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지 공주와 수수께끼 기사 -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어요! 똑똑 모두누리 그림책
스티븐 렌턴 지음, 손예린 옮김 / 사파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탑에 갇힌 아가씨라는 문학의 모티브를 멋지게 변용해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는 멋진 그림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네에서 자연을 관찰하는 9가지 방법
최성용 지음 / 에이도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보면서 놀란 건,
(1) 내가 알던 송충이가 송충이가 아니라는 것. 진짜 송충이는 1970년대에 거의 사라졌고 우리가 송충이라고 알던 벌레들은 대부분 미국흰불나방애벌레라고. @.@
(2) 매와 비슷한 황조롱이가 주변에 꽤 많이 살고 (아파트 에어컨 실외기에 둥지를 많이 튼다고) 얘네들은 날면서도 째려본다고. (나는 새의 눈까지 볼 시력이 없어서 몰랐다.ㅋ)
(3) 안양천에 오는 그 왜가리가 아마 왜가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깃과 색과 모양에 따라 서너가지 다른 새 일 수 있다는 것.)
(4) 한라산에 아직 올라가 보지 못했는데, 올라가게 되면 반드시 소나무 중에 가장 예쁜 보라색 솔방울을 가진 구상나무 군락을 봐야겠다는 것,
(5) 한동안 찔레와 장미를 구별 못하다가 울 아파트 단지에 있는 꽃이 찔레꽃인줄 알게된 것도 얼마되지 않았는데, 사실 장미야 말로 수천 년동안 인간이 품종을 개량해서 장미라 부르는 꽃이 외려 실체가 없다는 것 (하도 개량을 해서 분류하기 힘들어서),
(6) 가로수의 수목보호대가 보호보다는 억압을 더 많이 한다는 것 - 가로수 아래 한 뼘짜리 땅에도 나름 우세종 식물들이 하나씩 따로따로 군락을 이루며 피어난다는 점
(7) 후투티는 이름이나 모양으로 외국새 같지만 아니라는 것
(8 ) 날개없는 벌도 있다는 것 - 살구나무테두리잎벌들이 관찰자를 감지하자 일제히 몸을 세우고 부풀려 위협하는 동작을 해보인다는데, 으하하 2-3센티 밖에 안되는 애벌레들이 일제히 거대한 사람을 위협하겠다고 일어서면 되게 귀엽겠구나 싶다가도, 해충이라고 다음 날로 그 나무가 베어졌다는 말에 씁쓸하기도 했다.
(9) 내가 숲에서 보고 징그럽다고 치워버린 그 벌레가 청줄보라잎벌레라는 거. (이거 딱정벌레 중 하나라는데, 딱정벌레과인 사슴 벌레를 키워본 나로서는...흠...저자가 왜 귀엽다고 하는지 모르겠...음...사슴벌레는 귀여웠다. ㅋ)
(10) 고라니가 세계적인 멸종위기 희귀 종인데 한국에 90%이상이 서식하며 한국에서는 유해조수로 지정되어 사냥도 가능하다고...@.@
읽으며 생각할만한 점은
(1) 사람의 필요에 따라 해충과 익충, 해수와 익수가 임의로 정해진다는 딜레마.
(2) 멸종위기 희귀종이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주위에 흔한다고 도감에 나오는 개체들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문제.
(3) '생태적 틈새' - 생물은 각기 서식에 최적화된 위치와 환경 (Ex. 산 아래, 갯벌, 강 하구 등)이 다르므로, 여러 생태적 틈새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는 것이 좋다는 것
덧붙여서,
(1) 책, 예쁘다.
(2) 어린이용 그림책으로 나와도 재미있겠다. 거미들이 처음부터 거미줄을 잘 치는 게 아니라서, 처음에 지그재그로 마구 친 거미줄 얘기도 재미있었다. 어린이들 눈에는 이런 거 재미있을 것 같다.
(3) 사진 찍기 힘들었겠다. 책 많이 팔려서 저자분이 600밀리 카메라를 부디 사시기를 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스트 메타버스 - 다음 세상이 온다
남주한 외 지음 / 포르체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메타버스라는 말은 1992년 출간된 닐 스티븐슨의 SF 소설 <스노 크래시>에 처음 등장한다. 이는 meta-와 유니버스의 -verse가 결합한 말로, 3차원 가상현실 (쉽게 말하면 3차원 인터넷)을 말한다.

