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대한민국 트렌드 - 과연 그 트렌드는 진짜 트렌드가 됐을까? AI와 인간이 함께 읽어낸 사람·소비·일의 8가지 키워드
조성호 지음 / 길벗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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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PDF 샘플 원고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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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새로운 트렌드 전망서가 쏟아진다.
올해는 무엇이 뜨고, 내년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들이다. 하지만 트렌드 책을 읽을 때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게 정말 오래 갈 변화일까, 아니면 잠깐 사람들의 시선을 끈 유행일까?”

《2027 대한민국 트렌드》는 트렌드를 ‘요즘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만 정의하지 않고, 사회와 사람들의 행동에 축적되는 중장기적인 변화의 흐름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AI 트렌드 분석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저자는 ChatGPT, Gemini, Claude라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방대한 자료를 살펴보고, 서로 다른 데이터와 현상을 연결하면서 2027년 대한민국의 변화를 읽어낸다.

2027년에는 도대체 무엇이 달라질까?
그리고 그 변화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오래 생각하게 된 부분은 ‘진짜 트렌드는 눈에 띄는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관점이었다. 보통 뉴스에 많이 나오거나 검색량이 급증한 것을 트렌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잠깐 폭발했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의 방향을 바꾸는 변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미인박명의 오류’가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명인의 비극처럼 기억에 강하게 남는 사례는 실제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용성 휴리스틱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쉽게 떠오르는 사례를 실제 빈도나 확률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인간의 판단 오류다.

이런 오류는 트렌드를 바라볼 때도 생길 수 있다.
눈에 확 띄는 인기 검색어, 갑자기 폭발한 콘텐츠, SNS에서 화제가 된 상품은 쉽게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다. 하지만 정작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평범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주변을 보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검색하는지보다 무엇을 반복하고 있는지,
무엇을 한 번 사고 끝내는지보다 무엇에 계속 돈과 시간을 쓰는지,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하는지보다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해진다.

트렌드는 현재 사람들이 남기고 있는 작은 발자국을 읽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제시한 2026년의 주요 흐름 가운데 특히 눈에 들어온 것은 자산 이동, AI 일상화, 코리아 러시, N잡, 마이크로트렌드, 가성비의 재정의, 저속노화, 오프라인 회귀, 취향 중심주의, 시니어 창업이었다.

각각 따로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하나씩 들여다보면 공통된 흐름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자신의 돈과 시간, 경험을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산을 돈이나 부동산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시간과 경험, 건강, 관계, 데이터와 같은 것까지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바라보는 ‘자산전환’이라는 2027 트렌드 키워드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특히 소비와 투자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설명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무언가를 구매할 때에도 ‘갖고 싶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어떤 경험을 남기는지,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앞으로의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의 소비는 얼마나 많이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나에게 남기느냐의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워드 가운데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온 것은 Shiftism, 자산전환이었다.

자산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돈, 주식, 부동산부터 떠올린다.
그런데 이 책은 자산이라는 개념을 훨씬 넓게 바라본다.
시간, 경험, 기술, 건강, 관계, 취미처럼 당장 가격표를 붙이기 어려운 것들까지도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자산으로 볼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 생각이 흥미로운 이유는 매일 하는 선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소비일까?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시간은 ‘여가’일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기록하고 경험을 쌓는 것은 그저 취미일까?
Shiftism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오늘의 시간이 내일의 실력으로 연결되고, 지금의 경험이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고, 내가 쌓은 관계와 신뢰가 미래의 가능성이 된다면 그것 역시 나만의 자산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키워드는 ‘지금 무엇을 쌓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돈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만 바라보다 보면 정작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나 자신의 능력이나 경험을 놓칠 수도 있다.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통장 잔고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나에게 도움이 될 것들을 조금씩 축적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Personal Venture, 자기경영 역시 오래 생각하게 만든 키워드였다.
한 직장에 들어가 정해진 일을 하고 정년까지 다니는 모습은 점점 보편적인 삶의 공식에서 멀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하나의 직업만 갖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경험과 전문성을 활용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 변화는 N잡이 늘어난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는 누구인가’를 하나의 직장이나 직함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직장이라는 소속이 나를 설명하는 시대에서, 내가 가진 능력과 경험, 관심사와 취향이 나를 설명하는 시대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경영한다’는 표현이 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고, 무엇을 계속 배우고 싶은지 정하고,
어떤 경험을 쌓을지 선택하는 것.

