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
장샤오만 지음,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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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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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깨끗한 공간을 너무나 당연하게 누린다.

바닥에 먼지가 없고, 화장실에 휴지가 놓여 있고, 쇼핑몰의 유리창이 반짝이고, 사무실의 복도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풍경을 보면서 그 상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닦고, 쓸고, 치우고, 채우고, 다시 닦고 있다는 사실은 깨끗함이 완성되는 순간과 함께 지워진다.

그래서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는 한 청소 노동자의 고된 삶을 기록한 책으로만 읽히지 않으며 그 동안 너무 쉽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도시의 풍경 뒤에 누군가의 몸과 시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특히 내용의 출발점이 ‘엄마를 이해하고 싶다’는 딸의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행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성장한 뒤에는 부모의 말과 생활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모가 살아온 시간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내가 알고 있던 부모의 모습이 사실은 그 사람의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에게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돈을 지나치게 아끼고,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이 얼마나 지쳤는지는 뒤로 미루는 사람. 딸의 눈에는 때로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 모습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한 시대를 살아낸 사람이 몸에 새긴 생존 방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저자가 엄마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엄마의 삶을 따라가 보기로 한 선택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나는 이것을 우리 모녀가 함께 걷는 길이라 여기기로 했다.”

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 가운데 하나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반드시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히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왔을까’를 묻는 것에서 이해가 시작될 때가 있다. 엄마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고, 그 과거를 따라가다 보니 결국 딸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족의 역사까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은 그래서 하나의 긴 귀향처럼 느껴진다.


이 책에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만든 것은 ‘도시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도시의 발전을 높은 건물, 첨단 기술, 기업의 성장, 높은 임금, 편리한 교통과 같은 것으로 이야기한다. 특히 선전처럼 빠르게 성장한 도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저자는 그 도시의 가장 화려한 표면을 조금 걷어낸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하루에 수만 보를 걷고, 오랜 시간 서서 일하고,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며,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숨겨야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

이 대목에서 ‘최저임금’이라는 숫자조차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은 노동자가 받는 돈을 보여주지만, 그 노동을 위해 얼마만큼의 체력과 시간, 건강과 삶을 내놓아야 했는지는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 저자는 미화원의 노동을 바라보며 이렇게 표현한다.

🔖“쇼핑몰이 ... 청결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미화원 개개인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빼앗은 결과다.”

이 문장은 ‘청결’이라는 긍정적인 결과가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노동의 결과라는 사실을 아주 간단하게 뒤집어 보여준다.

사람들이 ‘깨끗하다’고 감탄하는 순간 누군가는 이미 수없이 바닥을 닦았을 것이다. 또한 ‘편리하다’고 느끼는 순간 누군가는 그 편리함이 유지되도록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을 보지 않는다.

노동의 가장 낮은 가치란 돈을 적게 받는 것만이 아니라 노동하는 사람 자체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청소 노동자만 생각하게 되지는 않았다.
택배를 배송하는 사람, 새벽부터 매장을 준비하는 사람,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사람, 우리가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정돈하는 사람들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지만 결과를 너무 쉽게 소비한다.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정돈된 건물에 들어가고, 새벽에도 배달되는 물건을 받고, 언제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하루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노동의 가치를 ‘필요성’으로 판단하면서도 실제 보상은 그와 전혀 다르게 책정한다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가장 낮은 대가를 받는 노동이 있다.
반대로 사회에 꼭 필요한 정도와 상관없이 높은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는 노동도 있다.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과 인간의 삶에서 갖는 가치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유난히 아프게 다가온 이유를 알게 된다.


책에서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은 딸이 엄마의 손을 바라보는 부분이었다.
🔖“엄마의 손가락 마디는 툭 불거져 있었고, 살갗은 작고 붉은 구멍들이 생긴 데다 몹시 거칠어져 있었다.”

