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실격 시즌 3 - 꼴랑 영화 하나로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감독실격 3
Zinn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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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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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고 하면 흔히 작품의 성공과 실패, 흥행 성적이나 작품성 같은 결과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감독실격 시즌 3》가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화려한 모습보다 영화를 만들지 못한 채 오랫동안 주변을 맴도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데 있다.

최 감독은 데뷔작의 실패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그 10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아니다.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미팅을 하고, 작품을 고치고,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그럼에도 외부에서 보이는 것은 ‘10년 동안 작품이 없는 감독’이라는 한 줄짜리 이력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폭망 감독’이라는 표현이다. 웃기고 우스꽝스러운 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자존감이 서서히 깎여나가는 과정이 들어 있다.

🔖“경력 단절 10년이라니..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비어 있다고 아무 일도 한 건 아니다.”

사회에서는 결과가 없는 시간을 쉽게 ‘공백’이라고 부른다. 취업을 준비했지만 취직하지 못한 시간, 책을 썼지만 출간되지 않은 시간, 작품을 만들었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한 시간처럼 말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그 시간은 결코 비어 있지 않다. 수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했던 시간이기 때문이다.

최 감독의 비참함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자신은 분명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세상은 그것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감독실격 시즌 3》가 재미있는 이유는 이 인물을 불쌍한 사람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 감독은 찌질하다. 허세도 있고, 질투도 많고, 자기합리화도 심하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면서도 자신은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자신을 대단한 감독으로 봐주기를 바라면서도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

그 모순이야말로 이 인물을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끼게 만든다.

책 속에서 자신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시나리오 속 감독이 사실은 “찌질하기 짝이 없는 폭망 감독” 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아주 잔인하고 우스운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최 감독이 그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감독이라는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체면과 기회를 지키기 위해 불쾌한 감정마저 삼킨다.

영화판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영화를 잘 만드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누구를 필요로 하는지, 누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누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지까지 끊임없이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영화계의 민낯’이라는 말보다 '사람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방식의 민낯'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최 감독에게 영화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에 가깝다.
그래서 그는 계속 묻는다.
내가 다시 영화를 찍으면 무엇이 달라질까.

흥행하면 행복할까.
유명해지면 인정받을까.
젊고 능력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으면 내가 덜 초라해질까.

그런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험한 꼴을 견디고 있는 걸까?”라는 문장에 이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처음에는 감독으로서의 재기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최 감독이 붙잡고 있는 것은 영화 한 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명.
그래서 영화 한 편이 이렇게까지 중요해진다.

이 작품에서 욕망은 하나의 얼굴만 가지고 있지 않다. 작품을 만들고 싶은 욕망, 성공하고 싶은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돈을 벌고 싶은 욕망,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이 서로 뒤엉킨다. 그리고 욕망이 커질수록 자기합리화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최 감독은 점점 자신이 무엇을 위해 행동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 지점에서 《감독실격 시즌 3》는 영화감독 이야기에서 창작자 전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글을 쓰는 사람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는 사람이라면 비슷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창작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가 어렵다. 열심히 했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쉽게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한다.

그래서 최 감독의 질투와 허영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서 해봤을 법한 생각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하는 마음,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타인을 은근히 낮춰 보는 마음, 인정받고 싶어서 관계를 계산하는 마음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특히 🔖“감독님이 본인 영화를 부끄러워하면 배우들은 뭐가 되나요”라는 목차의 문장은 작품 전체의 아이러니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평가하고 부끄러워할 권리가 있지만, 그 작품에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얼굴을 걸었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작품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소유이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욕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바라보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영화판이라는 공간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의 방향성이다. 창한이라는 인물이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라보는 장면은 ‘성격 나쁜 사람’에 대한 묘사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공손하면서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할 수 있다는 불편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런 장면들이 들어가면서 《감독실격 시즌 3》의 블랙유머는 인간의 허영과 위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감독’이라는 단어도 재미있다. 감독이라고 모두 같은 감독이 아니다.

필모그래피가 있는 감독과 없는 감독, 성공한 감독과 실패한 감독, 투자받는 감독과 투자받지 못하는 감독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 존재한다.

‘감독’이라는 직함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폭망 감독에서 긁지 않은 복권 같은 감독으로 업그레이드" 라는 표현은 꽤 날카롭다.

사람 자체가 달라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타인의 시선은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군가를 평가할 때 정말 그 사람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 사람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는 것일까.