창업이 아니더라도 이미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관리하고 성장시키고 있다. 자기경영은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누구에게나 필요한 자기 설계에 가까운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Human Touch, 인간가치는 조금 다른 종류의 생각을 불러왔다.
AI가 점점 더 자연스러운 글을 쓰고, 사람처럼 대화하고, 그럴듯한 이미지와 영상을 만들어내는 시대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책이 이야기하는 인간다움은 직접 경험한 이야기, 진짜 관계에서 만들어진 신뢰,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처럼 데이터만으로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운 가치에 주목한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넓게 침범할수록 오히려 인간적인 경험을 더 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아닐까.

완벽하게 만들어진 콘텐츠가 넘쳐날수록 조금 서툴더라도 실제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담긴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고,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천천히 만나 대화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미래의 경쟁력은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술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가와 함께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남길 수 있는가도 중요해질 것이다.


트렌드는 변화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도에 가깝다.
그리고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7 대한민국 트렌드》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변화들을 한 발 떨어져 바라보게 만드는 책으로 읽혔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미래를 생각할 때 ‘무엇이 뜰까?’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렸다면, 책을 읽고 난 뒤 품게 된 질문은 조금 달라졌다.

“나는 지금 어떤 변화를 이미 경험하고 있는가?”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변화가 왔을 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2027 대한민국 트렌드》는 AI가 일과 소비, 콘텐츠와 비즈니스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궁금한 사람, 시장과 소비자의 변화를 읽어야 하는 직장인과 마케터,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유용할 것 같다.

무엇보다 트렌드 전망서를 어렵고 거창한 이야기로 느꼈던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이 책은 AI와 데이터라는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이야기하는 대상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우리가 무엇을 사고, 무엇을 검색하고, 어디에 시간을 쓰고,
누구와 관계를 맺고, 무엇을 믿고 의심하는지.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사회의 방향을 바꾸게 될 것이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일상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다.

AI도, N잡도, 자산에 대한 관심도, 오프라인 경험에 대한 욕구도, 취향을 중심으로 소비하는 방식도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미래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다.
다만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트렌드를 읽는다는 것은 현재를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시작된 지금, 무엇을 보고 있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어쩌면 미래는 이미 곁에 와 있고,
아직 그것에 이름을 붙이지 못했을 뿐일 테니까.

'AI가 세상을 더 빠르게 바꾸는 시대,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믿으며, 어떤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이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가장 큰 2027 트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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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가 세상을 구한다는 헛소리, 그런데 우리는 왜 그들을 숭배하는가
달리아 나미앙 지음, 조민영 옮김 / 원더박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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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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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부를 일구고,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내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인다. 특히 수천억, 수조 원의 재산을 가진 기업가가 “인류를 위해”, “미래를 위해”,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면 그 말 자체에 권위가 실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우리를 구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우리는 왜 그들의 부와 선택을 그렇게 쉽게 믿고 동경하는 걸까?

누군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부가 만들어진 과정과 그 부를 바라보는 사회의 태도를 얼마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에 있는 것은 아닐까.

대개 부를 능력의 증거로 생각한다. 많이 벌었다는 것은 그만큼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거대한 기업을 일군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혁신가’, ‘천재’, ‘미래를 보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부가 커질수록 그 부를 가능하게 만든 사회적 조건과 노동, 제도, 공공 인프라에 대해서는 잘 보지 않게 된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슈퍼리치의 ‘부’ 자체보다 ‘부의 과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책에서는 로맹 가리의 개념을 빌려 ‘도발 사회’라는 현상을 이야기한다.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막대한 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사회는 그것을 문제 삼기보다 성공의 상징처럼 소비한다는 것이다.

