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 - 윤보인 장편소설
윤보인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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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뱀>과 장편소설 <밤의 고아>로 인상적인 문학세계를 선보인 윤보인 작가가 장편소설 <재령>으로 오랜만에 문학으로 돌아왔다.


작품 첫 구절의 언급대로 <재령>은 서울에서 뉴욕으로 그리고 재령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재령’이라는 단어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화자인 ‘나’의 할아버지의 고향인 황해도 재령을 가리키는 지명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름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갈 것이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곳이라는 황해도 재령이라는 공간은, 당신을 알고 싶고 언젠가는 더 많이 알 수 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는 재령이라는 남자와 탐구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 두가지 대상은 작가의 페르소나인 화자의 시선으로 보자면 역사성과 인간성에 대한 본질적인 탐구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탐구는 문학이라는 문을 통과한다는 점에서는 트로이 전쟁 후 긴 시간 방랑의 여정을 지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려는 율리시즈의 귀환문학과도 통할 것이다.


<재령>에서 작가는 두가지의 서술방식을 취하는데 첫 번째는 사주명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서술하는 씨줄의 부분이고 또 하나는 재령을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인 날줄의 이야기이다.


<재령>은 오랜 시간 점을 치는 기능적인 기복의 한 형태로 폄하되거나 음지의 학문으로 취급되어온 사주명리학을 새롭게 보여주는 시선을 제공한다. 모든 학문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양면성이 있다. 과학도 그러하고 종교도 그러하다. 이것들의 긍정성을 잘 살리면 인류에 보탬이 될 것이고 부정성이 드러난다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많은 이들이 괴로울 것이다. 과학기술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시대에서 사주명리, 토정비결, 풍수, 역학 등은 그것의 본질적인 가치와 상관없이 공식적인 사회 속에서 숨어들거나 길흉화복의 기능적인 면을 부각하고 이용하는 이들에 의해 왜곡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시대의 운세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하는 영역에 있었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와중에도 그 존재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존재감의 본질과 가치를 찾는 눈은 외적 성공이나 지위에 기대는 것이 아닌 내용 자체를 파악하는 인격의 시선에 달려 있다. 이 인격의 시선은 작가의 시선이기도 하다. 사주명리학이 음지의 학문이면서도 오랜 기간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는 것은 작품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통찰력과 신뢰, 겸허함을 잃지 않는 소수의 지혜자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통찰의 내면적 인격을 지닌 작가의 시선은 화자를 통해서 재령이라는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구체화한다. 박재령이라는 인물은 나라는 화자가 서울에서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쌍둥이 오빠가 젊음을 꽃피우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고 부모님은 뿔뿔이 흩어진 상태에서 큰아버지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가게 돼서 만나게 된 남자이다. 박재령은 큰아버지로 이어지고 큰아버지는 할아버지로 이어진다. 이들 직업은 모두 다를 것이나 내면적으로는 모두 운명과 삶을 이해하고 공부하고자는 하는 존재들이다. 나라는 화자는 공통적으로 이 세 존재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넓히려는 존재인 셈이다. 즉 이 이해는 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히려는 구체성을 지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 삶에 대한 인문적 탐구이기도 하다. 박재령이라는 ‘재령’과 할아버지의 고향인 ‘재령’은 겉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나'라는 화자는 쌍둥이 오빠의 죽음과 아버지 형제들의 각기 다른 삶과 운명을 통해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사색한다. 그녀가 이 이해를 넓히기 위해 사주명리를 도구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일지도 모른다. 사주명리는 결코 완성된 학문이 아니고 한 인간의 이해를 통해 단순한 길흉이나 성공의 여부를 기대는 기능적인 도구로 머물 수도 있지만 소수에게는 운명과 삶에 대한 상관관계를 극복하는 지혜의 도구일 수 있다.


<재령>은 사주명리라는 작가의 통찰을 이야기로 씨줄을 형성하고 ‘재령’이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줄을 형성하는데 이는 원리와 실제라는 측면으로 볼 때 흥미롭다. 원리는 실제를 통해서 구현되고 실제의 경험은 원리의 철학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므로 결국 원리와 실제는 서로서로 영향을 미치고 성장을 시키는 교학상장과도 같을 것이다.


