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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물보다 귀한 유산이 어디 있겠는가 - 아프리카 농민의 왕 식물유전육종학자 한상기의 90년
한상기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3년 6월
평점 :
총성 없는 전쟁, 종자 전쟁의 서막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인한
곡물 가격 급등으로 실감하고 있는 시점에서 식물유전육종학자의 자서전이 반가웠다.
아프리카 추장은 김순권 옥수수 박사님만 계신 줄 알았는데,
아프리카 농민의 왕 한상기 박사님도 계셨다니,
나는 왜 이런 인류애를 실천한 성자를 몰랐을까...
초등학교 교과서와 베스트셀러 동화를 통해 '까만 나라 노란 추장'으로 어린 세대에 더 잘 알려진
세계적인 식물유전육종학자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국민학교와 초등학교 과도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끼인 세대라서
이런 대단한 분을 배우지 못한 세대들에게 꼭 박사님의 삶을 알리고 싶어졌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식량이고 제일 아쉬운 것이 사랑입니다."
"아프리카에 나의 열정을 심었다. 새싹을 기대하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식물유전육종학 연구와 아프리카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신
파암 한상기 박사님의 투철한 사명감은 감동적이었다.
과학자는 연구실 안에만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연구가 가족, 이웃, 인류를 위해
어떤 도움이 될지 보다 멀리 보며 살아야 한다는 박사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서울대 교수로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식물육종학 연구소에서
편안하고 명예롭게 연구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박사님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소재 국제열대농학연구소를 선택하셨다.
자신이 배워 익힌 식물유전육종학이 긴요히 쓰일 수 있는 곳은 아프리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명예의 길이 아니라 도전의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박사님의 운명이 되었다.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나 농사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았고, 선조로부터 구휼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식량에 대한 소중함도 절실하게 인지했기에 가난과 배고픔의 땅으로 향한 것이다.
박사님께서 23년간 일했던 국제열대농학연구소의 라고스 영빈관 벽에는
"주여, 굶주리는 이에게 밥을 주시고 밥이 있는 이에게는 정의를 향한 굶주림을 주소서."
라는 테오도르 신부님의 기도문이 걸려 있었다고 한다.
박사님은 일본이 대마도와 이 사람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이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졸업식 때 우수상 수상자들에게 우장춘 박사의 논문을 주기도 할 정도였던
세계적인 학자 우장춘 박사님의 이야기를 중학교 국어 시간에 듣고 자신의 전공을 정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우량 종자의 개발과 보급이 절박했을 때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면
10억 원의 거액 이적료를 주고 한국에 모셔왔지만, 그 돈도 한국에 뿌릴 우량 종자를 사는 데
다 써버렸던 우장춘 박사님도 정말 대단하시고, 그분의 뜻을 따라 이렇게 육종학자의 길을 걸은
한상기 박사님도 계시고, 이런 분들의 희생이 모두 뒷받침되어 후대 과학자들에게도 이어져서
전 세계 단 2곳뿐인 시드 볼트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박사님께서 개량한 카사바는 아프리카의 식량난을 해결한 공신으로 원래 브라질이 원산지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노예를 팔아먹기 위해 아프리카와 브라질을 왕래하면서
16세기 말부터 브라질에서 가져와 아프리카 콩고강 입구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카사바가 도입되기 전에는 중부 아프리카에 식량 작물이 없었기 때문에
서부 아프리카에 카사바는 급속도로 전파되어 세계 8대 작물 중 하나가 되었다.
카사바는 건계에도 살아남고 다른 작물에 비해 비교적 환경 파괴도 덜해서
다른 지역에서도 재배하기 쉽고 연중 밭에서 재배가 가능해서 수시로 수확하여 가공해서
먹을 수도 있다. 잎은 채소로 먹고, 줄기는 재식 재료로 사용하고, 뿌리는 전분으로 사용하므로
버릴 것이 하나 없는 중요한 작물로 한발에도 강해 아프리카에 제격인 작물이다.
카사바의 도입 후 아프리카의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한다.
옥수수는 가뭄에 약하고 비료도 있어야 하지만,
카사바는 가뭄에도 강하고 비료도 많이 필요하지 않지만
카사바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같이 푸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서구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현금이 되는 작물에는 눈독 들이고
정작 아프리카 사람들의 배고픔을 치유할 식량 작물에 대해서는 거들떠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사님은 각고의 노력 끝에 내병다수성 카사바를 개발 보급에 성공하셨고,
내병다수성 카사바는 지금 현재도 아프리카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이 공로로 1982년 기네스 과학 공로상을 수상하셨고,
1983년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이키레 읍의 추장으로 추대되어 '세리키 아그베(농민의 왕)' 칭호를 받았고,
1984년 영국 생물학술원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펠로우상을 수상했으며
1986년에는 세계 식량상에 추천되어 차석이 되셨다.
가나 아칸족 격언에 "아무리 강한 나무도 혼자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박사님의 삶과 업적을 통해 작물의 중요성과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며
박사님의 열정과 정신을 잊지 말고 우리의 토종 종자들을 잘 지켜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과 콩나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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