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들어 드립니다
창천 변호사들 지음 / 도서출판 독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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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나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법원이나 변호사, 판결문 같은 단어를 떠올리면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거대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 곳곳에는 이미 법이 들어와 있다. 집을 계약하는 순간에도, 가족과 재산을 나누는 순간에도, 회사를 다니는 순간에도,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에도 법은 보이지 않는 선처럼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그 선이 언제 끊어지는지, 내가 어느 순간부터 보호받지 못하는지를 평범한 사람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법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변호사의 문을 두드린다.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묻고, 평생 가족을 위해 진 빚이 이혼 후에는 왜 자신의 빚으로만 남는지 묻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뒤 자신에게 정말 잘못이 있었던 것인지 되묻는다.


살면서 비슷한 순간을 만나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았다.
상대방이 분명 약속을 어긴 것 같은데 계약서에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을 때, 분명 부당한 일을 당한 것 같은데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를 때, 내가 피해자인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몰릴 때가 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분노보다도 당혹스러움일지도 모른다.

‘이게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보호받을 수 없는 걸까?’
‘내가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변호사들이 사건의 승패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사건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문을 받아든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까지 이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가족을 위해 사업을 이어가며 막대한 빚을 떠안은 남편의 이혼 재산분할 사건이었다.

겉으로 보면 남편에게 상당한 재산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재산 뒤에는 오랜 시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감당해온 사업상의 채무가 있었다.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이어갔고,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순간에 이르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아파트와 부동산은 재산으로 평가되지만, 그 재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인의 채무는 개인이나 부부의 공동채무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자산이 남고 다른 사람에게는 빚이 남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과 삶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게 된다.

법은 법인과 개인을 구분해야 하고, 재산과 채무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그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족의 30년을 들여다보면 그 관계는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사업으로 번 돈이 가족의 생활비가 되고, 가족의 생활을 위해 사업이 유지되고, 사업을 위해 받은 대출이 다시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지탱하기도 한다.
삶은 서로 얽혀 있는데 법은 그 얽힌 관계를 하나씩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평생 가족을 위해 감당했던 희생이 법정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사건을 읽으며 ‘법은 과연 어디까지 삶의 실질을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법이 언제나 개인이 느끼는 공평함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게 다가왔다.


전세 계약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섬뜩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취지의 특약까지 넣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제 자신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보호에는 별도의 조건과 시점이 존재했다.
아직 입주하지 않았고 전입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라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까지 지급했다고 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공하는 모든 보호를 곧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대목이 무서웠던 이유는 법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이제 법적으로 보호받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에는 권리가 발생하는 시점이 있고,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건이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너무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이 오가는 순간 그 작은 차이는 인생을 뒤흔드는 엄청난 차이가 된다.

더욱 씁쓸했던 것은 승소 판결을 받아도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원에서 ‘당신의 주장이 옳다’는 판단을 받는 것과 실제로 돈을 돌려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판결문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의 재산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믿음 하나가 흔들렸다.

법은 피해를 인정해줄 수 있지만, 언제나 피해를 원상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법은 문제가 발생한 뒤 찾는 것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알아두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해고 사건 역시 오래 생각하게 했다.
한 회사가 폐업하고 새로운 회사가 설립되면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 자체가 사라진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는 다른 법인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기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싸움은 ‘부당해고가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 회사와 새로운 회사가 실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었는지, 영업이 이어졌는지, 돈의 흐름은 어떠했는지, 기존 회사의 사업이 새로운 회사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등을 하나씩 찾아야 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마음에 남은 것은 1심 승소가 곧 모든 싸움의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힘겹게 1심에서 이겼지만 상대방이 항소하면서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소송이라는 것이 ‘옳은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을 위해 자료를 모아야 하고, 상대방의 반박에 다시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몇 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편들어준다’는 것은 무조건 의뢰인의 말이 옳다고 믿어주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의뢰인이 가진 이야기를 법이라는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가능한 길과 불가능한 길을 함께 확인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찾아주는 것이 진짜 편이 되어주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편들어 드립니다》에는 여러 분야의 사건들이 등장한다.