책 속의 이 문장이 그 개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도발 사회에서는 특권이 지나치게 비대해져 끊임없는 힘의 과시로 변질된다.”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생각이 멈췄다.
요즘은 SNS를 통해 다른 사람의 소비와 삶을 실시간으로 구경한다. 고급 자동차, 명품, 대저택, 요트, 전용기, 초호화 여행…. 과거에는 직접 볼 수 없었던 극단적인 부의 모습까지 손바닥 위에서 쉽게 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을 바라보며 “왜 저렇게 많은 것을 한 사람이 가져야 하지?”라고 생각하기보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생기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 불평등은 단순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으로 바뀐다.

책이 말하는 ‘도발’은 그래서 무섭다.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부를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에게조차 그 삶을 욕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부와 부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숭배한다.”

사람들은 돈을 숭배한다고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성공을 숭배한다고 말하고, 능력을 존중한다고 말하고, 혁신을 응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성공과 능력과 혁신의 최종적인 척도가 결국 얼마나 많은 부를 만들어냈는지로 귀결되는 순간이 많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니 ‘성공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과 ‘부유한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숭배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성취를 인정하는 것과 그 사람이 가진 막대한 권력까지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선과 기술에 관한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사람이 거액을 기부하면 쉽게 그 사람을 선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실제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부와 자선 활동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고 있다.

✔️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국가와 시민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재산에 따라 움직이는가?
✔️문제를 만들어낸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일부를 기부하는 것만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책에서는 자선자본주의를 바라보며 이런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 슈퍼리치들에게는 그들의 부를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혁하기보다 막대한 재산의 극히 일부를 내놓고 평등과 연민이라는 수식어로 포장하는 편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기부의 선악’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부가 실제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자체의 가치는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해야 할 질문은 그 돈이 왜 그렇게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는가, 그리고 그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은 왜 더 어려운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책이 말하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에 지나치게 큰 권위를 부여하지 말자는 이야기처럼 읽혔다.

특히 기술에 대한 믿음은 오늘날 더욱 생각해볼 문제다.
기술이 발전하면 언젠가 기후위기도 해결되고, 식량 문제도 해결되고, 인간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과학과 기술은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왔다. 앞으로도 중요한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모든 사회적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누가 기술을 소유하는가.
그 기술의 혜택은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기술 발전의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이 질문이 함께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화성이나 우주 개발을 바라보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지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새로운 공간으로 탈출하는 상상은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지구를 살아갈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탈출구’가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특권의 부당함을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사회는 결국 그 특권에 굴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각,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다시 질문하는 태도, 누군가에게 주어진 특권이 정말 정당한 것인지 살펴보는 힘에 가까울 것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원래 그런 것’이라고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평생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렵고, 누군가는 하루에도 상상하기 힘든 금액을 소비한다. 누군가는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데, 누군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기후위기를 피해갈 수 있는 공간을 준비한다.

그런 장면을 보면서도 때때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능력이 있으니까.’

하지만 능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성장할 수 있었던 교육과 인프라, 노동자들의 노동, 국가의 법과 제도, 사회가 제공한 수많은 기반은 어디에 포함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누가 부담했는가?

이 질문을 함께 생각한다면 ‘개인의 성공’으로만 보였던 장면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좋았던 이유는 슈퍼리치만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도 함께 돌아보게 한다.

억만장자의 요트 사진을 클릭하고, 그들의 일상을 구경하고, 그들이 만드는 제품을 소비하고, 그들의 성공담을 공유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불평등을 걱정한다. 이 모순을 책은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부를 가진 사람을 존경하는 걸까, 아니면 부 자체를 숭배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성공이라고 믿어온 기준은 과연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까?’

