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옷
아멜리 노통브 지음, 함유선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노통의 장점은 확실히 뛰어난 유머 감각에 있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이야기 자체를 어떻게 끌고 가는가 하는 것보다는 인물들의 생각과 말 속에서 더욱 큰 재미를 느끼게 된다.

폼페이의 멸망이, 미래의 누군가가 폼페이를 보존하기 위해 저지른 범죄라고 생각하는 작가 아멜리 노통. 그녀는 이 비밀을 알아챈 대가로 26세기로 납치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감시자이자 폼페이를 멸망시킨 장본인과의 대화. 시간 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폼페이가 멸망한 것이 79년인가 2579년인가 하는 논쟁들이 나오지만 사실 그것들에 대해 이해하든 못하든 크게 상관은 없다. 이 책의 진짜 재미는, 노통과 감시자가 쏟아놓는 여러 가지 독설에 있으니까 말이다.

독재자가 지배하고, 지능과 미모에 따라 계급을 나누고, 남북 문제의 심각성을 없애기 위해 ‘남쪽’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버린 사회, 그것이 미래의 모습이다. 미래의 인간 셀시우스는 이 모든 것들이 과거부터 존재해왔던 것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 노통이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딱 그런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하고 있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계급은 존재하고, 남북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위쪽의 인간들은 아래쪽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노통이 남쪽에 대한 연민과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데 대해 셀시우스는 그것이 위선일 뿐임을 드러낸다.

노통과 셀시우스가 서로를 조롱하는 대화는, 실은 노통 자신을 포함한, 북쪽 세계에 대한 비난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비난조차, 굉장히 재치있기 때문에, 어쨌거나 웃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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