가족 문제도 있고, 계약 문제도 있고, 보험금이나 기업 인수합병처럼 일반인에게는 낯선 사건도 있다. 형사 사건과 국가배상, 노동 문제처럼 서로 전혀 다른 법률 영역도 등장한다.

그런데 사건의 종류가 달라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감정은 비슷하다.

억울함. 두려움. 분노. 막막함.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이 책은 법률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얼마나 쉽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법을 냉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법조문에는 감정이 없고, 판결에는 사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결국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빚을 졌고,
누군가는 어렵게 모은 전세금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법률 사건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이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변호사들이 사건의 결과만이 아니라 의뢰인이 어떤 표정으로 사무실을 찾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 왜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다.

‘편들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제목이 꽤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에 서는 사람이니 ‘편들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이 제목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편을 든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조건 이겨주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승소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도 편을 드는 일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알려주는 것도 편을 드는 일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는 것 역시 누군가의 편에 서는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한 사람이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법정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말해주는 것만이 변호사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 목소리를 다시 찾도록 도와주는 것.
무엇이 억울한지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법이라는 언어로 번역해주는 것.
그리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에서 가능한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보여주는 ‘편’의 의미처럼 느껴졌다.

책을 덮고 나서 오히려 법이 가까워졌다

《편들어 드립니다》를 읽고 난 뒤 법에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조건과 예외와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법적으로 보호받는다’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순간,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계약서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법적 권리를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서 억울함만 삼키기보다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건의 극적인 결과보다 그 사건을 견뎌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도, 어렵게 모은 돈을 잃은 사회 초년생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도 모두 자신의 삶에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을 뿐이다.

법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만났을 때 필요한 마지막 안전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안전망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아는 사람뿐 아니라, 그 법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법은 차갑고 복잡할 수 있지만,
그 법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차가울 필요는 없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몇 줄의 계약 조항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판결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삶 전체가 걸려 있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옳더라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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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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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들어드립니다 #독 #창천변호사들 #채널A #굿피플
#사회도서 #법이야기 #법 #법률 #신간 #신간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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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 - 정의의 이정표가 된 판결부터 권력의 흉기가 된 재판까지 ㅣ 생각하는 10대
권재원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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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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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라고 하면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고, 유죄와 무죄를 판단하는 공간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권재원의 《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를 따라가다 보면 법정은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가진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한 시대가 무엇을 옳다고 믿었는지, 무엇을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의 시작을 여는 니콜라이 바빌로프의 이야기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농업의 미래를 위해 세계 곳곳의 종자를 수집하고 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연구했던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와 신념 때문에 오히려 국가의 적으로 몰리고,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과학이 결코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바빌로프와 리센코의 대립은 과학적 근거보다 정치적 이념에 부합하는 주장이 선택될 때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책에서 바빌로프가 🔖“전 세계 수천 명 과학자들이 수십 년의 실험으로 쌓아 올린 진실”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진실은 누군가의 권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검증과 실험, 수많은 반론과 축적을 통해 조금씩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이 권력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된다.

바빌로프 이야기에서 더 서늘하게 다가온 것은 그의 마지막 말보다도 그가 왜 처벌받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그는 농업을 망치려 했던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기근에 시달리는 조국의 농업을 살리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권력은 그의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는 대신 그를 정치적으로 규정했다. 법정은 진실을 가리는 공간이 아니라 권력이 원하는 결론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 ‘법은 언제나 정의로운가?’

역사를 돌아보면 법적으로 내려진 판결이라고 해서 반드시 정의로운 것은 아니었다. 드레드 스콧 판결, 수전 B. 앤서니 재판, 헤이마켓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처럼 당시의 법과 제도가 오히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억압한 사례도 있었다. 반대로 한 시대에는 논쟁적이었던 판결이 훗날 새로운 권리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판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어떤 질문을 던졌고, 무엇을 지키려 했으며,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를 살펴보는 과정이다.