특히 딸 세미가 아빠가 감독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최 감독에게 꽤 잔인한 장면이다.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감독’이고 싶지만 집에서는 그저 한 사람의 아버지일 뿐이다.
더구나 그 아버지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간극은 더욱 커진다. 이 부분에서 최 감독의 외부적 욕망과 내부적 외로움이 맞물린다.
그는 영화를 찍고 싶은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다시 인정받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인정 욕망은 끝이 없다. 한 번 인정받으면 더 큰 인정을 원하고, 한 번 성공하면 다음 성공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라는 문장이 최 감독의 삶을 설명하는 동시에 인간 자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웃음보다 씁쓸함이다.
최 감독을 보며 웃다가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마음속으로 질투한 적은 없었는지, 인정받고 싶어서 필요 이상으로 애쓴 적은 없었는지, 실패한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스스로 평가한 적은 없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최 감독은 우리가 감추고 싶은 모습을 조금 더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인물에 가깝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지만 현실은 뜻대로 되지 않고, 포기하면 편해질 것 같으면서도 막상 포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성공이 부러우면서도 그런 자신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 감독의 어딘가를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후반부의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극장은 망했고 영화는 끝났다.”라는 대목은 앞선 욕망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그토록 원했던 것을 포기하면 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 하지만 정말 포기할 수 있을까.

《감독실격 시즌 3》의 여운은 ‘그래서 최 감독이 성공했는가?’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은 왜 실패하면서도 다시 같은 꿈을 꾸는가라는 질문으로 남는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돈이 많이 벌려서도 아니다.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원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꿈을 포기하는 순간 실패를 인정해야 할 것 같고,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모두 무의미해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꿈을 포기하지 못했던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다시 꿈을 좇기도 한다.

사람은 정말 성공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계속하는 걸까.

영화 한 편을 만들고 싶다는 최 감독의 욕망은 한 사람의 존재 증명에 대한 욕망으로 읽힌다.

그래서 《감독실격 시즌 3》가 남기는 묵직한 여운은 실패했음에도 끝내 포기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상한 끈질김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웃기면서도 가장 슬픈 순간은 바로 그런 때인지도 모르겠다.

이미 충분히 지쳤고, 그만두는 편이 편할 것 같은데도
마음 한구석에서 여전히 ‘한 번만 더’를 외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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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격 시즌 2 -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들고 협박했냐 감독실격 2
Zinn 지음 / 9월의햇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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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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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완성된 화면으로만 만난다. 극장에 앉아 두 시간 남짓한 이야기를 보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면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도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사람의 욕망과 계산, 타협과 좌절이 겹겹이 쌓인다. 특히 감독에게 영화 한 편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자존심, 능력과 실패를 모두 걸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실격 시즌 2》를 읽기 전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소제목이었다.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웃긴 제목인데, 이상하게 웃고 나면 씁쓸하다. 정말 그렇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선택했고, 힘들면 그만둘 수도 있는데 끝내 놓지 못한다. 그런데 그 꿈을 붙잡고 있는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초라하고, 비겁하고, 질투에 휘둘리고, 자기합리화로 가득하다.

최 감독은 흔히 생각하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멋진 창작자’와는 거리가 멀다. 데뷔작의 실패 이후 10년 동안 차기작을 만들지 못했고,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에 매달리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꽤나 찌질하다. 잘되는 후배가 신경 쓰이고,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에게 서운하고, 제작사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 자존심이 흔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인간적이다.

실패한 뒤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사실은 상처받았으면서 괜찮은 척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기보다 환경과 타인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지는 마음. 나보다 잘되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하기 어려운 마음. 다시 기회가 오면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마음.

그것은 영화감독에게만 존재하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최 감독의 이야기를 영화계의 특수한 이야기로만 읽기보다는 ‘실패한 뒤에도 자신이 실패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읽게 된다.

특히 책 속 문장 중🔖“나는 잘못 없다.” 라는 최 감독의 태도는 이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처럼 느껴졌다.

사실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믿어온 능력과 자존심까지 함께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실패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다. 제작사가 문제였고, 투자자가 문제였고, 환경이 문제였고, 운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자기합리화를 거창한 심리 분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최 감독의 말과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더 웃기고, 동시에 더 아프다.