손은 이상하게도 사람의 삶을 많이 말해준다.
얼굴에는 표정을 만들 수 있지만 손에는 살아온 시간이 쉽게 감춰지지 않는다.
거칠어진 피부, 굳은살, 휘어진 관절, 상처와 흉터 같은 것들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장면은 ‘엄마가 힘든 일을 했다’는 설명보다 훨씬 아프게 다가온다.
딸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지만 엄마의 손을 보고 나서야 엄마의 노동이 자신의 눈앞에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마음 아픈 것은 이런 대목이다.
🔖“나는 한 번도 엄마에게 요즘 일은 어떠냐고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이라서 오히려 묻지 않는 것들이 있다.

‘요즘 힘들지 않아?’ , ‘몸은 괜찮아?’
‘일은 어때?’ , ‘많이 아프지는 않아?’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너무 오래 알고 지냈기 때문에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질문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노동의 문제만큼이나 깊게 다가오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의 계층 이동에 관한 이야기다.

부모 세대는 몸으로 일해서 자식에게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만들어주었다. 자식은 공부하고, 도시로 나가고, 좋은 직업을 얻으며 부모보다 다른 세계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자식이 올라간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 역시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다.

책 속 딸 역시 안정된 듯 보이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지만 성과와 평가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모 세대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불안의 형태는 닮아 있다.

이 부분에서 ‘계층 이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교육을 통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다고 믿는다.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직업을 얻으면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교육과 직업이 삶의 기회를 넓혀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동이 개인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자식이 공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시간을 내놓았고,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몸을 혹사했으며, 누군가는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뒤로 미루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은 오롯이 ‘나의 능력’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있다.

나의 현재에는 누군가의 과거가 들어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성공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진다.


처음 저자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엄마를 기록한다.
하지만 엄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 안에는 가족의 역사와 가난, 이주, 노동, 교육, 세대의 가치관이 들어 있었고, 그 모든 것이 딸 자신에게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엄마는 왜 저렇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은 어느 순간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바뀐다.

이 변화가 참 좋았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시작한 일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돌아오는 것.
자식이 부모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평생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부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엄마는 ‘엄마’였지만, 엄마에게도 엄마가 있었고, 꿈이 있었고, 두려움이 있었고, 포기한 것들이 있었으며, 젊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인생을 너무 쉽게 역할 하나로 축소해버린다.

‘엄마.’ 혹은 ‘아빠.’

하지만 그 이름 아래에는 한 사람의 생애가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가난을 낭만화해서는 안 된다.
고된 노동도 아름답게 포장할 필요가 없다.
부모의 희생 역시 ‘부모니까 당연히 해야 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식을 사랑했던 마음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희생은 숭고하다고 미화하지 않으면서도, 그 희생 속에 있었던 사랑은 잊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좋은 균형감이라고 느꼈다.


책을 읽고 나면 내가 평소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을 ‘풍경’처럼 지나쳤는지가 마음에 남는다.

길을 걷다가 마주친 청소 노동자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바라보았던가.

깨끗한 건물에 들어가면서 그 공간을 깨끗하게 만든 사람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모가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해오던 일이니까’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을까.

그리고 나 자신 역시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 위에서 지금의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얼마나 자주 기억하고 있을까.

이 책은 한 사람의 엄마를 따라간다.
한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청소부’라는 직업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낸 시간은 지금의 딸을 만들었다.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를 읽으며 ‘노동의 존엄’이라는 익숙한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노동이 존엄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내가 편리함을 누리는 순간 그 편리함을 만들어낸 사람을 함께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값싼 노동의 결과를 소비하면서 노동자의 삶을 보지 않는다면, 결국 사람을 지우고 결과만 소비하게 된다.


나는 누구의 노동 위에 서 있는가.
내가 당연하게 누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 나는 정말 알고 있는가.


서평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 마음에 남는 것은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는 당위가 아니다. 어쩌면 이해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설명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고 오래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깨끗하게 정돈된 건물에 들어설 때면 아주 잠깐이라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이 깨끗함은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사람의 오늘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노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 바라봐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마음.
보이지 않는 노동을 너무 쉽게 지나쳤던 마음.