특히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으로 얻어진 것입니다.”라는 문장은 이 책 전체를 의미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너무 쉽게 사용하는 ‘권리’라는 단어 뒤에는 실제로 누군가의 싸움과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하루 8시간 노동, 표현의 자유, 여성의 참정권, 노동자의 권리, 동성혼에 대한 법적 인정, 전쟁범죄에 대한 처벌, 기술과 창작물에 대한 지적재산권까지 지금은 제도와 법률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들이지만, 처음부터 당연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비난받았고, 누군가는 체포되었으며, 누군가는 목숨까지 잃었다.

그중 헤이마켓 사건은 특히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사건은 핑계에 불과했습니다.”라는 책 속 문장처럼, 폭력 사건 자체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 사람들의 신념과 사상을 억누르려 했다는 점이 섬뜩했다.

법이 범죄를 판단하는 도구만이 아닌 특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될 때, 법과 정의 사이에는 얼마나 큰 간극이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밀로셰비치 재판도 오래 생각하게 했다.
피고인이 판결을 받기 전에 사망하면서 법적으로 유죄라는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남겨진 증언과 기록은 이후 다른 전범들을 심판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재판 기록은 남았습니다.”라는 사실이 묘하게 오래 남았다.

한 사람에 대한 재판이 반드시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판결에 이르지 못한 재판조차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훗날 다른 사건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법정에서 남겨진 기록은 그 시대가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를 증언하는 또 하나의 역사일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다룬 허슬러 대 폴웰 사건 역시 흥미로웠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가는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풍자와 패러디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모욕과 혐오로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표현을 제한한다면 자유로운 비판과 풍자의 영역 역시 위축될 수 있다.

책에서 🔖“물론 판결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라고 이어지는 부분이 의미 있게 느껴졌다.

중요한 판결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똑같이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하나의 판결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고, 그 논쟁이 사회의 기준을 조금씩 만들어 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법을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다.
갈릴레이부터 바빌로프, 드레드 스콧, 헤이마켓, 뉘른베르크와 도쿄, 밀로셰비치, 전두환·노태우, 워터게이트,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허슬러 대 폴웰, 그리고 애플과 삼성으로 이어지는 특허 분쟁까지 사건의 성격이 상당히 다르다.

그런데 서로 전혀 다른 사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옳다고 판단할 것인가?’

과학에서는 진실과 권위가 충돌하고, 정치에서는 권력과 정의가 충돌하며, 사회에서는 자유와 그 한계가 충돌한다. 기술의 영역에서는 창작과 독점 사이의 경계가 문제가 된다. 결국 법정에 올라온 것은 사건 하나가 아니라 그 시대가 풀지 못했던 질문들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난 뒤에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늘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권리 역시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급진적이고 위험한 주장으로 여겨졌을 수 있다. 반대로 오늘 다수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훗날에는 잘못된 통념으로 평가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다수가 믿고 있으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멈춰서서 질문하는 일일 것이다.

정말 그런가? 왜 그래야 하는가?
이 법은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침묵시키는가?
지금의 상식은 과연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졌는가?

책의 에필로그에서 🔖“누군가는 말하지 못한 진실을 품은 채 홀로 분투하고 있을 것입니다.”라는 문장이 마음에 남았다.

역사 속 재판을 읽는 일이 과거의 사건을 공부하는 일만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과거의 법정에는 이미 지나간 사람들이 서 있지만, 그들이 던진 질문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니 ‘법정의 문이 닫혔다’는 느낌보다 지금부터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문이 다시 열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될 때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판단하는지, 다수가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세계의 법정을 열겠습니다》는 법정이라는 장소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력을 진실보다 앞세울 수 있는지, 동시에 한 사람의 질문과 저항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늘의 ‘당연함’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미 만들어진 당연함을 그저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옳은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법정은 과거에 있었지만, 그곳에서 오간 질문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을 읽고 이 한가지를 품게 되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태도’

