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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사하라, 발칸, 아나톨리아 음악기행
신경아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음악은 사람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아무리 멋진 유적들이 즐비해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여행지에서는 음악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다음 여행지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곳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여러 문명이 거쳐갔거나 식민 지배를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잃지 않은 곳, 다양한 문화권의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섞이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꽃피운 곳, 깊은 음악전통을 품고 있으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곳, 그리고 어떤 시련도 그들의 흥과 끼를 잠재우지 못할 아프리카의 나머지 지역들도 가보고 싶다.
세상의 끝이란 없다. 쉽게 가볼 수 없다는 이유로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경계가 곧 세상의 끝일 뿐이다.’
- 신경아 저, 문학동네 출간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중에서.
축구에 관심많은 이들은 아마도 기억날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 시작해서 21세기가 넘도록 긴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21세기가 넘어서야 아프리카 최초로 월드컵이 열린 곳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이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누가 우승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출신의 케이난이라는 가수가 부른 <Wavin Flag>라는 노래가 경기를 전후해서 티비에서 나오던 기억은 선명하다. 활달한 리듬과 긍정과 희망의 가사로 이루어진 이 노래는 월드컵 공식 주제가가 아님에도 내 기억에는 가장 멋진 노래로 남아 있다.
신경아 작가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에서 아프리카 음악의 특징은 거칠게 보자면 책에서 언급한 대로 ‘세걀라레segalare’라는 단어로도 설명될지도 모른다. 이 단어의 의미는 ‘그저 좋아서 즐기는’ 것에 가깝다고 한다. 말리에서 만난 음악인들(혹은 생활인들)의 묘사를 보면서 ‘자유와 즉흥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즈의 원류가 그대로 느껴진다. 적지 않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음악은 삶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음악이란 음악을 위해 먹고 산다기 보다는 악기도 손수 만들고 음악도 하며 먹고 살기 위해 일도 하며 이루어지는 어떤 것들이다. 이런 음악의 지역적 희귀함과 민속적 원초성과 삶의 건강성은 총체적인 삶의 예술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크게 세계의 3군데 지역을 다니며 그곳 원주민들의 삶과 음악을 보여주는데 말리, 세네갈, 모리타니, 모로코 지역을 아우르는 아프리카 사하라 지역과 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지역을 아우르는 발칸 지역, 그리고 터키와 쿠르디스탄이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을 순회하며 본인이 겪고 체험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 세 지역은 모두 넓게는 지중해를 조금씩 접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신 작가는 본인이 얘기한 대로 역마살을 타고 나서 여행을 두루 다닌다고 하지만 세계각지에서 잘 정비되고 문명화되고 몸이 편한 방식의 여행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녀가 관심있는 곳은 그야말로 전통과 민속성이 그대로 살아 남아 있는 곳, 더 나아가서 그곳에서 생활속의 음악, 민속음악을 하는 이들을 만나 라이브로 연주를 들어보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취향에는 유감스럽게도 많은 덕성이 요구되는데 사람을 좋아하고 민속성을 좋아하고 잘 곳과 먹거리의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오지나 분쟁지역이라는 변수와 선입견을 넘어가야 하는 용기와 열정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계여행이 예전보다 편해지고 일상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잘 정비된 도시와 자연에서 잘 생긴 문화건물이나 행사를 경험하고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혹은 유명 레스토랑에서의 경험과는 달리 예상치 못할 상황과 경험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여행은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반되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녀가 알바니아에서의 경험도 들려주듯이 세계 각지의 생활음악, 민속음악은 언제까지 그 명맥이 유지될 수나 있을지, 언제 그 흔적들이 사라져 버릴지 알 수 없는 곳도 수두룩하다. 우리가 팝이나 서구 음악 이외에 조금은 관심있는 포르투갈의 파두나 브에나비스타소셜클럽을 통해 많이 알려진 쿠바 음악도 어떤 것은 전성기가 이미 지난 것도 있고 어떤 것은 음반으로만 남은 곳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는 사라지는 곳도 있는가 하면 더 생성되거나 유지되는 곳도 있을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서구주류문화가 아닌 한 촉수를 세우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력을 알기 힘들 것이다.
신 작가의 책을 보면서 예전에 잊고 있었던 세네갈의 유수 은두르같은 가수의 이름을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이란의 샤흐람 나제리(Shahram Nazeri)같은 멋진 가수를 알게 되어 기뻤다. 예전이라면 음악얘기를 나누는 책에서 음악을 실제로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을테고 더군다나 민속음악, 월드뮤직을 실제로 접하기가 너무나 어려웠겠지만 우리에겐 바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튜브가 있고 적지 않은 음악인들의 음반도 구할 수 있는 시대이다.
한국은 타고난 음악성으로 인해 여러 음악 장르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그 음악적 그릇에 비해 음악편식은 심한 편이다. 팝을 중심으로 한 서구주류음악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조금 더 하더라도 그 바깥의 음악은 관심밖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국악이라는 위대한 장르가 여전히 살아 있음에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와 같은 지역특성의 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즘은 노래방이 각지에서 성업중이지만 실은 가장 오래된 한국의 노래방이 진도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남도의 원주민들이 작은 사랑방에 모여 소리를 즐기는 모습은 서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이 모여 노래하는 모습의 토속성과는 다를지라도 고유성이라는 위대한 가치는 각자 지닌다. 이 고유성과 민속성은 삶의 예술이므로 여기에서 훌륭한 연주자와 지역가수가 나오고 많이 알려지면 월드뮤직의 하나로 알려지기도 한다. 클래식에서 후기낭만파의 대가인 구스타프 말러도 어린 시절의 보헤미아 지방에서 자라며 들은 민속음악, 축제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곡 멜로디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모든 음악은 형태와 지역을 넘나들며 흐르고 흐른다.
신경아 작가의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은 세계 각지의 고유한 음악이라는 토속성을 발굴하고 알리는 생생한 음악 박물지의 성격을 지닌다. 모든 문화는 영원할 수가 없고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그런 흔적이 어디에 있었는지 혹은 어디에서 아직 살아 있는지 가늠자 역할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가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것처럼 세계각지의 숨어 있되 고유하고 매력넘치는 민속음악과 월드뮤직의 발견을 통해 사하라, 발칸, 아나톨리아를 지나 여러 곳을 더 알려주는 전령사가 되어 주기를 바라며 신경아 작가의 건강과 장수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