책 속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화라는 꿈에 대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작품 초반에는 영화가 다른 예술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하게 보이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창작자를 꿈꾸는 일반인들에겐 유난히 영화가 만만하게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 문장은 영화라는 매체를 둘러싼 묘한 착시를 생각하게 했다.
그동안 영화를 너무 쉽게 소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영화 한 편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와 연출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반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를 만나면 ‘내가 만들어도 이것보다는 잘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하지만 관객으로 영화를 보는 것과 영화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영화 한 편에는 시나리오, 배우, 촬영, 미술, 편집, 음악, 제작비, 투자, 배급 등 수많은 요소가 얽혀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사람이 있다.
영화는 기술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이해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감독실격 시즌 2》가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의 비영화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화면에는 나오지 않는 회의실의 눈치, 시나리오 수정, 캐스팅을 둘러싼 계산, 제작사의 사정, 투자와 흥행에 대한 압박, 누가 누구와 친한지에 따라 달라지는 분위기까지.

영화는 예술이지만, 영화 제작 현장은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인 비즈니스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최 감독은 예술가이고 싶어 하지만 생존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작품을 지키고 싶어 하지만 제작사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다.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만 기회를 놓칠 수도 없다.
바로 이 모순이 이 소설의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나의 실패는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책의 질문들이 이 한 문장에 상당 부분 압축되어 있는 듯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실패가 자신의 잘못 때문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모든 실패를 외부의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다.

어쩌면 실패 이후 가장 어려운 일은 ‘내가 잘못한 것과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을 구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 감독은 그 경계에서 계속 흔들린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다시 기회를 얻고 싶어 한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싶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영화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감독이라는 직함과 인정받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왜 저래'라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 아주 조금 불편해진다.

‘나도 비슷한 적이 있지 않았나?’

실패한 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변명했던 순간, 누군가의 성공을 축하하면서도 속으로는 질투했던 순간, 내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어 다른 이유를 찾았던 순간.
최 감독의 찌질함이 웃긴 이유는 그것이 완전히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의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한국의 감독은 둘 중 하나야. 원래부터 돈이 많은 감독과 그렇지 않은 감독.”

이 문장은 영화계의 경제적 현실만을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무리 좋은 시나리오가 있어도 제작비가 필요하고, 좋은 작품을 만들려면 사람을 모아야 하고, 영화가 완성되어도 개봉과 배급이라는 또 다른 문턱을 넘어야 한다. 창작자의 능력과 작품의 완성도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지 않는 세계다.

특히 책 속에서 소개되는 최 감독의 영화 인생은 그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단편영화로 해외 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두고, 장편 시나리오로 공모전 대상을 받았지만 상업영화 제작은 계속 무산된다. 결국에는 정부 지원으로 독립 장편영화를 만들고,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일을 하면서 3년이 걸리고, 개봉까지 기다려야 한다. 시나리오 집필부터 개봉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여기서 가장 씁쓸한 것은 재능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기회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마음도 조금씩 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작품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감독’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싶어지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지고,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의식하게 된다.

꿈이 어느 순간부터 꿈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수단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때부터 꿈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을 괴롭히기 시작한다.


최 감독의 욕망을 더욱 재미있게 보여주는 장면은 재기를 꿈꾸는 순간이다.
🔖“아무도 거절할 수 없는 시나리오를 들고 혜성처럼 컴백! 모두가 내 시나리오에 열광하며 달려드는 바로 그 순간!”

‘나 아직 안 끝났어.’
‘내가 다시 보여줄 수 있어.’
‘이번에는 사람들이 나를 인정할 거야.’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보지 않았을까.
한동안 잘되지 않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순간.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이 놀라고, 자신을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찾아오고, ‘역시 그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듣는 순간.

최 감독이 꿈꾸는 컴백은 자신의 인생을 다시 쓰고 싶은 욕망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재기는 자신이 실패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싸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 속 ‘실격’이라는 단어도 오래 생각하게 된다.

누가 누구를 실격시킨 것일까.
영화계가 최 감독을 실격시킨 것일까.
관객이 실격시킨 것일까.
흥행 실패가 그를 실격시킨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망한 감독’이라고 규정하면서 자기 자신을 실격시킨 것일까.

사람은 한 번의 실패로 정말 실격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 감독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아닐지도 모른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다시 시도하는 사람을 어디까지 실패자라고 불러야 할까.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핑계를 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은 과연 비웃어야 할까, 아니면 이해해야 할까.


