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킬러
윤자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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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을 죽이는 자는 과연 괴물이 아닐 수 있을까?’

《몬스터 킬러》는
⁉️“괴물은 어디서 태어나고, 우리는 누구를 괴물이라 부르는가”라는
질문을 남깁니다.

작품 속 김하준, 전조협, 이순근은 모두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동시에 사회가 만든 괴물의 얼굴입니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의 틀을 빌려 사회파 미스터리로 읽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괴물이란 멀리 있지 않다는 섬뜩한 진실과 마주했습니다. 어쩌면 괴물은 우리 곁에도, 그리고 우리 안에도 존재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윤자영은 ‘추리소설 쓰는 과학 선생님’이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한국추리작가협회 신인상과 한국추리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으며, 교직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관찰을 추리적 상상력과 결합해 한국형 사회파 미스터리를 선보여왔습니다. 신작 《몬스터 킬러》는 ‘괴물 선생님 살인사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소재로, 학교라는 공간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파헤친 작품입니다.


학교는 흔히 “아이들이 배우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정의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폭력, 차별, 배제, 권력관계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몬스터 킬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교사가 학생을 죽였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은 ‘괴물’을 만들어내는 사회 구조와 맞닿아 있습니다.


작가는 겉으로는 살인사건의 추리극을 펼치지만, 실제로는 학교와 사회가 만들어내는 괴물의 탄생 과정을 보여줍니다. 누가 진짜 괴물인지, 괴물을 죽일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지를 묻는 이 소설은, 독자 스스로 자신 안의 괴물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첫 장면부터 소설은 독자의 정서적 안전망을 끊어냅니다.
교사 전조협은 자신의 범행을 ‘지도’라 부르고, 심지어 학교를 구하기 위한 정당방위처럼 말합니다.

📌“전 학교를 구하기 위해 악마들을 지도한 거예요.”

이 한 문장은 작품의 윤리적 난제를 압축합니다.
‘괴물’을 자처하는 어른, ‘악마’라 불린 학생,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실체 없는 그림자처럼 흔들리는 제3의 인물 김하준. 윤자영은 이 셋을 중심으로 ‘국선변호인/열혈 교사/시클리드’라는 세 갈래의 서사를 교차 편집해 ‘한 사건의 세 개의 기억’을 직조합니다.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의 ‘몬스터 킬러’가 가리키는 대상과 주체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장 편 전체는 국선변호인 박근태의 조사기, 전조협의 과거 행적,
그리고 중학생 이순근(시클리드)의 변신 서사가 번갈아 진행되는 구조입니다. 표면적으론 각각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각 파트의 말과 행동, 결여가 서로의 빈칸을 채우며 ‘누가 무엇을 조작했는가’를 드러냅니다.

변호인 파트는 사실 확인과 인터뷰의 리듬으로 추리의 골격을 제공하고, 교사 파트는 교권과 처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권력의 심리를, 시클리드 파트는 학교폭력의 미시적 감각과 세뇌·변신의 메커니즘을 체화시킵니다. 이 분절적 레이어가 마지막에 한 지점으로 맞물릴 때, 독자는 시점 그 자체가 왜곡의 도구임을 깨닫습니다.


전조협은 학생부장으로서 “지도”를 반복합니다. 그가 보기에 민주영은 ‘악의 씨앗’이고, 김하준은 ‘진짜 악마’입니다.

📌“주영이는 평소에도 수많은 학생을 괴롭혔어요. 저는 학생부장으로서 정당하게 지도한 겁니다.”

하지만 변호인이 지적하듯, 그의 ‘지도’는 신체적 폭력과 통제의 언어를 닮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판단을 끊임없이 확증하는 방향으로만 사실을 해석합니다.

📌“웃기지 마! 김하준이 나쁜 놈이 맞다고! 다들 나랑 다른 김하준을 만난 거야, 뭐야!”

작가는 전조협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대신 ‘의욕적 교사’가 시스템의 허점, 여론의 압박, ‘학폭과의 전쟁’ 레토릭 속에서 어떻게 신념의 폭력으로 기울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독자는 그가 미덥지 않으면서도, 그를 통해 교사의 균열 난 현실을 보게 됩니다.


