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으로의 여행( 1997년 10.22 )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해야할 일은 짐찾기. 그리고 입국 심사. 듣기로는 영국의 입국심사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는데... 무사히 통과했다.  

one day pass를 끊고 숙소를 정하러 출발했다.  

내가 찾아간 숙소는 한인들이 묵고 있는 일명 victoria house. 장기 투숙객들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있어서 그런지 첫 이미지는 그리 좋은편은 아니었다.

나는 영국이 왜 음침하다는 소리를 듣는지 알 수 있었다.  

영국날씨는 상당히 우중충하고 비는 여우처럼 왔다.  

거리는 오래된 건물로 둘러싸여져 있고...  

그러니 음침하고 으슥할 수 밖에. 영국 지하철은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  

100년이 넘는 지하도라 그런지 고풍스러움을 간직했지만 상당히 지저분했다.  

이들은 옛 것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한 것처럼 보인다.  

건물의 외형은 변형시키지 않고 내부만을 보수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외부와의 조화를 위해 건물 하나 하나에도 신경을 쓰는군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돌아보면 옛 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은 들지만 생활하기에는 오히려  

더욱 불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영국인들이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하며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측면을 이런 모습에서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  

영국보다는 미개발된 부분이 많고 상승욕구가 강한 한국이 오히려 발전 가능성이 더욱 많은 듯 

 보였다.  

영국이란 곳이 존재하는 것을 보존하는 차원이라면 한국이란 곳은 미개척되고 부족한 부분들을  

더욱 손질하고 발전시키는 차원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가능성이란 비중을 한국에 더욱 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은 웨스턴 민스턴 사원이였다.  

유럽 문화가 카톨릭의 문화를 배제하고서는 설명할 수 없듯이 이곳은 중세의 카톨릭적 기풍이  

묻어나는 곳이였다.  

오히려 너무 낯설고 크다보니 지루하기까지 했다.  

밖으로 나와 빅밴과 국회의사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을 거쳐 우리가 찾아간 곳은 비둘기와 사람들이 어우러진 트라팔가 광장이였다.  

이곳은 19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곳으로 트라팔가 해전에서 전사한 넬슨 제독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다.  

오늘 하루도 저물어간다. 숙소로 돌아와 깊은 잠에 빠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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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속 출국 (1997년도 여행)

김포공항 새벽6:50에 도착했다.  

두근두근 긴장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낯설고 긴장된다.  

7gate 검사실, 세관 그리고 탑승을 했다.

09:20출발에 출발했다.  

싱가포르까지 5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기내에서10:30에 샌드위치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점심에는 불고기로 나의 배를 채웠다.  

개인 의자마다 스크린이 있어 영화 삼매경에 빠졌다.  

한국시간으로 15:30에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시차로 인해 1시간을 늦쳤다.

싱가포르 항공사의 서비스차원에서 기다리는 동안 싱가폴city tour를 시켜주었다.  

싱가포르는 20%가 중국계 60%가 말레이시아계 그리고 20%가 인도계와 토착민들이라 한다.  

싱가포르이라는 나라의 건물들을 보면 여러 나라의 건축양식을 본떠 만든 듯 하다.  

거리 곳곳이 인위적으로 짜맞춘 듯한 첫인상을 주었다.  

그리고 너무 단조롭다라는 생각. 하지만 이 곳의 changhi공항은 다중적 편의 공간으로 이용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환승하려면 아직도 5시간이 남았다.  

뭘 하지.. 캐나다인 calvin이란 친구를 만났다.  

이 친구는 나에게 영어 실력이 나날이 죽어가고 있구나라는 한탄과 영어에 대한 공부 의지를 더욱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한국에서 business를 하고 있다 한다.  

한국어 배우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나......  

싱가포르 $를 미리 준비하지 않아 음식을 사먹는데 DM로 지불했다.  

수수료가 1000정도였다.  

그런데 음식이 맛있으면 괜찮은데 음식까지 엉망이니 수수료 값이 괜히 더 아까운 게 아닌가!

20:00. 아직도 2시간 정도가 남았다.  

오늘 하루는 모든 일이 긴장의 연속이다.  

환승하는 방법에 대한 걱정, 음식 사 먹는 걱정, 돈 쓰는 걱정...... .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몸이 불편한 영국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할머니는 나의 선물에 너무 감사하며 그가 살아온 이야기와 남북문제에 관해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또한 나에게 주소를 적어주며 편지를 쓰라고 말씀하셨다.

드디어 탑승.  

비행기 탑승 후 10시간이 넘게 하늘을 날고 있다.  

기내에서는 끊임없이 먹을 것을 주었다.  

배가 쉴 시간은 전혀 없었다.  

유럽에서의 1달은 이렇게 기름지고 푸짐한 음식을 구경하긴 힘들겠지 하는 생각으로 음식들을  

많이 먹어치웠다.  

유럽배낭여행의 반을 좌우할 런던.  

