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브로크백 마운틴
애니 프루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은 불 앞에서 오랫동안 그렇게 서 있었다.
타오르는 모닥불은 붉은빛을 흔들며 둘의 그림자를 하나의 기둥으로 바위에 드리웠다.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것은 에니스의 주머니에 있는 회중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와 숯으로
변해가는 장작의 탁탁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모닥불 위에서 아른대는 아지랑이 사이로 별이 반짝였다. 에니스의 숨결이 느리고 고요하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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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른한 포옹은 떨어져 있는 그들의 고된 삶에서 유일하게 솔직하고 즐거운 행복의 순간으로 그의 기억속에 굳어졌다. 그 무엇도 에니스가 그때 자신이 안고 있는 사람이 잭이라는 사실을 보고 싶지도 느끼고 싶지도 않아서 마주보고 안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상은 더 얻을 수 없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대로 두라, 그대로 두라.
 
옷장이라고 해봤자 얕게 움푹 들어간 곳에 나무 막대를 가로로 걸고서 크레톤 커튼을 매달아 방으로부터 분리해둔 것뿐이었다. 옷장 안에는 주름 잡아 다림질하여 철사 옷걸이에 말끔히 걸어둔 청바지 두벌이 있었고, 바닥에는 에니스도 기억하고 있는 닳아빠진 부츠가 있었다.

윗쪽 끝으로 벽에 조금 들어간 틈이 있어 비밀스러운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여기, 셔츠 한장이 못에 길게 걸려 있었다. 그는 셔츠를 못에서 내렸다. 브로크백 시절 잭의 낡은 셔츠였다.

중략 -----

      셔츠가 어쩐지 묵직했다. 그때 에니스는 잭의 셔츠 안에 셔츠가 하나 더 있음을 알았다. 잭의 소매안에 조심스레 끼워져 있던 또 다른 소매는 에니스의 체크무늬 셔츠였다. 오래전에 빌어먹을 어느 세탁소에서 잃어버렸겠거니 생각했던, 주머니는 뜯겨져 나가고 단추는 떨어진 더러운 셔츠, 잭의 셔츠와 그가 몰래 가져가 여기 그 셔츠 안에 숨겨둔 에니스의 셔츠가 두겹의 피부처럼 한 쌍으로, 한셔츠가 다른 셔츠속에 안긴채 둘이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옷에 얼굴을 누르고 입과 코로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연기와 산 깨꽃과 잭의 땀냄새를 기대했으나, 잔존하는 냄새는 더 이상 없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그 기억, 이제 손에 들고 있는 것 말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음속의 브로그백 산뿐이었다.

- 애니푸르의 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중에서 -

****

그녀의 소설적 배경이 되고 있는 곳은... 시골이다. 미국의 시골...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작가를 궂이 찾으라한다면 아마 공선옥 같은 이가 어딘가 비슷할 꼴을 하고 있지 않을까? 굳이 아니라면 할 수 없고.

사실을 말하자면, 애니푸르의 이번 단편집에서 유일하게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브로크백 마운틴" 뿐이었다.

영상을 통해 먼저 받은 이미지의 조작 같은 것이 작용한 측면도 있었겠지만 잘 짜여진 털 스웨터처럼 촘촘하게 묘사해 놓은 브로크백 마운틴은 잭에 대한 에니스의 그리움을 충분히... 넘치도록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소설속 주인공들 대부분이 미국 남자들이고, 마초적인 카우보이라 그런지 책 내용안으로 들어서는게 쉽지 않다.

작가가 여성이라고 반드시 주인공이 여성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가끔 남성작가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울때 불편하게 읽힐때가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여성작가가 묘사하는 남자중인공에 대해 남자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좀 궁금하기도 하다. 어쩌면 나처럼 좀 복잡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브로크백 마운틴" 단편안에 들어 있는 배경은 시골이고, 주인공들은 카우보이 이거나 말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가끔 트럭 운전사-이것도 말의 일종이겠지!)이거나 마초들이다.  그리고 그는 물론 그의가족, 이웃들은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는 변변치 않고 별것 아닌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어느가족의 이력서"의 주인공 '리랜드 리'의 일생은 그런 피곤하고 지긋지긋한 삶의 결정체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듯, 미국 밖의 미국은 뉴욕처럼 화려하거나, 총처럼 무섭거나, 미대륙 같이 거대하거나, 부쉬처럼 허풍쟁이거나...그런데 이 소설속 처럼 미국 속의 미국은 외로워 미치거나, 공허하게 날리는 사막의 모래 바람 같거나, 겁에 질려 있거나, 하다. 
애니푸르는 애초에 아메리카 드림 같은것은 꿈도 꾸지 말라고 쐬기를 박아 놓고 있는것 같다.<아름다운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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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대디, 플라이 더 좀비스 시리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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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가네시로 가즈키

 
1968년생 조총련계 부모를 둔 제일교포2세 작가다

요즘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일본 소설 작가들을 배출하고 있는 <나오키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솔직히 일본 문학계에서 <나오키문학상>이 가지고 있는 권위라든가, 지명도는 잘 모르겠지만... 요즘 출판계에서는 알수없는 일본문학 바람이 일고 있고, 거기에는 어김없이<나오키문학상>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곤 하다.