한 사람의 거칠어진 손.
그 손에 새겨진 시간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평소 너무 빨리 지나쳐버렸던 사람들의 시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그 오래 바라봄의 끝에서,
타인의 삶뿐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수많은 시간과 사람들까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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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푸들 ㅣ 래빗홀 YA
우신영 지음 / 래빗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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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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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왜 하필 푸들의 모습으로 찾아왔을까.

괴테의 《파우스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그 욕망을 파고드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다. 지식과 삶의 의미에 갈증을 느끼던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이 원하는 것을 건네는 대신 그 대가를 요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악마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우스트의 방으로 들어온 존재는 한 마리의 푸들이고,
곧 그 푸들은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우신영의 《블랙 푸들》을 펼쳤을 때 제목부터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악마가 한 소년에게 무엇을 원할까.
《블랙 푸들》의 설정은 악마가 건네는 초록색 알약을 얼핏 보면 판타지적인 장치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유혹과 닮아 있다.

‘남보다 뛰어나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우수에게 초록색 알약을 삼키게 한 진짜 유혹이 아니었을까.

《파우스트》에서 인간은 더 많은 지식과 더 충만한 삶을 욕망했고, 《블랙 푸들》의 우수는 타인의 능력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사랑과 인정에 닿으려 한다.

두 작품 사이에는 오랜 시간이 놓여 있지만, 인간이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갈망한다는 점에서는 묘하게 닮아 있다.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도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일곱 살 표우수에게는 탁수현이 바로 그런 존재다.

우수에게 수현은 자신이 아무리 애써도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을 가진 아이이자, 자신이 가장 받고 싶었던 엄마의 관심과 사랑까지 가져간 사람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의 밑바닥에는 때때로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이 숨어 있다. ‘저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보다 더 솔직한 마음은 ‘나도 저 사람처럼 인정받고 싶다’일지도 모른다.

우수의 문제는 재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측정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에게 충분히 사랑받으려면 더 잘해야 하고, 친구보다 뛰어나야 하고,
누군가에게 뒤처지지 않아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만 자신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된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내민 초록색 알약은 너무나 위험하면서도 너무나 달콤하다. 그것은 우수가 평생 원했던 ‘인정받는 나’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남았던 것은 우수가 자신의 평범함을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악기도 애매, 공부도 애매, 인물도 애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아빠 닮아 머리라도 좋으려나 싶어 영재 검사를 해 보니 3퍼센트라는 평범한 숫자가 나왔다.”

여기에서 ‘3퍼센트’라는 숫자가 씁쓸하게 느껴졌다.
100명 중 3명이라면 결코 부족한 숫자가 아닐 텐데, 우수에게 그것은 ‘평범함’의 증거가 되어버린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어도 내 옆에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있으면 부족해 보이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어도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기준 앞에서는 실패처럼 느껴진다.

요즘의 청소년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성적표, 대학, 취업, 연봉, 외모, 팔로워 수, 자산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한다.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많아질수록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수의 질투는 경쟁 사회 속에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감정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질투를 느끼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질투가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기 부정으로 이어질 때가 아닐까.


메피스토펠레스가 제시한 계약의 조건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멈추어라’ 말할 수 없다는 것뿐.”

우리에게도 ‘멈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조금 더'라는 욕망 자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더’가 끝나지 않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도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이미 가진 것을 누리기도 전에 다음 목표를 세우고, 다른 사람의 삶을 보며 다시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다. 그렇게 계속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조차 잊게 된다.

《블랙 푸들》의 악마는 바로 그런 인간의 욕망을 형상화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악마가 억지로 우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우수가 가장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래서 더 무섭다.
가장 위험한 유혹은 내가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을 내미는 것일 테니까.


🔖“그래, 해 봐. 탁수현. 마음가는 대로 쳐 봐. 건반에서 길 잃어도 돼. 내가 같이 길 찾으러 다녀 줄 테니까.”

이 문장이 《블랙 푸들》이 말하고 싶은 성장의 방향을 잘 보여준다고 느껴졌다.
우수와 수현이 있는 세계에서는 길을 잃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시험에서 길을 잃으면 안 되고,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되고,
연주에서 틀리면 안 되고, 인생에서도 정해진 방향을 벗어나면 안 된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살아가면서 수없이 길을 잃는다.
길을 잃는 순간에야 자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틀렸을 때 다시 방향을 찾는 힘일 수 있다.
그래서 “같이 길 찾으러 다녀 줄게”라는 말이 좋았다.