작품에도 등장하듯이 작은아버지와 사촌언니의 남자는 외적 성공을 지향하는 존재들이지만 이들에게 나라는 화자는 별로 경도되지도 않고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님을 안다. 이미 나라는 화자는 그 속물성을 넘어선 뒤 내면의 성장과 운명과 삶의 세계를 바라보고자 하는 성숙한 영혼이다. 이는 작가의 페르소나라는 점에서 작가의 시선이기도 할 것이다. 100년도 채 못되는 한정된 시간속의 육신보다 무한성의 성격을 지닌 영혼을 더 중시하는 존재라면 내면을 살피는 일에 더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영혼이 존재하냐 아니냐는 것과는 별개로 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행복에 더 가까워지는 길임은 외적 성공과는 관계없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지혜의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작가는 나라는 화자를 통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의 정도는 드러낼 지언정 모든 존재들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는다. 차별없이 모든 존재들을 바라보되 그들의 외양에 평가나 중점을 내리지 않고 그들의 내면에 관심을 둔다. 이는 오랜 시간 외적 성공의 경험을 보내고 내면적 성장의 시기에 다다른 성숙한 영혼의 공통점이기도 할 것이다. 모든 존재들은 운명적인 길을 걷되 그것을 스스로 더 인식하느냐 못 하느냐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그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연민으로 바라볼 뿐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사주명리를 바라보는 시선과 통찰력도 훌륭하지만 문학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의 격을 유지하는 것도 훌륭하다. 적지 않은 호사가들에게는 사주명리라는 소재가 길흉화복의 기능적 측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지엽적인 소재로 들려주고 싶은 유혹과 함정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그러나 작가는 결국 이 모든 것이 삶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와 방편임을 안다. 단순한 흥미위주의 이야기거리인 문집(文集)이 아니라 삶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문학(文學)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은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문학적 시선의 격(格)이 존재함을 이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된다.


흥미롭게도 <재령>은 '나'라는 존재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작가는 '나'를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시선을 마음이 일으키고 흐르는 방식대로 서술한다. 또한 ‘나’는 나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지만 나보다는 주로 다른 이들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는다. 바깥의 세계를 지우개로 점점 지우다보면 나의 중심으로 더욱 가까이 나의 시선이 머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나란 무엇인가와도 연결되는 것이어서 이것은 모든 이들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향성이 다음 작품의 기대를 갖게 한다.


윤보인 작가의 <재령>은 단순한 외적 성공만이 모든 행복의 조건의 필수조건이 아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이들의 외적 평가와 상관없이 운명을 거스르지 않되 인간적인 삶을 살려는 이들에게,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다양하고도 극심한 경험들이 그저 실패이기만 한 실패가 아니라 영혼의 성숙과 진화를 위한 운명의 예비였음을 짐작하는 이들에게 한줄기 위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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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강아지 2020-05-16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깊이 공감합니다. ^^
 
통합하고 통찰하는 통통한 과학책 1 통합하고 통찰하는 통통한 과학책 1
정인경 지음 / 사계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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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통한 과학책 간략소감]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우리가 함께 사는 사회를 향합니다. 과학 기술의 방향성이 중요한 이유는 사회 구성원의 안위를 염두에 두고 사회 공동체의 목표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소수 몇몇이 혜택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행복해야 하니까요. 이 책을 통해 과학의 개념이 스며들고,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과학 기술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인경 지음, 사계절 출판사 <통통한 과학책> 서문 중에서.

처음엔 <통통한 과학책>이라길래 책이 두꺼운 것인가 착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통합하고 통찰하는 단어를 축약한 것이더군요. 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바로 목차의 구성에 있습니다. 1권에서 질문, 물질, 에너지, 진화를 다루고 2권에서는 원자, 빅뱅, 유전자, 지능을 다룹니다. 제목이 의미하는 통합과 통찰의 의미가 목차의 구성에서 온전히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생 시절 장차 직업을 위해서는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져 있으니 장래 진로를 한 분야로 선택하라고 강요한(!) 시절은 조금 과장하자면 공부하는 시간보다 어디로 갈지를 더 많이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덜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산업화시대의 관성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고 기능주의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직까지는 현실일 겁니다.