도착시간은 42분밖에 남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시차를 느끼지 못하겠다.  

비행기에 지나칠 정도로 오래 자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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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없이 많은 말들 중에는 의미 없이 내뱉는 소리가 있다.  

의미 없다는 것은 하찮은 존재로 삶을 마감한다는 뜻일 수 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가면 그런 의미 없던 말도 왜 이리 가슴 속에 남아 있는지…  


내 자신 스스로 내가 의미 있는 존재라고 자위하지만 문뜩 생각해 보면 도대체 의미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이 세상에 존재하면서 어떤 것은 의미를 부여 받지 못하고 어떤 것은 의미 있고 …  

그 기준도 결국 인간이 정의 내리고 자신들 스스로 만족하는 것은 아닌가?

난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아 내 자신을 찾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마음은 먼 곳을 향해 있지만 나의 몸체는 의자와 하나의 물건이 되어 이 곳에 앉아 있다.  

지친 심신을 지친 상태로 방치해 두고 지친 심신이 그냥 그것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를 이곳에 던지고 앉아 있군아. 
 

나에겐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어떤 것이 의미 없는 것일까?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보아도 난 이런 생각들 속에 답을 찾지 못하는 거리의 거렁뱅이인 것 같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나를 시험하게 한다. 지금 또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 중의 일부분일  

것이고 이 여행속에 나는 그냥 이대로 지쳐 쓰러질 수도 있겠군아.

지금 그 자리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안도감과 편안함을 줄 것이다. 

 또한 그게 행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왜 자꾸 가쁜 숨을 들이 쉬고 이렇게 힘들게 살려 하는지 모르겠다.  

나 또한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인생인가?  

인생은 살고 죽음의 이분법칙이 존재하지만 그곳에는 두 개의 말로 표현 되지 않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다.  

삶과 죽음의 term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살아갈 것인가?  


한 번의 삶과 죽음 앞에 나는 숙연함보다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싶다.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 나는 무엇을 시작하고 무엇을 끝맺으려 하는가?  

가느다란 비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참 우수운 일이다.  

비가 보기에 나는 정말 보잘 것 없는, 의미 없는 존재일텐데 자신이 이 세상의 주인인양 폼을  

내는게 얼마나 웃긴가?

떠나자! 어디론가 떠나자!  


숨이 머질 때까지 떠나자. 그리고 달리자.  


그런 의문들이 잊혀질 때까지 떠나자. 그리고 소리지르자.  


내가 있는 이 자리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 돌아 오지 말자.  


눈물이 저절로 내 옷깃을 적실 때까지 가슴에 맺힌 땀방울이 다른 사람들의 가슴을 적실 때까지  

돌아 오지 말자.  


떠나자! 지나한 하루를 시작과 끝으로 나누지 말고 모든게 시작이고 끝이 되도록…  


숨 쉬며 그냥 생각하자.  


바라보고 있는 것이 행복이라 생각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말고 먼 곳을 바라보자.  


눈물 나도록 사랑하자. 그리고 세상을 원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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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굉장히 무식했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독서라는 습관이 없었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왜냐면 초등학교때는 밖에서 노는데 시간을 보냈고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독서를 게을리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는 굉장히 좁았다. 그리고 아는게 없다보니 무식했다.  

단지 교과서와 문제집에 나오는 답만 외우고 있었고 그 외운 답이 이 세상의 정답인 듯 생각했다.  


대학은 나에게 다양한 서적을 선물해 줬다.  

그리고 대학은 나에게 방황이란 시간을 선물해 줬다.  

방황은 나에게 책에 대한 애정을 갖게한 시간이였다.  


대학 1학년 때 수업에 빠지면서 벤치에 앉아 읽고 싶었던 책을 독파했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만드는 보물 창고였다.  

수업이 있어도 들어가지 않고 책에 빠져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등록금이 아까운지도 모르고 그냥 대학생활의 실망감을 책과 보냈다.  

모르겠다. 그 시절 읽었던 책들을 나열할 수도 없고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그 책들 속에 녹아 있는 감성이나 이성의 편린들이 아직도 나의 몸 속에 남아 있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책 속의 교훈들이 나의 삶의 지탱해 줬다.  


방황의 시작은 실망이였지만 방황의 끝은 나의 가슴과 머리를 채워주었고 나에게 너무 귀중한  

습관을 선물했다.  


책을 귀중하게 여기고 책에 대한 욕심을 갖게하는 습관은 나에게 배울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도서관에 가면 서고에 꽂아 있는 책 내음이 나의 욕구를 자극한다.  

여기 저기 내 손이 가고 내 감정이 책들로 향한다.  

지쳐 있던 심신이 오히려 활기를 띈다. 

 
이렇게 많은 책들이 있고 이렇게 훌륭한 책들이 있는데 난 지금까지 태어나 얼마만큼의 귀한  

책들을 읽었는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대학시절에 나의 소원은 절에 들어가 내가 읽고 싶은 책들만을 다 싸가지고 가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것이였다.  