이 책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성공, 혁신, 자선, 기술, 자유라는 단어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 돈이 많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의 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인류의 구원자라고 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무엇을 말하든 한 번 더 질문할 수 있는 시민의 감각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것을 부러워하는가?”

누군가의 엄청난 부를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마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부가 만들어진 구조까지 생각해보는 순간, 부러움은 질문으로 바뀐다.
그리고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더 이상 구경꾼으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구하겠다는 약속을 믿기 전에,
지금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구조부터 바라보라고 말하는 책이었다.

“그들을 숭배하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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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필사북 - 이동진 평론가 추천!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역사, 건
김승옥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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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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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옥 작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것은
오래된 풍경 하나를 다시 바라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한 번 본 적 있는 풍경인데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마주하면 전혀 다른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무진기행》을 비롯해 김승옥 작가의 작품들은 이미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으로 오랫동안 읽혀왔다. 나 역시 그의 작품을 ‘한국문학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접하게 되지만, 이번 《무진기행 필사북》을 읽고 나니 김승옥의 문장을 읽는 것과 직접 손으로 옮겨 적는 것은 상당히 다른 경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읽을 때는 한 호흡으로 지나갔던 문장이
펜을 들고 한 글자씩 따라가면 이상하리만큼 오래 머무르게 된다.

왜 이 단어였을까. 왜 여기에서 문장이 멈췄을까.
왜 이 장면은 이렇게 건조한데도 마음 한쪽이 서늘해질까.

필사는 문장을 베껴 쓰는 일만이 아니라, 문장을 바라보는 속도를 늦추는 일이 아닐까 싶다. 특히 김승옥 작가의 문장은 그 느린 속도와 잘 어울린다. 화려하게 감정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인물의 마음을 어느 순간 독자에게 옮겨놓는다.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풍경 안에는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고, 아무렇지 않은 대화처럼 보이는 문장 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고독과 불안이 배어 있다.

그래서 《무진기행》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역시 ‘안개’다.
작품 속 화자는 무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무진 Mujin 10km’라는 이정표를 바라본다.

🔖“그것은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길가의 잡초 속에서 튀어나와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옛날과 똑같은 모습’이라는 표현 속에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장소와, 그곳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마음이 겹쳐 있는 듯했다.

무진은 지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서울에서의 삶에서는 애써 외면했던 감정들이 무진이라는 낯익은 장소에 도착하면서 하나둘 떠오른다. 그래서 무진의 안개는 실제 날씨인 동시에 화자의 마음을 흐릿하게 만드는 감정의 상태처럼 읽힌다.

그런 의미에서 김승옥의 문장은 풍경과 심리를 따로 설명하지 않는다.
풍경을 보여주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사람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이런 문장이야말로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낡지 않는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필사는 직접 펜을 쥐어야 하고, 한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마음이 급하면 오히려 잘 써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필사가 가진 힘이 있는 것 같다.

눈으로 읽을 때는 ‘좋은 문장이네’ 하고 지나쳤던 문장을 손으로 쓰다 보면 단어 하나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문장의 길이가 느껴지고, 쉼표 하나의 위치가 의식되고, 같은 뜻을 가진 여러 단어 중 작가가 왜 하필 그 단어를 선택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좋은 문장은 빨리 읽을수록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읽을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김승옥의 작품은 문장의 표면만 따라가서는 놓치기 쉬운 감정이 많다.
[서울 1964년 겨울]을 보면 세 사람이 술집과 거리에서 나누는 대화가 특별히 극적인 사건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한 공허함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라는 안의 말은 오래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이 거짓말이었는지 정확하게 규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오히려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이야기를 건네지만 정작 자신의 진짜 마음은 끝까지 말하지 못한다. 대화하고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사람들.

이것이 김승옥 작가가 포착한 인간의 외로움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외롭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서로의 마음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
수십 년 전의 작품인데도 이런 감정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이 묘하게 서늘하다.