수학과 과학처럼 시험성적을 위해 억지로 배워야 하던 과목에서 벗어나 교양이자 기본 상식이자 지식의 기초적인 토대로서 배우고 즐기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즐기고 배우는 환경은 그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서 후배와 학생들에게 이어지는 것인데 정작 가르치는 이들이 산업화시대의 암기위주 공식위주의 환경에서 배출되었기 때문이겠죠. 아마도 하고 싶어하는 것, 즐기고 싶어하는 것, 호기심과 열정에 몰두하는 지금의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더 어른이 되면 이런 환경이 점차 바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어른들은 분명히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책처럼 과학의 일반 안내서(General Guide of Science)를 지속적으로 내고 쇄를 거듭하며 진화를 시켜가는 것입니다. 그 방향이 구체적으로는 학생을 위한 것이든(for Studetns), 선생을 위한 것이든(for Teacher), 일반인을 위한 것이든(for People), 이런 책이 진화를 거듭하다 보면 아름다운 전통은 남을 것이고 구태의연한 가치들은 점차 사라질 겁니다. 훌륭한 선배들은 철학과 교양의 전통을 남길 것이고 열정의 후배들은 새로운 가치를 보탤 겁니다.

고등학교 과학사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하셨고 <뉴튼의 무정한 세계>를 통해서 이 시대 우리 상황에서 과학을 한다는 것, <과학을 읽다>를 통해 인문학적 사고의 조화를 통한 과학의 시선을 일깨우는 내용에 인상을 남긴 정인경 선생이 중고등학생을 위해서 대화체로 낸 <통통한 과학책>은 비단 학생들뿐만이 아니라 학부모와 과학전반을 살피고 싶은 일반인들의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시대적으로 내용적으로 에피소드가 적절히 가미된 방식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책을 내고 가르침을 전수받던 시절에서 토론과 소통을 통해 서로간의 대화가 자유롭고 유연해진 시대라곤 하지만 전통과 가치의 중요성과 소통의 장점이 잘 발휘된 저작으로 앞으로도 더욱 진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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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
정인경 지음 / 돌베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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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무정한 세계] 무정함은 언제쯤 온전히 해소될 것인가.

‘식민지 시기에 서양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문명화’는 해방 이후에 ‘근대화론’으로 대체되었고, 식민 지배의 도구였던 과학기술은 서양의 근대화를 따라가기 위한 도구로 바뀌었다. 오늘날까지도 과학기술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기 위한 도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뉴턴의 무정한 세계] 한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중에서 p.264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열차의 도착’이라는, 불과 1분도 되지 않을 필름을 상영한 사건은 그 자체로 세상에 영화의 출현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 당시에 카페에 있었던 관객들은 영화라는 체험이 전무하였으므로 기차가 서 있는 모습에서 출발하여 달려오는 장면을 보았을 때 많은 이들이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여러 영화들을 보면서 그것이 영화인줄을 알면서도 여러 장면들에서 놀랄 때가 많은데 1904년 경부선 철도가 처음 운행되던 부산역에서 직접 지켜보던 조선인들은 그 광경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었을까. 생긴 형태는 뱀의 모습인데 그것이 뱀과는 비교가 애시당초 되지 않는 거대한 금속의 크기에다가 어마어마한 경적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돌진하는 모습에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놀라움과 경외감이 섞인, 말 그대로 혼비백산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정인경 선생의 [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에는 바로 당시 과학기술의 소산이라고 할만한 증기기관차의 운행모습과 관련한 일화를 소개한다. 조선인에겐 증기기관차의 운행모습이 놀라움의 연속과 혼비백산의 어수선함이 혼재된 것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서구인은 조선인의 모습이 우스광스럽기 그지 없었을 것이다.

