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강원도에는 참혹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지뢰도 많이 묻혀 있어
영실이 마을과 시골 마을 곳곳에서 슬프고 안타까운 사고들이 많이 발생했다.
지금도 군대에서 지뢰 제거 작업에 투입된 병사들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전쟁의 상흔은 너무 오래 남는 것 같다.
암튼 영실이 입학 연도를 제대로 읽지 않고 넘어간 탓에
괜히 영실이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마음을 졸이며 책장을 넘겨갔는데
영실이는 그냥 순수한 시골 아이 그 자체였다.
영실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싶어서 떼를 써서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엔 친구들이랑 학교 가는 게 너무너무 신나고 즐거웠지만
한 달이 지나고 매일 받아쓰기 시험을 치게 되니 동그라미보다 작대기가 많아지게 되고
많이 틀린 아이들과 틀린 글자를 열 번씩 쓰는 나머지 공부를 하게 되자
학교 가는 게 슬슬 싫어졌다. 안 아프던 배와 말짱하던 머리도 아프다고 꾀병을 내는
영실이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러웠다.
다행히 영실이가 아픈(?) 이유를 알게 된 어머니가 순덕이 언니랑 숙제를 함께 하게 해준 덕분에
나머지 공부는 걱정 없게 된 영실이는 배도 안 아프고 머리도 멀쩡해지는 모습을 보니 귀여웠다.
영실이가 친구들과 총소리 나고 훈련하는 사격장 쪽에서 놀 때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너무 불안했는데 결국은 사고가 나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이 훈련이 없는 날이면 파편을 줍기 위해 사격장으로 몰려갔다.
미군들이 사용한 총알 파편, 땅속에 묻어 놓은 다 쓴 수류탄 등의 고물을 주어 납과 동을 팔기도 하고
초콜릿이랑 과자가 담긴 미제 깡통을 줍는 재미가 쏠쏠했다.
윗마을 사람 중 탄피를 줍다 불발탄을 잘못 건드려 한쪽 팔이 날아가기도 했지만,
위험한 모험은 돈이 되는 커다란 희망이기도 했기에 아이들도 탄피 쪼가리를 줍는 현실이 가슴 아팠다.
그리고 불발탄 뇌관을 건드린 재천이는 죽고 말았다.
더 이상 재천이와 뽕차도 타고 재미있게 놀 수 없게 된 것이다.
한동안 영실이도 마을 사람들도 재천이를 잃은 충격으로 웃지 않았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살아가야 하기에
재천이가 좋아하던 증편을 만들어 재천이 엄마에게도 가져다드리고 다시 사람들은 살아가기 시작했다.
뜨겁게 슬프고 행복한 여름을 보내고 다시 여름을 무사히 지나가며
성장해가는 영실이의 모습이 부모님들의 어린 시절같이 느껴져 정겨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