특히 마음에 오래 남은 부분은 아내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내의 장면이다.
🔖“아내의 시체를 병원에 팔았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장은 읽는 순간 오히려 너무 담담해서 더 무겁게 느껴졌다.
사내는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한다. 하지만 그 설명이 어떤 선택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현실 앞에서 무너져버린 인간의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아내는 어떻게 될까요?”

이 질문은 죽은 사람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가난과 절망 앞에서 인간의 존엄은 어디까지 지켜질 수 있는지,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은 그 모든 일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를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승옥의 문장은 이런 장면에서 더욱 무섭다.
울부짖거나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도록 내버려둔다. 그런데 독자는 그 담담한 말들 사이에서 더 큰 비극을 읽게 된다.

[역사(力士)]에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힘과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서씨는 대대로 힘을 물려받은 역사였지만, 그 힘이 과거와 같은 의미를 갖지는 못한다. 한때 가문의 자랑이자 존재의 이유였던 힘이 이제는 공사장에서 조금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능력으로 축소된다.

🔖“그것으로써 그들은 세상을 평안하게 할 수 있었고 자신들의 영광도 차지할 수 있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능력’이라는 것이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시대에는 가장 중요한 재능이었던 것이 다른 시대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능력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을 인정해주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역사]는 한 힘센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잃어가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건]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게 한다. 특히 가족과 죽음,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이는 장면에서는 어린 화자의 시선이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만든다. 작가는 한 가족. 몇 명의 사람. 그 작은 세계 안에서 시대의 공기가 느껴지게 만든다.


《무진기행 필사북》에 실린 네 작품을 필사하며 배운 것은 김승옥의 문장을 통해 ‘문장을 바라보는 눈’ 즉,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평범한 대화에서 고독을 발견하고, 안개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힘을 가진 사람에게서 시대의 아이러니를 바라보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전쟁과 죽음을 바라본다. 그래서 필사를 통해 문장을 그대로 따라 쓰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작가는 왜 이것을 보았을까?’라는 질문까지 함께 따라가게 된다.

한 문장을 쓰면서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장면을 옮겨 적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좋은 글을 쓰는 법 이전에 좋은 문장을 알아보는 눈, 그리고 사람을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보는 눈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김승옥의 작품에는 ‘젊음’이라는 감각이 있다. 하지만 그 젊음은 마냥 찬란하지 않다. 불안하고, 외롭고, 때로는 무책임하며,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시대에도 낯설지 않다.

《무진기행》을 읽고 난 뒤 마음에 남은 것은 안개가 걷힌 뒤의 선명한 풍경이 아닌, 안개가 걷힌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흐릿함이다.

나는 무엇을 피해 살아왔는지,
어떤 순간에는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지금의 삶에 정말 만족하고 있는지.

후반부에 자신과 약속하듯 되뇌는 장면도 오래 남는다.
현실로 돌아가려는 사람의 결심과,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놓고 가는지
알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 함께 들어 있는 듯하다.

어쩌면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의 ‘무진’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도망치고 싶은 곳,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되는 곳,
현실에서는 외면했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는 곳.
그리고 결국 다시 돌아와야 하는 곳.

이 책의 진가는 필사가 끝난 뒤에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작가의 문장을 따라 쓰지만,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에는
그 문장 사이사이에 나의 시간이 함께 들어가 있을 테니까.

같은 문장을 쓰더라도 그날의 기분에 따라 글씨의 속도가 달라지고, 어떤 문장에서는 펜이 잠시 멈출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한 문장이 어느 날에는 유난히 마음에 걸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 시간 자체가 또 하나의 독서가 된다.

눈으로 읽고 지나가는 대신 손으로 한 문장씩 붙잡아 보는 것.
옮겨 적으며, 문장의 리듬뿐 아니라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외로움과 쓸쓸함,
인간에 대한 애정까지 천천히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책 속 김승옥의 문장과 함께 나 자신의 시간도
한 권의 책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가 아닐까.

