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
잉게보르크 바하만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직 10대였을 적,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는 스물 여덟이라고 생각했고, 그 나이에 이른 나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왜 하필 스물 여덟이냐고?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정도의 어른이면서도 늙지 않은 나이이고, 대학 졸업 후 무슨 일을 하든 4~5년이면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28세를 지나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지를. 어느 날 아침 스물 여덟 살이 되었다. 그러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닥 만족스럽지 못한 직장에서 별 재미없는 일에 매달려 있고, 나이는 먹었지만 한 순간도 어른이라 느끼지 못하며, 스스로를 책임지기는커녕 방임할 뿐이다. 말로는 아직 젊잖아, 뭘 못하겠어, 라고 호기를 부리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고 또 다른 노력을 하기엔 나이를 너무 먹었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울 거라 믿었던 스물 여덟의 한 해는 안개처럼 사그라졌다. 스물 아홉이 되자, 뭔지 모를 어색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그때부터 서른을 예비하기 시작했다. 누가 나이를 물으면 서른이라고 대답했다.

이미 평균 수명이 80세에 가까워져 있고, 운전 면허를 따는 80대 할아버지와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70대 할머니가 사는 세상에, 인생의 반도 채 살지 않은 나이인 서른이 대체 뭐 그리 중요한 걸까? ‘30세에 접어들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그를 보고 젊다고 부르는 것을 그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그 자신은 일신상 아무런 변화를 찾아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엇인가 불안정해져 간다. 스스로를 젊다고 내세우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서른이 주는 무게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느끼게끔 하는 바하만의 대답이다. ‘삼십세’는 서른이 갖는 의미와 그 나이에 이르도록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자괴지심, 그로 인해 사회에서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뛰어난 고찰이다. 누구나 한번은 느끼게 되는 감정에 대한 표현은 놀라우리 만치 솔직하면서도 적확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바하만은 당당하게 삼십세를 맞으라고 힘찬 격려를 보낸다. ‘그대의 뼈는 결코 부러지지 않으리니!’

서른을 지난 이제야 느끼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4-07-29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30세에 읽기좋은 마이리스트를 작성해봤어요.
한 번 놀러와 읽어보세요. 시간 나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