김하준은 정체가 비어 있는 학생으로 설정됩니다.
그는 사건 직후 전학 가며 자취를 감추고, SNS 흔적도 없습니다.

📌“그 새끼는 아무것도 안 했네요. 인스타도, 틱톡도, 페북도.”

교사들은 그를 “착한 아이”라 평하고, 동년배 일진은 그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고 증언합니다. 작가는 ‘착함/악함’의 라벨을 차단하고 김하준이라는 공백을 남깁니다. 독자는 그 공백에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편견을 채워 넣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이 설계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이 싹튼 순간, 작품은 본격적인 심리 스릴러로 전환합니다.


세 번째 축인 ‘시클리드’ 파트는 단독으로도 강력합니다. 중학생 이순근이 길에서 만난 노숙자와 나누는 대화는 이 소설의 핵심 은유를 숨깁니다.

📌“시클리드의 일종인 하플로크로미스 부르토니라는 물고기는 계기가 있으면 강력하게 변신하지.”

열대어 생태에서 차용한 ‘두 개의 수컷 전략(화려한 T형/회색 NT형)’은 사회적 변신의 모델이 됩니다. 순근은 모멸과 공포, 모형 폭력의 리허설을 거쳐 자기 강화의 폭력으로 이행합니다.

📌“‘졌다.’” 라는 자기 패배의 순간 뒤에 찾아오는 급격한 변화는 작품 후반 ‘정체’의 반전과 무섭게 응답합니다. 이 축이 없었다면 《몬스터 킬러》는 ‘학교 살인사건의 비밀’로 끝났을 것입니다. 시클리드는 ‘괴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현하고, 그것이 얼마든지 학습 가능하다는 소름을 남깁니다.


작품의 대사 곳곳엔 학교 폭력의 일상성이 스며 있습니다.
희생자를 조롱하는 아버지의 윙크, 왕따를 알아채는 노숙자의 냉정,
‘착한 아이’라는 말의 공허함.
이 조각들이 모여 드러내는 것은 세뇌의 주체가 꼭 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집단, 시스템, 여론, 언론, 심지어 ‘정의감’ 또한 사람을 가공합니다.

그래서 이 소설의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에겐 괴물을 죽일 자격이 있는가?”
누군가를 ‘몬스터’로 호명하는 순간,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작품은 그 질문을 독자에게 되돌려 줍니다.


또한 범인을 숨기기보다 동기의 구조를 숨깁니다.
박근태의 인터뷰와 기록 열람은 독자를 ‘사실-확인’의 길로 이끌지만,
전조협의 독백과 시클리드의 체험은 그 사실을 의미-수정의 길로 비틉니다.
주요 반전의 열쇠는 ‘누가 누구를 알아보지 못했는가’라는 인식의 단절에 있습니다. 중1·중3 시기의 사진을 보여줘도 📌“누구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이유를 독자가 이해하는 순간, 제목의 ‘킬러’가 지시하는 범위도 재정의됩니다.
(여기서 더 말하면 스포일러입니다🤨)


문장은 직설적이고 빠릅니다. 조사-대질-회상-폭주 액션이 번갈며 리듬을 만듭니다. 한편 민주영·김태수의 악행은 필요 충분 조건일 만큼만 배치되어 혐오 소비로 흐르지 않습니다. 약점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전조협의 어떤 장면은 다소 과잉으로 보이고, 몇몇 ‘설명 대사’는 작가의 메시지가 앞서 말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결말에서 드러나는 관계의 지도와 그 뒤에 남는 도덕적 현기증이 이 모든 미세한 단점을 무력화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면, 학교가 아이들이 웃고 배우는 곳(작가의 말)이라는 믿음과, 그 믿음을 아슬아슬하게 위협하는 현실이 동시에 남습니다. 이 간극의 공포가 작품의 진짜 여운이었습니다.

⁉️“정말 학교는 안전한가?”라는 질문이 작품을 덮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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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랜드
양기연 지음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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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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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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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껍데기 아래, 노동·몸·돌봄의 맨얼굴을 들춰 보이는 연작.
유희의 가면을 쓴 노동의 얼굴, 축제의 조명 아래 반짝이는 파편—양기연은 20대 여성 청년들의 ‘살아낸 하루’를 가장 정확한 언어로 기록합니다.

