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베르트랑 데 라 그랑쥬 지음, 박정훈 옮김 / 휴머니스트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이 달 초, 어느 뉴스 프로그램의 해외 리포터가 멕시코에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봉기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리포터는 멕시코에 거주하고 있기는 했으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커녕 멕시코 혁명에 대한 기본 지식조차 없는 듯 했다. 앵커와 리포터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으로 인해 멕시코의 치안 상황이 매우 불안하다는 말로 꼭지를 마감했다.

전화니 방송이니 인터넷이니, 문명의 이기는 날로 발전하여 지금은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제대로 된 정보를 접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리포터는 멕시코가 긴장 국면에 놓여있는 듯 말했으나, 실제로 그런 기미를 다른 곳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치아파스에서 무장 봉기가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지만, 그간 무력 충돌이 일어난 것은 1994년 1월 1일의 첫 전투를 제외하면 전무하다. 멕시코 정부가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으로 인해 골치를 앓는 것은 사실일 테지만 현재의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뉴스에서 얘기한 이상, 사람들은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전보다 훨씬 덜 하긴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막강한 권력이다. 사파티스타의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잘 활용한 게릴라이다. 신문, 잡지, 인터넷 등 언론 매체를 활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고 전세계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이 책, <21세기 게릴라의 전설, 마르코스>의 저자들은 부사령관이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언론이 잘못된 정보로 진상을 호도하고 있다고 여긴다. 저자들이 밝히는 집필 동기는 명확하다. 부사령관에 의해 통제되고 왜곡되는 정보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전달하는 정보는 과연 진실이고 올바른가? 동일한 정보조차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다른 사실을 전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제시되어 있긴 하지만, 애초부터 그들이 사파티스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저자들은,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 중 상당 부분을 마르코스 개인을 비난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사파티스타 운동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에 대한 분석이나 건설적인 비판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의 탄생과 무장 봉기, 그리고 그 후의 이러저러한 사건들은 중구난방으로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기자 출신인 저자들이, 언론을 지나치게 잘 활용한 부사령관을 개인적으로 힐난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면, 괜한 억측일까?

사족 한 가지, 내용 자체가 뒤죽박죽에 혼란스러운 건 그렇다 치자. 번역도 별로 매끄럽지 못한 데다가 교열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수많은 오자와 잘못된 문장을 만나는 건 진짜로 짜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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