이 작품의 블랙코미디가 좋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실패를 다룬 이야기는 실패를 극복하는 감동적인 서사로 흘러가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실패한 사람이 반드시 성숙해지거나 깨달음을 얻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실패했다고 갑자기 현명해지지 않는다.
상처받았다고 해서 타인을 질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좌절했다고 해서
자신의 부족함을 곧바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실패한 뒤에도 여전히 허세를 부리고, 여전히 남을 부러워하고,
여전히 자기합리화를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래서 최 감독이 웃기면서도 짠하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즌2를 읽고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본다면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포기하면 편할 텐데 포기하지 못하는 것.
이제는 그만 내려놓아도 될 것 같은데 계속 붙잡는 것.
그것이 꿈인지 미련인지, 자존심인지 집착인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

최 감독은 영화라는 꿈을 붙잡고 있지만, 그 꿈이 정말 영화 자체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으로 인정받는 나’를 향한 것인지는 끝까지 모호하다.

그 모호함이 오히려 좋았다.
사람이 무언가를 계속 원하는 이유가 언제나 순수하고 명확한 것은 아니니까.

사람은 계속 앞으로 간다.
왜 가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누가 영화감독 하라고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책 제목을 생각하다보면 실제로 붙잡고 있는 많은 것들이 그렇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포기하지 못하는 일.
인정해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계속 애쓰는 일.
성공을 보장해준 것도 아닌데 다시 시작하는 일.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실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곧바로 끝난 사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진짜 ‘실격’은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웃기면서도 씁쓸하고, 찌질해서 외면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건드리는 소설.

과연 몇 번까지 실패해야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직도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는 동안에는, 끝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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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실격 시즌 1 - 이걸 영화라고 찍었냐 감독실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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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카메라 뒤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떠올린다.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과 자본을 움직이고, 자신의 이름을 작품에 새기는 사람. 그래서 감독에게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가까이 붙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감독 실격》은 그 반대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미 한 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지만 실패했고, 데뷔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다음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감독.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스스로도 의심하고, 다른 감독의 성공을 부러워하면서 질투하고, 매일 아침 자신의 데뷔작 평점과 관람평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

이 인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아마 이 소설의 가장 묘한 힘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주인공 최감독은 자신이 ‘폭망한 감독’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화판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알고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안다. 문제는 타인의 시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이미 자신의 안에 자리 잡은 자기혐오와 패배의식이라는 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못 쓴다. 창작의 재능이 없는 것이다.”

영화감독의 자기고백으로만 읽히지 않았다. 오랫동안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실패의 원인을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찾기 시작하는 순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제작사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투자자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가 반복되면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외부의 이유를 찾는 일을 포기한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내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건 아닐까.’
《감독 실격》은 바로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특히 주인공이 자신의 데뷔작을 둘러싼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는데도 그의 인생에서는 끝나지 않은 것이다. 작품은 과거의 실패로 남았지만, 주인공에게는 현재진행형의 낙인이 되어 있다.

🔖“평점과 관람평 체크는 10년 전 데뷔와 동시에 폭망 이후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모닝 루틴이다.”

이 장면은 처음 읽을 때는 우스꽝스럽다. 망한 영화의 평점을 10년째 확인한다는 행동 자체가 너무 집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 다르게 생각하면 이것만큼 슬픈 행동도 없다.
정말 잊고 싶다면 보지 않으면 된다.
정말 아무렇지 않다면 확인할 이유도 없다.
그런데 그는 매일 확인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고, 혹시라도 자신의 영화를 다시 좋게 봐주는 사람이 나타났을지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자신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면서 오히려 그 실패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실패를 극복하지 못할 때 실패를 자신의 이름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폭망 감독’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는 것도 그래서 유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감독 실격》은 영화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내가 이 작품에서 더 크게 보았던 것은 영화계 그 자체보다 사람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이었다.
경력, 흥행 성적, 인지도, 투자 가능성, 인맥.
어떤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끊임없이 계산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기획사에서 기다림을 강요당하고, 어린 후배 PD에게 일방적으로 시간을 통보받고, 두 시간 동안 방치되는 장면은 안쓰러웠다.

🔖“내가 아무리 폭망 감독이라 해도 이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더 아픈 부분은 ‘폭망 감독이라 해도’라는 말이었다.
이미 주인공 스스로 상대가 자신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이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했다고 해서 무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실패를 오래 경험한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부당한 대우조차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감독 실격》은 영화계의 갑질이나 냉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이 들어가 그 구조가 한 사람의 자존감을 어떻게 갉아먹는가를 보여준다.

‘나는 원래 이런 대우를 받을 사람인가?’

이 질문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부터 타인의 무시는 더 이상 외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까지 침투한다.

이 작품에서 최감독은 ‘좋은 사람’으로만 그려지지 않는다.