《펜타랜드》는 “너희는 왜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들었니?” 대신 반복해서, 낮고 단단하게 되묻습니다. ⁉️“그럼, 나는 내 몸과 시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사과를 거부하는 입술, 하루를 요구하는 메시지, ‘펜지타’ 영상 앞에서 휴대폰을 내리는 손. 이 작은 행위들이야말로 엔딩의 사이렌 이후에도 계속 울릴 현실의 신호입니다. 테마파크는 문을 닫아도,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각자의 현장으로.

《펜타랜드》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가려진 청춘의 그림자를 드러내는 소설입니다.
읽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로 펜타랜드의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가?”


양기연 작가는 202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서 “남루하고 구차한 삶을 살아 내야 하는 사람들의 애잔한 하루를 절제된 감정과 소품의 배치로 잘 담아냈다"라고 평했습니다. 《펜타랜드》는 등단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연작소설집으로, 현실보다 잔혹한 테마파크라는 공간을 무대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의 내밀한 목소리를 다룹니다.


‘펜타랜드’는 게임 '펜타월드 : 구원받은 세계'의 세계관을 구현한 테마파크입니다. 겉으로는 꿈과 유희의 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는 생계를 이어가기 위한 일터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테마파크가 ‘환상의 세계’를 표방하면서도 노동자에게는 고된 육체노동과 불안정한 삶의 현장인 것처럼, 작품은 “환상과 현실, 놀이와 노동, 주체성과 객체성”이 충돌하는 아이러니한 공간을 정교하게 구축합니다.

작가는 테마파크라는 상징적 무대를 통해 젊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불안과 몸의 문제, 관계의 위계, 그리고 생존의 고단함을 조명합니다. ‘펜지타’ 사건처럼 놀이가 폭력으로 전도되는 장면은, 즐거움과 소비 뒤편에서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결국 《펜타랜드》는 독자에게 묻습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테마파크는 원래 탈것과 불꽃, 음악과 셀카의 세계입니다.
양기연의 《펜타랜드》는 이 ‘유희의 공장’을 뒤집어 내부 배선을 보여줍니다. 번개를 다루는 요정의 나라부터 증기기관의 반도, 사막의 사이버 오아시스까지 화려하게 세계관을 확장하지만, 이 소설들이 끝내 내보이는 것은 세계관이 아니라 월간 근무표, 냄새 밴 탈, 뜨거운 인형 옷의 체온입니다.

작가는 누구의 어린 시절을 구원했던 게임 〈펜타월드: 구원받은 세계〉의 테마송 위에, 구원받지 못한 20대 여성 청년들의 ‘생존 소음’을 덧입힙니다.


펜타랜드는 “놀이”가 아니라 “일”입니다. 땅위에서 꿈을 굴리는 사람들은 인형 탈을 쓰고, 튤립 미로에서 끝없이 길을 설명하고, 매표창구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고, 워터 파크에서 익사 사고를 막습니다. 화자는 늘 ‘나’이되 매번 다른 ‘나’—인형 탈 알바, 매표소 직원, 라이프가드, 돌봄과 생계 사이를 오가는 딸—로 전환됩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벤트 일정표와 관객 동선에 맞춰 쪼개집니다. 익명성(탈)은 놀이의 조건이면서 동시에 폭력의 방패입니다. 코스튬의 익명성을 빌린 관람객이 NPC 아르바이트생을 때리고 달아나는 ‘펜지타’ 밈이 폭발하듯 유통되는 순간, 우리는 플랫폼 시대의 잔혹한 메커니즘을 봅니다—폭력이 유희가 될 때, 피해는 곧 콘텐츠가 됩니다.

작품은 이 폭력의 배후에 “믿고 싶은 사실만 고르는 심리”를 놓습니다. 천진우에 대한 ‘펜지타 범인설’이 번질 때, 화자는 다음 문장을 떠올립니다.
📌“천진우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이 원하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실보다 ‘서사’가 빠르게 유통되는 시대, 진실은 타인의 욕망과 접속될 때만 힘을 얻는다. 이 가장 단단한 통찰은 테마파크라는 장치 위에서 놀랍도록 선명해집니다.