누군가의 용기 덕분에 지금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면, 우리 역시
지금의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묻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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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법정을열겠습니다 #권재원 #북트리거
#사회 #역사 #사회학 #정치 #법 #판결문 #재판
#신간 #신간도서 #새로나온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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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 - 일상의 사소한 기쁨을 선택하는 태도에 관하여
정지우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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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포레스트출판사 (@forest.kr_ )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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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행복해지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조금만 더 형편이 나아지면, 지금의 걱정이 해결되면, 원하는 것을 이루면 그때는 비로소 마음 편히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행복을 미래의 어느 지점에 가져다 놓고 지금의 삶은 잠시 견뎌야 하는 시간처럼 여기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문제 하나가 해결되면 정말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가.
하나의 목표에 도착하면 그곳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불안이 지나가면 또 다른 불안이 찾아오고, 하나의 욕망을 채우면 또 다른 욕망이 생긴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불행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행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행복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인상적인 이유는 행복을 불행의 반대편에 세워두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불안도 생기고, 관계에서 상처도 받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생긴다. 아무리 노력해도 걱정거리가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행복해지기 위해 불행을 전부 제거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쩌면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책에서 말하는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이 내 삶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것이 내 삶의 전부가 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는 것에 가깝다.

책 속에서 저자는 🔖“오늘의 문제는 그저 오늘의 문제로 남겨두고 잊어버리는 일이 때로는 필요하다”고 말한다.

오늘 생긴 하나의 문제를 너무 쉽게 인생 전체의 문제로 확대한다. 누군가에게 들은 한마디가 하루를 망치고, 하루의 실패가 일주일의 기분을 끌어내리고, 어느 순간에는 그것이 ‘나는 원래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힘든 일이 있었다는 사실과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오늘은 오늘의 문제만큼만 힘들어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실패에 내일의 실패까지 미리 끌어다 놓지 않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까지 현재의 마음속에 들여놓지 않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덜 무거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표현은 ‘나와 가장 사이좋은 불행을 찾아서’였다.

저자는 모든 불행을 제거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차라리 내가 감당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불행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생각한다.
🔖“나와 가장 사이좋은 불행을 찾아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행복을 바라보는 관점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어준다.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행복만 선택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선택하면 그에 따르는 피로를 감수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처받을 가능성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가족을 선택하면 책임이 생기고, 자유를 선택하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이 생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행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것인가일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은 ‘완벽한 삶’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던 마음에도 제동을 건다.

책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외로 냉정한 시선을 보여준다.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더 좋은 선택이 있을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근사한 삶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오히려 현재의 삶을 제대로 선택하지 못할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에 사로잡히면 사람은 그 무엇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된다”는 문장은 요즘의 삶을 생각하게 했다.

지금은 선택지가 너무 많은 시대이다.
누군가의 여행을 보고 나면 내 여행이 부족해 보이고, 다른 사람의 직업과 삶을 보면 내가 선택한 길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더 좋은 인간관계, 더 나은 배우자, 더 멋진 삶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생각은 끝이 없다. 그런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살아가는 것과 하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은 어쩌면 반대 방향일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선택한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가능성들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삶이다’라고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의 삶에 마음을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고 있는 것이 내가 된다”라는 책의 한 문장도 깊이 생각하게 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하고 있는 행동들이 어떤 사람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미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오늘 반복하는 행동에 더 가까울 것이다.
매일 무엇을 보고, 누구와 이야기하고, 무엇에 시간을 쓰고, 무엇을 포기하는지가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행복 역시 특별한 날에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이라기보다 반복적인 생활 속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겠다.

책을 읽으며 특히 좋았던 부분은 행복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내가 삶을 사랑하는 방식이다”라고 말하면서, 삶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랑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문장은 행복에 대한 꽤 현실적인 정의처럼 느껴졌다.

삶이 늘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람에게 지치고, 내가 선택한 것까지 의심스럽다. 그런 날에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면 그것은 억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작은 이유라도 찾아내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읽고, 누군가와 웃고,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선택한 오늘을 조금 더 괜찮은 하루로 만들어보는 것.

