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대부분의 과학고등학교는 남학생에 비해 여학생의 비율이 휠씬 작다.
어떤 남학생이 과고는 남녀공학이 아니라며 남학생, 여학생, 그리고 과고 여학생이
있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또래들에 비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학생들이 나누던 대화에서 우리 사회가 구축해놓은 고정 관념이 얼마나 깊은가를
느끼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 책이 있었더라면 읽어보길 권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적인 의미에서 양성적인 사람은 독립성, 자율성, 지배성으로 대표되는
남성적 특징과 따스함, 타인의 감정 인식, 표현력으로 대표되는 여성적 특징을
모두 강하게 나타낸다고 한다. 젠더 특성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편향되는 것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파괴적일 수 있으며 사회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폭넓고
다양한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창조적인 사람들과 영재 여성들은 양성성을 지니는 경향이 있다.
길들이기 힘들고 주변 환경에 녹아들면서도 또렷이 구별되는 얼룩말과
영재가 비슷하다는 뜻에서 영재를 얼룩말이라고도 부르는데,
영재라는 용어보다 '얼룩말 소녀'가 명확하고 의문을 덜 불러일으킨다고
옹호하는 이들이 있다. 남자 아이들은 영재라는 수식어가 영광스럽지만
여자 아이들에게 영재라는 새롭고 거추장스러운 타이틀이 그들에게 제약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하기에 자신의 특성에 붙일 만한 가장 좋은 이름을
고민해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마나 편견이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남성적 규범과 여성적 규범이라는 이중 모델 때문에 영재 여성에게
남들과 다름은 더 크게 느껴진다. 투쟁과 진보가 이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소수 집단으로 간주되는 여성으로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래서 영재 여성이 자신의 다름에 이름을 붙이도록 이끈 다음에
세계와 상호작용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짓 자기인 눈가림 정체성으로부터
자신의 깊숙한 본래 성격을 분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 자기는 자신감을 잃게 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긍정하면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위기를 제대로
평가할 줄 알게 되어 그 일에 착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다름이 온 세상에 드러날
거라는 두려움, 남들의 눈에 띄어 남들이 자신에게 맡긴 역할에서 자신이
벗어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된다.
사춘기를 거치는 영재 여자 아동은 지적, 신체적으로는 성숙할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어린아이라서 그 간극이 더 커서 더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극도로 예민하고 감정적이며,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완벽주의자일 수
있는 여자 영재의 경우 음식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으로 거식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정말 위험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거식증을 유발할 수도
있으므로 부모들은 외모와 재능으로만 정체성이 구축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정서적인 가치들을 전수해줄 필요가 있다. 그들이 스스로 지닌 높은 기대 수준과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어떤 상황에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강렬하게
빠져들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해야 하겠다.
영재 여성이 자신이 영재임을 아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재 여성을 공포에 빠뜨리는 다르다는 느낌, 초민감함,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모두 당황스럽게 만드는 나뭇가지 모양으로 뻗어가는 사고방식에
어떤 이름을 붙이려면 영재 여성이 영재임을 진단받고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 이후 자신이 겪어 온 고통을 돌이켜 봄으로써 자신을 다시 구축하고
살아오면서 조각난 관계들을 회복할 수 있다.
멀린다 게이츠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