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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고정순 지음 / 만만한책방 / 2026년 9월
평점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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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은 유배지에 머물렀지만, 마음과 배움까지 가둘 수는 없었다.
역사 속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다 보면 때로는 업적보다 그 업적을 만들어 낸 사람의 마음에 더 오래 시선이 머문다. 어떤 시간을 견뎌 냈는지, 누구를 그리워했는지, 무엇을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알고 나면 역사책 속 이름은 비로소 한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된다.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 《흑산》은 정약전과 정약용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통해 그런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책이다. 조선 후기 실학을 대표하는 두 형제가 정치적 격변 속에서 서로 다른 유배지로 흩어지고, 다시 만날 수 없는 거리에서 편지로 마음을 나누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애틋하다. 그러나 이 책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고립과 상실 속에서도 인간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서로를 아끼고 학문적으로도 깊이 교류했던 형제에게 이별은 세상의 이치를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지식을 나누던 동반자를 잃는 일이었을 것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정약전에게 흑산이라는 이름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낯선 섬과 검은 바다, 육지와 단절된 환경은 유배라는 현실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인 동시에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공간으로 변해 간다.
🔖“호기심이 많고 궁금한 것을 참지 못하는 나에게 흑산의 바다는 가장 커다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문장을 읽으며 배움이란 반드시 좋은 환경이나 충분한 기회가 주어져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유롭게 배우고 탐구할 수 있는 환경은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공간도 감옥이 될 수 있고, 세상으로 향하는 창이 될 수도 있다.
정약전은 자신이 원해서 흑산도에 간 것이 아니었다. 유배는 분명 부당하고 가혹한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온전히 절망으로만 채우지는 않았다. 그가 바라본 바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관찰하고 기록해야 할 지식의 대상이었다.
이 대목에서 환경의 한계와 삶의 가능성을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했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순간에도 그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완전히 빼앗기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정약전은 바다를 통해 자신이 머무는 장소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했고, 그 발견은 훗날 [자산어보]라는 결과물로 이어졌다.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흑산도 주변의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정리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의 특별함은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을 살피고, 생물의 특징과 쓰임을 관찰하며,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려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흑산》은 이러한 학문적 성취를 딱딱한 역사적 사실로 전달하기보다 한 사람의 일상과 감정을 통해 보여 준다.
정약전은 물고기를 관찰하고,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생물들을 비교한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호기심으로 보일 수 있는 일이 그에게는 중요한 탐구가 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만으로 세상을 판단하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정약전이 바다 생물의 특징을 알아내는 일이 섬사람들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는 대목은 실학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학문이 학문 자체의 권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삶에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지식의 진정한 가치는 얼마나 많이 아느냐보다 무엇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눈앞의 대상을 충분히 관찰하고, 서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듣고, 사실과 소문을 구분하는 태도는 여전히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약전이 바다를 바라보며 배운 것은 물고기의 생김새와 이름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그리고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래 들여다보아야 하는지도 배웠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산어보]는 지식의 기록인 동시에 한 인간이 절망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선택한 삶의 방식으로 읽힌다.
《흑산》에서 가장 애틋하게 다가오는 것은 형제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로를 걱정하고, 일상의 작은 일을 전하고, 학문에 관한 생각을 나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가 무엇을 궁금해할지 생각하고, 자신이 발견한 것을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어 한다.
다음 문장은 그 마음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신기한 것을 보면 가장 먼저 나에게 보여 주던 너였는데 네가 곁에 없는 지금에서야 그 마음을 이해하겠구나.”
유독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이었다.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재미있는 일이 생겼을 때,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 줄 것 같은 사람을 마음속에 두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정약전에게 동생은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함께 성장하고 공부하며 쌓아 온 시간은 서로 다른 유배지에 놓인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함께할 수 없게 된 순간,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관계의 소중함이 더욱 또렷해졌을 것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서, 언젠가는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마음을 뒤로 미룬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형제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리움은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그 사람과 여전히 연결되어 있고 싶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전은 편지를 통해 동생에게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고 알리고, 흑산의 풍경과 바다 생물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안에는 형으로서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도 있고, 학문을 함께 나누던 동료를 향한 마음도 있다.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동생을 안심시키려는 태도에서는 애틋함과 함께 인간적인 다정함이 느껴진다.
편지는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을 물리적으로 만나게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로의 하루를 알게 하고, 마음속 생각을 나누게 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되살려 준다. 유배지에서 편지는 두 사람을 이어 주는 작은 다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그 다리는 이어질 것이다. 수백 년 전에 쓰인 마음을 지금 읽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사람의 처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져도 그리움과 외로움, 이해받고 싶은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형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했으며, 동생 정약용은 강진에서 학문과 저술을 이어 갔다. 두 사람은 같은 정치적 사건으로 유배되었지만 각자가 마주한 환경과 일상은 달랐다. 그럼에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 속에서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섬마을 서당은 특히 의미 있게 다가온다. 정약전은 자신만의 연구에 몰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칠 공간을 마련한다. 정약용 역시 강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문을 이어 갔다. 두 사람에게 배움은 자신의 지식을 쌓는 일이면서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이기도 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배움이란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보다 조금 더 넓게 이해하기 위해 배우는 일, 자신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며 함께 성장하는 일도 충분히 의미 있다.