그냥 현실을 무시하고 책 속에 이야기와 책 속의 경험들을 나의 가슴 속에 담고 싶었다.  


책은 나의 성장통이요, 나의 스승이다.  

인생이란 철학을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나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부모님의 소중함, 친구의 소중함, 그리고 시간과 열정의 소중함등 이 세상을 움직이는 모든  

힘들의 소중함을 난 책 속에서 배웟다.  


내 머리 속의 한계로 난 책들 속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책은 그만큼 많은 내용과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기억력이 아니라 책을 읽고 느끼고 울면서 간직한 내공들을  

자신의 몸 속으로 간직하며 살고 자신의 인생철학과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것이 진정한  

독서인 것이다.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나 혼자의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고의 폭이 넓고 경험의 폭이 넓은 많은 선지자와 인생 선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책에서  

우린 얻을 수 있다. 
 

책의 묘미는 틈틈히 짬을 내어 읽다가 도저히 책을 놓을 수 없는 기운에 빠져 책을 다 읽었을  

때의  희열일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나의 가슴에 무엇인가를 남겼다는 느낌이 들 때 책의  

소중함을 더욱 실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만을 집중적으로 보는 방법도 있지만 자신과 관계없는 책도 보면서  

다양성과 다름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융합을 찾는 것도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다.  


우리의 곁에 책을 가까이 한다며 분명 인생의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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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내가 가고 있는 곳을 모르겠다.  

시작은 했지만 어디가 끝인 줄 모르겠다.  

미로의 출구를 찾아 헤매는 작은 존재인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재능을 갖고 태어나 자신의 방향을 일찍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재능과 방향을 찾는다는 것은 인생에 매우 중요하다.  

과연 나는 무엇이 되려 하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작은 어려움에도 힘들어 하고 지금의 위치가 더 나은 발전을 위한 발판이라는 확신도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숨을 곳을 찾아 가는 인간이 아니기에 오히려 당당히 자신을 내세워야 한다.  

그 당당함은 분명 자신에 충실하고 자신의 재능과 방향을 찾았을 때 발현되는 모습이다.  

지금의 나의 일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버리고  

떠나지 못한다.  

그게 나다. 늘 벗고 싶은 옷을 잘 때도 입고 있는 것이 나다.  

이 옷이 더러워서 벗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자신에게 맞지 않기 때문에 벗고 싶은 것이다.  

늘 결정에 앞서 나에게 방해물이 되는 것은 현실적 고려다.  

그리고 앞 날에 대한 불안감이다.  

어떤 목표를 결정하고 지향하면 그 두려움은 작아진다.  

그런데 나를 향한 외침에 두려움이 앞선다. 잘못을 하고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늘 공허하다. 그리고 이 젊음을 안착이 아닌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다. 

 분명 이 세상에는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인생의 기간은 유한하다.  

나를 지키고 나를 만들어 가기에는 이 시간들이 짧을 수 있다.  

어느 때는 지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쓰러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때는 포기하기도 한다. 그냥 모든 것을 잊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젊음은 그것을 바라 보고 늘 기다려 주질 않는다.  

내가 있는 이 곳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  

지치고 쓰러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젊음이다.
늘 고민 속에 나의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누구이고 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수 없이 많은 말들을 내 뱉고 지껄여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없다.  

그냥 고민과 좌절, 그리고 또 다른 시작으로 나를 찾아 가는 방황을 계속 한다.  

젊음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보고 싶다. 절벽의 끝에 서서 저 먼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절벽을 오르려는 파도의 거품들을 보며 치열함과 열정을 갖고 싶다.  

지나온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듯이 다가오는 시간들이 나를 강하게 했으면 한다.  

절벽의 끝에서 나를 찾고 싶다.  

지금의 편안함을 잊고 달리고 싶다.  

작은 돌에도 넘어지는 하찮은 인간이지만 그래도 달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나태함과 나른함을 벗어 던지고 싶다.  

가냘픈 목소리라도 크게 소리 지르고 싶다. 그 목소리가 파도의 절박함보다 약하더라도  

소리 치고 싶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지금의 나의 모습은 가식과 거짓으로 덧 칠한 모습은 아닌가?  

절박함을 느끼고 싶다. 그 절박함 속에서 나를 찾고 싶다.  

그냥 모든 가식을 벗어 던지고 싶다. 벌거벗은 나를 대하고 싶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음반이 나를 향해 속삭이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너는 어디에 서 있고 어디를 향해 달려 가냐고…  


내가 죽음의 목전에 있을 때 나는 누구였고 나의 길이 옳은 선택이였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삶의 끝에 선 난, 미소 짓고 사라지고 싶다. 그러기에 지금의 젊음을 방치하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진실 되고 싶다.  

그것만이 “절망은 또 다른 시작이다” 라는 문구의 응답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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