《펜타랜드》는 사과의 언어를 집요하게 묻습니다.
📌“고객은 항상 옳다”는 규율이 일상인 현장에서, 사과는 종종 생존의 문장입니다. 하지만 사과가 만성화될수록 자기 존중감은 침식됩니다. 동료 재상의 말은 소설의 축을 비트는 선언처럼 들립니다.

📌“죄송하지 않은데 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해? 난 그런 취급 받을 사람 아냐.”화자는 그 말을 불편함과 부끄러움으로 받아 적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과의 자동응답이 노동의 에티켓을 넘어 존엄의 경계를 무너뜨릴 때, 우리는 어디서 다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작가는 답을 서둘러 제시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경계에서 주저하는 몸의 감각을, 아주 세밀한 문장으로 오래 붙잡습니다.


연작의 중반부는 명료하게 여성의 몸과 결정권으로 이동합니다. 라이프가드 화자는 자궁 경부 손상 진단 직후에도 파트너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합니다. 불꽃놀이의 절정에서, 그녀는 난데없이 튄 📌“먼지라기엔 크고 딱딱한” 파편을 본다—보았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의 돌출. 이후 문장은 묵직해집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권리로, 어떤 언어로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가.
폭죽이 하늘에서 터질수록, 화자는 ‘자기 몸의 서사’를 되찾기 시작합니다.
그 깨달음은 선언이 아니라, 아주 작은 감각에서 시작되는 자기 결정을 향한 회귀입니다.


이 책의 가장 잔잔하고도 아픈 악장은 모녀의 이야기입니다. 보육원-재혼-이부동생—생애의 조건들은 화자들을 계속해서 ‘가장 약한 연결 고리’ 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럼에도 화자는, 성장하며 엄마의 말수가 줄어드는 이유를 이해해 버립니다.

📌“언제나 대답과 함께 한숨이 섞여 나왔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내려놓는 소리에 스스로 움찔할 만큼.”

돌봄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지만, 생계의 언어 위에 얹히면 쉽게 죄책과 눈치로 변질됩니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여행지는 ‘펜타랜드’입니다. 그곳은 과거에 모녀를 이어 주던 게임의 실물 세계. 그러나 이 ‘순례’가 되돌려주는 것은 눈부신 구원이 아니라, 끝내 각자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입니다. 그래서 더 설득력 있습니다. 구원은 없지만, 서로에게 마지막으로 건네는 정직한 정이 남습니다.


심사평이 지적했듯, 이 책의 미덕은 “화자의 절제된 감정, 삽화와 소품의 적절한 배치”입니다. 인형 탈의 열, 미로의 동선, 목공방의 유약, 매표창구의 이름표, 워터 파크의 사이렌—소품은 서사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증거로 재배치됩니다.

연작 구조는 ‘다른 직군·다른 여성·다른 자리’의 시선을 겹겹이 포개며, 테마파크라는 단일 공간을 노동의 단면들로 쪼갭니다. 장면 전환은 빠르지만 감정은 절제되어 남습니다. 바로 그 절제가, ‘남루하고 구차한 삶’의 애잔함을 과장 없이 설득합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전기·번개·불꽃의 모티프(감전사, 요정의 번개, 폭죽 파편)는 의미심장합니다. 누군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빛은, 그 빛을 켜는 이들의 몸을 언제든 태울 수 있습니다. 《펜타랜드》의 빛은 그래서 아름답고 위험합니다.


결국 소설은 독자에게 되묻습니다.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펜타랜드》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던 파편의 존재를 잊지 않는 것—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피해 걷거나, 가리키거나, 치우거나, 최소한 ‘맞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독자에게는 “당연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의 장점은 그 ‘당연함’을 삶의 실감으로 복구한다는 데 있습니다.