현재 메타버스에서 논하는 가상현실은 VR, AR, ER,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로 아직은 무거운 고글을 쓰고 접속하며 몇 분 이상 쓰면 어지럽고 토가 나오기도 한다. (어린이 용 스토리텔링 VR을 실제 보기는 했는데, 헤드기어에 아무리 귀와 꽃을 달아도 헤드기어가 무거워서 아이들은 몇 분이상 쓸 수가 없었다. )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로, 쉽게는 실제 스트릿을 폰으로 비추며 포켓몬 몬스터를 잡는 걸 생각하면 된다. XR, Extended Reality는 확장현실이라고 하며 앞의 것들을 모두 결합한 형태라고 한다.

<포스트 메타버스>라는 책은 원래 post-의 뜻대로 메타버스 이후의 세계가 아니라, 메타버스가 도입된 이후의 세계를 카이스트의 여러 교수들이 전공 분야와 엮어서 예측하거나 현 기술의 발달 정도를 말해주고 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윤상호 교수가 쓴 아바타 간의 촉각 인터액션부분이었다. 소설 속 메타버스는 영화 레디 플레이어처럼 고글과 글로브 같은 기어를 착용하고 접속하고, 그 가상의 공간 안에서 아바타들이 교통 수단을 타고 이동하고,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며, 지구 반대편에 사는 유저의 아바타와 데이트를 하고, 펍 같은 곳에 모여 즐기는 그런 공간이 된다. 이 펍에서 사무라이 칼을 멘 전사 아바타들은 칼싸움을 하며 대결을 하고, 칼에 베어서 아바타가 패해 죽으면(?) 접속이 끊기고 일정기간 접속이 안되는 일이 벌어진다. 또 아바타끼리 악수를 하면서 파일을 전송할 수 있다. 윤성호 교수가 쓴 챕터의 제목이 그래서 메타버스에서 악수하기이다. 소설에서 그리는 촉각 인터액션이 구현될까 싶어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촉각 인터액션은 두 가지를 전제로 하고 있었다 – Better Sense of Presence 더 나은 존재감과 Access-on-the-go 어디에서든지 접속이 가능함. , 디스플레이, 센서 및 피드백 테크놀로지 개발로 가상현실 안에서의 더 나은 존재감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휴대가 가능한 접속 장치로 어디에서든지 접속이 용이해야 하는 전제의 충족을 목표삼고 있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이 정말로 현실을 대체할 정도 혹은 현실과 혼동할 정도가 되려면 이 촉각을 포함한 감각 인터액션 기술이 얼만큼 발전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는 것 같다.

이동만 교수도 메타버스가 공존하는 스마트 도시공간이라는 글로, 가상현실이 도입된 후에 인간의 오프라인 공간인 도시와 메타버스가 어떻게 어우러져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해 쓰고 있다. 이 논의 또한 앞으로의 라이프 스타일과 마케팅에 굉장히 중요한 개념 같다. 비고츠키에서 비롯된 3의 공간이라는 개념은 Homi Kharshedji Bhabha가 이론으로 정립하고 도시에서 공동체 공간과 공적 공간/ 사적공간의 개념을 새로 정립하면서 현재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 바, 메타버스와 대중화된 세계에서 오프라인 현실과 온라인 현실이 어우러진 스마트 도시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택근무가 성행하면서 물리적인 장소로 semi-public place가 부상하고 이걸 fifth place라고 부르는 학자들조차 있으니, 아마 이동만 교수가 말하는 장소성 연구는 이후 공간을 정의하는 주요한 담론이 될 듯 싶다.

이외애 매타버스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과 문화 예술 및 콘텐츠에 끼치는 영향, 버츄얼 휴먼에 대한 고찰 등도 이 책에 골고루 담겨져 있으니, 관심 분야에 따라 읽어보면 되겠다. 내게는 이 두 챕터가 가장 흥미로웠다.

