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 탐험가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정신의 탐험가들> 이라는 제목에 비해 좀 뜬금없을 수도 있지만, 우선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역사라고 하는 과거, 혹은 한 시대를 살다간 사람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라는 것이다. 이 진부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을 읽을 때'이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라는 칭호를 듣는다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탁월함은 인물의 정확한 묘사나 시대상의 철저한 고증 등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글을 읽을 때 무엇보다 독자를 놀라게 하는 점은 바로 그가 주인공이 되는 인물이나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바라보는 그 자신의 독특한 시각과 세계관이다.

대부분의 전기 소설에서 보여주는, 인물에 대한 사실적이고 정밀한 묘사는 사실 현재의 우리들에게 그닥 감명이나 어떤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무색무취한 서술, 무관점의 관점 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묘사에 관심이 있다면 차라리 백과 사전을 보는 편이 낫다.

반면 글을 쓰는 사람의 명확한 세계관은 다른 작가의 그것과, 혹은 나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할 수 있게 해 준다. 츠바이크는 다른 어떤 전기 작가에 비교해 보아도 이런 점에 있어서 가장 탁월하다. 오히려 시오노 나나미 정도가 그에 비견될 수 있을까. 물론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라는, 역사속의 거대한 흐름에 천착하고, 츠바이크는 여러 시대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인물들에 천착한다는 사실이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둘이 대상을 바라보고 글로 표현해 내는 방식은 동일하다.

<정신의 탐험가들>에서 츠바이크는 현대 심리학의 발전에 공헌한 세 인물, 프란츠 안톤 메스머, 메리 베이커 에디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츠바이크는 프로이트의 '혁명성'이야말로 그의 가장 위대한 점이라고 평가한다. 즉, 이성의 시대라는 19세기에, 본능적이고 그래서 위험한 무의식과 충동의 문제를 건드려 세상을 놀라게 한 것, 어떠한 비난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믿는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간 그의 불굴의 의지, 그리고 그로 인해 한층 넓어지고 깊어진 심리학의 발전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이제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을 정도의 확고함으로 자리잡았지만 이 책이 씌여진 것이 1920년대, 프로이트의 생존시라는 것을 감안하면, 츠바이크의 작업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와 맞물려 정신 세계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츠바이크는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자신의 시각과 필력으로 우리 앞에 지나간 시대와 인물의 의미를 펼쳐놓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한 조각을 찾아낼 수 있다. 이처럼 글을 읽으면서 역사를 되새길 수 있고, 그것으로 현재의 내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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