유희의 최전선에서, 여성의 몸·시간·존엄이 어떻게 가격표를 붙인 상품이 되는지 보여주는 소설. 절제된 문장과 정교한 설정으로, 당신의 ‘놀이’가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지 끝까지 묻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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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체를 찾아주세요
호시즈키 와타루 지음, 최수영 옮김 / 반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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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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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체를 찾아주세요》는
제목 그대로 ‘죽음을 예고한 작가의 마지막 미스터리’입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시체를 찾는 사건의 진상이 아니라, 끝까지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아사미의 선택은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이며, 독자는 그녀의 목소리에 끝까지 사로잡힙니다.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뿐 아니라,
인간 내면의 어둠을 탐구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당신은 저를 어디에서, 어떤 의미로 찾게 될 건가요?”

시체를 찾는 과정은 곧 진실을 찾는 과정, 나아가 인간 감정의 본질을 추적하는 여정이 됩니다. 강렬한 설정과 군더더기 없는 전개, 그리고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서늘한 여운 덕분에, 저는 이 책을 “죽음 이후에도 잊히지 않으려는 인간의 집념”에 관한 작품으로 읽었습니다.


호시즈키 와타루(星月 舟)는
일본 콘텐츠 플랫폼 note가 주최한 최대 창작 콘테스트 창작대상2023에서 문예편집부상과 TV도쿄 영상화상을 동시에 수상한 신예 작가입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서두와 빠른 전개,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완성도로 주목받으며, 일본 현지에서는 드라마로도 제작·방영되었습니다. 호시즈키는 전통적인 미스터리의 틀에 ‘블로그 갱신’이라는 디지털 시대적 장치를 결합해, 고전적 추리와 현대적 서스펜스를 교차시키는 새로운 방식으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 작품은 한 유명 작가가 블로그에 남긴 “제 시체를 찾아주세요”라는 글로 시작해, 이후 계속해서 갱신되는 폭로 글과 미공개 원고를 통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형식입니다. 현대의 익명성, 온라인 여론의 폭력성, 관계의 파괴, 가족의 모순 등을 담아내면서, 단순하게 범인을 찾는 소설을 넘어 ‘인간의 감정’이라는 가장 큰 미스터리를 파헤칩니다.


호시즈키는 독자에게 ⁉️“복수란 무엇인가”, “망각되지 않는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 아사미는 폭력이나 살인이 아닌, 블로그라는 기록을 통해 스스로의 이야기를 끝까지 지배합니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독자에게 남는 메시지읻니다. 즉, 작가는 독자에게 “진정으로 살아남는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는 시작부터 독자를 압도합니다. 유명 미스터리 작가 모리바야시 아사미가 자신의 블로그에 “제 시체를 찾아주세요”라는 글을 남기고 실종된다는 설정은,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 장치입니다. 독자는 글의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이미 작가가 짜놓은 거대한 ‘트릭’ 속으로 들어갑니다.

아사미는 작품 속에서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글, 과거 사건을 다룬 미공개 원고, 그리고 남편 마사타카와 편집자 사오리의 시선을 통해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재함으로써 오히려 모든 것을 지배하는 ‘유령 같은 화자’로서 아사미는 이 소설을 이끌어갑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미스터리는 ‘인간의 감정’입니다.”

아사미가 제시하는 ‘인간 감정’에 대한 문제의식이배다.
추리소설은 흔히 범죄 동기와 사건 해결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호시즈키는 ‘감정’을 가장 큰 미스터리로 지목하며, 복수극조차도 인간 내면의 불안·집착·외로움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아사미의 분노, 사오리의 집착, 마사타카의 허영심은 결국 인간이 가진 가장 본능적인 감정의 변주입니다. 독자는 그 감정의 폭주가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목도합니다.


아사미의 시체는 끝내 쉽게 발견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기록,
즉 블로그는 살아 있는 어떤 증언보다 강력했습니다.

📌“제 시체는 쉽게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저는 행방불명으로 처리되어 현재 제 명의로 된 자산을 누구도 건드릴 수 없게 돼요.”

아사미의 글은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복수극의 도구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로 남아, 글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뒤흔듭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섬뜩한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죽음을 넘어서는 힘은 기억이며, 기록이며,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복수극이 피와 폭력으로 채워지는 것과 달리,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의 복수는 차갑습니다. 아사미는 직접 나서서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도록, ‘진실’을 폭로할 뿐입니다.