김승옥 작가의 문장은 읽고 나면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안개처럼 마음 어딘가에 오래 머무는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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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염증
김슬기 지음 / 서사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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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음식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아침에는 밥을 먹고, 통곡물이 몸에 좋다고 생각하고, 식물성 기름은 동물성 지방보다 건강하다고 믿는다. 고기는 적당히 먹어야 하고, 채소는 많이 먹을수록 좋으며, 칼로리는 줄이는 것이 건강을 위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그런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이 책의 큰 의미는 특정한 식단을 권하는 데만 있지 않은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던 음식에 대한 믿음을 한 번쯤 멈춰 세운다는 데 있다.

책은 인슐린 저항성, 염증, 지방, 탄수화물, 곡물, 육류, 식물성 단백질, 가공식품 등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면서 현대인의 식생활을 다시 바라본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오랜 식단 연구를 바탕으로 저탄고지와 키토제닉 식단, 더 나아가 육식에 가까운 식단에 대해 강하게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인상적인 것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보다 ‘왜 그것을 건강하다고 믿어 왔는가’를 묻는 것이였다.


책에서 특히 놀라웠던 점은 탄수화물과 곡물, 식물성 기름이다.
저자는 쌀과 빵, 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탄수화물이 혈당과 인슐린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고, 통곡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건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인에게 쌀밥은 탄수화물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밥을 먹어야 제대로 먹었다고 느끼고, 고기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마지막에 밥 한 공기를 먹어야 식사가 끝난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그런 익숙한 식문화에 책은 의문을 품게 한다.
🤔“밥을 먹어야 배가 부르다고 느끼는 것과, 몸에 정말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책에서 또 하나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은 지방에 대한 시선의 전환이다.
오랫동안 ‘동물성 지방은 나쁘고 식물성 지방은 좋다’는 식으로 구분해 온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식탁 위의 염증》은 이러한 이분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책에서는 염증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상처가 났을 때 붓고 열이 나고 통증이 생기는 것처럼 염증은 본래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정상적인 면역 반응이기도 하다. 문제는 필요한 순간의 염증 반응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되는 염증과 대사적 문제가 건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건강을 ‘어떤 병이 생겼느냐’만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몸의 균형이 오랫동안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관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책 제목인 《식탁 위의 염증》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병원에서 병명을 진단받은 뒤에야 건강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매일 반복되는 식사부터 돌아보자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을 먹어라’라는 단정적인 답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너무 쉽게 믿어 온 식생활의 기준을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육류에 대한 시선도 새로웠다. 고기를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면서 자신의 몸 상태가 달라졌던 경험을 이야기하고, 동물성 단백질의 아미노산 구성과 영양소의 이용 가능성을 강조한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단백질을 ‘몇 g 들어 있는가’만으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었다. 음식에 단백질이 들어 있다는 것과 몸이 그 단백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같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평소 단백질 섭취를 생각할 때 ‘함량’만 바라보았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중요한 것은 육식이냐 채식이냐를 편 가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먹는 음식의 영양적 질과 양, 그리고 전체 식단의 균형을 살펴보는 것이 아닐까.


책의 프롤로그에서 선사시대 인간의 식생활과 진화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부분도 흥미로웠다. 특히 인간의 식생활을 현대의 영양 기준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류가 오랜 시간 어떤 음식을 섭취해 왔는지를 통해 현재의 식단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인상적이었다.

지금까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식생활이 정말 인간의 몸에 가장 적합한 것인지, 아니면 현대의 산업과 생활방식이 만들어낸 결과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이 내게 남긴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확인해 보는 습관’이었다. 건강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수많은 제품들.
‘저지방’, ‘통곡물’, ‘무설탕’, ‘식물성’, ‘건강한 지방’ 같은 단어들.
이런 단어를 보는 순간 제품의 실제 성분을 자세히 살펴보기보다 이미 건강하다고 판단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난 뒤 마트에서 식품을 고를 때도 조금 더 원재료표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무엇이 들어 있는지, 얼마나 가공되었는지,
내가 왜 이것을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어쩌면 건강을 위한 첫 번째 변화는 지금까지 아무 의심 없이 먹어 온 음식을 다시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건강을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져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이야기한다.

