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Wanted 에 대한 상당량의 스포일러 포함

1. 뒤늦게 졸리 언니(-_-*)가 나오는 Wanted 를 봤다. 전체적인 감상은 근래 본 구라(ㅋㅋ) 중 최고! 전체적인 짜임새야 그저 그런 편인데, 말도 안 되는 액션 신들 덕에 즐겁게 감상했다. 생각보다는 좀 잔인했지만.

2. 잡담, 이라고 글까지 쓰게 된 건, 극 중에 나오는 비밀 암살 집단 Faternity 때문이다. 설정 상 Faternity 는 직물(fabric)에 나타나는 코드를 해독해 그 리스트에 오른 사람을 암살하는 신비주의적 비밀 집단이다. 이 때 직물상의 코드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Faternity 는 리스트를 만드는 것은 운명이고 자신들은 그것을 해독하고 실행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정당성을 일종의 신적인 권능에 기대어 설명하는 셈이다. 이거.. 재밌다.

3. Faternity 는 자신들이 암살을 통해 세상의 균형을 지켜왔다고 말한다. 중요한건, 누구를 죽여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에 대해서 Faternity 자신은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이렇게 스스로를 기계적 도구로 격하함으로써 Faternity 는 모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비난을 하려면 의지 없는 우리가 아니라 운명이라는 절대 의지를 비난하라. 이 절대 의지에 맞설 자신 없으면? 그냥 죽어야지 뭐.

4. 뭐라 변명을 하든 암살은 폭력이고, 타인의 생명을 일방적으로 좌지우지하는 절대적 권력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실제로는 사형제도도 이와 별반 다를건 없다. 영화에서 '운명'이라 불리우는 신적 권능이 암살의 정당성을 보증한 반면, 현실에서는 법의 권능으로 사형의 정당성이 보증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신의 권능은 증명이 불가능하고, 법의 권위는 인간이 만든 또 다른 피조물에 불과하다. 저만한 폭력적 권력을 위임할만한 정당한 권위라는게 과연 가능하긴 한건가?

5. 신의 권능과 법의 권능이 공통으로 전제하는 것은 탈인격이다. 인간적이라 불릴 수 있는 약점, 이해 당사자로서의 편향을 배제함으로써 권위를 인정받으려 하는 것이다. 이건 상당히 흥미로운 시도다. 어슐러 르귄의 <빼앗긴 자들>에 상당히 재밌는 사례가 나오는데, 무정부주의 사회인 아나레스에서는 대부분의 의사 결정을 컴퓨터에 맡겨 버린다. 예컨데 사람들이 기피하는 수은 광산에 누굴 보낼 것인가 등의 문제를 컴퓨터가 임의로 추첨하도록 해 놓은 것. 사회가 복잡해면서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의사결정의 문제가 권력 기구의 형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탈인격적 장치인 컴퓨터를 이용하는 것이다. 권력 자체를 부정하는 아나키즘 사회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과연 이렇게 밖에 권력의 문제를 피해갈 방법이 없는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신적 권위에 기대는건 더욱 더 답이 아니고.

 

 

 

 


6. 권위의 정당성을 떠나서, 또 하나 주목할 건 그 권위의 대행자를 자처하는 이들이다. 중세의 사제들이 그랬고, 오늘날의 지식인이 그렇다. 이들의 힘은 해석의 독점에 있다. 겉으로는 신을 내세우고 법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이 해석하는 권력이야 말로 그 권위에 숨은 음지가 된다. 운명을 내세우며 암살을 자행하는 Faternity를 보며, 준법을 내세우며 방패와 곤봉을 휘두르는 경찰을 떠올리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법치를 강조하는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7. 액션 영화 하나 보고 잡생각이 너무 많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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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8-09-03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잡생각 원츄에요! 가끔 잭팟(?)을 터트려 준다니까요. ^^

turnleft 2008-09-04 02:34   좋아요 0 | URL
흐흐.. 넘버링의 달인(?) 마노아님을 본받아, 다음에는 10까지 채우도록 하지요 :)

가시장미 2008-09-10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렇게 드라이한 영화리뷰는 처음이에요 ㅋㅋㅋ 근데 너무 와닿네요. 턴형 너무 똑똑한 거 아니에요? 멋져부려~!! ^^

turnleft 2008-09-11 03:17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단 잡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