질투. 욕망. 허세.
다른 사람의 성공을 배 아파한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물이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실패한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겸손하고 성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가 오래될수록 사람 안에는 열등감과 질투, 자존심과 욕망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특히 다음 문장은 이 작품의 인물을 아주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남 영화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굉장히 솔직하다.
보통 다른 사람의 성공을 축하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의 성공이 나의 실패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특히 같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왜 안 되지?’
‘저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는데 왜 나에게는 오지 않지?’
‘저 사람이 성공했다는 사실이 결국 내가 실패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감독 실격》은 이런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지 않아서 진짜 같다.

동민이라는 인물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동민은 영화과 졸업 후 입봉 준비만 17년째 중인 감독 지망생이다.”

17년.
숫자만 놓고 보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긴 시간이다. 하지만 작품 속 설명처럼 공모전에 떨어지고, 제작을 준비하다가 무산되고, 계약이 성사될 듯하다가 사라지고, 다시 다른 작품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더 씁쓸한 것은 동민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생에 감독 데뷔는 글렀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
최감독은 이미 실패한 감독이고 동민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감독 지망생이다. 그래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묘한 위안을 얻는다.

🔖“동민은 폭망 감독보다는 감독 지망생이 낫다는 주의다. 감독 지망생에겐 미래가 있지만 폭망 감독에겐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참 씁쓸하면서도 재미있었다.
둘 다 상대방보다 자신이 아주 조금은 나은 위치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완전히 행복해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적어도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낫다’는 아주 작은 우월감으로 버티기도 한다. 반대로 누군가의 실패를 보며 자신의 실패를 위로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을 악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그저 너무 오래 실패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영화계 블랙코미디로만 읽히지 않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욕망과 윤리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여배우와 관련된 장면들은 최감독의 내면에 있는 욕망과 자기합리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어디까지 가도 되는지 끊임없이 계산한다. 감독이라는 위치, 상대방의 호의, 술자리, 계약과 평판 등을 머릿속으로 저울질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한다.
🔖“술 한 잔 까지는 괜찮겠지?”

이런 문장들이 재미있는 이유는 너무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큰 잘못을 하기 전에 대개 작은 허용부터 만든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이건 별일 아니겠지.’

그렇게 자기 안에서 허용 범위를 조금씩 넓혀 간다.

《감독 실격》은 이 과정을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보여준다. 그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게 하기보다, 사람이 욕망 앞에서 얼마나 쉽게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

그런데 이 소설의 진짜 힘은 처절한 상황을 굉장히 웃긴 방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두 시간을 기다리면서도 상대방의 의도를 분석하고, 자신의 자존심이 어떻게 보일지 고민하고, 식사 시간이 애매하다는 것까지 계산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분명한 절망이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에게 화를 내고 싶지만 기회를 잃을까 봐 참는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음 작품을 위해 견딘다.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모습은 영화계 사람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인간관계에서, 창작의 자리에서, 혹은 꿈을 좇는 과정에서 한 번쯤 비슷한 감정을 경험한다.

‘이렇게까지 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야 하나?’
그런데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못 쓴다. 창작의 재능이 없는 것이다.”

이 문장은 자기비하처럼 보이지만,
책 전체를 읽고 나면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 같다.

정말 재능이 없는 사람일까?
혹은 실패를 너무 오래 경험한 나머지 자신에게 그렇게 말해야만
버틸 수 있게 된 사람일까?

창작자에게 재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지, 실패가 정말 실력 부족의 결과인지 우리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하지 못했다고 해서 감독의 모든 능력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의 성공이 그 사람의 모든 재능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결과가 사람을 규정한다.

흥행하면 ‘실력 있는 감독’이 되고, 실패하면 ‘망한 감독’이 된다.
그리고 그 이름표가 한 사람의 다음 기회까지 결정한다.

그래서 제목인 《감독 실격》도 읽고 나면 달리 보인다. 누군가에게 ‘실격’ 판정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까지 부정당하는 경험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감독은 포기하지 않는다. 다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게 이 사람의 가장 이상하면서도 솔직한 모습이다.

정말 영화를 싫어했다면 진작 떠났을 것이다.
정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면 매일 데뷔작의 평점을 확인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포기했다면 다시 시나리오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를 계속 움직이는 것은 성공에 대한 욕망이면서 동시에 영화에 대한 미련이다.


