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시작했고, 어제 본 따끈따끈한 공연.
체코 뮤지컬이라길래 공연 예고가 나왔을 때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가격 때문에 거의 안 보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는데, 예매율이 낮은지 갑자기 행사에 들어갔다. 일요일에 가족끼리 관람하면 50% 할인, 대학생/중고생/선생님 할인, 연인 할인 등 거의 모든 사람이 대상이 되는 할인 이벤트가 진행 중이다.
유니버설아트센터에 처음 가 봤는데, 좀 놀랐다. 다른 공연장처럼 좌석이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바닥에 예식장 의자 같은 걸 가져다 놓았다. 같은 높이에 2~3줄이라는 건 미리 알았고, 그걸 고려해서 일부러 같은 높이 중 가장 앞 쪽으로 예매를 했는데, 좌석 배열이 바뀌어서 예매한 좌석이 중간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앞에 덩치 큰 여자 둘이 앉았다. 예고 없이 좌석 배열이 바뀐 것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그런 건 금세 잊어버릴 수 있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정말?) 햄릿이다 보니 내용을 많이 압축했다. 50분, 50분 공연에 인터미션 15분으로 시간도 짧다. 하지만 흐름이 끊길 정도는 아니어서 햄릿의 내용을 모른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뿐더러 굉장히 속도감있게 진행되어 관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락 뮤지컬이라고 해야 할까, 강한 비트의 곡들이 많아 여태 본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신선하고 흥미롭다. 곡 자체로 아주 매력적이라 OST를 사서 따로 들을 생각도 하고 있다. 체코의 국민 가수라고 하는 야넥 레데츠키가 만든 작품이란다.
가장 특이할 만한 점은 무대장치와 의상. 국내 뮤지컬 중 이렇게 화려한 의상을 사용한 작품이 있을까. 배우들은 보통 세 번쯤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다. 회전 무대야 익숙한 거지만 그 회전 무대를 사용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장면이 바뀔 때 회전 무대를 돌리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연기하고 노래하는 중간에도 무대를 돌려서 배우들이 성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넘나드는 것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무대가 한층 넓어진 느낌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배우들의 연기력. 삼촌 클라우디우스 역의 조유신과 거투르트 여왕 역의 서지영, 폴로니우스 역의 송용태(이 분은 대조영에도 출연하고 계신 배우다.) 등이 훌륭한 노래와 감정 표현을 보여준 반면, 정작 햄릿 역의 김수용과 오필리어역의 신주연은 노래와 연기 모두 약하다. 김수용은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닌 듯한데 가사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 그나마 후반으로 갈수록 나아져서 다행. 차라리 호레이쇼와 헬레나를 맡았던 두 배우가 햄릿과 오필리어를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원작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클라우디우스가 선왕을 살해한 가장 큰 이유를 거투르트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투르트 또한 처음부터 클라우디우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햄릿과 오필리어의 사랑보다 클라우디우스와 거투르트의, 이루어질 수 없을 줄 알았으나 드디어 이루게 된 사랑의 노래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면, 역시나 일부 배우들의 연기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거투르트가 붉은 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서 사랑을 원하는 여자의 마음을 노래하는 장면은 아주 훌륭했다. 삼면의 거울 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거투르트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아이디어도 좋다.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할 때 곡의 일부를 다시 부르며 등장하는 것도 좋았다. 그간 본 다른 작품에 비해 관객들의 박수와 호응이 훨씬 컸던 이유는 바로 이 인사 방법 때문인 듯 하다. 50% 할인 가격을 생각한다면 전체적으로 꽤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옆에 젊은 남녀 커플이 앉았는데, 사랑하는 햄릿이 아버지를 죽인 것을 알고 오필리어가 미치게 되는 장면에서 여자애가 “어머”, “어떡해” 이러면서, 정말 놀라고 있는 거다. 읽지 않은 거야 그렇다 치고, 햄릿 내용을 모른다는게 좀 놀라웠달까.
클라우디우스와 거투르트
햄릿과 오필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