한국사에 있어서도 측우기라든가 인쇄술같은 과학이나 혹은 기술적 발전이 없었다고는 할수 없겠지만 서구와 비교했을 때에 구한말의 모습은 이미 산업혁명을 거쳐가고 있는 서구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선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고 변화를 꾀하였으나 국운은 이미 석양을 맞이하고 있었고 서구과학기술과 문명을 발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은 제국주의의 야심으로 한국을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이때 조선에 있어서의 과학기술이란 고명한 과학발전을 위한 수입이 아니라 식민지의 근대화란 명분으로 자행된 수탈과 착취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이 시기에 서구의 과학은 뉴턴의 고전역학을 넘어서 극대세계를 다루는 상대성 이론과 극소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이 태동되며 철학적인 수준의 개념과 가치를 재검토하는 고매하고도 숭고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조선은 증기선에서 내뿜는 대포소리의 위협과 기관차의 경적소리에 아연실색하는 상황에다 적응하기조차 버거운 시기였다. 서구의 과학기술을 주도적으로 따라잡아도 버거운 격차의 시기에 식민지 상황에서의 폭력적인 과학기술의 도입은 반의 반쪽의 과학기술에 불과함이라는 상황에 더해 왜곡된 근대화의 식민지 가치의 수입에 불과했다.

이런 점에서 정인경 선생의 저술인 [뉴턴의 무정한 세계]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뉴턴의 고전역학을 비롯한 서구과학은 이후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나 과학과는 별 인연이 없었던 한국은 제국주의의 광풍에 휩쓸려 무정하고도 비정한 상태에 처해졌다. 해방이 되었으나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그야말로 폐허와 무의 상태에서 지금까지 성장해 온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표현대로 대단하고 자랑스러운 면이 크다. 그러나 관성의 힘은 강하고 오래 간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21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에도 과거의 유산이 오히려 짐이 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정인경 선생은 이 시점에서 늦었지만 우리의 현재 위치를 다시 성찰해보자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정인경 선생의 [과학을 읽다]가 크게 인문과 과학이라는 양갈래에서 따로 또 같이 바라보는 학제적 성격의 과학인문 에세이라면,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구한말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이해가 태부족인 상태에서 폭력적으로 수입된 한국의 상황을 다룬 과학역사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의 발견과 발명은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의 소산이기도 하지만 여러 학문과의 소통과 대화이자 역사문명의 진화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 더하여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는 미덕이 깃들어 있다는 점에서 [과학을 읽다]와 [뉴턴의 무정한 세계]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다.

[뉴턴의 무정한 세계]의 초반에 서술된 구한말의 과학적 이해에 대한 상황을 보자면 코믹할 정도로 어이없던 상황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ICT분야에서는 애플이나 인텔에 비교해서도 꿀리지 않을 발전을 이루었다고 할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여전히 소프트웨어에 비해 하드웨어에 치중한 기술, 더 나아가 응용기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초과학의 환경과 발전의 과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과학기술에 관한 한 황무지와 백지에 가까운 상태에서 서구 따라잡기와 암기위주의 방식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온 현재의 양적 성과를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기 위한 창의성의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이 시대의 화두일런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뉴턴의 무정한 세계]는 우리가 무엇을 취했고 무엇을 취하지 못했는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여전히 과거의 관성과 계산의 이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재에서 새로운 방향의 한 단초를 이 책에서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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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사하라, 발칸, 아나톨리아 음악기행
신경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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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아무리 멋진 유적들이 즐비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여행지에서는 음악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러 문명이 거쳐갔거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잃지 않은 곳,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섞이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꽃피운 곳, 깊은 음악전통을 품고 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 그리고 어떤 시련도 그들의 흥과 끼를 잠재우지 못할 아프리카의 나머지 지역들도 가보고 싶다.

세상의 끝이란 없다. 쉽게 가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경계가 곧 세상의 끝일 뿐이다.’

- 신경아 저, 문학동네 출간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중에서.