나처럼 이렇다할 상 한번 제대로 받아본적 없는 독자들에게는 ... 무슨 무슨  수상작 이니 하는 타이틀은 솔직히 굉장한 유혹이다. 마치 엄청 작품성이 있어  보이는  듯한 뉘앙스가 겁대가리 없이 풍긴단 말이다.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으나, 그 나오키문학상인가 하는 것이  일본 대중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인듯 싶다. 즉, 나름의 작품성과 대중적 지지를 받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일종의 문학계의 인기상 같은 것 아닌가?

어쨌든, 일본은 참 많은 면에서 우리에 비해 한수 위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대중소설을 허접한 하위문화로  취급하면서 문학의 장르에서 집단 이지메를 시키고 있을때, 일본의 경우 대중문학이라는 고유의 영역을 확보해 주고 힘을 실어 줌으로 문학의 건강성을 잃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어짜피 문학은 고사하고 문장 자체를 읽는 것도 고달파 하는 작금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중문학을 그저 쓰레기 취급하며 방치만 할 것이 아니라,  순수문학도 대중문학에게 좀더 넉넉한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잠깐 생각해 봤다.

아..!.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와 <스피드>소개를 한다는것이 잠깐 옆길로 샜다. <아름다운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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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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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바람의 그림자

La Sombra del Viento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Carlos Ruiz Zafon


1권

잊혀진 책들의 묘지

잿빛 나날들 1945~1947

별 볼일 없는 일 1950

대단한 인물 1951

그림자의 도시 1952~1954

2권

그림자의 도시 1952~1954


바람의 그림자 1955

사후 1955년 11월27일


3월의 강물 1956


등장인물 1966


-낭 독-


거의 반시간 동안을 나는 낡은 종이와 먼지 그리고 매혹의 냄새를 풍기는 그 미로 사이를 돌아다녔다. 나는 내손이 책을 고르며 밖으로 드러나 서적의 등을 스치고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세월에 의해 희미하게 지워진 제목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된 단어들과 이해할  수 없는 수십가지 언어로 된 단어들과 이해 할 수 없는 수십가지 언어들로 된 단어들을 흝어보았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에 대해 아는 것보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것 같은 수백 수천권의 책들이 나선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회랑과 복도를 돌아다녔다. 잠시 후 그 책들 각권의 겉표지 뒤에는 탐험자를 기다리는 무한한 우주가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벽너머에서는 사람들이-눈에 보이는 쉽고 하찮은 것들에만 만족해서-오후에 축구를 하거나 라디오 연속극을 들으며 삶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아마도 우연 또는 우연의 잘 차려입은 친척인 운명이었겠지만, 바로 그때 나는 내가 양자로 들일 책이 이미 선택되어져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나를 입양할 책이라고 말해야 하리라.
그 책은 어느 책장 맨끝에서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는데, 포도주 빛 가죽으로 제본되어 높은 곳으로부터 원형 지붕으로 새어 나도는 빛에 반짝이는 금장 제목을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손가락 끝으로 그 제목을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읽었다.
-잊혀지 책들의 묘지 중에서-


비밀의 가치는 그 비밀이 지켜져야만 하는 사람들의 가치에 달려 있다.
어릴적 꿈은 변덕스럽고 미덥지 못한 연인 같은 것이다.
- 잿빛 나날들 1945~1949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버지는 그 거짓말들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 같았다.
계획적으로 아버지께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이 나를 좀 힘들게 했고 오전 무렵에 아버지가 일이 있어 잠시 나갔을 때 그런걸 페르민에게 이야기했다.
"다니엘, 부자관계는 수천개의 작은 선의의 거짓말의 토대위에 존재하는 거야. 동방박사 세사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 또 다른 많은 예들이 있지. 이건 그런 것들중의 하나야. 죄의식 갖지 말라구."
-그림자의 도시 1952~1954

 
*****

 

'바람의 그림자'는 1945년 새벽 11살 소년이었던 다니엘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잊혀진 책들의 묘지'라는 기묘한 이름의 헌책방을 방문하고 그곳에서 '훌리안 카락스'의 '바람의 그림자'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1966년 새벽 다니엘이 10살 남짓한 아들의 손을 잡고 '잊혀진 책들의 묘지'로 향하면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지적인 추리물은 그 내용이 담고 있는 방대한 양의 지식과 큐브 같은 복잡함을 가지고 있음에도 엉킨 실의 한쪽 끝은 잡고 나머지 한쪽 끝에 숨어 있는 해답을 찾아 나서는 매력이 있다.