영화판을 넘어, 실패를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은 영화산업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재미를 줄 것 같다. 감독과 제작사, 투자자, 배우, PD, 작가 지망생 등이 서로 어떤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이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영화보다 훨씬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패한 사람은 언제까지 실패한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가.
한 번의 실패가 그 사람의 다음 기회까지 결정해도 되는가.
다른 사람의 성공 앞에서 질투하는 마음은 정말 부끄러운 것인가.
꿈을 오래 좇는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일까, 아니면 때로는 미련한 일일까.

‘폭망 감독’
처음에는 우스운 표현이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그 말이 한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따라다니는 낙인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한두 번쯤 실패한다.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사랑에 실패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 아무런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사건과 실패한 인간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쉽게 둘을 동일시한다.

한 사람을 실패라는 단어 하나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굳이 교훈적인 문장으로 말하지 않고 최감독의 하루하루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실패 자체가 아니라,
실패한 뒤 스스로에게 ‘너는 이제 끝났다’고 말하는 일이 아닐까.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때로는 구차하고, 욕심 많고, 질투하고, 비겁하고, 초라하다.
그래도 계속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면 사람은 다시 그곳을 향해 돌아간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두의 마음 한구석에는
작은 ‘폭망 감독’이 하나씩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잘될 거라고 믿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일,
아직도 가끔 검색해 보는 오래된 실패,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부러워했던 순간,
이미 포기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해보고 싶은 꿈.

그 모든 것을 떠올리고 나면 ‘실격’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보인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정말 실격인 걸까.
아니면 아직 다음 장면이 시작되지 않았을 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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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공부다 - 4점짜리 꼴찌에서 아이비리그 학생이 되기까지
손동민 지음 / 비욘드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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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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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야 진짜 공부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공부’보다 ‘길을 잃어야’라는 말이었다. 대개 길을 잃는 것을 실패로 생각한다. 남들보다 늦어지고, 계획에서 벗어나고, 뚜렷한 목표 없이 헤매는 시간을 인생에서 지워야 할 낭비처럼 여기기도 한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취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조금만 다른 길을 선택해도 ‘왜 남들과 다르게 가느냐’는 질문을 받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아주심기’라는 비유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모종을 더 넓은 땅으로 옮겨 심는 아주심기는 익숙하고 안전한 환경을 떠나 낯선 흙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오히려 더 힘들고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뿌리가 뻗을 공간이 넓어져야 비로소 식물도 자기 크기만큼 자랄 수 있다.

사람의 성장도 비슷하지 않을까.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적지만, 동시에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경험도 제한될 수 있다. 반대로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면 당장 잘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의 성공 자체보다 성공에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다. 수학 4점이라는 열등감, 따돌림의 경험, 파일럿이라는 꿈의 좌절, 대학이라는 정해진 경로 대신 선택한 낯선 경험들.

겉으로만 보면 효율적인 인생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간들이다. 하지만 책은 그 시간을 뒤늦게 성공하기 위한 ‘스펙’으로 포장하기보다,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이해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 지점에서 ‘성장에는 반드시 직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장이라는 말을 들으면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가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깔끔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때는 멈추기도 하고,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한참을 돌아가기도 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경험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있기도 한다.

책 속의 🔖“방황은 낭비가 아니라, 나를 더 나답게 빚어가는 치열한 성장의 과정”이라는 문장이 바로 그런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방황’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좋았다. 물론 모든 방황이 저절로 의미 있는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무조건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방황하는 동안 무엇을 경험하고, 무엇을 배우며, 그 경험을 어떻게 자기 삶의 방향으로 연결하느냐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이야기에서 ‘방황해도 괜찮다’는 길을 잃었을 때 그 시간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에 가깝게 느껴졌다.


또 하나 마음에 남은 것은 아이비리그라는 결과보다 그곳에서조차 계속되는 불안과 고통을 솔직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흔히 말해 명문대 입학을 인생의 결승선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출발점일 뿐이다. 책에서는 아이비리그에서의 첫 학기를 에베레스트의 ‘데드존’에 비유한다.

🔖“아이비리그에서의 첫 학기는 내게 딱 그런 기분이었다.”

이 대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컬럼비아대학교에 들어갔다’는 화려한 결과 뒤에도 여전히 버거운 현실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어렵게 얻은 기회라고 해서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서는 또 다른 기준과 경쟁, 불안과 외로움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성공을 하나의 목적지가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을 적응시키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배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처음에는 배를 ‘도피’의 수단으로 선택했지만, 그곳에서 오히려 사람과 연결되는 경험을 한다.