축구에 관심많은 이들은 아마도 기억날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시작해서 21세기가 넘도록 긴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21세기가 넘어서야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이 열린 곳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누가 우승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출신의 케이난이라는 가수가 부른 <Wavin Flag>라는 노래가 경기를 전후해서 티비에서 나오던 기억은 선명하다. 활달한 리듬과 긍정과 희망의 가사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월드컵 공식 주제가가 아님에도 내 기억에는 가장 멋진 노래로 남아 있다.

신경아 작가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에서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은 거칠게 보자면 책에서 언급한 대로 ‘세걀라레segalare’라는 단어로도 설명될지도 모른다. 이 단어의 의미는 ‘그저 좋아서 즐기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말리에서 만난 음악인들(혹은 생활인들)의 묘사를 보면서 ‘자유와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의 원류가 그대로 느껴진다. 적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음악은 삶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음악을 위해 먹고 산다기 보다는 악기도 손수 만들고 음악도 하며 먹고 살기 위해 일도 하며 이루어지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음악의 지역적 희귀함과 민속적 원초성과 삶의 건강성은 총체적인 삶의 예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크게 세계의 3군데 지역을 다니며 그곳 원주민들의 삶과 음악을 보여주는데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 모로코 지역을 아우르는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과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지역을 아우르는 발칸 지역, 그리고 터키와 쿠르디스탄이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순회하며 본인이 겪고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세 지역은 모두 넓게는 지중해를 조금씩 접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신 작가는 본인이 얘기한 대로 역마살을 타고 나서 여행을 두루 다닌다고 하지만 세계각지에서 잘 정비되고 문명화되고 몸이 편한 방식의 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관심있는 곳은 그야말로 전통과 민속성이 그대로 살아 남아 있는 곳, 더 나아가서 그곳에서 생활속의 음악, 민속음악을 하는 이들을 만나 라이브로 연주를 들어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취향에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덕성이 요구되는데 사람을 좋아하고 민속성을 좋아하고 잘 곳과 먹거리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오지나 분쟁지역이라는 변수와 선입견을 넘어가야 하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계여행이 예전보다 편해지고 일상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잘 정비된 도시와 자연에서 잘 생긴 문화건물이나 행사를 경험하고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혹은 유명 레스토랑에서의 경험과는 달리 예상치 못할 상황과 경험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여행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반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알바니아에서의 경험도 들려주듯이 세계 각지의 생활음악, 민속음악은 언제까지 그 명맥이 유지될 수나 있을지, 언제 그 흔적들이 사라져 버릴지 알 수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 우리가 팝이나 서구 음악 이외에 조금은 관심있는 포르투갈의 파두나 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통해 많이 알려진 쿠바 음악도 어떤 것은 전성기가 이미 지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음반으로만 남은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사라지는 곳도 있는가 하면 더 생성되거나 유지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서구주류문화가 아닌 한 촉수를 세우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력을 알기 힘들 것이다.

신 작가의 책을 보면서 예전에 잊고 있었던 세네갈의 유수 은두르같은 가수의 이름을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이란의 샤흐람 나제리(Shahram Nazeri)같은 멋진 가수를 알게 되어 기뻤다. 예전이라면 음악얘기를 나누는 책에서 음악을 실제로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을테고 더군다나 민속음악, 월드뮤직을 실제로 접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겠지만 우리에겐 바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튜브가 있고 적지 않은 음악인들의 음반도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국은 타고난 음악성으로 인해 여러 음악 장르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 음악적 그릇에 비해 음악편식은 심한 편이다. 팝을 중심으로 한 서구주류음악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조금 더 하더라도 그 바깥의 음악은 관심밖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국악이라는 위대한 장르가 여전히 살아 있음에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같은 지역특성의 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은 노래방이 각지에서 성업중이지만 실은 가장 오래된 한국의 노래방이 진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남도의 원주민들이 작은 사랑방에 모여 소리를 즐기는 모습은 서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모여 노래하는 모습의 토속성과는 다를지라도 고유성이라는 위대한 가치는 각자 지닌다. 이 고유성과 민속성은 삶의 예술이므로 여기에서 훌륭한 연주자와 지역가수가 나오고 많이 알려지면 월드뮤직의 하나로 알려지기도 한다. 클래식에서 후기낭만파의 대가인 구스타프 말러도 어린 시절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자라며 들은 민속음악, 축제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곡 멜로디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모든 음악은 형태와 지역을 넘나들며 흐르고 흐른다.

