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자개장
박주원 지음 / 그롱시 / 202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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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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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되돌려 바꾼 건 사건이 아니라 ‘청취의 자세’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시간여행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가족소설입니다.

목적은 하나—혼수상태의 아버지에게서 “미안했다”는 말 한 번 듣는 것.
그러나 책이 보여주는 건
“누군가의 사과”보다 내가 들리지 않았던 말들을 마침내 듣는 법입니다.

《판타스틱 자개장》은 가족이라는 가장 가까운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상처와 화해의 과정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 속에 녹여낸 작품입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자연이라면’ 하고 자신을 투영하게 되고,
관계 속에서 전하지 못한 말들, 듣지 못한 사과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결국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이라는 것을.


박주원 작가는 일상의 디테일 속에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가진 소설가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오브제인 자개장을 소재로 삼아 시간여행이라는 판타지적 장치와 가족 서사를 결합합니다. 작가는 SF적 상상력을 현실의 상처와 화해라는 인간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춥니다.


자개장은 한국 전통 가구 중 하나로, 그 자체가 세월과 기억을 담아내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작품 속 자개장은 과거로 이어지는 포털이자, 주인공이 아버지와의 관계 속에서 풀지 못한 감정과 기억을 직면하게 만드는 매개체입니다. 또한
이 소설은 《사랑의 블랙홀》, 《어바웃 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등 ‘시간여행’이라는 테마의 계보에 서 있으면서도, 거꾸로 더욱 먼 과거로 흘러가고,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설정으로 차별성을 확보합니다.


작가는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의 상처와 마주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단순하게 시간을 되돌려 아버지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도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주인공 자연이 깨닫게 되는 관계의 본질, 사과의 의미,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화해가 핵심 주제입니다. 자개장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다시 돌아감’을 가능하게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바뀌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자연 자신의 시선과 마음이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였다.”

판타지의 문이 자개 무늬로 반짝일 줄은 몰랐습니다.
박자연(서른아홉, 공모전 발표를 기다리는 소설가 지망생)이 혼수상태의 아버지를 병실에서 마주한 날, 집에 돌아와 오래된 자개장 문을 열고 ‘한숨 푹’ 들어갔다 깨어나 보니 오늘은 어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제였다.”이 간결한 선언이 이 소설의 미학을 규정합니다.
시간여행이 스펙터클과 장치의 과시가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을 건져 올리기 위한 감정의 도구가 되는 순간입니다.


자연은 4년간 연을 끊었던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이미 코마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침대 옆에서 끝내 묻지 못했던 질문이 터집니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 아프더라도 사과하고 아프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방으로 돌아온 자연은 우연히 자개장 속으로 들어가고, 매번 문을 열 때마다 더 먼 과거로 밀려갑니다—하루 전, 이틀 전, 여드레 전, 보름 전… (심지어 자연의 108번째 시도라는 설정까지) 그 사이 ‘기억’도, ‘장면’도 미세하게 흔들립니다. 반복의 구조는 점차 집착에서 이해로 톤을 바꾸며, “아버지를 살려야 한다”는 목표가 “그 사람의 핵심을 이해하고, 나의 말을 건네는 일”로 이행합니다.


이 책이 《사랑의 블랙홀》, 《어바웃 타임》의 계보를 따르면서도 뚜렷이 다른 점은 규칙입니다. 통로는 점점 짧아지고, 도달하는 시간대는 점점 먼 과거로 물러납니다. 즉, 기회는 감소하고, 이해의 난도는 증가합니다. 이 장치 덕분에 소설은 “미래를 바꾸는 공학”이 아니라 “과거의 뿌리를 더 깊이 파고드는 인류학”으로 변주됩니다. 독자는 ‘결과를 바꾸는 해킹’이 아니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업데이트해야만 합니다. 이게 이 소설이 흔한 회귀물의 성취와 차별되는 대목입니다.


자개장은 한국 가정의 생활사 속에 놓인 오브제입니다. 표면의 빛나는 패턴은 읽을 때마다 다른 빛을 던지고, 그 밑에는 층층이 겹이 쌓입니다. 이게 곧 기억의 구조입니다. 작가는 자개장을 ‘나니아식 포털’로 쓰지 않습니다. 문턱을 넘는 순간, 독자가 보게 되는 건 판타지의 야경이 아니라 가족 앨범의 빈 자리입니다.
그래서 이 판타지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한국적입니다.
자개장은 “시간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자 “미안함과 사랑이 입 다물고 눕는 장소”입니다.


이 소설의 고무찰흙 같은 감정은 ‘사과’의 언어에서 탄력을 얻습니다.
자연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회한이 아닙니다.

📌“그냥… 최소한 한번이라도, ‘그래, 네 마음이 그랬구나’라는… 평범한 말.”우리가 가족에게서 가장 듣기 어려운 바로 그 문장.

자꾸만 과거의 도화선을 되감는 자연의 집요함은 타인의 마음을 ‘정답’으로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의 서사를 ‘완성’하는 일로 변합니다. 그러니 바뀌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의미’입니다.
(결말은 스포일러를 피해 적지 않겠습니다. 다만, “구원은 종종 사실의 변경이 아니라 감정의 정리에서 온다”는 사실만은 말해두고 싶습니다.)


시간여행이 이어질수록 ‘아버지’ 역시 한 사람의 생애로 서서히 윤곽을 드러냅니다. 📌“네가 해준 얘기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다, 나름의 의미가 있던 날들이더라고…”
그는 ‘엄격한 가부장’의 평면을 벗고, 결핍과 상황과 기질의 합으로 섭니다.
자연이 처음에는 사과를 ‘획득’하려는 욕망으로 뛰어들었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일로, 다시 내 이야기를 말하는 일로 이동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다."


이야기는 길지만, 장면 전환과 대화의 리듬이 경쾌합니다.
에피소드마다 작은 반전과 유머가 툭툭 튀고, ‘규칙-실패-수정’의 루프가 독자에게 게임적 몰입감을 줍니다. 무엇보다 자연의 1인칭 화법은 때로 엉뚱하고, 때로 자조적이지만, 자기연민의 늪으로 빠지지 않습니다.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는 문구가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책 말미의 통찰은 간명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지만, 해결의 답은 나 스스로 찾을 수밖에… 나를 이해하는 게 타인을 이해하는 길.”
그래서 이 책의 시간여행은 결국 자기 이해의 여행입니다.

“운명”과 “순리”를 말하며 삶의 불가역성을 일깨우는 문장들도 오랫동안 남습니다. 📌“아무튼 인간은 언젠간 모두 죽게 돼 있어… 하늘이 준 운명대로 사는 게 인간의 숙명.” 시간여행은 운명을 정복하는 장치가 아니라, 남은 시간의 밀도를 바꾸는 장치로 쓰입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빠를 구했는가’보다 ‘나를 구했는가’를 묻습니다.


이 작품, 오랜 시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마음을 가진 독자라면
자개장 문을 열 듯 조용히 들어가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반짝임 끝에, 정리되지 못한 말 한 줄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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