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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체'와 '섹스'라는 단어를 접하고 '성에'라는 제목의 김형경씨의 소설은 나에게 왔다.
나는 이 소설에 대해 크게 2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죽음에 가까운, 죽음에 이르는 '에로티즘'에 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동물의 보편적인 원리인 '종족보존'으로 이야기하는 쓰기 방법에 관한 것이다.
97년 조르주 바타이유(당시표기-죠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이라는 책을 읽었을 땐 나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은밀했고 화두로 꺼내기 두려운 단어인 에로티즘, 싸드, 금기에 대한 얘기였다. 이 책에서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고 했고 성욕과 살해욕의 관계, 에로티즘과 죽음과의 관계를 절실히 드러내었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장정일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를 읽게 되었고 책 속 단편 중 「제7일」에서 섹스에 탐닉하다 못해 서로를 죽이게 되는 주인공들을 보았다.(장정일은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을 보고 썼다고 한다)
이렇듯 에로티즘은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에로티즘의 극단에는 사디즘, 마조히즘이 살아있으며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서로 죽일수도 있을 것 같다. <성에>에서처럼 시체 옆에서 서로의 육체에 대한 탐닉이 시작되었다면 끝간데까지 갈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 낸 저자가 대단하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시체들의 상황 또한 범상치 않게 그려 놓았다.
이쯤에서 두번째 화두인 '종족보존'으로 넘어가자. 3명의 인간과 4가지 자연물은 종족보존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표명한다. 그러면서 일부일처제의 현실불가능성을 이야기하고 또한 피할 수 없는 종족보존의 원리에 의한 뿌리찾기를 시도한다.
2인 3각을 하듯 아슬아슬하지만 공평한 성적 분배를 하는 여인, 한쪽에서 독차지 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두 남자,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는 참나무, 박새, 청설모, 바람의 시선,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적당히 버무려 놓았다. 인간만이 시행하는 일부일처제에 대하여, 바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종족보존의 희구... 작자는 생물학적 지식을 동원하여 동물들의 짝짓기를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결국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고 2인 3각 플레이는 결국 깨져버리고 만다. 적절히 융화되어가던 성의 공평한 분배는 없어져 버리고 종국엔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정이란 일부일처제에 의한 자기 자식의 확인이요, 뿌리찾기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어긋난 에로티즘은 죽음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작가는 에로티즘을 끝간데까지 몰아가지 않는다. 두 남녀 주인공의 환상으로만 남겨둔다. 에로티즘으로의, 성에로의 환상을 가진 채 남녀는 서로의 삶을 살게 되고 이것이 우리의 한계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p. s. 김형경이라는 작가를 새로 알게 되었고 다른 작품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기회가 되면 김형경의 다른 작품도 읽게 되는 날이 있겠지. 나는 작품해설을 잘 읽지 않는다. 이 리뷰를 쓰고 나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에 대하여 쓰고 있다. 바타이유는 에로티즘의 고전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