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23. 작성


  202631(이란 기준, 한국 시간 32)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우리 삶을 뒤흔들고 있다. 전쟁의 원인을 따라가다 보면, 정치자도자의 선택을 넘어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가 낳은 역설과 제국주의적 경쟁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들을 어찌하오?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에서 비롯됐다는 건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이다. 트럼프가 대표하는 MAGA 프로젝트가 얼핏 해외문제 불개입으로 읽힐 수 있는 미국 우선주의(국내문제 우선)를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마두로 납치와 쿠바 위협, 이란 공격의 최근 연이은 결정들은 자기모순으로 보인다. 상호관세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판결, 그리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계속 낮아지는 지지율 추이 같은 정치적 위기 상황을 일련의 군사적 모험으로 타개하려 한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트럼프 일가가 이란 전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트럼프의 변덕스러운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의 설득이 유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타냐후부터가 뇌물 수수와 배임 혐의로 인한 사법적, 정치적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해왔다는 비판을 받는 정치인이다. 2023년 하마스 전쟁부터 헤즈볼라와의 충돌과 이란 공습에 이르기까지, 폭력을 멈추기보다는 저항의 축을 완전히 부러트린다는 위험한 도박으로 이스라엘을 거칠게 몰아 왔다. 도박에 걸린 판돈에 자신의 사면까지 포함돼있다는 듯이 말이다.


  트럼프가 전 세계에 충격적인 결정을 내리고 고집하는 동안 미국 의회가 어떤 제동도 걸지 못했다는 사실 또한 충격적이었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위태한 민낯이 드러났는데, 얼마 전 계엄 선포를 겪은 한국에서는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장면이다. 국가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복원과 확장이라는 의제가 다시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공이 실패를 부르다


  미국의 중동 개입 역사의 한 축이 이스라엘 건국으로부터 시작한 네 차례의 중동 전쟁과 팔레스타인 문제라면, 다른 한 축은 이란-이라크이다. CIA 공작에 힘입은 친위쿠데타 이후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던 팔레비 왕조가 1979년 호메이니 혁명으로 몰락하면서, 이란은 반서방 이슬람 공화국 체제로 전환되었다. 이를 틈탄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기회주의적 공격으로 1980년부터 8년 동안 이란-이라크 전쟁이 지속됐다.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미국은 겉으로는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비밀히 이란도 지원했는데, 균형 유지를 통해 신뢰할 수 없는 양면을 함께 약화시키려 했던 것 같다. 미국의 의도대로였는지 오랜 전쟁으로 약해진 두 국가가 자신의 취약성에 대응하기 위해 행한 결정들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사담 후세인은 8년 동안 잃어버린 판돈을 한 번에 되찾으려는 듯 다시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아버지 부시에게 패배하고, 12년 후인 2003년에는 아들 부시에게 이라크를 빼앗기고 처형당했다. 후세인이 사라진 이라크에서는 중앙정부가 힘을 잃으며 IS가 준동하고, 시아파 민병대는 독자적인 친이란 세력을 이룬다.


  반면 이라크와의 전쟁 및 혁명 수호 과정과 이어진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서 이란은 사회를 더 옥죄는, 군사화되고 경직된 국가로 변모해왔는데, 경쟁하던 이라크가 부시 부자에 의해 붕괴된 공간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적대하는 이슬람주의 세력의 중심이 되었다. 이란으로부터 시작해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 지금은 몰락한 시리아 아사드 정권,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으로 이어지는 저항의 축이 형성됐다.


  저항의 축이 견고해지고 이스라엘이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 상시 분쟁을 겪으면서, 이와 같은 이란발 안보 위기를 이란을 직접 타격함으로써 최종 종식시킨다는 게 이스라엘의 전략이 되었다. 한편 미국은 불량 국가가 튀어 오르면 이스라엘을 앞세우거나 직접 나서서 두드린다는 해묵은 습관을 이번에 다시 꺼내든 셈인데, 지난 역사에서 보듯이 미국의 개입은 단기적으로 성공할지라도 결국은 새로운 적들과 저항에 부딪쳐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기적 성공조차 거두지 못할 것 같다.

 

제국주의 전쟁


  미국은 왜 중동에 개입해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전통적인 답변은 보통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스라엘 로비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네타냐후와 트럼프의 오래된 친교가 암시하듯 이스라엘과 미국내 유대인 사회의 미국 정가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비설을 음모론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게 국제정치학 내에서도 다양한 해석과 논쟁이 이루어져 온 주제이며, 국제정치이론 중 공격적 현실주의의 대가인 미어샤이머 교수가 공저한 <이스라엘 로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된 연구 중 하나다.

  

  다른 설명은 미국의 석유 통제 야망이다. 석유는 현대 경제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플라스틱과 비료의 원료이다. 저렴한 석유는 경제성장에 필수이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친서방 중동 왕정국가들이 달러로만 석유를 팔고, 벌어든 달러로 미국 금융시장에 투자하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이 미국 패권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라크 점령과 이란 제제는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유지와 확장이라는 목적에 논리적으로 부합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경제가 탈제조화·금융화되고, 셰일혁명에 힘입어 에너지 생산이 증가하면서 중동 석유의 중요성이 감소한 까닭에 이란 전쟁은 석유 통제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반박하면서 더 포괄적인 관점이 있는데, 제재를 우회하여 중국으로 값싸게 팔려나가는 베네수엘라와 이란의 석유를 미국이 통제할 수 있을 경우 중국의 에너지 수입망을 손에 쥐고 압박할 수 있다는 기회에 주목한다.


  트럼프의 최근 일련의 군사 행동을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맥락으로 읽다 보면 불안한 미래로 이어진다.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관세와 공급망 분리에 이어 군사력 사용으로까지 수단을 넓혀가고 있다. 상대가 우위를 점하는 지역으로 침투하고 세력권을 넓히려는 패권 경쟁이 혈투로 번질 가능성은 상존한다. 그곳은 대만이 될 수도, 한반도가 될 수도 있다.


  레닌은 제1차 세계대전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식민지와 금융자본의 세력권을 분할·재분할하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했었다. 제국주의는 자본 가운데서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금융자본(금융을 매개로 산업자본이 결합하여 독과점적 지위에 도달한 자본 형태를 말한다)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팽창적·군사적 국가체제이다. 그래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자본을 멈추고 조국을 뒤엎으라고 했다. 이러한 접근법이 현재에도 유효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단일 패권이 저물고 경쟁하는 강대국들이 충돌하는 지금의 세계는, 과거의 제국주의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불안을 남긴다. 이 불안과 혼란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보려 할 때, 몇 권의 책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박노자의 <전쟁 이후의 세계>, 존 리즈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니콜라이 부하린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그리고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 같은 책들이다. 이 책들이 당장의 답을 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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