성장은 때로 누군가와 함께 헤매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

누군가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바라보며 작아졌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그게 우수가 찾아가는 진짜 변화처럼 느껴졌다.


🔖“혼자서 도달하는 완벽함은 불가능하지만, 여럿이 만들어 가는 완전함은 가능하다는 것을.”

완벽함과 완전함을 구분한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완벽함은 혼자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현실에 존재하기 어렵다.

반면 누군가에게 없는 것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고, 서로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면 혼자서는 가질 수 없었던 온전함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경쟁’에서 ‘연결’로 나아간다는 점이 좋았다.

처음의 우수에게 친구는 경쟁 상대였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친구는 함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서로의 상처를 바라봐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성장한다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이 바뀌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 사람보다 내가 잘해야 해’에서 ‘저 사람도 힘들었구나’로.
‘내가 이겨야 해’에서 ‘같이 가면 어떨까’로.

그 작은 변화가 사람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고 나니 초록색 알약보다 ‘멈추어라’라는 말에서 생각이 오래 머물렀다.

멈춘다는 것은
계속 달리던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는 것.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라보는 것.
그리고 남의 삶을 훔쳐야만 빛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에게,
사실은 나만의 빛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

아마 그것이 우수가 찾아간 가장 중요한 답이 아니었을까.

혹시 나도 남의 빛을 바라보느라 내가 가진 빛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작품이 오래된 악마를 다시 불러낸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인간은 여전히 무언가를 갈망하고,
그 갈망이 가장 약한 곳을 악마는 정확하게 찾아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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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신도 후유키 지음, 장하나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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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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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나는 아직 그 길을 쉽게 지나가지 못한다.

함께 산책하던 공원.
매일처럼 같이 걷고, 냄새를 맡고, 잠시 쉬어가던 익숙한 길.
이제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일부러 기억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창밖으로 그 풍경이 스쳐 지나가면
그 아이와 함께했던 순간들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기서 같이 걸었었지.’
‘이 길을 참 좋아했었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2년 전의 일이 어제 있었던 것처럼 가슴 한쪽이 아파온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슬픔도 언젠가는 희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반려동물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했던 것은 그저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매일 반복되던 산책, 밥을 먹는 모습, 나를 바라보던 눈빛,
집 안에서 타닥타닥 탁탁탁 들리던 작은 발소리까지.
그 모든 평범한 순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이 책은 나에게 사랑했던 존재가 떠난 뒤에도 그 사랑은 어디에 남아 있는가를 묻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떠나보낸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되었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매일 밥을 주고, 산책을 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때로는 말썽을 부리는 모습을 보며 웃는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게 느껴지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주 귀한 시간이라는 것을 쉽게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아이가 나보다 먼저 늙어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예전처럼 높이 뛰지 못하고, 산책 속도가 느려지고, 잠이 많아지고, 어느 날에는 병원이라는 단어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그때부터 ‘함께한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달라진다.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는 책장을 넘길수록 이 이야기가 사랑하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 존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처음의 미나미노는 사람보다 일이 중요하고, 효율과 이익을 우선하며, 반려동물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우연히 파스텔과 함께 생활하게 된다는 설정은 익숙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파스텔은 미나미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서 마음을 열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저 곁에 있는다.

쫓아내려고 해도 다시 돌아오고,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도 변함없이 자신의 사랑을 건넨다. 인간이라면 관계를 계산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기도 하지만, 강아지의 사랑은 그런 계산과는 조금 다르다.

좋아서 좋아하고, 기다리고 싶어서 기다리고, 함께 있고 싶어서 곁에 있는다.
반려견에게서 가장 크게 위로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때때로 ‘내가 이만큼 해줬는데 왜 알아주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관계 속에서 상처를 주고받고, 상대의 마음을 의심하고, 사랑받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반려동물과의 관계에서는 그런 복잡한 계산이 상대적으로 적다.