🔖“건강은 남이 대신 책임져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이라는 대목은 책 전체의 내용을 의미하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이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았던 이유는 건강을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것과 스스로 공부하고 선택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의사는 치료를 도울 수 있고, 영양 전문가는 식단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고,
연구자는 새로운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무엇을 먹을지는 내가 결정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나는 지금까지 내 식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문장은 책에서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물론 몸의 증상만으로 질병의 원인을 스스로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피로하거나 소화가 불편하거나 반복적으로 몸의 이상 신호가 나타날 때 그것을 참고 넘기지 않고,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정말 건강한 음식일까?’
‘나는 왜 이것을 건강하다고 믿고 있을까?’
‘전문가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검증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레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건강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어제는 좋은 음식이었던 것이 오늘은 나쁜 음식이 되고, 누군가는 탄수화물을 줄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방을 줄이라고 한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이 책에서와 같이 근거를 확인하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고, 나에게 적용할 때는 신중하게 판단하는 태도일 것이다.

지금까지 건강을 위해 먹고 있었을까,
아니면 ‘건강하다고 알려진 것’을 먹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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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해도 괜찮은 내일, 루시 모드 몽고메리 영어 필사 - 빨강 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서거 85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ㅣ 이루리북스 클래식 2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이루리 편역 / 이루리북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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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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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빨강 머리 앤》을 읽으며 앤의 상상력과 명랑함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어른이 된 뒤 다시 만난 몽고메리의 문장에서 조금 다른 얼굴을 발견하게 될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초록 지붕 집과 숲, 호수와 별빛이 아름다워서 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 아름다운 풍경 뒤에 숨어 있던 외로움과 상실, 자존심과 상처, 그리고 그럼에도 삶을 사랑하려 했던 한 사람의 단단한 마음을 읽게 되기 때문이다.

《실수해도 괜찮은 내일, 루시 모드 몽고메리 영어 필사》는
‘어른이 된 후 다시 읽는 몽고메리’를 만날 수 있는 책처럼 느껴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빨강 머리 앤]의 유명한 문장만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밀리], [블루 캐슬], [실버 부시의 패트리샤]를 비롯해 몽고메리의 초기 시까지 아우르면서 한 작가가 평생 바라보고 기록했던 세계를 계절의 흐름에 따라 펼쳐놓았다.

봄에서 시작해 여름을 지나 가을과 겨울을 통과하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구성은 책의 분위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장치 역할 뿐 아니라, 삶 자체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마음도 늘 봄일 수는 없으니까.'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는 때가 있는가 하면, 뜨겁게 살아가는 계절도 있고, 지나간 것들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겨울을 견뎌야 하는 날도 있다. 그래서 134개의 문장은 134일 동안 자신의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작은 순례처럼 다가온다.

특히 제목에 들어 있는 ‘실수해도 괜찮은 내일’이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지나간 실수에는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는 너무 쉽게 겁을 먹는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 순간을 복기하고,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까지 미리 걱정한다. 그런 우리에게 ‘내일’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시간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한 뒤에도
다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과 맞닿아 있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당신이 멈춰 섰던 그 길모통이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선물입니다.
당신의 내일은 오늘보다 분명 더 아름다울 거예요.”

이 문장이 좋았던 이유는 길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정말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 걸음 내딛어보겠다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몽고메리가 말하는 희망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몽고메리의 낙관은 마냥 해맑은 낙관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삶이 늘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답지 않은 순간까지 지나온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태도에 가깝다.