누군가는 배움의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가진 조건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포기한다. 나 역시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느끼거나, 지금의 환경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정약전과 정약용의 삶을 떠올리면 배움에는 하나의 정해진 장소나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궁궐과 관직에서 멀어졌다고 학문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고, 원하는 곳에 머물 수 없다고 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가능성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부당한 현실은 부당한 현실로 남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인간은 배우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가능성이 아닐까.
《흑산》은 정약전의 편지 형식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동시에 흑백 연필화로 독자를 흑산의 세계에 데려간다. 고정순 작가는 [자산어보]에 기록된 해양생물과 흑산의 풍경을 자신만의 흑백 그림으로 재현했다. 원작의 글에 그림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림책 《흑산》은 글로 기록된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흑백이라는 표현 방식이 이야기의 정서와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화려한 색채가 없기에 검은 바다의 깊이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의 움직임, 외로운 섬의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들었다.
검은색은 때로 두려움과 상실을 상징하지만, 이 책에서 흑산의 바다는 수많은 생명이 있고, 어부들의 노동이 있으며, 아이들의 배움이 있고, 정약전의 관찰과 발견이 있다.
처음에는 자신을 가두는 공간처럼 느껴졌던 바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지식을 만나는 세계가 된다는 점에서, 바다는 정약전의 내면을 비추는 풍경처럼 읽힌다.
고정순 작가가 정약전의 삶에 주목한 이유도 이 지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의 후반부에 실린 작가의 편지는 정약전의 유배와 작가 자신의 삶을 연결한다. 작가는 아픈 몸으로 인해 자유로운 이동과 경험에 제약을 받는 현실을 이야기하며,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배움의 길을 발견했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삶을 동일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약전이 겪은 정치적 유배와 작가가 겪는 신체적 제약은 서로 다른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한계 앞에서도 배움과 창작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삶은 서로를 비추는 듯하다.
정약전은 바다를 관찰하며 글을 썼고, 고정순 작가는 그가 바라보았을 세계를 연필로 그려 낸다. 그렇게 한 시대의 학문과 또 다른 시대의 예술이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림은 글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외로움과 생명력을 함께 전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어에 관한 이야기다.
흑산의 바닷가에는 인어를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사람들은 그 이야기에 여러 의미를 덧붙인다. 정약전은 자신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 이야기를 사실로 단정하지 않고,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퍼져 나가는지 생각한다.
이 장면은 자연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학자의 태도와 연결된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실제로 관찰한 것과 전해 들은 것을 구분하고,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에 무조건 기대지 않는 자세다.
정약전이 바다 생물을 자세히 살피고 기록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전에 그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기심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하는 출발점이지만, 호기심이 곧 믿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관찰과 검증, 그리고 자신이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가 함께할 때 비로소 이해는 깊어진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 보는 일과도 닮아 있다. 내가 직접 가 보지 못한 곳의 풍경을 만나고, 살아 보지 못한 시대의 고민을 이해하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책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혀 줄 수 있다. 지금의 환경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순간에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줄 수 있다.
정약전이 흑산의 바다에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듯이 고정순 작가는 책을 통해 정약전을 만났고, 그 만남을 다시 그림책으로 만들어 독자에게 건넸다. 그렇게 한 사람의 배움이 다른 사람의 배움으로 이어지고, 한 사람의 기록이 또 다른 사람의 창작을 이끌어 낸다.
이 연결이 참 좋았다.
배움은 혼자 시작할 수 있지만 언제나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내가 알게 된 것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받아들이며,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우리가 남기는 모든 기록이 업적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한 문장,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적어 둔 기록, 다른 사람과 나눈 작은 배움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과 연결하려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정약전은 흑산의 바다를 관찰하며 자신의 시간을 채웠지만, 그 바다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멀리 떨어진 동생이었다. 새로운 생물을 발견하면 보여 주고 싶었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함께 웃고 싶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이해해 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있었기에 그의 기록은 차가운 지식에 머물지 않고 한 인간의 삶을 품은 이야기로 다가온다.
익숙한 일상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세계를 무심히 지나치고 있지는 않을까.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일을 너무 쉽게 미루고 있지는 않을까.
그리고 내가 원하는 환경에 놓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금 할 수 있는 배움까지 포기하고 있지는 않을까.
《흑산》은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때로 삶은 우리를 원하지 않는 곳에 데려다 놓는다.
계획이 어긋나고, 관계가 멀어지고, 몸과 환경이 마음처럼 따라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잃어버린 것만 바라보느라 지금 곁에 남아 있는 가능성을 놓치기도 한다.
정약전의 삶이 내게 전해준 것은 고난이 사라지지 않는 순간에도 세상을 관찰하고, 배우고,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삶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쌓여 한 사람만의 기록이 되고, 훗날 다른 사람에게 길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검은 바다라고 해서 그 안에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약전에게 흑산의 바다는 처음부터 친숙한 세계가 아니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깃든 장소였지만, 그곳을 오래 바라보고 배우는 동안 새로운 생명의 세계가 열렸다. 동생을 향한 그리움은 편지가 되었고, 바다를 향한 호기심은 [자산어보]가 되었으며, 그 기록은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한 사람의 유배가 다른 사람의 배움이 되고, 오래전 형제의 편지가 오늘의 독자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 책이 가진 힘은 어쩌면 이런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지금의 삶에서 내가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당장 상황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마음을 놓지 않고,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미루지 않으며,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몸이 머무는 곳이 삶의 전부는 아니며,
지금의 한계가 앞으로의 배움까지 가두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일깨워 준 《흑산》.
검은 바다를 건너온 형제의 그리움은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길이 되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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