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RED DRAGON>을 보다.
레드 드래곤은 한니발 렉터 시리즈 중 첫번째 이야기지만 제작 순으로 보면 가장 마지막이다. 옛날에 <맨 헌터>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지만, 그때는 안소니 홉킨스가 렉터 역할을 한 것이 아니므로, 마지막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듯 하다.
영화는, 좀 느슨하고 지루하다. 게다가 <한니발>과 마찬가지로 이미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양들의 침묵>에서 이미 너무 많은 걸 보여줬기에 더 이상을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연쇄살인범을, 렉터 박사의 도움으로 추적한다는 설정 자체가 <양들의 침묵>과 동일하기에, 앞으로의 전개 상황이 뻔히 보인다.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렉터 박사의 캐릭터도 전작에 고스란히 기대어서, 안소니 홉킨스가 자신의 과거 연기를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그럼에도 영화를 끝까지 본 건, 오로지 에드워드 노튼 때문이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연기를 잘 했기 때문은 아니다. 역시 <양들의 침묵>과 비교하자면, 조디 포스터가 보여준, 강한 듯 하면서도 여리고,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고통과 공포를 극복하고자 애쓰는 다층적인 캐릭터를 따라가지 못한다. 뭐 그의 연기가 썩 나빴던 것도 아니지만, 조디 포스터 만큼의 내공을 쌓지는 못한 듯 하다.
그렇지만, 노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중 하나다. <Primal Fear>에서, 순수하고 여린 소년에서 영악한 살인자로 순간 순간 변하는 그의 모습을 처음 봤을 때부터, 쭉 좋아한다. 딱히 그가 연기파라서 그런 건 아니다. (물론 <25시>에서는 놀라운 연기력을 선보였고, 연기가 좋지 않다면 계속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려울거다.) 무엇보다 그의 표정이 좋다. 순수한 소년, 반듯한 화이트 칼라, 멍청하고 실없는 떠벌이, 교활한 사기꾼, 삶의 무게에 짓눌린 방황하는 청춘까지, 그의 얼굴에는 여러가지 표정이 있다. 그리고 대단히 영리해 보인다.
<Primal Fear>, <American History X>, <Fight Club>과 <25시> 등 다양한 캐릭터를 옮겨가며 연기자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감독과 제작자로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는 이 청년은, 실제로도 꽤 똑똑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장수하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셀마 헤이엑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있다는데, 정말 결혼을 하려나? 둘은 좀 안어울리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