오늘 함께 있고, 함께 밥을 먹고, 같이 산책을 하고, 서로를 바라봐 주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이다.
그래서 반려동물과의 이별이 유난히 힘든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가 삶의 어느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기 때문이다.

현관을 열었을 때 달려오던 발소리.
사료 그릇이 바닥에 닿는 소리.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느껴지던 작은 온기.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쳤던 행동들이 갑자기 ‘추억’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게 되는 부분도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보내는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가장 특별한 하루일 수 있다는 것.

책 속에는
🔖“개의 하루는 사람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일주일에 가까운 속도로 흘러간다”는 문장이 나온다.

정확한 시간의 환산을 말하는 문장이라기보다,
이 문장이 건네는 정서가 오래 남는다.

사람에게는 수많은 일정 중 하루일 뿐인 날이 강아지에게는
주인과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하루라는 것.

생각해 보면 자주 ‘나중에’를 말한다.

나중에 산책 많이 해줘야지.
주말에 더 오래 놀아줘야지.
시간이 좀 생기면 여행도 같이 가야지.
사진도 더 많이 찍어야지.

그런데 반려견에게 ‘나중’이라는 개념은 사람만큼 길지 않다.
그래서 이 문장은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에게 하나의 질문처럼 다가온다.

‘나는 지금 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충분히 사랑하고 있을까?’

책 속 또 다른 문장인
🔖“지금 어떤 길을 걷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가끔은 잠깐 쉬어가는 것도 괜찮아요." 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처음에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처럼 읽히지만,
미나미노와 파스텔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이 문장이 조금 더 넓게 다가온다.

반려동물은 자꾸만 현재를 보여준다.
산책을 하다가 냄새 하나에 멈춰 서고, 햇볕이 좋은 곳에 누워 한참을 쉬고, 별것 아닌 장난감 하나에도 신나 한다.
그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늘 함께 있었느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너무 빨리 지나가느라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하는 존재와 보내는 시간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한다.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별’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언젠가는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 것을.
그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한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별의 가능성을 알고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펫로스가 그렇게 깊은 상실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겨우 강아지 한 마리’가 아니다.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며 하루의 일상을 공유했던 가족 한 명을 잃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무지개다리’라는 공간도 남겨진 사람이 사랑했던 존재를 마음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위로의 장소처럼 느껴진다.


죽음 이후의 세계가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함께했던 존재는 사라져도 그 존재와 함께한 시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함께 걷던 길도,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던 얼굴도, 무릎 위에 올라오던 순간도, 아플 때 걱정했던 마음도 모두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은 죽음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계속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제목인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가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떠났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로 이별을 다시 바라보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에서 이별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반려동물이 떠난 뒤에는 집 안에 남은 물건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 수 있고, 습관처럼 이름을 부르다가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기다림’은 남겨진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함께했던 사랑을 계속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충분히 따뜻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그리고 그 존재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처음에는 미나미노가 파스텔을 돌보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반대로 느껴진다.

파스텔이 미나미노를 돌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먹이고 씻기고 산책시키는 것은 인간이지만,
마음을 열게 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때로 동물일 수 있다.

반려동물은 그저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가족을 기다린다.
그리고 그 반복되는 기다림이 어느 순간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

그래서 이 책은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이야기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지금도 생각합니다. 그때 그게 정말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에게 묻게 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때 조금 더 안아줄걸. 조금 더 같이 있어줄걸.
병원에 한 번 더 데려갈걸. 그 말을 하지 말걸. 그 선택을 하지 말걸.
이런 후회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감정이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다시 고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곁에 있는 존재에게 더 많이 마음을 건네는 일일 것이다.

책 속 첫 번째 장면에서 느껴지는
🔖“언제나처럼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았다”로 시작해
“우리 둘만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장면도 그런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다.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햇살이 내려앉고, 바람이 불고, 음악이 들리고, 곁에 사랑하는 존재가 있는 순간.

행복이라는 것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던 평범한 장면이
가장 그리운 기억이 되는 것.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곁에 있는 반려견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이름을 한 번 더 불러주고 싶어진다.