📌“소설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이 폭로극 속에서 아사미는 ‘치유자’의 면모도 드러냅니다.
진실은 독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해독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또 다른 축은 14년 전 여고생 집단 자살 사건, 일명 ‘하얀 새장 사건’입니다. 이는 미스터리를 풍성하게 하는 과거 사건만이 아니라, 아사미라는 인물의 정체성과 선택을 규정짓는 핵심입니다.

📌“아마도 너 모르게 다른 아이들은 정말로 죽을 생각이었나 보구나.”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감옥’입니다. 청소년기의 억눌린 감정, 외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비극이 결국 성인이 된 아사미의 생애를 결정합니다. 즉, 그녀의 복수극은 사회적 무관심과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기도 합니다.


아사미의 주변 인물들은 모두 왜곡된 관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남편 마사타카는 무능과 허영에 기생하며, 시어머니는 도덕의 탈을 쓴 폭력으로 아사미를 억눌렀습니다. 편집자 사오리는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아사미를 소유하려 했습니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너, 아사미가 되고 싶었던 거 아니니?”

이 질문은 소설 속 사오리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닙니다. 독자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집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동경하다가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며,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복수극이라는 외피 안에, 현대인의 고질적 결핍과 공허가 숨어 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남는 것은 결말의 충격이 아니라, 기록으로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죽음조차 하나의 이야기로 바꾸어버린 아사미는, 결국 자신의 의도대로 독자의 마음속에도 영원히 남습니다.


《내 시체를 찾아주세요》는 신선한 소재와 치밀한 구조, 그리고 차가운 문체로 빚어낸 보기 드문 심리 스릴러입니다. 복수극의 쾌감과 동시에 사회적 고발, 인간 내면의 어두운 심리를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말합니다.
💭복수란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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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자개장 - 전대미문의 자개장 타임머신
박주원 지음 / 그롱시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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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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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 바꾼 건 사건이 아니라 ‘청취의 자세’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시간여행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가족소설입니다.

목적은 하나—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서 “미안했다”는 말 한 번 듣는 것.
그러나 책이 보여주는 건
“누군가의 사과”보다 내가 들리지 않았던 말들을 마침내 듣는 법입니다.

《판타스틱 자개장》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화해의 과정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속에 녹여낸 작품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자연이라면’ 하고 자신을 투영하게 되고,
관계 속에서 전하지 못한 말들, 듣지 못한 사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것을.


박주원 작가는 일상의 디테일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소설가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오브제인 자개장을 소재로 삼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적 장치와 가족 서사를 결합합니다. 작가는 SF적 상상력을 현실의 상처와 화해라는 인간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자개장은 한국 전통 가구 중 하나로, 그 자체가 세월과 기억을 담아내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작품 속 자개장은 과거로 이어지는 포털이자, 주인공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풀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직면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이 소설은 《사랑의 블랙홀》, 《어바웃 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의 계보에 서 있으면서도, 거꾸로 더욱 먼 과거로 흘러가고,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설정으로 차별성을 확보합니다.


작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단순하게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주인공 자연이 깨닫게 되는 관계의 본질, 사과의 의미,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핵심 주제입니다. 자개장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시 돌아감’을 가능하게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바뀌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자연 자신의 시선과 마음이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였다.”

판타지의 문이 자개 무늬로 반짝일 줄은 몰랐습니다.
박자연(서른아홉, 공모전 발표를 기다리는 소설가 지망생)이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병실에서 마주한 날, 집에 돌아와 오래된 자개장 문을 열고 ‘한숨 푹’ 들어갔다 깨어나 보니 오늘은 어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였다.”이 간결한 선언이 이 소설의 미학을 규정합니다.
시간여행이 스펙터클과 장치의 과시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을 건져 올리기 위한 감정의 도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자연은 4년간 연을 끊었던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이미 코마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침대 옆에서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이 터집니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아프더라도 사과하고 아프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방으로 돌아온 자연은 우연히 자개장 속으로 들어가고, 매번 문을 열 때마다 더 먼 과거로 밀려갑니다—하루 전, 이틀 전, 여드레 전, 보름 전… (심지어 자연의 108번째 시도라는 설정까지) 그 사이 ‘기억’도, ‘장면’도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반복의 구조는 점차 집착에서 이해로 톤을 바꾸며,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그 사람의 핵심을 이해하고, 나의 말을 건네는 일”로 이행합니다.


