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 공식 선정작으로 철학자 곰 튤립과 실존주의 동물들의 유머에 피식피식거리다
중독되었다. 좋아서하는 그림책연구회 교사가 쉽사리 생각에 잠기는 사려깊은 곰 튤립과 친구들의
은은한 여행길을 기꺼이 따라가고 싶다고 한 말에 깊이 공감되었다.
괴짜 천재 과학자들의 시트콤 <빅 뱅 이론 시즌>을 재미있게 본 사람이라면 아마 좋아할 것 같다.
<빅 뱅 이론 시즌>보다는 덜 가볍고 철학적이지만 일맥상통하는 유쾌함에 고개가 끄덕끄덕여지며
다음 에피소드를 기대하게 되는 매력이 상당히 큰 작품이었다.
오늘은 알이지만 내일은 의젓한 독수리일지, 커다란 풍뎅이일지, 늑대일지 모른다는 대답에
튤립이 알에서 태어나는 늑대는 없어라고 시크하게 답하는 장면은 포유류 관련 분류수업할 때
동기유발용으로 사용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튤립의 나지막한 팩폭에 자신이
아직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며 사과하는 알의 모습이 귀여웠다.
알과 조약돌의 대화도 압권이었다. 동그랍고 매끄럽고 쪼끄맣고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점은
똑같지만, 알이 과연 누구일까 희망을 품고 있지만 돌은 누가 봐도 예측이 가능하다며
슬퍼하는 조약돌에게 알이 자신에게 본인들의 희망을 그만 걸었으면 좋겠다며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알이 그대로의 나로 여겨 주지 않음에 속상해하며 오히려 조약돌이 운이 참 좋은 거라는 말에
위안을 얻는 조약돌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살면서 처음 들어온 말에 "난 네가 참 좋다."며
흐뭇하게 웃는 조약돌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튤립과 아르마딜로의 심오한 대화는 곱씹어 볼만 했다.
누군가에게 뭘 주고 나면 본인한테는 없어지는 것은 상업적 거래에 해당하지만
자연은 모방하고 증식한다는 것.
남에게 행복을 주면서 동시에 자기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해석을 하는
튤립의 말이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