평소라면 귀찮다고 생각했을 행동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산책을 조금 더 천천히 해볼까.
오늘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아이를 조금 더 바라봐줄까.
잠들기 전에 한 번 더 쓰다듬어줄까.

《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가 읽는 이에게 남기는 것은 이별이 언젠가는 찾아오기 때문에 지금의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하는 힘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건넨 사랑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반려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함께 있는 동안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반대로 반려견에게 받는 가장 큰 선물은
언제나 나를 기다려주는 것. 아무 조건 없이 반겨주는 것.
힘들 때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그리고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것.


사랑하는 존재가 내 곁에 있는 지금, 그 시간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무지개다리’라는 말보다 ‘오늘’이라는 단어가 더 마음에 남는다.
그러니 오늘의 산책 한 번, 오늘의 눈맞춤 한 번, 오늘의 쓰다듬 한 번이
훗날 가장 그리운 기억이 될지도 모른다.


떠난 뒤에야 소중함을 깨닫는 사랑이 아니라,
곁에 있을 때 충분히 바라보고 충분히 사랑하는 것.

한동안 마음속에서 파스텔의 발걸음이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그 발걸음 소리 끝에서 문득, 곁에 있는 작은 생명을 바라보게 된다.

‘오늘도 함께 있어서 참 다행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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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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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우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사와 시대의 무게였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처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굴곡을 그려온 작가이기에, 그의 신작이 ‘사랑’을 정면으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서리꽃》 1. 2권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낯섦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상대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끝내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다른 결말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으로 이야기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대학 시절 시화전에서 이재이가 쓴 시와 윤소인이 그 시를 읽고 그려낸 그림.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짧은 순간에 이미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윤소인이 이재이의 시를 읽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때 선배님 시는 잊을 수가 없어요. 시에 사로잡혀 그 그림을 단숨에 그렸으니까요.”

이 문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시와 그림은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하나의 감정을 향해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이 훗날 두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기억이 된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과거의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현실적인 관계라기보다 기억과 감정이 오랜 시간을 견뎌낸 사랑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은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이라도 마음 깊숙이 들어온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서리꽃》에서 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이재이 가족이 가진 가치관이다. 이재이의 아버지와 가족에게 돈과 사회적 지위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사랑이나 꿈보다 경제적 조건과 가문, 후계와 상속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놓인다. 그런 환경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이재이는 가족에게는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이재이는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재산과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윤소이. 그녀를 돕는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두 사람의 가치관이 정반대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형은 상속권을 마구 포기하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난 인생의 목적을 돈 많이 버는 것으로 세우고 있는 형을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지. 이건 영원한 평행선이야.”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두 사람의 인생관 자체가 충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재산은 미래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현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정말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재이는 윤소인을 살리고 싶어 한다. 빚 때문에 무너진 그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병을 치료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
아니면 상대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것이 사랑일까.

이재이는 윤소인을 ‘구해주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윤소인 역시 그 사랑을 받으면서 변화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거의 놓아버린 듯했던 사람이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윤소인은 화가이고 반 고흐를 좋아한다. 그녀에게 그의 작품은 예술적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과 창작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특히 반 고흐의 삶을 따라가며 작품을 바라보는 과정은 윤소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예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윤소인이 자신의 작품과 삶을 비교하고 절망하는 모습은 예술가가 가진 고독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재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는 그녀에게 재촉하지 않으며, 그저 그녀의 마음을 받아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리꽃은 오래 피어 있는 꽃이 아니다.
차가운 밤, 유리창이나 주변에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햇빛이 닿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제목은 작품의 사랑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아름답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찬란하기 때문에 더욱 사라질 것 같은 사랑.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알고 읽게 되면서부터는 평범한 장면조차 다르게 보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시를 나누고, 여행을 하고, 절에 가서 기도하는 일.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권에서 윤소인이 자신의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은 제목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오빠, 우리의 사랑은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짧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만큼 진하고 뜨거웠습니다.”