행복은 어쩌면 이런 사소한 선택들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책 속에 등장하는 ‘조금 지쳤나 보다’라는 말도 참 따뜻했다.🔖“조금 지쳤나 보구나”라는 말에는 상대의 잘못을 곧바로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바라보는 마음이 들어 있다.

사람은 늘 최상의 상태로 살아가지 않는다. 나도 지치고, 상대도 지치고, 그래서 평소와 다른 말이나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때 ‘왜 저래?’라고 단정하는 대신 ‘조금 지쳤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수많은 관계가 조금은 덜 날카로워지지 않을까.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도 “오늘은 조금 지쳤나 보다”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내가 예민했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오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해서 삶 전체가 실패한 것도 아니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살아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줄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최고의 삶이 아니라 좋은 삶’이라는 방향은 그래서 더욱 오래 남는다. 우리는 자주 최고를 기준으로 삶을 평가한다.
최고의 직장, 최고의 성과, 최고의 집, 최고의 인간관계, 최고의 모습...
하지만 ‘최고’라는 기준은 끝이 없다. 누군가보다 앞서야 하고, 어제보다 더 나아야 하고, 계속해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반면 좋은 삶에는 반드시 1등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때때로 웃고, 힘든 날에는 쉬고,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

어쩌면 그런 삶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불안이 없어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웃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남아 있어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고, 관계에 어려움이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며, 미래가 불확실해도 오늘의 햇빛을 바라볼 수 있다.

삶은 완벽하게 정리된 뒤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어지러운 상태 그대로 계속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불행을 무시하라는 뜻으로 읽히지 않았다. 불행에게 내 삶 전체를 내어주지 말라는 말처럼 다가왔다.

힘든 일은 힘든 일로 인정하되, 그것이 나의 하루 전체가 되게 하지는 않는 것.
불안은 불안대로 존재하게 두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는 것.
상처가 있어도 관계를 이어가고, 실패가 있어도 다시 무언가를 시도하고,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의 삶을 조금씩 고쳐가는 것.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행복'이라는 단어가 조금 덜 거창해졌다.

행복은 어쩌면 인생이 완성된 뒤 받는 보상이 아니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하고 선택하는 작은 순간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을 조금 더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일 것이다.

오늘도 삶에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일도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고, 또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오늘은 오늘의 문제까지만.'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작은 행복 하나쯤은 놓치지 말자고.


완벽해서 좋은 삶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데도 계속 사랑해보고 싶은 삶.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 충분함을 알아차리는 순간, 행복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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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었다
이영란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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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바른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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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것은 때로 한 사람의 마음속에 조용히 들어가 보는 일과 닮아 있다. 《어른이 되었다》 역시 거창한 이야기보다 삶과 시간, 기억과 사랑처럼 누구나 한 번쯤 마음에 품어본 것들을 시로 풀어낸다.

이 시집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말보다 오래 마음속에 머물렀던 감정을 한 편의 편지처럼 건네는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특히 목차를 따라가 보면 ‘삶 → 자화상 → 여행 → 사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삶을 지나 자신을 바라보고, 낯선 길을 걷고, 그 끝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의 시들은 한 사람이 살아오며 겪었을 마음의 계절들이 차례로 펼쳐지는 듯하다.

가장 오래 눈길이 머문 시는 [청춘예찬]이었다.

🔖“검은 비구름 / 하늘 가득 / 그래도 달린다”

이 문장에서 ‘그래도’라는 말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삶이 언제나 맑은 날만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비가 내리고, 태양이 온몸을 태우고, 때로는 넘어져 상처를 입으면서도 다시 움직여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데 이 시는 그런 삶을 지나치게 아름답게 포장하기보다 절룩이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모습 자체를 청춘이라고 말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그대 이름은 / 청춘”이라는 문장은 청춘을 젊은 나이의 다른 이름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한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계속 걸어가는 마음까지 청춘이라면, 청춘은 특정한 나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이 시가 말하는 청춘처럼 느껴졌다.