🔖“내가 ‘도피’로 선택했던 이 배가, 사실은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사람’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이 문장은 책 전체의 흐름과도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소를 바꾸거나 새로운 일을 선택할 때가 있다. 그런데 때로는 도망쳤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진짜 나를 만나게 되기도 한다. 익숙한 관계와 환경에서 벗어나야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의 의미도 달라진다.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시험 성적만을 공부라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7년은 상당 부분 비효율적인 시간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을 경험하고, 사람을 만나고, 노동하고, 실패하고, 다시 선택하는 과정 역시 한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공부가 될 수 있다.

책의 목차에 있는 ‘공부는 지식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라는 문장이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공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모르는 것을 어떻게 대하는지, 실패했을 때 어떻게 다시 시작하는지, 다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배우는지까지 공부의 영역을 넓혀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청춘에게만 필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에게도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모든 길을 미리 닦아주는 것이 정말 사랑일까?
실패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언제나 좋은 부모의 역할일까?

책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아이 대신 인생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기 힘으로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에 더 가깝다.

물론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녀가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늦어지는 것처럼 보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원하는 곳에 내 발로 도착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남은 문장은 프롤로그의 이 부분이었다.
🔖“중요한 건 무너지지 않는 속도가 아니라,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방향’이다.”

속도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 시대라서 그런지 더욱 마음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늘 비교한다. 누군가는 나보다 먼저 대학에 가고, 누군가는 더 빨리 취업하고, 누군가는 더 많은 돈을 벌고, 누군가는 더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보면 내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조급해진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는 것과 방향이 틀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조금 늦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알고 있다면 다시 걸을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이라면 언젠가는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길을 잃어야 진짜 공부다’라는 제목은 길을 잃은 순간에도 나 자신에게 질문하는 사람이 자기만의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생각이 남았다.
인생에는 누구에게나 각자의 ‘화분’이 있는 것 같다. 부모가 만들어준 안전한 환경일 수도 있고,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일 수도 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고, ‘나는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돼’라고 스스로 정해버린 한계일 수도 있다.

그 화분이 나를 보호해주는 동안에는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뿌리가 더 이상 뻗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어쩌면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화분이 아니라 화분 밖으로 나갈 용기일지도 모른다.

물론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곧바로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낯선 땅에서는 한동안 시들어 보일 수도 있고, 비바람을 맞을 수도 있다. 남들보다 늦게 자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식물마다 자라는 계절이 다르듯 사람에게도 자기만의 시간이 있으니까.


《길을 잃어야 진짜 공부다》는 ‘꼴찌에서 아이비리그까지’라는 극적인 결과만으로 기억할 책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그 결과에 도착하기까지 돌아갔던 수많은 길, 실패했던 선택, 외로웠던 순간, 다시 시작했던 시간들을 통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경험이 어떻게 의미 있는 자산으로 바뀌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힌다.

'나는 지금 어디에 심겨 있는가.
그리고 이곳에서 정말 내 뿌리를 충분히 뻗고 있는가.'

혹시 지금 남들보다 뒤처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될 것 같다. 아직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고 해서 반드시 길을 잃은 것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지금 걷고 있는 돌아가는 길 위에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방황이 실패한 시간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가장 깊이 공부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조금 늦게 도착한 삶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을까.

빠르게 자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뿌리내릴 땅을 스스로 찾는 것.
이것이 《길을 잃어야 진짜 공부다》가 남기고자 할 여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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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잃어야진짜공부다 #비욘드 #손동민
#자기계발 #처세술 #신간 #신간도서 #동기부여
#도서리뷰 #서평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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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는 뇌 - 오늘의 선택을 내일의 자산으로 만드는 생각법
가미오카 마사아키 지음, 류두진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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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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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는 뇌》를 읽으며 가장 먼저 붙잡게 된 생각이다. ‘투자’라고 하면 주식이나 부동산, 펀드처럼 돈을 넣고 수익을 기대하는 행위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투자는 훨씬 넓다. 내가 가진 돈뿐 아니라 시간, 노동력, 경험, 에너지까지 어디에 사용하고 무엇으로 되돌려 받을 것인지 고민하는 모든 선택이 투자라는 것이다.

이 관점으로 바라보면 하루의 모습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출근하는 시간도, 책을 읽는 시간도,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도, 새로운 일을 배우기 위해 들이는 노력도 모두 미래의 나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행동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나 충동적인 소비 역시 내가 가진 자원을 사용한 선택이다. 투자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 자원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소비 뇌’와 ‘투자 뇌’를 구분하는 방식이었다. 소비는 지금의 만족을 위해 자원을 사용하지만, 투자는 미래의 가능성을 키우기 위해 현재의 자원을 배분한다. 그렇다고 모든 소비를 나쁜 것으로 몰아가는 것도 아니다.