한두 챕터 정도는 메타버스에 대해 비전문가인 나조차도 쓸 수 있을 정도의 글도 보였다. 특히, <스노 크래시>를 읽어보지도 않았는지 내용을 잘못해서 이러이러하다고 쓴 글은 지적인 태만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스노 크래시>라는 소설은 단순히 메타버스에 대한 소설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그리는 현실에서는 배달부가 최고의 직업이며 (요새 배달의 민족 등의 배달부들이 서서히 부상하는 것도 같다?), 수메르 언어를 기초로 한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바타로 접속한 사람의 뇌를 포맷해 버리는 음모론이 등장한다. 거기에 주인공인 히로는 한국인 어머니와 주한/주일 미군인 흑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메타버스의 개발자 중 한 명으로 등장한다. 90년대 초에 일본에서 자란 흑은-한국인 개발자라는 소수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한 것도 의외였다. 96년도에 초역판을 읽었고, 현재에는 2008년도에 다른 번역판이 나와있다. 이 소설에서 말하는 다른 미래들도 올지는 두고 보아야 겠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묘하지. 감각적인 건 왠지 피상적일 것 같은데, 감각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면 놀라운 깊이를 보여주는 거.

사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슬픔이여 안녕>을 어릴 때 읽었는데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다. 그런데 이 <패배의 신호>를 읽자니 딱 내가 글이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그대로 나와서 읽으면서 웃었다. "문화를 오직 기억에 의해서만,감성적인 기억에 의해서만 좋아했다. (p.22)" - 이 구절. 읽고 기억에 남지 않은 작품은 그냥 안 좋은 작품인걸로 - 독서를 그렇게 했고, 음악도 난 그렇게 듣는다. 제목이니 주인공 이름이니 외워지지 않는 건 내게 깊은 인상을 주지 못한 거니 그냥 잊어버리는 걸로...그렇게 책을 읽었더랬다. <슬픔이여 안녕>은 그냥 잊어버린 작품이었다. (요샌 기억력이 나빠져서 일부러 외우지 않으면 다 잊어버리는 터라, 일부러 기억하려고 애써야 한다.)

젊은 시절에 타올랐던 강렬한 사랑을 매우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디안이나 샤를같은 나이들고 성숙한 이들이 옆에 등장하면서 그냥 강렬함에 탐닉하는 서사로 끝나지 않고, 깊은 층위가 생겨나고 있다. 사강이 나이가 들어 생긴 시선이라 외려 이게 더 좋다. 잘 모르는 미래의 삶으로, 모르기에 용감하게 약진하는 이야기라든가, 오로지 상대와 나 밖에 없는 강렬한 서사는 숨구멍도 찾을 수 없는 덫에 갇혀서 익사하는 이야기가 되지 않나.

젊은 시절의 사랑 이야기를 쓰는 데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 나같으면 이렇게 아름답게 못 쓸 것 같다. 왜냐면 아름답게 쓰는 것 자체가 진실을 훼손하는 불경을 저지르는 것 같아서. 지나간 사랑이 아름다웠던가? - 그런 부분도 있지만, 통속으로 전락했고, 유치했고, 도망친 난파선 같은 걸. 예상했던 뻔한 암초에 부딪혀 가라앉는 배 안에서 악다구니를 벌이다 간신히 구명정을 타고 탈출한 것 같은걸.

몸이 열어주는 길을 따라 마음이 질주하는 사랑, 해볼만 하다. 다들 한번쯤은 해보았겠지.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강렬했고, 유치했고, 서로를 사랑한 만큼 상처를 주었다. 루실이 앙투안에게 느꼈던 것처럼, 그가 나를 사랑한 내 매력이 그가 내게서 견딜 수 없어하는 약점이 되는 경험을 했고, 아마 남자를 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지 싶다. 샤를처럼 루실의 모순 때문에 루실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사랑을 해보아서 다행이다. 그런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그에 대해 쓰고싶지도 않다. 다만 읽어서 다행이다. 어떤 감각은 또 그 감각에 대한 추억은 결국 궁극에 도달한다. 그 궁극이 사랑일 수도 아닐 수도, 사랑했다가 필연적으로 잃어버림 일 수 도 있지만, 그걸로 족한 빛나는 재현이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배의 신호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묘하지. 감각적인 글은 피상적일 것 같은데, 감각적인 어떤 글은 감각의 행간에서 그 어떤 글 못지 않은 통찰을 보여주다니. 그래서 사강인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