'편역자의 말'이라는 책 서문에는 ‘앤의 쾌활함 뒤에 숨겨진 상실의 아픔’이라는 관점도 그래서 인상적이다. 어린 시절에는 앤의 상상력과 수다스러움, 엉뚱한 실수들이 재미있었다면, 어른이 되어서는 그 아이가 왜 그렇게 상상하고, 왜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는지를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상상력은 현실을 외면하는 방법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기 위한 힘일지도 모른다.
몽고메리의 작품 속 자연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생각하게 된다. 숲과 호수, 들판과 바다, 햇살과 달빛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마음을 비추는 또 하나의 언어처럼 기능한다. 그래서 이 필사집의 목차를 따라가다 보면 ‘숲’, ‘햇살’, ‘호수’, ‘달빛’, ‘정원’, ‘바람’, ‘별빛’, ‘들판’ 같은 단어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자연을 바라보는 일과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조금씩 겹쳐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사’라는 형식도 잘 어울린다.

좋은 문장은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손으로 천천히 옮겨 적을 때 전혀 다른 속도로 다가온다. 한 문장을 베껴 쓰기 위해서는 평소처럼 빠르게 읽고 지나갈 수 없다. 단어 하나를 보고, 문장의 호흡을 따라가고, 내가 지금 어떤 단어에서 멈추었는지를 알아차리게 된다.

특히 이 책은 영어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놓았다는 점에서 영어 필사의 의미도 있다. 영어를 완벽하게 공부하기 위한 책이라기보다, 한 문장이 다른 언어에서 어떻게 태어나고 번역을 통해 어떻게 다시 내 마음에 들어오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오른쪽 페이지의 필사 공간은 작가의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바꾸어가는 공간이 될 것 같다. 몽고메리가 남긴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문장을 쓰고 있는 순간 떠오르는 나의 기억과 감정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수 앞에서’, ‘작은 용기’, ‘자존심과 상처’, ‘오래된 두려움’, ‘스스로 견뎌야 하는’ 같은 제목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기억을 불러낼 만하다.
누군가에게는 실패했던 하루가 떠오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전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떠오를 것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견뎠던 시간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책이 될 것 같다.
같은 문장을 읽어도 그날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마음에 닿는 지점이 달라질 테니까.

특히 ‘내 마음의 사계절’이라는 마지막 부록은 이 책의 방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34개의 문장을 필사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시간을 돌아보며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기록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몽고메리가 아니라 ‘나’인지도 모른다.
몽고메리의 문장은 길을 안내하는 등불이고, 필사는 그 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방법이며, 마지막에 남는 것은 그 길을 걸은 나 자신의 기록이다.

책 속에서 또 하나 마음에 남는 문장은 🔖“사랑스러운 세상아, 넌 정말 아름다워. 네 안에서 살아 있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뻐”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한마디로 표현주해는 것처럼 느껴졌다.
삶에는 분명 힘든 순간이 있고, 때로는 세상이 너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세상을 향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은 약한 마음이 아니라 오히려 아주 오래 견뎌낸 마음에서 나오는 힘일 수 있다.

그래서 《빨강 머리 앤》을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새로운 독서가 될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앤과 함께 아름다운 세계를 발견했다면, 지금의 나는 몽고메리와 함께 아름다운 세계를 다시 발견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발견은 어쩌면 ‘나만의 정원’을 가꾸는 일일 것이다.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곱씹게 된 것은 ‘사계절’이라는 단어의 이미지였다.
사람의 삶에도 봄과 여름만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때로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뜨겁게 살아가고, 내려놓고, 멈춰 서고, 다시 기다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겨울이 왔다고 해서 봄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이 다시 봄을 향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계절을 통과하는 일이고,
성장한다는 것은 모든 계절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계절이 내게 무엇을 가르쳐주었는지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실수해도 괜찮은 내일, 루시 모드 몽고메리 영어 필사》는 그런 시간을 위한 책으로 보인다. 무언가를 빨리 배워야 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느린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느림 때문에 필요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한 편씩, 134일 동안 문장을 읽고 쓰는 시간.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서 잠시 내려와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시간이 될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마음을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하루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오늘의 내가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고.
길모퉁이 너머를 아직 알 수 없어도 한 걸음쯤 내디뎌도 괜찮다고.

무엇보다 내일이라는 자리는 아직 무엇으로 채워질지 모르니까.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는,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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