이 책이 《사랑의 블랙홀》, 《어바웃 타임》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뚜렷이 다른 점은 규칙입니다. 통로는 점점 짧아지고, 도달하는 시간대는 점점 먼 과거로 물러납니다. 즉, 기회는 감소하고, 이해의 난도는 증가합니다. 이 장치 덕분에 소설은 “미래를 바꾸는 공학”이 아니라 “과거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드는 인류학”으로 변주됩니다. 독자는 ‘결과를 바꾸는 해킹’이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업데이트해야만 합니다. 이게 이 소설이 흔한 회귀물의 성취와 차별되는 대목입니다.


자개장은 한국 가정의 생활사 속에 놓인 오브제입니다. 표면의 빛나는 패턴은 읽을 때마다 다른 빛을 던지고, 그 밑에는 층층이 겹이 쌓입니다. 이게 곧 기억의 구조입니다. 작가는 자개장을 ‘나니아식 포털’로 쓰지 않습니다. 문턱을 넘는 순간, 독자가 보게 되는 건 판타지의 야경이 아니라 가족 앨범의 빈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판타지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한국적입니다.
자개장은 “시간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자 “미안함과 사랑이 입 다물고 눕는 장소”입니다.


이 소설의 고무찰흙 같은 감정은 ‘사과’의 언어에서 탄력을 얻습니다.
자연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회한이 아닙니다.

📌“그냥… 최소한 한번이라도, ‘그래, 네 마음이 그랬구나’라는… 평범한 말.”우리가 가족에게서 가장 듣기 어려운 바로 그 문장.

자꾸만 과거의 도화선을 되감는 자연의 집요함은 타인의 마음을 ‘정답’으로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서사를 ‘완성’하는 일로 변합니다. 그러니 바뀌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의미’입니다.
(결말은 스포일러를 피해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구원은 종종 사실의 변경이 아니라 감정의 정리에서 온다”는 사실만은 말해두고 싶습니다.)


시간여행이 이어질수록 ‘아버지’ 역시 한 사람의 생애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냅니다. 📌“네가 해준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다, 나름의 의미가 있던 날들이더라고…”
그는 ‘엄격한 가부장’의 평면을 벗고, 결핍과 상황과 기질의 합으로 섭니다.
자연이 처음에는 사과를 ‘획득’하려는 욕망으로 뛰어들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일로, 다시 내 이야기를 말하는 일로 이동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이야기는 길지만, 장면 전환과 대화의 리듬이 경쾌합니다.
에피소드마다 작은 반전과 유머가 툭툭 튀고, ‘규칙-실패-수정’의 루프가 독자에게 게임적 몰입감을 줍니다. 무엇보다 자연의 1인칭 화법은 때로 엉뚱하고, 때로 자조적이지만, 자기연민의 늪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책 말미의 통찰은 간명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지만, 해결의 답은 나 스스로 찾을 수밖에… 나를 이해하는 게 타인을 이해하는 길.”
그래서 이 책의 시간여행은 결국 자기 이해의 여행입니다.

“운명”과 “순리”를 말하며 삶의 불가역성을 일깨우는 문장들도 오랫동안 남습니다. 📌“아무튼 인간은 언젠간 모두 죽게 돼 있어… 하늘이 준 운명대로 사는 게 인간의 숙명.” 시간여행은 운명을 정복하는 장치가 아니라, 남은 시간의 밀도를 바꾸는 장치로 쓰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빠를 구했는가’보다 ‘나를 구했는가’를 묻습니다.


