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서 77
마이클 콜린스 외 지음, 서미석 옮김 / 그림씨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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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과 총류로 유명한 영국의 DK 출판사에서 나온 것을 서미석 씨가 번역하고 그림씨에서 출판한 <불멸의 서 77 (원제: Books that changed history)>를 보다 보면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면서 음미하는 감상의 새로운 차원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절로 든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선별하여 72개의 책들과 5개의 시대 분류를 통해 70여개 이상을 추가로 소개함으로써 책의 출판과정과 내용, 형태 등을 시각적, 입체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세계의 여러 협회나 대학, 조직 등에서 동서고금의 고전을 선별하여 정리하거나 발표하고는 하는데 이 책은 여러 역사적 변화와 각 분야의 발전을 촉진시킨 직간접적인 계기를 만든 책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고 주옥같은, 고전 중의 고전이라 할 만한 도서소개 서적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구술을 적어 옮긴 것부터 책을 다시 옮겨 적은 필사본으로부터 인쇄술의 발달로 대량 인쇄가 가능해진 근대와 수백만종의 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책은 말 그대로 인류지성의 역사일 것이다. 그러나 이를 분류하고 가치를 매기는 일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 <불멸의 서 77>은 동서고금의 책들 중에서 가장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매력적인 책이다.

개인적으로 책은 내용이해가 중요한 것이지 물리적으로 소장하는 것에 별 흥미가 없음에도 이 책은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익히 아는 인문, 과학, 예술, 종교 분야의 고전에서부터 우리에겐 소개가 덜 되었거나 생소하지만 역사적, 문화적 변곡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뛰어난 책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DK 출판사의 장점을 살려 책의 기원과 저자에 대한 소개가 시대적 분류와 책의 실제 면을 사진을 찍은 듯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실린 상당수의 책들은 그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씨만이 책이 아니라 파피루스, 죽간, 각종 형태 위에 쓰인 여러 글자체와 그림들이 책이 나오던 당시의 상황대로 담겨져 있어 그 책들의 한 페이지만 보는 데도 여러 영감과 상상력이 떠오르게 한다. 이 책을 보는 독자라면 여기의 책들은 책 이상, 하나의 훌륭한 작품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DK의 강점이라면 이런 책을 기획한 그 자체일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고전을 선별하고 그 책의 면을 그대로 살려서 큰 도판으로 멋지게 알림으로써 책에 관한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책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기획과 문화적 역량은 부러운 점이지만 시간과 노력의 장시간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시대와 지역을 넘어 보편의 기준에 맞게 선별했겠지만 영국의 DK가 우리가 보기엔 어쩔 수 없이 동양 혹은 한국 쪽에 대한 책 소개의 아쉬움을 느낄지는 모르겠다. 힌두문명에 대한 책들은 나름 소개가 되고 있고 <금강경> 등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긴 하나 초기불교의 심오함과 철학을 그대로 보여주는 <니까야> 시리즈라든가 우리 정신 문화의 기적적인 사건인 <팔만대장경>은 여기에 수록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대단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 그들에 대한 아쉬움보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책을 비롯한 문화유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과제가 놓여져 있는지를 반추하게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멸의 서 77>처럼 모범적인 책을 통해 영감과 배움을 얻되 우리 스스로의 목소리와 선택으로 책을 비롯한 우리 문화유산, 동양 문화유산 더 나아가 세계문화유산을 발굴, 선별, 정리하는 안목을 지니는 길이 필요할 것 같다.

급속한 산업화시대에서 한정되고 주어진 입시위주의 공부라는 시선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인류보편문화를 즐기고 배우는 시선에서의 상상력은 새로움과 개선의 문명으로 가는 동인이 될 수 있다. 문화지성의 힘과 가능성을 믿는 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 그 영감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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