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재획정과 구닥다리 정치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월 23일에 20대 총선 선거구 획정에 대한 원칙을 합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면서 지역구 의원수를 현재보다 7명 많은 253명으로 늘리는 대신 비례대표 의원수를 47명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역구의 총수와 각 지역구 경계를 바꾸는 선거구 획정은 1996년 15대 총선 때부터 반복해온 문제이다. 이는 각 지역구간 인구수의 현격한 차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여러 차례 위헌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한 명씩을 선출하는 선거구들 중 어떤 곳은 수 십만 명에 이르는데 반해 어떤 곳은 몇 만 명에 불과해 선거구마다 한 표의 무게가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이에 헌재는 선거구간 최대 인구편차를 1995년에는 4대 1, 2001년에는 3대 1, 2014년에는 2대 1로 낮추라고 판결해왔다. 인구에 비례해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는 원칙을 그동안 정치권이 방치해온 탓에 헌재의 결정은 타당했다.
하지만 여야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는 꼼수를 야합하며 헌법정신을 언제나 그렇듯 다시 조롱하고 있다.
지역주의 온존과 반-정치개혁
지역구를 늘리는 데 여야가 모두 공감한 건 그들이 함께 누리는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헌재 기준대로 선거구간 인구편차를 2대 1로 낮추기 위해서는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끼리를 통합하거나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를 쪼개야한다. 그런데 인구수가 많은 선거구들을 나눌수록 최대 인구수가 내려가므로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선거구 총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 여야가 택한 방법이 바로 이러하다.
이처럼 여야가 인구수가 적은 선거구들의 통합을 피하는 것은 대개 농어촌에 위치하는 이들 선거구들이 자신들의 탄탄한 텃밭이기 때문이다. 이들 농어촌 선거구들이 노회한 국회의원들의 안방이거나 특정 정당 공천만 받으면 누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곳들이 많으니, 통폐합해 그 수를 줄여 제 살을 깎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결국 그놈의 지역주의를 우려먹기 위함이다.
또다른 문제는 지역구 의원수를 늘리려고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인 점이다. 현재와 같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다수 이외의 표심은 민의로 반영이 되지 않을 뿐더러, 사표심리를 야기해 새 정치세력의 진출을 가로막기 때문에 정치개혁의 첫 번째 과제로 꼽혀온 게 비례대표 증가이다. 그런데 선거구 재획정을 틈타 오히려 비례대표를 줄이는 반-개혁을 여야가 함께 단행한 것이다.
같은 뿌리의 여와 야
지역주의 온존, 정치퇴행에 여야가 이해를 같이 하는 건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동일한 지배질서의 두 양상에 불과하다는 증거이다. 지역주의가 온존하는 소선거구제 하에서 선거운동보다 중요한 게 공천이고, 공천과정에서는 당원은 들러리이고 공천권을 장악한 계파 수장이 좌지우지한다. 그리고 계파 수장들은 재벌 및 언론과 결탁하여 제 조직을 관리하고, 이런 계파들이 이합집산하며 정당 행세를 한다. 안철수 신당 역시 이런 구태의 반복에 불과하다. 이러니 국회가 민심보다 몇몇 보스들의 눈치를 살피는데 열심이고, 우두머리들은 과반의 표를 만들어내기 위한 편가르기와 선동, 정치공학에 몰두한다. 몇몇 정치인과 재벌, 언론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그 토대가 지역주의와 소선거구제인 셈이다.
결국 여야가 공히 자신들이 기생하는 토대를 더 굳건히 하는데 이번 선거구 재획정을 이용한 게 한바탕 소동의 본질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이나 구닥다리 지배질서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데에는 한 마음이다. 여와 야의 작은 차이를 과장하며 정권 교체를 위한 비판적 지지니 야권 연대니 하는 게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