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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힌 생명의 역사 - 지구 생명체 새롭게 보기
전방욱 지음 / 책과바람 / 2025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빅뱅부터 생명이 언제 어떻게 탄생했으며 무엇이 생명을 만들어냈으며,
생물들이 어떻게 공생하며 지구를 이루고 있는지,
행성의 역사와 생명의 역사 그 방대한 얽힘을 조목조목 풀어낸 책이다.
행성적 시각으로 지구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모두를 위한 생명과학 필독서라 과학 덕후들에게 아주 유용한 책이다.
생명은 우주의 수많은 요소가 한데 모여 새로운 유기적 단위로 응결한 사건이다.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진 탄소, 질소, 인,
운석과 혜성이 실어 온 물과 유기물,
태양 빛과 자외선, 지구 내부의 열과 같은 에너지 흐름이
지구 표면의 물리 화학 지질 과정과 맞물리며,
우주의 척도로 보면 한순간이지만
사실은 장구한 시간 동안 응결을 이뤈낸 결과물이다.
화이트 헤드는 "다자가 일자가 되는" 합생이 일어난 것이라고 표현했다.
막-대사-정보(지질 소포체-원시 대사-RNA)가 합생하여 만들어낸
원시 세포라는 일자가 곧 다시 다자 속으로 흩어지며
주변 세계를 재구성하기 시작한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생명은 끊임없는 융합과 협력의 산물이며,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만남과 공존을 통해 전혀 새로운 차원의 가능성을 열어온 과정이다.
진핵세포의 기원은 공생의 연속적 사건 속에서 탄생했고,
그 결과 오늘날처럼 복잡한 생명의 무대가 가능해졌다.
2004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부문상 부분은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고 5초 안에 주워 먹어도 괜찮지 않음을 연구한 것에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오염 정도를 좌우하는 것은 바닥에 떨어진 시간이 아니라
바닥의 표면 특성, 음식의 수분 함량, 세균의 종류임이 확인되었다.
실제로 박테리아는 음식 표면에 그냥 붙어 있기만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곳을 배양지로 삼아 증식하고, 서로를 보호하는 생물막까지 만든다.
인간의 접촉을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만들고
관계를 조직하는 행위자라서, 우리에게 위협이자 조율자로 작동할 수 있다.
유기체의 정체성은 공생 미생물과 분리될 수 없다.
포유류의 발생 프로그램 일부는 공생자 신호에 의존하는데,
인간 유전체의 적어도 8%는 바이러스 기원 서열이다.
인간 유전체에 고정된 바이러스 유래 서열은 태반의 구조를 만들고,
면역 관용을 돕고, 자궁 태반의 유전자 조절 네트워크를 세팅하며
초기 배아의 방어 체계까지 보강하는 데 사용된다.
이 바이러스 서열들이 변형을 거쳐 초기 배아 발생을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협력과 긴장이 공존하며, 이 균형을 유지 조정하는 능력이 건강의 핵심이 된다.
그래서 숙주와 공생자의 묶음을 한 단위로 보는 통생명체(holobiont) 개념이 제안되었다.
심지어 나무 속 목질층까지 식물과 미생물이 한 몸처럼 얽혀 있음이 밝혀졌다.
살아 있는 나무에서 나무의 내부 목질에서 코어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산소가 상대적으로 풍부한 변재에는 호기성 미생물이,
산소가 희박한 심재에는 혐기성 미생물이 이서식하는 등 미생물 군집이 뚜렷하게 달랐다.
한 그루 나무 안에서만 최소 1조 개 규모의 미생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니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먼저 자리 잡은 미생물이 뒤따라 들어올 미생물의 정착을
좌우하기도 하고, 같은 미생물이라도 영양 상태, 온도, 습도, 산소 공급에 따라
이로울 때도 해로울 때도 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다룬다는 오해와 호기심 사이를 오갔다.
약한 가이아는 생명과 환경이 짝을 이뤄 상호작용하면 공진화한다고 보며,
지금은 거의 상식이 되어 이견이 드문 반면, 강한 가이아는 생명이 있는 행성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시스템으로 간주하고 그 생명 활동이 그 시스템의 일부 변수를
능동적으로 조절한다고 주장은 비판받는다.
강한 가이아가 진화의 단위가 될 수 없으며, 생명에 유리하도록 환경을 최적화한다는
강한 가이아는 목적론적이며 검증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생명체가 자신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갖지는 않지만,
환경이 생명체에 유리하게 유지되려는 특징을 갖는다는 것은
그냥 연결에 의해 그렇게 된다.
연결과 순환이라는 가이아의 개념은 대기, 해양, 지질, 생물권을 하나로 묶어
관측과 모델링을 통합했다. 진화론은 공생, 생태적 지위 구축, 수평 이동을 품어
다윈주의를 보강했고, 후성유전학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는 환경 신호가
염기서열 변화 없이 발현을 바꾸며 숙주와 공생체가 함께 적응 단위를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 것처럼 가이아 이론 또한 '의식 있는 지구'가 아니라 상호 작용의 네트워크와
되먹임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위기의 행성에서 가이아가 믿음이 아니라 연결을 계산하고 되먹임을 설계하는 방법으로
다시 호의적으로 해석되고 있음을 얽힘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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