신경아 작가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세계 각지의 고유한 음악이라는 토속성을 발굴하고 알리는 생생한 음악 박물지의 성격을 지닌다. 모든 문화는 영원할 수가 없고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그런 흔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혹은 어디에서 아직 살아 있는지 가늠자 역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처럼 세계각지의 숨어 있되 고유하고 매력넘치는 민속음악과 월드뮤직의 발견을 통해 사하라, 발칸, 아나톨리아를 지나 여러 곳을 더 알려주는 전령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신경아 작가의 건강과 장수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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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서 77
마이클 콜린스 외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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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과 총류로 유명한 영국의 DK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서미석 씨가 번역하고 그림씨에서 출판한 <불멸의 서 77 (원제: Books that changed history)>를 보다 보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면서 음미하는 감상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선별하여 72개의 책들과 5개의 시대 분류를 통해 70여개 이상을 추가로 소개함으로써 책의 출판과정과 내용, 형태 등을 시각적,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세계의 여러 협회나 대학, 조직 등에서 동서고금의 고전을 선별하여 정리하거나 발표하고는 하는데 이 책은 여러 역사적 변화와 각 분야의 발전을 촉진시킨 직간접적인 계기를 만든 책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주옥같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만한 도서소개 서적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구술을 적어 옮긴 것부터 책을 다시 옮겨 적은 필사본으로부터 인쇄술의 발달로 대량 인쇄가 가능해진 근대와 수백만종의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은 말 그대로 인류지성의 역사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분류하고 가치를 매기는 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불멸의 서 77>은 동서고금의 책들 중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내용이해가 중요한 것이지 물리적으로 소장하는 것에 별 흥미가 없음에도 이 책은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문, 과학, 예술, 종교 분야의 고전에서부터 우리에겐 소개가 덜 되었거나 생소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뛰어난 책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DK 출판사의 장점을 살려 책의 기원과 저자에 대한 소개가 시대적 분류와 책의 실제 면을 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실린 상당수의 책들은 그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만이 책이 아니라 파피루스, 죽간, 각종 형태 위에 쓰인 여러 글자체와 그림들이 책이 나오던 당시의 상황대로 담겨져 있어 그 책들의 한 페이지만 보는 데도 여러 영감과 상상력이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을 보는 독자라면 여기의 책들은 책 이상, 하나의 훌륭한 작품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DK의 강점이라면 이런 책을 기획한 그 자체일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고전을 선별하고 그 책의 면을 그대로 살려서 큰 도판으로 멋지게 알림으로써 책에 관한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기획과 문화적 역량은 부러운 점이지만 시간과 노력의 장시간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의 기준에 맞게 선별했겠지만 영국의 DK가 우리가 보기엔 어쩔 수 없이 동양 혹은 한국 쪽에 대한 책 소개의 아쉬움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힌두문명에 대한 책들은 나름 소개가 되고 있고 <금강경> 등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긴 하나 초기불교의 심오함과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니까야> 시리즈라든가 우리 정신 문화의 기적적인 사건인 <팔만대장경>은 여기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대단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책을 비롯한 문화유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과제가 놓여져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멸의 서 77>처럼 모범적인 책을 통해 영감과 배움을 얻되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와 선택으로 책을 비롯한 우리 문화유산, 동양 문화유산 더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을 발굴, 선별, 정리하는 안목을 지니는 길이 필요할 것 같다.

급속한 산업화시대에서 한정되고 주어진 입시위주의 공부라는 시선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인류보편문화를 즐기고 배우는 시선에서의 상상력은 새로움과 개선의 문명으로 가는 동인이 될 수 있다. 문화지성의 힘과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 그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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