[버틴다]도 마음에 남는다.
🔖“숨을 버틴다 / 숨을 참는다 / 몸을 세운다 / 마음을 둔다”

살아가다 보면 무엇인가를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하루를 견뎌야 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 ‘버틴다’는 말은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의지가 된다. 무너지고 싶어도 몸을 세우고, 마음을 놓아버리고 싶어도 다시 마음을 붙잡는 것.

🔖“세상이 전장 같고 / 마음이 전쟁터 같을 때” 라는 구절에서는 특히 마음의 피로가 느껴졌다. 세상과 싸우는 일보다 때로는 내 마음과 싸우는 일이 더 힘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그런 시간을 ‘버틴다’는 한마디로 받아낸다.
어떤 날에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유리 구슬]에서는 조금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동그란 원 구슬 안에 / 우리의 마음이 보인다”

유리 구슬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 산과 들, 바다와 별을 담아내는 장면은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넓고 복잡한지를 떠올리게 한다. 겉으로는 아주 작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과 사람, 풍경과 감정이 들어 있다. 시인은 그것을 유리 구슬이라는 이미지로 바라본다.

그리고 [솜사탕]에서는 삶의 시간이 조금 더 다정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아빠 머리 위에 / 살포시 자리 잡은 뽀오얀 구름은 / 어릴 적 추억 속의 그 솜사탕”

어릴 때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커다랗게만 보였던 아버지의 존재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흰 머리카락과 함께 기억된다. 어린 시절의 풍경과 지금의 시간이 한 장면 안에서 포개지는 듯하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부모의 나이 듦을 알아보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한다.

사랑을 다룬 시들에서는 기억과 그리움의 정서가 더욱 선명해진다.
특히 [지우개]는 사랑을 지우고 싶다는 말과 끝내 지워지지 않는 마음 사이의 모순을 담고 있다.

🔖“지울 수 있을까 / 떨쳐낼 수 있을까 / 그대를 향한 그리움"

사람의 기억은 지우개로 지울 수 있는 흔적과는 다르다. 잊으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지는 기억도 있다. 검은 귀밑머리, 그네 위의 모습, 국화꽃 향기,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손목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등장하면서 그리움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감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지울 수 있을까 /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을” 이라는 물음도 그래서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지우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모습인지, 그 사람을 향했던 자신의 마음인지조차 모호해진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기억의 형태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눈길]에서는 사랑의 방식이 조금 더 조용하다.
🔖“그는 가끔 돌아본다 / 그의 눈길 끝엔 언제나 내가 있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 앞서 걷는 사람과 뒤따르는 사람, 가끔 돌아보는 눈길과 그 눈길 끝에 있는 사람. 아주 짧은 장면인데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상상된다. 사랑을 큰 사건으로 표현하기보다 ‘돌아보는 시선’ 하나로 보여주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생각하게 된 것은 제목인 《어른이 되었다》였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아픔과 그리움과 후회를 품은 채 자신의 길을 계속 걸어가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청춘예찬]처럼 절룩이며 달리고, [버틴다]처럼 숨을 참으며 하루를 지나고, [솜사탕]처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누군가의 나이 듦을 알아차리고, [지우개]처럼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마음 한편에 남겨두기도 한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말하는 ‘어른’은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마음’, ‘시간’, ‘그리움’, ‘버팀’ 같은 단어들이었다.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것을 잊지만, 마음에 남는 것은 아주 사소한 장면일 때가 많다. 눈길 한 번, 흰 머리카락 한 올, 익숙한 향기, 걷던 길, 돌아보던 사람의 모습처럼.

《어른이 되었다》는 그런 순간들을 시로 붙잡아 놓은 책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픔이 있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비가 와도 달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은 억지로 지우려 하기보다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어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수많은 계절을 품은 채 오늘까지 걸어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되었다》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아직 걸어가야 할 내일을 조용히 바라보게 하는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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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
장샤오만 지음,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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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이면에서 한 사람의 노동과 삶을 900일 동안 따라간 기록을 읽으며 노동이 가진 가치와 미처 보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듯하여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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