 종이지만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존재로, 비록 생김새가 틀리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지능과 의식을 지닌 종을 의미한다. ‘바렐스’는 의사 소통 자체가 불가능한 존재이며 동물이 여기에 포함된다. <엔더 위긴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류는 우주를 개척해나가면서 새로운 종족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라멘인지 바렐스인지를 판단하려고 애쓴다. 라멘이라면, 그들이 어떤 존재라 하더라도, 힘 혹은 문명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계없이,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을 처음 봤을 때, 카드가 타인종 혹은 타민족과의 만남에서 인류가 보여 온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한 길은 인간이라면 여하한의 조건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카드의 믿음이 지나치게 순진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류가 걸어가야 할 길은, 르네 랄루의 주장 보다는 올슨 스콧 카드의 믿음이라고 나 역시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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