평생을 함께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가 있는 반면,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어놓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서리꽃은 덧없음의 상징인 동시에 짧기에 더욱 찬란한 사랑의 상징으로 읽혔다.


2권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사랑의 설렘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깊어진다.

윤소인의 상황이 두 사람의 미래를 계속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걸까?’
불안감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더 애틋해진다.

살리고 싶은 마음과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마음이 계속 부딪힌다.
그래서 이 소설의 사랑은 달콤하기보다 아프다.
행복한 장면이 많을수록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마음이 저려온다.


책의 뒷표지에 놓인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작품을 읽고 난 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찾는 사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서로에게 되돌아오는 관계.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생각하면 《서리꽃》의 사랑은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확장이기도 하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소설에서 결국 중심에 놓이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위해 희생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선택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리꽃》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묻는 작품에 가깝게 다가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만,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삶이었다.


🔖“그 누구도 세월을 이기는 자는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세월이라는 배에 실려 왔다가 세월이라는 배에 실려 떠나간다.”

이 문장은 《서리꽃》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오래 붙잡아주었다.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사랑 역시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은 영원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_

인생도 서리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피어 있었느냐가 아니라,
피어 있는 동안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했느냐일 것이다.

사랑은 함께 웃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것.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언젠가 헤어질 운명을 알고도 오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의 가장 깊은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_

차가운 밤에 피어나 햇살 앞에서 사라지는 서리꽃처럼,
짧아서 더 찬란하고, 사라지기에 더욱 오래 기억되는 사랑.

《서리꽃》을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바로 그 사랑의 잔상이다.

언젠가 모두 세월이라는 배에서 내리게 될 텐데,
그 배를 타고 있는 동안 누구의 손을 잡고 살아갈 것인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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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꽃 세트 - 전2권 (한정판 케이스 + 조정래 작가노트)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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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_

-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우는 것이다."

조정래 작가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사와 시대의 무게였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처럼 한 시대를 관통하는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역사의 굴곡을 그려온 작가이기에, 그의 신작이 ‘사랑’을 정면으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서리꽃》 1. 2권을 읽고 나니 오히려 그 낯섦이 이 작품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상대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끝내 자신이 원하는 미래와 다른 결말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으로 이야기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대학 시절 시화전에서 이재이가 쓴 시와 윤소인이 그 시를 읽고 그려낸 그림.
두 사람 사이에는 그 짧은 순간에 이미 특별한 감정이 싹튼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윤소인이 이재이의 시를 읽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으로 표현했다는 점이다.

🔖“그때 선배님 시는 잊을 수가 없어요. 시에 사로잡혀 그 그림을 단숨에 그렸으니까요.”

이 문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시와 그림은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하나의 감정을 향해 만난다.
그리고 그 만남이 훗날 두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기억이 된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과거의 한순간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처음부터 현실적인 관계라기보다 기억과 감정이 오랜 시간을 견뎌낸 사랑에 가까워 보였다.

사랑은 함께 보낸 시간의 길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이라도 마음 깊숙이 들어온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서리꽃》에서 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만드는 것은 이재이 가족이 가진 가치관이다. 이재이의 아버지와 가족에게 돈과 사회적 지위는 매우 중요한 가치다. 사랑이나 꿈보다 경제적 조건과 가문, 후계와 상속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먼저 놓인다. 그런 환경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이재이는 가족에게는 답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이재이는 자신에게 주어질 수 있는 재산과 미래를 포기하면서까지 윤소이. 그녀를 돕는다. 여기서 인상적인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두 사람의 가치관이 정반대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형은 상속권을 마구 포기하는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고, 난 인생의 목적을 돈 많이 버는 것으로 세우고 있는 형을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지. 이건 영원한 평행선이야.”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두 사람의 인생관 자체가 충돌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재산은 미래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현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다. 어느 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가진 것 중 정말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재이는 윤소인을 살리고 싶어 한다. 빚 때문에 무너진 그녀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병을 치료하고, 좋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는 것이 정말 사랑의 완성일까.
아니면 상대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것이 사랑일까.

