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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소년 세트 - 전4권
유페이윈 지음, 저우젠신 그림, 황선미 외 옮김 / 마르코폴로 / 2024년 6월
평점 :
"한번의 실패는 실패라고 할 수 없고, 가장 큰 실패는 꾸준히 노력할 용기를 잃는 것이란다"
- <대만의 소년> 중에서, 아버지와의 꿈의 대화
(유페이윈 글, 저우젠신 그림, 도서출판 마르코폴로)
대만의 현대사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영화를 통한 이해는 좋은 통로의 역할을 한다.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비정성시>는 명작일 뿐만 아니라 대만이란 이웃나라를 조금 더 알게 되는 계기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들은 제작된지 수십년이 지났기에 영화마니아가 아니라면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인데 이를 보완하고 해소해 줄 또 하나의 작품이 나왔다. 이번에는 만화로.
이 만화의 주인공인 차이쿤린은 1930년에 대만에서 태어나 안타깝게도 작년까지 이 세상을 지내다 간, 말 그대로 대만현대사를 관통하는 인물이다. <대만의 소년>은 1권 독서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일본제국 식민지 시절), 2권 반란누명으로 10년동안 뤼다오 감옥을 지내던 시절 (외성인 중화민국 지도그룹의 대만이동 시절), 3권 소년잡지 <왕자>를 비롯한 출판계 전성기 시절 (반공과 검열의 시절), 4권 후학과 대만 민주화를 위해 활동한 시절 (대만 정권교체기) 등을 다루고 있다.
어린 인물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와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나 논픽션은 여러 것이 있지만 <대만의 소년>은 그 중에서도 모범이라 할 만 하다. 우리가 자세히 몰랐던 2.28 사건이나 백색테러 사건,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던 대만시절 장제스의 반공정책이 차이쿤린의 삶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일제 식민지 시절의 깊은 잔해, 외성인(중국대륙)과 본성인(대만인)의 충돌, 국공내전으로 표현되는 이데올로기의 충돌, 20세기의 끝에 와서야 이루어지는 대만 최초의 정권 교체 등은 묘하게도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겹치는 부분들이 많다. TSMC라는, 대만의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만이 한국의 삼성과 경쟁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조차도 한국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발전을 이뤄왔던 것 같다.
중학생 시절 독서회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반란분자로 찍힌 차이쿤린의 삶은 말 그대로 가장 험난한 시대를 관통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휴머니티는 지닌 채, 포기를 모르며 긍정적 변화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보여준다. 시대를 풍미했던 소년잡지 <왕자>를 비롯한 출판업을 이끌고 재난을 비롯한 큰 고난이 있었음에도 노년에는 정권 교체를 비롯한 민주화 과정의 발언자 역할을 함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차이쿤린보다 한참 어린 유페이윈이라는 여성작가가 저우젠신이라는 만화가와 손잡고 차이쿤린의 삶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한 개인의 삶은 사회와 역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차이쿤린일 것이다.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대만으로 이전한 중화민국이 중국이라는 이름조차 중공에게 빼앗겨 버리고 국제사회에서 소외받는 지경이지만 대만은 여전히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대만에 국립고궁박물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 이안, 차이밍량 같은 영화인에 더하여, 차이쿤린같은 깨어 있는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만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만화이지만 만화 이상의 매력을 보여준 <대만의 소년>을, 늘 시사성과 흥미로움과 쉬지 않는 출판의 열정을 보여주는 도서출판 마르코폴로에서 한국판으로 발간했다. 각 4권을 황선미, 김정은, 권애영, 박은혜 씨가 번역의 수고를 맡았다. 대만어, 중국어, 일어가 섞인 원전을 저우젠신의 매력적인 그림과 무리없이 배치되어 나왔다. 커버를 비롯한 디자인이 만화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뤘다. 대만에서도 한국판을 보면 반갑고 고마워했을 것이다.
한류가 퍼져가고 있지만 넓게 보면 아시아의 정신, 동양의 정신이 포함된 그 무엇일 것이다. 점점 망가지고 있는 중공에게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국가로 더 건강한 중화민국이 건재하길 바란다. 이미 세상을 떠난 대만의 소년도 그 바램을 하늘에서도 잃지 않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