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들어 드립니다
창천 변호사들 지음 / 도서출판 독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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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나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법원이나 변호사, 판결문 같은 단어를 떠올리면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거대한 세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 곳곳에는 이미 법이 들어와 있다. 집을 계약하는 순간에도, 가족과 재산을 나누는 순간에도, 회사를 다니는 순간에도,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에도 법은 보이지 않는 선처럼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

문제는 그 선이 언제 끊어지는지, 내가 어느 순간부터 보호받지 못하는지를 평범한 사람은 알기 어렵다는 데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법을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변호사의 문을 두드린다.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지 묻고, 평생 가족을 위해 진 빚이 이혼 후에는 왜 자신의 빚으로만 남는지 묻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뒤 자신에게 정말 잘못이 있었던 것인지 되묻는다.


살면서 비슷한 순간을 만나기 때문에 이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았다.
상대방이 분명 약속을 어긴 것 같은데 계약서에는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을 때, 분명 부당한 일을 당한 것 같은데 어디에 호소해야 할지 모를 때, 내가 피해자인 것 같은데 오히려 내가 무언가 잘못한 사람처럼 몰릴 때가 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분노보다도 당혹스러움일지도 모른다.

‘이게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보호받을 수 없는 걸까?’
‘내가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걸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은 변호사들이 사건의 승패만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사건은 판결문 한 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판결문을 받아든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까지 이어진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가족을 위해 사업을 이어가며 막대한 빚을 떠안은 남편의 이혼 재산분할 사건이었다.

겉으로 보면 남편에게 상당한 재산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재산 뒤에는 오랜 시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감당해온 사업상의 채무가 있었다. 가족의 생활비와 자녀들의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을 이어갔고,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그런데 이혼이라는 순간에 이르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아파트와 부동산은 재산으로 평가되지만, 그 재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법인의 채무는 개인이나 부부의 공동채무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었다. 한 사람에게는 자산이 남고 다른 사람에게는 빚이 남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과 삶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게 된다.

법은 법인과 개인을 구분해야 하고, 재산과 채무가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를 엄격하게 따져야 한다. 그것은 법적 안정성을 위해 필요한 원칙일 것이다. 하지만 한 가족의 30년을 들여다보면 그 관계는 그렇게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사업으로 번 돈이 가족의 생활비가 되고, 가족의 생활을 위해 사업이 유지되고, 사업을 위해 받은 대출이 다시 가족의 경제적 기반을 지탱하기도 한다.
삶은 서로 얽혀 있는데 법은 그 얽힌 관계를 하나씩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평생 가족을 위해 감당했던 희생이 법정에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사건을 읽으며 ‘법은 과연 어디까지 삶의 실질을 담아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다. 법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법이 언제나 개인이 느끼는 공평함과 일치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역시 분명하게 다가왔다.


전세 계약 이야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섬뜩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대출이 나오지 않으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계약금을 돌려받는다는 취지의 특약까지 넣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제 자신을 보호할 장치를 마련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인 보호에는 별도의 조건과 시점이 존재했다.
아직 입주하지 않았고 전입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라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까지 지급했다고 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제공하는 모든 보호를 곧바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대목이 무서웠던 이유는 법이 어렵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이제 법적으로 보호받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에는 권리가 발생하는 시점이 있고,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요건이 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그 차이가 너무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이 오가는 순간 그 작은 차이는 인생을 뒤흔드는 엄청난 차이가 된다.

더욱 씁쓸했던 것은 승소 판결을 받아도 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법원에서 ‘당신의 주장이 옳다’는 판단을 받는 것과 실제로 돈을 돌려받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판결문이 있다고 해서 상대방의 재산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법에 대해 가지고 있던 막연한 믿음 하나가 흔들렸다.