이재이는 윤소인을 ‘구해주려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윤소인 역시 그 사랑을 받으면서 변화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거의 놓아버린 듯했던 사람이 다시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사랑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일방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주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윤소인은 화가이고 반 고흐를 좋아한다. 그녀에게 그의 작품은 예술적 동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과 창작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특히 반 고흐의 삶을 따라가며 작품을 바라보는 과정은 윤소인의 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음에도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예술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화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윤소인이 자신의 작품과 삶을 비교하고 절망하는 모습은 예술가가 가진 고독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재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는 그녀에게 재촉하지 않으며, 그저 그녀의 마음을 받아준다.
사랑하는 사람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재능을 인정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서리꽃은 오래 피어 있는 꽃이 아니다.
차가운 밤, 유리창이나 주변에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햇빛이 닿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제목은 작품의 사랑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아름답기 때문에 더 불안하고, 찬란하기 때문에 더욱 사라질 것 같은 사랑.

두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알고 읽게 되면서부터는 평범한 장면조차 다르게 보였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걷고, 시를 나누고, 여행을 하고, 절에 가서 기도하는 일.
평범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2권에서 윤소인이 자신의 사랑을 바라보는 마음은 제목의 의미를 더욱 깊게 만든다.

🔖“오빠, 우리의 사랑은 밤 추위에 피어났다가 햇살이 비치면 금세 사라지고 마는 서리꽃처럼 짧았습니다. 그러나 짧은 만큼 진하고 뜨거웠습니다.”

평생을 함께해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관계가 있는 반면,
짧은 시간 동안에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꾸어놓는 사랑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서리꽃은 덧없음의 상징인 동시에 짧기에 더욱 찬란한 사랑의 상징으로 읽혔다.


2권으로 갈수록 이야기는 사랑의 설렘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질문으로 깊어진다.

윤소인의 상황이 두 사람의 미래를 계속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말 괜찮은 걸까?’
불안감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더 애틋해진다.

살리고 싶은 마음과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두 마음이 계속 부딪힌다.
그래서 이 소설의 사랑은 달콤하기보다 아프다.
행복한 장면이 많을수록 그 행복이 영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마음이 저려온다.


책의 뒷표지에 놓인 “사랑한다는 것은 함께 우는 것이다”라는 문장은 작품을 읽고 난 뒤 훨씬 무겁게 다가왔다.

두 사람의 사랑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을 찾는 사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내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행복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서로에게 되돌아오는 관계.

그것이 이 작품이 말하는 사랑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생각하면 《서리꽃》의 사랑은 의외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확장이기도 하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소설에서 결국 중심에 놓이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무엇을 믿고,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위해 희생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라면,
이번 작품에서 작가가 선택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리꽃》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인간이 무엇으로 살아가는가를 묻는 작품에 가깝게 다가왔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지만,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삶이었다.


🔖“그 누구도 세월을 이기는 자는 없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있는 것들은 세월이라는 배에 실려 왔다가 세월이라는 배에 실려 떠나간다.”

이 문장은 《서리꽃》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을 오래 붙잡아주었다.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더 많이 갖는 것보다 누구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오늘을 살아가는 것처럼,
사랑 역시 언젠가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다.

이재이와 윤소인의 사랑은 영원을 알 수 없는 인간이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로 남았다.

_

인생도 서리꽃과 비슷한 것은 아닐까.
어느 순간에는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사라진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피어 있었느냐가 아니라,
피어 있는 동안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했느냐일 것이다.

사랑은 함께 웃는 것만이 아니라 함께 울어주는 것.
상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때까지 곁을 지켜주는 것.
그리고 언젠가 헤어질 운명을 알고도 오늘의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는 사랑의 가장 깊은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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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에 피어나 햇살 앞에서 사라지는 서리꽃처럼,
짧아서 더 찬란하고, 사라지기에 더욱 오래 기억되는 사랑.

《서리꽃》을 읽고 난 뒤 남은 것은 바로 그 사랑의 잔상이다.

언젠가 모두 세월이라는 배에서 내리게 될 텐데,
그 배를 타고 있는 동안 누구의 손을 잡고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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