책 속에서 🔖“돈을 절약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를 최대한 줄여 무리하게 뭔가를 포기하거나, 사고 싶은 책이나 여행을 참거나, 투자해야 할 시점에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미룬다면 돈을 포함해 인생의 그릇 자체가 작아지고 만다.”라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이 문장은 투자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균형 있게 만들어 준다. 무조건 아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지금의 나를 성장시키고 삶의 경험을 넓혀 주는 지출이라면 그것 역시 미래를 위한 투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를 썼느냐보다 무엇을 위해 썼느냐에 가까울 것이다.

또 하나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은 ‘기회 손실’이라는 개념이었다. 돈을 잃는 것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지만, 하지 않아서 놓친 기회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 쉽게 지나친다.

책에서는 🔖“투자 뇌에서는 인생의 모든 사안을 기회 손실 여부로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 선택하지 않은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배우고 싶었지만 미뤄 둔 것, 해보고 싶었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작하지 않은 것,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를 피한 것,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함에 머문 것. 이런 것들은 당장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간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형태의 비용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그래서 🔖“실패도 100% 경험으로 만들면 된다. 망설임 끝에 실천하지 않아 나타나는 기회 손실은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큰 손실액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도 강하게 다가왔다.

물론 모든 행동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투자에서도 손실이 존재하듯 인생의 선택에도 실패는 따라온다. 하지만 실패한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 실패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선택의 판단력을 높여 주는 자산이 될 수 있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성공도 실패도 경험할 수 없다.
이 책이 말하는 ‘투자 뇌’는 행동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그것을 다시 미래에 재투자하는 사고방식에 더 가까워 보였다.

경험을 자산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흥미로웠다.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만 가치 있는 자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살아오며 배운 것, 실패하면서 깨달은 것,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얻은 것, 특정 분야에서 쌓은 지식과 감각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특히 🔖“구체적으로는 몸에 밴 지식과 경험, 인맥은 행동에 바로 활용하길 바란다. 복리는 이때 작동한다.”라는 문장은 경험의 진짜 힘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경험은 단순히 많이 가지고 있다고 저절로 가치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행동과 연결할 때 복리처럼 증폭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 역시 현실적으로 와닿았다. 하루 24시간이라는 조건은 누구에게나 같지만, 그 시간을 무엇에 배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특히 아침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배움에 얼마나 시간을 쓰는지, 정보 소비와 실제 행동 사이에 얼마나 시간을 배분하는지는 장기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책의 메시지를 ‘무조건 생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휴식이나 취미, 여행처럼 당장 경제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도 삶에는 분명한 가치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소비인지 투자인지 스스로 알고 선택하는 것일 것이다. 쉬는 것조차 내게 에너지를 회복시켜 다음 일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것 역시 필요한 투자일 수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투자 뇌는 돈을 많이 버는 기술만을 뜻하지 않는다. 내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배분할지 판단하는 능력이고,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남길지 생각하는 습관이다.

“나는 지금 무엇에 투자하고 있는가?”

돈만 떠올렸다면 아마 책을 읽고 떠오른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 경험, 에너지, 노동력까지 모두 포함해 생각하니 답이 훨씬 복잡해졌다.

하루 동안 내가 사용하는 시간 가운데 미래의 나에게 남는 것은 얼마나 될까. 내가 배우는 것 중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얼마나 될까.
나를 성장시키는 관계와 경험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을까.
반대로 아무런 가치도 남기지 못한 채 흘려보내는 자원은 얼마나 될까.

《투자하는 뇌》는 먼저 내 삶의 자원을 바라보는 관점부터 바꾸라고 말하는 책처럼 느껴졌다. 특히 🔖“이미 일어난 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더 중요하다.”라는 문장도 오래 남는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앞으로의 행동으로 연결할지는 지금의 내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뒤 ‘부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가진 것을 허투루 사용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돈도 자산이고 시간도 자산이며 경험도 자산이라면, 오늘 하루를 보내는 방식 자체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투자 행위일 테니까.


무엇을 살 것인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지,
얼마나 아낄 것인지보다 어디에 배분할 것인지,
실패하지 않는 방법보다 실패를 경험으로 바꾸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오늘 내가 쓰는 시간과 돈, 그리고 에너지가 미래의 나에게 어떤 자산으로 남을 것인가. ‘투자하는 뇌’를 갖는다는 것은 이 질문을 매일 잊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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