이 작품, 오랜 시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가진 독자라면
자개장 문을 열 듯 조용히 들어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반짝임 끝에, 정리되지 못한 말 한 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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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 정약용편 ㅣ 세계철학전집 3
정약용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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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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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양심과 원칙에 따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여전히 타인의 눈에 휘둘리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 책은 고전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자기 성찰서입니다. 다산 정약용의 언어는 지금의 삶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천적 지혜입니다. 직장인에게는 자기관리와 인간관계의 지침서가 되고, 청년에게는 삶의 방향을 다시 세우는 나침반이 되며,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됩니다.

특히, 인생의 전환점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보여준 삶의 태도는, 📌“조건이 아니라 태도가 삶을 바꾼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정약용(1762~1836)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치·철학·과학·문학을 두루 아우른 당대의 지성인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앙과 당파적 갈등으로 억울하게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으나, 그 고난을 자양분 삼아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의 학문은 “실학”, 즉 현실 사회에 도움을 주는 실용적 학문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학문은 실용에 쓰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그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신세를 한탄하기보다 삶을 기록하고 후세를 위해 지식을 정리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하루하루가 단절된 외딴 삶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내적 성찰과 학문적 결실로 바꾸어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환경이나 조건 탓만 하는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히려 그가 보여준 집념은,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 아니라 끈기와 의지임을 일깨워줍니다.


이 책은 정약용이 직접 남긴 글과 사상을 오늘의 시선으로 재해석하여, 현대인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세우고, 관계를 맺고, 목표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지를 안내합니다. 독자에게 ⁉️“지금 내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자가 전하려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큰 뜻을 품었는가, 그렇다면 더 이상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라”는
다산의 메시지를 오늘의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은 40세에 억울한 정치적 이유로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야 했습니다. 18년 동안이나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야 했지만, 그는 좌절 대신 붓을 들었습니다. 수많은 저술을 남긴 그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위기 앞에서 어떻게 자신을 단련해야 하는가라는 실질적인 물음을 던집니다.

오늘의 우리는 종종 능력이 부족해서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약용을 보면, 의지와 끈기의 부족이야말로 더 큰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책 속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구절 중 하나는
📌“양심은 단순히 윤리적인 개념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입니다.

현대 사회는 ‘외적 성취’를 강조하지만, 정약용은 인간의 근본은 여전히 내면의 양심이라고 말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눈을 속이지 않는 삶. 결국 자기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성취와 평안을 가능하게 합니다.


정약용은 말과 행실에 대해 매우 엄격했습니다. 그는 “말은 곧 마음의 거울이니, 다정히 하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말과 침묵의 균형을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말은 더욱 절실합니다. 쉽고 빠른 말이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다정함과 절제가 동시에 필요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험담이나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이 결국 존경받습니다.


정약용은 ‘사람을 가까이 두는 법’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조언을 남겼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은 멀리하라”는 그의 충고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습니다. 좋은 관계란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관계이지, 달콤한 말로만 위로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또한 “관계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것”이라는 통찰은, 건강한 ‘우리’를 위해서는 먼저 ‘나’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공동체 속에서 자주 ‘나’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균형 잡힌 시각을 줍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정약용은 늘 큰 뜻을 품는 자의 태도를 말합니다.

📌“목표가 클수록 혼자일 각오를 하라.”
📌“절제하지 못하면 결국 막힌다.”

이러한 말들은 ‘위대한 뜻’이 그만한 고독과 절제,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고통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또한 꿈을 크게 꾸지만 실행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합니다.


책을 읽으며 정약용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멘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의 말은 추상적 교훈이 아니라, 현실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합니다.

✔️양심을 지켜야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
✔️관계 속에서도 예의와 존중이 기본이다.
✔️목표가 크면 그만한 외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결국 다산의 메시지는 📌‘사람답게 살라’는 것입니다.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과제.


정약용의 물음은 200년 전 유배지에서 태어났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황을 탓하며 제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큰 뜻을 품은 자여, 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 책은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앞으로 걸어가게 만드는 힘을 주는 길잡이입니다. 책을 덮으며, 내 삶에서 멈춰 선 지점들이 어디인지, 그리고 다시 걸음을 떼기 위해 어떤 ‘양심’과 ‘의지’를 세워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산처럼 거창한 뜻을 품진 못하더라도, 최소한 흔들리지 않는 내 기준을 세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다산이 오늘 우리에게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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