솔직히, '장미의 이름' 만큼 지적이고 정교하고 문학적인 추리물을 다시 만나긴 힘들겠지만, '바람의 그림자' 는 '장미의 이름'에 이미 중독된 독서가들의 흥미를 끌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내가 '바람의 그림자'에 매료된 배경에는 추리물 특유의 흥미로움도 있겠지만, '거의 반시간 동안...' 으로 시작하여 '... 제목을 쓰다듬으며 소리 없이 읽었다'로 끝을 맺는 우아하게 빚어낸 저 문장에 뻑이 갔기 때문이다.

종이냄새와 먼지입자가 아무렇게나 뒤엉킨 서점에서 이전엔 알지 못했으나 그날 내 눈과 마주침으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는 무명의 책... 아직 내게 읽히지 않음으로 무명의 책이라 이름 갖은 지식과의 설레이는 첫인사를 "입양"에 비유한 이 책을 덜컥, "입양"해 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빠져들게 했던 매력적인 인물....어떤 주제에서든 지지고, 볶고, 튀겨내어 맛나고 풍성하게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지닌 명랑스런 페르민아저씨.

주책스런 박식함과 허풍스럽지만 천박하지 않은 입담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인물이라고 해야하나....그런 친구가 한명쯤 옆에 있다면 꽤나 다이너믹한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내가 열흘간 머물렀던, 바르셀로나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꿈틀대던 기괴한 형태의 아우디 건축이 이 도시를 이루는 전부 같았다고 생각했는데...

다니엘이 거닐던 새벽의 람블라스 거리와 음습하지만 아름다웠던 고딕거리 뒷골목을 걸으며 어느덧, 내 기억도 더듬어 그곳을 따라 가고 있다. <아름다운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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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연인
권현숙 지음 / 민음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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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루마니아의연인
지은이 : 권현숙
출판사 : 민음사
분류 ; 문학

사랑은 언제나 위대하다. 특히, 고난받고 박해받는 사랑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순결함으로 인해 더욱더 위대하다. 작가 권현숙의 소설에는 언제나 그런 위대한 사랑이 주제다. 그것도 고난받고, 박해받는... 그래서 그녀의 소설에는 고통스럽지만 강인한 사랑이 있다.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절박함으로 강해진다고.

그녀의 첫 장편 <인샬라>에서는 남한의 유학생과 북한 장교가 먼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만나 운명 같은 사랑을 했다.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거칠고 목마른, 그러나 오아시스처럼 불가항력적인.
<인샬라>에서는 가로막힌 체제에 의해 쉽게 만날 수 없는 남과 북의 연인들이 먼 알제리까지 가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녀의 2번째 장편 <루마니아의 연인>에서는 이국 루마니아 처녀와 북한청년이 40년을 뛰어넘어 긴 겨울밤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

1952년 이미 반쪽인 된 한반도는 전쟁의 상처로 인해 사회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과 살길이 막막해진 부녀자들이었다. 이때 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사상적 형제애를 발휘하여 이북의 어린 고아들을 대거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들 나라중 루마니아의 이름도 섞여 있었다. <루마니아의 연인>은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아름답지만, 애타는 연인들의 얘기이다.

루마니아 조선인 학교로 발령을 받게된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루마니아의 아가씨 마리아 에네스쿠와 조선인 학교 책임자 김명준은 그곳에서 조심스런 사랑을 시작하게 되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어렵게 각자의 조국으로부터 결혼허락을 받아낸다.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까지는 5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뒤 헤어져 산 40년의 세월에 비하면 그 시간은 무더운 여름 단 잠 같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에필로그. 그들은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해 얼굴은 이미 늙었지만, 20대 청춘 같은 설레임으로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 제도, 사상의 힘도 어쩌지 못할 만큼 운명은 거역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나보다 하는 것을 실존하는 두 주인공을 통해 뼈아프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문득, 어느 햇빛 따스한 날 루마니아의 공원 벤치 한켠에 앉아 망중한을 보내고 있을 그들을 상상한다. <아름다운황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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