법은 피해를 인정해줄 수 있지만, 언제나 피해를 원상회복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법은 문제가 발생한 뒤 찾는 것보다,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알아두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해고 사건 역시 오래 생각하게 했다.
한 회사가 폐업하고 새로운 회사가 설립되면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는 자신을 해고한 회사 자체가 사라진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겉으로는 다른 법인이기 때문에 책임을 묻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기에서 변호사와 의뢰인의 싸움은 ‘부당해고가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과거 회사와 새로운 회사가 실제로 얼마나 연결되어 있었는지, 영업이 이어졌는지, 돈의 흐름은 어떠했는지, 기존 회사의 사업이 새로운 회사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등을 하나씩 찾아야 했다.

특히 이 사건에서 마음에 남은 것은 1심 승소가 곧 모든 싸움의 끝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힘겹게 1심에서 이겼지만 상대방이 항소하면서 다시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소송이라는 것이 ‘옳은 사람이 결국 이긴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 증명을 위해 자료를 모아야 하고, 상대방의 반박에 다시 대응해야 한다. 때로는 몇 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편들어준다’는 것은 무조건 의뢰인의 말이 옳다고 믿어주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의뢰인이 가진 이야기를 법이라는 언어로 다시 정리하고, 가능한 길과 불가능한 길을 함께 확인하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디까지 싸울 수 있는지를 냉정하게 찾아주는 것이 진짜 편이 되어주는 일에 가깝지 않을까.


《편들어 드립니다》에는 여러 분야의 사건들이 등장한다.

가족 문제도 있고, 계약 문제도 있고, 보험금이나 기업 인수합병처럼 일반인에게는 낯선 사건도 있다. 형사 사건과 국가배상, 노동 문제처럼 서로 전혀 다른 법률 영역도 등장한다.

그런데 사건의 종류가 달라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감정은 비슷하다.

억울함. 두려움. 분노. 막막함.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이 책은 법률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얼마나 쉽게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처럼 느껴졌다.

대부분 법을 냉정한 것으로 생각한다.
법조문에는 감정이 없고, 판결에는 사정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법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서는 결국엔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다.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빚을 졌고,
누군가는 어렵게 모은 전세금을 잃었으며,
누군가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잃었다.

법률 사건이라는 이름 아래에는 이렇게 구체적인 사람들이 있다.
이 책에서 변호사들이 사건의 결과만이 아니라 의뢰인이 어떤 표정으로 사무실을 찾아왔는지,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 왜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는 이유도 그래서 이해할 수 있었다.

‘편들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제목이 꽤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변호사는 의뢰인의 편에 서는 사람이니 ‘편들어 드립니다’라는 제목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어갈수록 이 제목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편을 든다는 것은 상대방을 무조건 이겨주는 일이 아니다.

때로는 승소 가능성이 낮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도 편을 드는 일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알려주는 것도 편을 드는 일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면서도 그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찾는 것 역시 누군가의 편에 서는 방법일 것이다.

무엇보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한 사람이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준다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될 수 있다.

법정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말해주는 것만이 변호사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 목소리를 다시 찾도록 도와주는 것.
무엇이 억울한지조차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법이라는 언어로 번역해주는 것.
그리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에서 가능한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보여주는 ‘편’의 의미처럼 느껴졌다.

책을 덮고 나서 오히려 법이 가까워졌다

《편들어 드립니다》를 읽고 난 뒤 법에는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조건과 예외와 절차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법적으로 보호받는다’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차이를 모르고 지나가는 순간,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계약서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살펴보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법적 권리를 확인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혼자서 억울함만 삼키기보다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것은 사건의 극적인 결과보다 그 사건을 견뎌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수십 년 동안 가족을 위해 살아온 사람도, 어렵게 모은 돈을 잃은 사회 초년생도,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노동자도 모두 자신의 삶에서는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의 당사자’가 되었을 뿐이다.

법은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만났을 때 필요한 마지막 안전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안전망을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법을 아는 사람뿐 아니라, 그 법 앞에 선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필요하다.


법은 차갑고 복잡할 수 있지만,
그 법을 통해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차가울 필요는 없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몇 줄의 계약 조항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판결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앞으로 살아갈 삶 전체가 걸려 있을 수 있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옳더라도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편’은 바로 거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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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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